장병철

 


'''장병철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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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감독'''
'''Suwon KEPCO Vixtorm'''
<colbgcolor=#ed1c24> '''이름'''
'''장병철
張秉哲'''
'''출생'''
1976년 10월 30일 (48세)
경기도 인천시[1]
'''국적'''
[image] 대한민국
'''신체'''
194cm|체중 85kg
'''직업'''
배구선수(라이트 / 은퇴)
배구감독
'''학력'''
인하대학교사범대학부속중학교 (졸업)
인하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졸업)
성균관대학교 (학사)
'''프로입단'''
1999년 삼성화재 배구단
'''소속'''
<colbgcolor=#ed1c24> '''선수'''
[image]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1999~2009)
'''감독'''
[image]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2019~ )
'''코치'''
[image]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2015~2019)
1. 소개
2. 선수 경력
3. 은퇴 이후
4. 감독 생활
4.1. 2019-20 시즌
4.2. 2020-21 시즌
5. 기타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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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대한민국의 前 국가대표 배구 선수이자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의 감독이다. 포지션은 라이트였다.

2. 선수 경력


[image]
1976년생 동기동창인 최태웅, 석진욱과 함께 인하부중, 인하부고를 졸업한 장병철은 당시의 관행을 깨고[2] 인하대가 아닌 성균관대로 진학하였으며[3] 입학 예정자 신분으로 뛴 1994~1995 슈퍼리그에서 1학년이지만 당당히 주전 라이트 공격수로 출장해 신진식 다음가는 넘버 2 공격수의 위치로 맹활약하고 슈퍼리그 신인왕을 수상했다.
이 때만 해도 김세진 이후 최고의 라이트 공격수 유망주였으며 약간 키가 작은 것만 빼면 국가대표 에이스급 선수로 손색이 없던 선수였다. 김세진 문서에도 서술되어 있지만, 정통파 왼손잡이 공격수와는 거리가 먼 김세진과 달리 장병철은 운동능력과 스피드, 스파이크 테크닉를 겸비한 공격수인 데다 왼손잡이 특유의 스타일[4] 때문에 블로킹하기 매우 까다로운 공격수였다.
1995~1996 슈퍼리그 4강을 이끈 이후 무릎 수술로 1년동안 쉬게 되고[5] 1999년 졸업을 앞둔 상황에서 프로리그 전환과정에서 발생한 드래프트 합의 실패로 인해 일명 95학번 싹쓸이 사태가 발생하여(자세한 건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문서 참조) 계약금 3억 원을 받고 삼성화재로 입단하게 된다.
입단 당시에는 김세진이 버티고 있어서 김세진의 백업밖에 하지 못했지만, 김세진은 2000년대 이후 하향세였기 때문에 실질적인 주전은 장병철이었다.[6] 한국 국가대표 배구의 암흑기인 2000년대 국가대표 주전 라이트로 선발되어 이경수와 함께 좌우에서 공격을 이끌었고, 실업 전환기인 V투어 시즌, V-리그 초기인 05~06시즌까지는 장병철이 주전 라이트였다. 이 시기는 아는 사람만 알던 아쉐나 잠깐 알바뛰고 간 윌리엄 프리디가 주전 레프트였기 때문에 공격을 분담했으며, 2007년 레안드로 다 실바가 왔을 때는 레안드로가 라이트로 뛰면서, 당시 외국인 선수가 없었던 상무한국전력과의 경기때 레안드로의 휴식일 차원에서 장병철이 주전으로 나와서 공격을 책임졌다. 이후 안젤코가 레프트 포지션에서 뛸 때는 주전 라이트, 중요한 상황 수비 강화를 할땐 안젤코를 라이트로 돌리고 손재홍과 석진욱이 주전 레프트가 되는 몰빵배구시스템을 썼기 때문에 주전과 백업을 오가는 플래툰 멤버 위치가 되었다. 프로 커리어 내내 풀타임 주전을 차지한 시즌은 한 시즌도 없는 셈이다.
선수 시절 큰 부상을 당해서 고교 시절이나 대학 신입생 때의 포스를 보여주지 못했고, 프로에서는 김세진과 외인 용병의 벽에 가로막혀 출장시간을 많이 받지 못했지만, 그 댓가인지 꽤나 오래 선수 생활을 했다. 30대가 지난 2008~2009시즌 챔피언 결승전 4차전에서는 12득점을 올렸고, 그 중에서도 2세트에서는 좌우전후를 가리지 않고 맹타를 퍼부었고 무려 62.50%의 공격 성공률을 기록하며 10득점을 올렸다. 2009년에는 부산 IBK 국제배구대회에서 MVP에 뽑히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지만, 발목 부상으로 인해 은퇴하게 된다.

3. 은퇴 이후


은퇴 후 실업팀 현대제철 배구단을 거쳐 부산시체육회에서 뛰고 있다가 2015년 9월 3일 부로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의 코치로 부임하였다. 기존 김영래가 수원전산여고의 코치로 옮기자 빈 자리에 세터인 권준형의 부족한 세팅 능력보다 서재덕전광인 쌍포가 부상으로 인해 기용이 많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비슷한 처지인 주상용과 박성률의 기량 상승이 시급한 팀 상황상 영입을 한 듯하다.
2019년 4월 9일 성적 부진을 이유로 자진 사퇴한 김철수 전 감독의 후임 감독으로 내부 승격되었다.

4. 감독 생활



4.1. 2019-20 시즌


시즌 초반부터 가빈 슈미트에게 몰빵배구를 시키며 욕을 들어먹고 있다.
시즌 10경기 기준 2승 8패를 기록 중인데, 이 중 2승은 모두 현대캐피탈에게만 거둔 승리였다. 그 말인 즉슨 타 팀에게는 모두 패배하였다는 얘기. 그러다가 11월 26일, KB를 상대로 3:1로 역전승을 거두면서 드디어 시즌 최초로 타 팀에게 승리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11월 29일 경기에서도 OK저축은행을 접전 끝에 3:2로 잡으면서 첫 연승을 이어감과 동시에 2라운드를 5할 승률로 마쳤다.
하지만 그것이 다였을 뿐 시즌 내내 부진한 모습만을 보이다가 코로나-19 때문에 경기 진행에 차질이 생기게 되었고, 3월 23일에 연맹이 남녀부 모두 시즌 종료를 선언하면서 한전의 시즌 최종 성적은 6승 26패에 전체 꼴찌인 7위로 시즌을 마치게 되었다.

4.2. 2020-21 시즌


2020 제천 MG새마을금고컵에서 우승을 이끌면서 이제 정규 시즌을 기대케 했다.
하지만 정작 시즌 개막 이후로는 1라운드 6전 전패를 하는 영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철우를 사 놓고 외국인 선수로 라이트인 카일 러셀을 뽑으면서 팬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는데, 러셀을 레프트에 넣고 개고생을 시키면서 러셀 탓만 하고 있다. 러셀이 리시브도 받고 기량 미달 세터 때문에 블로킹을 달고 사는데도 꾸준히 득점을 내 주지만, 장병철은 여전히 유독 러셀한테만 뭐라 한다.
안 그래도 1라운드 전패라는 창피한 기록만 봐도 기가 찰 지경인데, 약점을 보강하겠답시고 김광국을 데려오면서 김인혁, 안우재, 정승현을 내주는 희대의 조공 트레이드로 한전 팬들의 멘탈을 무참히 박살냈다. 아무리 세터가 급해도 그렇지 악명높은 ㄱㄱㄱ를 데려오면서 김인혁에 안우재까지 퍼주는 짓은 감독이 어디 머리라도 부딪혔나 싶을 정도의 호구딜. 기사를 보면 중간에 현금이 낀 듯 한데, 아무리 돈이 꼈어도 그렇지 이건 미래를 내다버리는 수준이다.
그러나 그 후 현대캐피탈과의 트레이드에서 신영석을 데려오며 상황이 급반전하게 되었다.
이후 11월 15일, 대한항공을 3:1로 꺾고 드디어 시즌 첫 승을 거뒀다.
사흘 후인 11월 18일, KB손해보험과의 4세트에서 연속 9실점 하는 가운데 4세트를 내줬으나, 5세트 극적인 역전승으로 3:2로 승리하며 2연승을 거뒀다. 이 승리로 팀은 '''356일'''만에 연승을 달리는 중이다.
11월 22일 삼성화재 상대로 1,2 세트를 내주면서 패색이 짙었으나 3,4,5세트를 내리 따내는 기적을 보이면서 3연승을 거뒀다.
11월 26일 OK금융그룹 상대로 3:0 승리를 하면서 4연승을 달렸다.
12월 2일 현대캐피탈과의 2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트레이드 보낸 김명관의 속공 범실로 3:1로 승리하며 팀 역사상 2번째 5연승을 기록했다.
3라운드 첫 경기인 대한항공과의 경기에서 1세트를 따내며 6연승을 노렸다. 하지만 2~3세트를 모두 내주면서 패색이 짙어졌고, 4세트를 땄으나 5세트에서 11:15로 패배하며 아쉽게 연승 행진이 끊겼다.
12월 11일 우리카드를 상대로 1~2세트를 맥없이 내주며 다시 연패행진에 들어가나 싶더니, 3~4세트를 내리 잡아내며 분위기를 바꾸었다. 5세트에서는 넉넉하게 승리하며 이번 시즌 전 구단 상대 승리를 달성했다!

5. 기타


  • 성균관대 4학년 시절, 해외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 그러나 장병철은 "병역문제 등이 남아있는 만큼 해외진출은 시기상조"라며 "국내 실업팀에서 경험을 쌓은 후 국제무대로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6. 관련 문서


[1] 현재의 인천광역시[2] 당시 인하부중-인하부고를 나왔다면 거의 반자동적으로 인하대로 진학했고 인하대 졸업 후에는 대한항공 배구단에 입단하고 배구를 그만 두면 대한항공 직원으로 일하는 것이 코스처럼 여겨졌다. 인하부중-인하부고-인하대-대한항공 배구단까지 모두 한진그룹 소유의 팀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물론 V리그 드래프트가 정착된 지금은 옛날 얘기.[3] 결론적으로 76년생 인하부고 3인방 중 인하대로 간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장병철만 성균관대로 갔고 최태웅석진욱은 나란히 한양대에 진학했다.[4] 야구의 투수도 마찬가지지만, 자연스러운 왼손잡이는 팔 스윙만으로 자동 역회전이 걸린다. 이 때문에 때린 볼이 요상하게 휘어서 디그나 블로킹 때 꽤나 까다롭다.[5] 최태웅, 유광우 등 인하부중, 고, 인하대를 거친 선수들의 숙명과도 같은 부상이다. 그때만 해도 중, 고, 대학 심지어 실업팀 대한항공까지 막장 도원체육관을 홈경기장으로 썼고 도원의 열악한 시설 및 콘크리트 바닥으로 인해 무릎이 맛이 가는 선수가 한둘이 아니었다.[6] 몰빵배구, 신치용/비판 항목에도 일부 서술되어 있지만 신치용 감독은 장병철의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 고타점주의자인데다 김세진을 각별히 아꼈기 때문에 하향세인 김세진을 쓰느라 장병철을 찬밥취급하기도 했다. 김세진&장병철 조합은 그 자체로 시너지가 나는 조합이다보니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