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섭
1. 소개
대한민국의 전 농구 선수. KBL 원년 시즌 원주 나래 블루버드 돌풍 당시 KBL 최고의 식스맨으로 대학 시절 받지 못하던 주목을 받았다.
2. 선수 시절
지금은 해체된 국민대학교 농구부의 마지막 에이스였던 선수로, 당시 같이 뛰었던 선수로 전 부천 KEB하나은행 감독인 이환우(184cm,G) 정도가 있다. 90년대 초 국민대 농구부는 약체중의 약체로 대학농구연맹전에선 예선 탈락을 밥먹듯 했고, 장윤섭은 전형적인 약팀 에이스 정도의 존재감만 보였던 선수였다.
산업은행 입단 후에도 선배들에 밀려 기회를 많이 얻지 못하며 은퇴 후 은행원 전환을 기다리는 선수로 지내던 중, KBL 개막을 앞두고 산업은행 농구단이 나래이동통신에 매각되면서 장윤섭은 선수 생활 연장을 선택하고 계약금 1억원에 나래로 합류한다.
산업은행, 한국은행 출신의 선수들이 있던당시 원주 나래 블루버드는 KBL 원년시즌 가장 유력한 꼴찌 후보였지만, 정인교, 강병수, 장윤섭을 비롯한 이 은행원 아저씨들은 KBL 개막 직후부터 모두의 예상을 뒤엎으며 원주발 돌풍을 일으킨다.
1997년 원년시즌 원주 나래가 시즌 초반부터 연승과 함께 리그 1위까지 등극하면서,[1] "사랑의 3점슈터" 정인교와 착실한 센터 제이슨 윌리포드는 원주 아이돌 수준의 인기를 구가했고, 이들 못지않게 식스맨 장윤섭의 인기도 대단했다. 당시 주전 라인업은 칼레이 해리스(PG)-정인교(SG/SF)-강병수(PF)-제이슨 윌리포드(C)의 4인방 고정에 2-3번자리에 지형근(191cm), 김상준, 이인규(187cm)를 내세우는 구도였는데, 장윤섭은 사실 무늬만 식스맨이었지[2] 오히려 주전들 중 아무나 쉴 때 2~4번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나서 성실한 수비와 뜬금 미들슛을 꽂아주며 제 역할을 200% 수행해냈다. 덕분에 장윤섭이 출장할 때마다 경기의 흐름이 바뀌는 경우가 많았고, 곱상한 마스크로 항상 웃는 모습 때문에 원주팬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장윤섭은 원년시즌 평균 '''9.6득점-2.6리바-0.8어시-1.0스틸'''의 기록을 남기며 원년시즌 유력한 식스맨상 후보였으나,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의 "전 국가대표팀 센터 출신 식스맨" 김유택에게 내주었고, 대신 '''원년시즌 수비 5걸'''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바로 다음 시즌부터 다른 팀들이 전력보강에 성공하면서 별다른 전력 보강이 없던[3] 전대회 준우승팀 원주 나래는 리그에서 꽤나 고전해야 했고, 특히 부쩍 높아진 상대팀 프런트 코트를 상대하기에 고작 187cm에 피지컬도 그닥이었던 장윤섭은 경쟁력을 잃으며 출장 시간이 반토막나고 만다.
98-99 시즌엔 허재, 신기성, , 김승기 등이 영입되면서 기존의 주전들도 싹 물갈이 되었고, 장윤섭은 화려해진 주전라인업은 물론 메인 식스맨 자리를 루키 신종석에게 밀리게 된다.[4] 플레이오프에서 짧은 시간을 출장하며 팀에서 더이상 존재 가치가 없음을 확인한 장윤섭은 시즌 종료 후 은퇴를 택한다.
3. 은퇴 이후
은퇴 후 동일여자고등학교 체육교사로 임용되었고, 동일중(舊 동일여중) 농구부 코치도 맡았다.
2006년에는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청소년 여자농구선수권 대회에 코치로 참가하기도 했다.
4. 관련 문서
[1] 1라운드 홈경기에서는 최강 부산 기아마저 꺾으며, 원주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2] 1997 원년시즌 평균 출전시간이 24분으로, 주전 4인방 다음으로 가장 많다.[3] 고려대 중퇴 후 연습생으로 입단한 신인 주희정과 대전 현대의 백업 센터 정한신(192cm)을 영입한 게 고작이었다.[4] 신종석은 이 시즌에 식스맨 상을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