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빈 슈미트
1. 개요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와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소속으로 V리그에서 뛰었던 캐나다 국적의 배구 선수. 별명은 '''甲人(갑인)''' '''가빈화재.''' 그리고 '''가빈 몰빵.'''
2. 한국 진출 이전까지의 활약
프랑스 리그에서 득점 2위로 두각을 보이던 잠재력 있는 선수였지만 그 밖에 크게 눈에 띄는 활약은 없었다. 정말이다. 가빈은 초등학교, 중학교부터 배구를 시작하는 보통 선수들과는 달리 '''고등학교 마지막 해부터 배구를 배운''' 늦깎이 선수였기 때문이다.[6] 본래는 농구선수였지만 갑작스러운 부상 이후 농구를 그만두고 식당에서 잠시 일을 하다가 어머니의 조언을 들은 후 배구선수로 전향했다.
2007년부터 캐나다 국가대표에 선발되긴 했지만 캐나다 대표팀에서 1진급 멤버는 아니었다.
2008년 대학을 졸업하고 그리스와 프랑스 리그에서 1년씩 뛴 뒤 삼성화재에 입단했다.
차후에 국제배구연맹 FIVB 세계랭킹 6위까지 상승하는 캐나다 남자배구의 간판으로 성장하며 유럽 4대리그에 속하는 빅리그에서도 최우수선수를 수상했던 걸 보면 가빈의 영입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3. 한국에 오고 난 뒤
3.1.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시절
3.1.1. 2009-201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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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가빈이 먼저 찾아간 팀은 삼성화재가 아닌 현대캐피탈였다. 그러나 입단 테스트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낙방했다. 하긴 현대캐피탈은 한때 세계선수권 득점왕까지 했던 엑토르 소토의 영입을 추진하고 있었으니 이 키만 멀대같이 큰 풋내기가 마음에 들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가빈에게 관심을 보인 팀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삼성화재였다. 삼성화재는 또다른 리그 종결자였던 안젤코 추크의 후임을 물색하고 있었고, 신치용 감독은 "성실한 태도가 마음에 든다"며 가빈 영입을 결정했다.
물론 입단 초기에는 팬들도 반신반의했다. 안젤코 역시 '''젤코화재'''라 불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선수였고, 가빈은 유망주에 불과했기 때문이다.[7]
사실 신치용 감독도 원래 가빈을 보름 만에 돌려 보내려다가 가빈의 착하고 성실한 태도에 다시 마음을 고쳤다고 했을 정도였다. 처음부터, 완벽한 기량을 기대했다기 보다는 잠재력과 기본기가 좋고 태도가 좋으니 '''가르쳐서''' 써먹자는 생각이었다고.[8] 물론 이것이 전설의 시작이 될 줄은 누구도 몰랐다.
가빈은 기술적으로도 별로 완성된 선수는 아니었고, 민첩성도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과 거의 차원이 다른 장점이 있었으니... 바로 '''높이, 파워, 체력'''과 '''에이스로서의 책임감'''이었다. 위에 나와있듯 기본적으로 우월한 신체사이즈와 긴 팔, 그리고 확실한 오버핸드 스파이크에서 나오는 높은 타점은 한국의 배구 환경에서 주공격수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미덕이었고[9] 상대팀에 가빈의 고타점 오픈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낼 장신 블로커가 전무[10] 했기 때문에 더욱 위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
가빈의 무시무시한 타점과 5세트 전체를 몰빵해도 버텨내는 체력은 삼성화재의 막강한 수비 조직력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고, 삼성화재는 5명이 전원 수비하고 무조건 가빈에게 올려주는 몰빵전술로 시즌을 제패했다.[11] 정규시즌 성적은 경기당 평균 32.65점, 공격 성공률 55.5%.
V-리그 역대 최고의 명승부라고 불리는 2009~2010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의 기록.
1차전부터 7차전까지 9일 만에 열린 챔결에서 평균 40득점인 286득점을 올렸다. 봄배구까지 총 1396득점은 역대 1위로 남았다.
데뷔시즌에 올스타전 MVP, 득점상, 공격상, 서브상, 정규리그 MVP, 챔피언결정전 MVP를 차지하며 한마디로 '''탈 수 있는 상은 다 탔다'''.[12]
3.1.2. 2010-2011 시즌
득점 1위, 공격성공률 2위였지만 상대팀이 가빈에게 목적타 서브를 집중시키면서 움직임이 제한되었고, 그 결과 공격력까지 약화되었다. 하지만 이는 가빈의 부진이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려운게, 삼성화재의 리셉션을 도맡아 하는 석진욱이 시즌 아웃되고 주전 센터 신선호 역시 시즌 아웃되면서 삼성화재의 장기인 변칙적인 중앙공격이 완전히 실종되었고 상대팀이 아예 중앙공격을 버리고 가빈에게만 집중적인 대비책을 내놓았다.
대한항공은 둘째치고 우리캐피탈, KEPCO45, 상무 등의 하위권 팀들에게까지 종종 막히면서 삼성화재는 한때 최하위까지 떨어졌고, 가빈도 별거 아니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현대캐피탈에게만은 예전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덕택에 김호철 감독은 다들 막는 가빈을 혼자 못 막는다며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신치용 감독은 막히든 말든 어차피 가빈뿐이라며 주구장창 가빈에게 공격을 집중하는 전술을 고수했고, 결국 정규시즌 3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기에 이른다. 정규시즌 성적은 경기당 평균 28.9점, 공격 성공률 55.4%.
그리고 포스트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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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손해보험과의 준플레이오프를 2승 1패로 마치고 올라온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과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가빈은 무려 '''57점'''을 쏟아부으며 배구 한경기 최다득점 신기록을 세웠고, 경기가 끝나고 인터넷은 가빈쇼크로 대폭발했다. 팬들은 가빈의 무시무시한 위력에 입을 다물지 못했고 몇몇 팬들은 한국배구가 가빈 한 명에게 쳐발렸다며 울분을 토했다.
이어 벌어진 3차전에서도 가빈은 맹활약, 현대캐피탈은 가뿐히 탈락했고 현대캐피탈 팬들은 다른 팀들은 잘만 막는 가빈에게 뼛속까지 털렸다며 김호철 감독을 맹비난했다. 김호철 감독은 "가빈 하나가 공격의 70%를 때리는데 방법이 없다."고 한탄했다가 핑계대냐고 무진장 까였다.
물론, 그것은 결승전 전의 이야기.
삼성의 결승전 상대는 정규시즌 중에 가빈을 가장 효과적으로 봉쇄했던 대한항공이었다. 대한항공이라면 가빈을 막아낼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지만...
'''더 처참하게 털렸다.'''
가빈은 네 경기에서 '''46점, 50점, 43점, 53점'''이라는 말도 안되는 기록을 세웠고 삼성은 대한항공을 4대 0으로 떡실신시키며 초전박살 내버렸다. 이제 누구도 가빈의 절대성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고, 배구팬들은 가빈을 신세계의 신으로 추대하고 甲人이라 칭송하기로 결의했다.
가빈의 2010-2011 포스트시즌 기록은 다음과 같다.
'''10경기 425득점 평균 42.5점'''.
오프시즌이 되자 신치용 감독이 가빈의 재계약에 대해 걱정을 하였다. 이미 국내 리그를 초토화 시켰으니 가빈 본인으로서는 빅리그로의 욕심도 날 법 하고, 빅리그 스카우터들도 그냥 놔두지는 않아 떠날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었다. 실제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에서 뛰던 숀 루니가 국내 V-리그를 떠나 러시아 리그로 진출 할 때와 가빈의 현 상황이 절묘하게 비슷했다. 그런데, 2011년 7월 초에 가빈이 삼성화재랑 재계약 한다고 트위터에 알렸다.
3.1.3. 2011-2012 시즌
2012년 2월 2일 구미 LIG 손해보험 그레이터스와의 경기에서 2세트에서 22득점을 올리며 역대 한 세트 최다 득점을 경신했다. 참고로 그 전의 한 세트 최다 득점 기록은 18점으로 이 역시도 가빈의 기록. 거기다가 이전에 자신이 갱신한 한 경기 최다 득점인 57점에서 '''58점으로 신기록 갱신을 해냈다'''. 가빈 다음으로 많은 득점을 한 선수가 8점을 기록한 지태환이다. 이 날 경기를 보면 여오현이랑 가빈 둘이서 배구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팬들은 몰빵배구다 하면서 감독과 팀을 까기 시작했다.
배구팬들의 심정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다만 삼성화재의 문제뿐만 아니라 가빈을 3년 연속 막지 못하는 다른 구단의 문제도 생각해봐야할 일이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활약을 한 덕분인지 다음 경기인 대한항공전에선 공격 성공률이 50%도 안되는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3-0 완패를 당하게 된다. 가빈이 부진할 수밖에 없었던 게 박철우나 다른 센터진도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가빈에게 점유율이 올라갈 수밖에 없었던 것. 요약하면 가빈을 제외한 삼성화재 선수들의 잉여모드-가빈에게 공격몰빵-(대한항공)가빈만 막자!-가빈이 막힘-망했어요. 거기에 가빈에게 목적타 서브를 몰빵함으로써 서브리시브 범실을 유도했는데 이는 가빈의 리듬을 흐트린 것으로 아주 주효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시즌 종반에 들어가면서 미칠 듯한 공격력을 다시 한 번 보여주더니 경기당 평균 32.7점, 공격 성공률 59.3%의 활약으로 삼성화재를 정규리그 우승에 올려놓는다.
대한항공과의 챔피언결정전에서는 2~3차전의 공격 성공률이 떨어지긴 했지만, 평균 37.7점을 올리며 챔피언결정전 MVP와 정규리그 MVP를 싹쓸이했다.
그러나 러시아 이스크라 오틴트소브팀과 계약하여 V-리그에서 당분간은 가빈의 플레이를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캐나다와 대한민국이 FIVB 월드리그 그룹2에 편성되어 있어 국제전에서 자주 볼 수 있게 됐다.
3.1.4. 멘탈도 甲인 가빈
타팀 팬 마저도 삼성화재는 미친듯이 까도 가빈을 함부로 깔 수 없는 이유가 가빈의 뛰어난 실력 탓도 있지만, 그보다도 가빈의 태도가 워낙 성실하고 착하기 때문이다. 야구고 축구고 허구한날 '''멘탈 문제'''(물론 겉으로는 멘탈 문제를 꼽지만 결국은 돈 문제로 귀결되는 편)'''로 중도 이탈하는 용병들이 부지기수인 국내 현실을 생각하면''' 이쯤되면 이런 선수를 뽑은 신치용 감독과 삼성화재는 로또라도 뽑은 기분...
맨 처음 삼성화재에 들어왔을 때부터 그의 성격을 보여주는 일화로 '''자신이 팀에서 막내이니 연습 후 공을 줍고 코트 청소 하는 것을 돕겠다'''고 한 이야기가 있다. 심지어 2010-11시즌 포스트시즌 즈음에 가빈이 '''삼성화재의 주장이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는 소문(!)도 있을 정도로 팀에 대한 책임감과 애정이 강했다. 신치용 감독과 팀원들에게도 워낙 태도가 좋아서, 연습 때도 자신이 솔선수범해서 가장 열심히 훈련에 임한다고 하니 이쯤 되면 까고 싶어도 깔 수가 없었다.
실제 삼성화재의 경기를 봐도 공격만 하기에도 바쁜데도 수비 욕심을 내고, 중간 중간 팀원들과 파이팅 하는 것에도 신경 쓰고, 경기가 잘 안 풀리면 직접 팀원들에게 '''집중집중'''이라고 외친다는 그의 모습은 일반적인 외국인 선수와 다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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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위의 사진에서 '''자신이 직접 부항을 놓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지만 현지 적응능력도 뛰어나다. 오오.
2010~2011시즌 우승 후 관중석 한 가운데 뛰어들어 가서 팬들과 함께 환호하고 열광하는 훈훈한 모습도 보여줬다. 가빈의 트위터에 들어가면 어느 날은 팬에게 바쁜 일정 때문에 경기가 끝나고도 싸인을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써놨었을 정도로 팬에 대한 사랑 또한 컸다.
게임 후 인터뷰를 봐도 그 정도 활약이면 거만해질 법도 한데, 팀원들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 절절히 느껴졌다. '''가빈화재'''에 발끈한 가빈, "우리가 원맨팀이라고?"
3.2. 2012년 이후
러시아 리그로 이적한 뒤 데뷔전에서 러시아 리그 역대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을 세우는 등 비슷한 역할을 하는 듯 싶었지만 상대팀의 분석이 끝난 3라운드부터 공격 성공률을 비롯한 스탯이 급락하기도 했는데, 후반기에 들어 안정된 모습으로 2012~2013시즌 득점 2위에 공격 성공률 50%의 좋은 활약을 펼쳤다.참고
2013년 5월 임금 체불로 인한 구단 측과의 갈등으로, 터키 리그의 아르카스 이즈미르로 이적했다.
2013년 월드리그에서는 한국과 캐나다가 같은 조에 편성되면서 가빈을 적으로 상대하게 됐다. 6월 15일과 16일에 캐나다에서 두 팀이 만났지만 가빈은 피로골절 증상으로 두 경기 모두 나오지 않았다. 한국 대표팀은 대신 수니아스(전 현대캐피탈)를 막지 못했다.
2014년 2월 한국으로 돌아온다는 떡밥이 나왔다. 하지만 아르카스 이즈미르와 계약연장을 하면서 2014년 복귀는 없을 전망. 2013~2014시즌 아르카스에서의 활약은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결장하며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그나마 후반기에 부상도 낫고 그럭저럭 활약하면서 구단에서 계약연장을 원했고, 그도 터키에서 제대로 활약을 하고 싶다며 계약연장에 동의했다고 한다.
2014년 월드리그에서 캐나다 대표팀의 에이스로 대단한 활약을 보여줬다. 그룹2 개인득점 부문에서 237점을 기록하여 당당히 1위를 기록했다.[13] 그러나 캐나다 대표팀은 같은 조인 벨기에에 밀리면서 그룹2 결승라운드에 진출하지 못했다.
2015년에는 터키리그 최우수선수와 공격수로서 받을 수 있는 갖가지 상들을 휩쓸며 최고의 해를 보냈다.https://www.volleyball-movies.net/gavin-schmitt-p256/awards
2016년에는 부상에서 돌아온 후 프랑스[14] 폴란드[15] 이란 등이 참가한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세계예선에서 Best Opposite Spiker(최고 라이트 공격수)에 선정됐으며 올림픽에서는 캐나다 팀내 최다득점으로 팀을 8강에 올렸다.
터키 이후 브라질, 폴란드를 거쳤는데 두 시즌 동안 부상을 거듭하며 재활로 시간을 보냈다. 2017년 여름 일본리그의 토레이 에로우즈와 2017/18시즌 계약을 맺고 뛰었다. 시즌 종료 후 토레이 에로우즈를 떠났고 2018/19시즌에는 그리스 리그의 올림피아코스에서 뛰고 있다.
2019년 그리스에서는 오랜만에 부상없이 시즌을 치르고 있으며 유럽 클럽대항전 중 두 번째 권위의 CEV 컵에서 공격성공률 56.5% 득점 2위로 활약했다.
3.3. 다시 한국으로,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시절
그리고 다음 시즌을 위해 한국의 외국인 선발제도인 트라이아웃에 참가하였고 과거 대한항공에서 뛰었던 마이클 산체스와 함께 전체 1~2순위 평가를 받았는데, 한국 시간으로 5월 10일 오전에 전체 1순위로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에 지명되었으며 마이클 산체스는 전체 3순위로 KB손해보험에 지명되었다. 사회복무요원으로 입대하는 서재덕의 이탈로 전력에 큰 손실을 입은 한국전력에게 희망이 될 듯. 다만 가빈을 받쳐줄 마땅한 공격수가 딱히 없다는 것에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3.3.1. 2019-20 시즌
지난 시즌에 한국전력이 4승을 달성했으니, 새 시즌 목표를 5승으로 설정했다. [16] 그리고 3라운드 만에 5승을 달성하면서 목표가 이루어졌다(?).
10월 15일 자신의 V리그 복귀전인 KB손해보험과의 경기에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며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10월 26일에 친정팀인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를 대전에서 상대하게 된다.
상당히 많은 득점을 내고 있지만, 성공률이 낮을 때가 은근히 많고 체력도 예전같지는 않은 모습이 자주 비춰지고 있다. 원체 많은 공격을 때리고 나이도 적지 않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일 수도 있겠지만.
국내 배구 잡지 더 스파이크의 2019년 12월호 44쪽, 가빈의 인터뷰에 따르면 한국전력 팀은 전반적으로 부드럽다고 한다.
이어 47쪽에서 자신이 느낀 자유계약과 트라이아웃의 차이를 이야기했다. 자유계약이 선수에게도 팀에게도 좋았다는 것이 결론이다.더불어 가빈은 삼성화재 시절과 비교를 통해 현재 한국전력의 팀 분위기와 문화를 설명했다. 삼성화재는 신치용 감독 시절부터 특유의 문화가 존재했다. 가빈 역시 그 시절을 겪은 선수였기에 할 수 있는 비교였다. 가빈이 말하는 가장 큰 차이는 팀 전체에 퍼져있는 전반적인 부드러움이었다. "삼성화재는 약간 군대 같은 느낌이죠. 약간 딱딱하고(hard) 제한적이었죠. 여기서는 코치님이 좀 더 여유를 주면서 자유와 책임을 함께 느끼도록 하고 있죠. 선수 스스로 발전하도록 말이죠. 삼성화재는 좀 더 통제도 많았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체계가 명확했어요. 감독에서 코치로, 코치에서 베테랑 선수로 말이죠. 한국전력은 각자 위치가 있고 체계는 있지만 좀 더 평등하게 대할 수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좀 더 자유가 있는 셈이죠."
2020년 3월 10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으로 인해 3월 13일 가빈을 캐나다로 출국시키기로 결정했다. 가빈 본인은 계속 경기를 치르겠다는 의지가 컸지만 타국의 입국 제제가 점점 강화되는 상황이라 더 늦기 전에 출국시키기로 결정한 모양. 다만 계약 해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시즌은 3월 23일에 조기종료가 확정되었다.우선 선수 입장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팀을 고를 수 있다는 점에서 훨씬 낫습니다. 제가 V-리그에서 뛰길 원하고, 그중에서도 한국전력을 원한다면 저는 한국전력 소속으로 뛸 수 있죠. 다른 팀에서 제안이 오더라도 제 의사를 확실히 전달할 수 있고요. 혹은 다른 리그나 팀을 선택할 권리도 가지고 있어요. 선수로서 그런 선택권이 없다는 건 공평하지 않다고 봅니다. 팀도 자유계약체제라면 팀에 더 잘 맞는 선수를 찾아서 영입할 수 있어요. 제한된 20~30명의 선수 중에서 찾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선수를 조사하고 찾아보면서 더 팀에 맞는 선수를 찾을 수 있죠."
이후 2020-2021 트라이아웃에서 선택을 받지 못했고, 모든 것에 감사했다고 밝히고 사실상 은퇴를 선언했다. 관련 기사
은퇴 후 오랫동안 연인사이로 지낸 캐나다 아티스틱 스위밍 국가대표 출신의 카린 토마스와 2020년 6월에 결혼했다.
4. 관련 문서
[1] 삼성의 가빈 슈미트! (x 2) 랄랄라 랄라 라라라 랄라~![2] KIA 타이거즈 나지완의 과거 응원가와 동일하다.[3] '''용차르트'''가 만들어서 그런지 충격적이다.[4] 2011-12 시즌에만 쓰였으며, 이 곡의 반주에 맞취 '''가!빈! 삼~성의 가빈!'''을 외친다.[5] 한전의 가빈~ 오오오오오~x3 한! 국! 전! 력! 가! ~ 빈![6] 외국 용병 중에 의외로 배구를 늦게 시작한 선수들이 많다. 가빈 슈미트도 그렇고, 현대캐피탈에서 활약하던 숀 루니도 늦게 배구에 입문한 케이스다.[7] 사실 신치용 감독은 용병 활용에 대해서 큰 비판을 받고 있는데 삼성화재의 1세대 선수들이 은퇴한 이후부터 용병 중심의 몰빵공격이 용병의 체력소모는 물론 국내선수들의 성장 둔화를 가져왔다는 그 이유다. 가빈 슈미트도 그렇지만 안젤코와 레안드로 역시 신치용 감독 특유의 용병몰빵의 주축이었다. '''아니 용병제 도입 이전인 슈퍼리그때 삼성화재는 김세진과 신진식에게 몰빵을 했다'''. 삼성화재의 국내선수 성장 둔화는 삼성화재의 1위 독주로 인한 악순환에 따른 것도 있다. 그 악순환이란 성적이 잘 나옴→드래프트 하위 픽으로 제대로 된 신인을 못 집어옴→용병, 노장, 조직력 배구로 또 성적이 잘 나옴→드래프트 하위 픽 이런 식의 악순환. 물론 신진식과 김세진, 외국인 주포 이 셋을 제외하고 실력이 있던 다른 선수들을 이상하게 푸대접한 것은 신치용 감독 본인 책임이다. 이를테면 장병철이나 박철우 같은 선수.[8] 이 역시 현대캐피탈의 김호철 감독이 숀 루니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과 똑같다. 물론 과거 선수생활을 하신 현 감독들의 생각은 '기본기'를 가르치겠는 생각으로 용병을 뽑겠지만 결국은 기본기 훈련보다는 실전 몰빵에 쓰는게 대부분의 결과. 그래도 가빈이 2010-11 시즌에 삼성과 재계약을 한 이유는, 한국에서의 고된 훈련을 통해 기본기나 수비가 상당히 늘었다는 점이 컸다.[9] 당시의 레안드로가 키는 비슷할지 몰라도 밀어치는 습관 때문에 타점이 제멋대로에 제대로 미팅이 안 되면 폭풍범실을 저질렀던 것에 비하면 가빈은 훨씬 안정적인 스파이크가 가능했다. 거기다 스피드가 떨어졌기 때문에 랠리 중의 오픈공격 준비 등의 게임 내 성실성과 부지런함은 가빈이 압도적으로 우위.[10] 삼성화재에 있던 박재한이 은퇴하면서 순수 국내 선수들 중 가빈보다 큰 선수는 없다. 국내 선수들 중 최장신은 KEPCO 45의 하경민, 대한항공의 이영택(둘 다 202cm)외엔 다른 어떤 팀에도 205cm이상의 블로커가 없다.[11] 물론 데뷔 시즌에는 그정도까진 아니었다. 신선호, 고희진, 석진욱이 건재했기 때문에 리시브가 잘되면 신선호, 고희진의 속공과 석진욱을 위시한 시간차 공격 등의 옵션으로 효과적인 공격분산을 만들었다.[12] 비슷한 경우로 기록의 여왕인 황연주가 있는데, 이적시즌이었던 2010-11시즌에 올스타전 MVP, 정규리그 MVP, 챔피언결정전 MVP 등 한 시즌에 다 받을 수 있는 상을 다 받았다. 그 뒤를 이어서 이재영도 정규리그 MVP, 챔피언 결정전 MVP, 3라운드 & 6라운드 MVP, 베스트 7 레프트 부문, 올스타전 MVP를 수상하면서 역시나 한 시즌에 다 받을 수 있는 상을 다 받았다.[13] 5위가 186점의 토마스 에드가, 6위가 185점의 전광인이다.[14] 유럽예선 2위.[15] 유럽예선 3위.[16] 정작 가빈 본인은 농담이었다는데, 한전의 경기력을 보고 난 사람들은 이를 진담으로 여긴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