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석

 

'''신종석의 수상 및 영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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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반지'''
<color=#373a3c> '''2003'''
<color=#373a3c> '''2005'''



[image]
'''이름'''
신종석(辛鍾石)
'''생년월일'''
1975년 6월 9일 (49세)
'''국적'''
대한민국
'''출신학교'''
경복고등학교 - 중앙대학교
'''포지션'''
스몰 포워드
'''신체조건'''
193cm, 83kg
'''프로입단'''
1998년 원주 나래 블루버드 (2R 14순위)
'''소속팀'''
'''원주 나래 블루버드/삼보/TG/TG삼보 엑써스 (1998~2005)'''
대구 오리온스 (2005~2006)
안양 KT&G 카이츠 (2006~2007)
울산 모비스 피버스 (2007~2008)
[1]
'''등번호'''
7번(TG), 17번(오리온스, KT&G, 모비스)
'''지도자 경력'''
경복고등학교 코치 (2010.06~2016)
군산고등학교 코치 (2017~)
'''수상내역'''
KBL 우수 후보선수상 (1999)
중고농구연맹 우수지도자상 (2013)
1. 소개
2. 선수생활
2.1. 고교-대학시절
2.2. 프로 시절
3. 지도자 시절
4. 여담
5. 관련 문서


1. 소개


한국의 前 농구선수.
대학시절 난다긴다 하던 선수들도 경쟁에서 밀려 금세 사라지곤 하는 KBL에서, 신인드래프트 2라운드 출신임에도 탄탄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10시즌간 평균 출장시간 15분 이상을 보장받던 '''KBL 역사상 최고의 식스맨 중 한 명'''.[2] 특히 원주 TG 엑써스가 첫 우승을 달성했던 02-03 시즌 챔피언결정전 6차전에서 2쿼터에 3점 5방(5/5)를 몰아넣는 '''"종석 타임"'''을 선보이며 24-'''3(...)'''에서 36-36으로 동점을 만들어 원주팬들의 영구 까방권을 획득하기도 했다.

2. 선수생활



2.1. 고교-대학시절


경복고 시절 전희철, 우지원 콤비의 졸업 이후의 시기에 배길태(183cm, G, 홍익대)와 함께 경복고를 여전한 전국 강호 중 한 자리에 유지시켰던 만능 포워드로, 고 2때는 한 경기에서 45점을 폭발시키도 하는 등 득점력을 뽐내기도 했고 고 3때는 경복고를 춘계연맹전 결승까지 이끌기도 했지만 결승에서 현주엽의 휘문고에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중앙대 진학 후 1학년 때는 김영만, 등 두터운 포워드진 탓에 거의 출장하지 못했으나, 2학년 들어 출장기회를 점차 늘려가면서 경기에 나설 때마다 준수한 수비력과 활동량을 보여주었다. 특히 중앙대가 야심차게 스카웃한 부산중앙고 출신 장신센터 박도경(202cm)의 성장 둔화로 인해 이은호와의 트윈타워 계획이 물거품 되면서, 2학년때 중반부터는 원래 스몰 포워드인 신종석이 동기 이은호의 골밑 파트너로 나서게 되었다. 당시 중앙대는 김희선, 조우현, 임재현 등 백코트진의 활동량과 속공으로 승부하던 팀이었는데, 기동력이 뛰어나고 내외곽 수비가 모두 좋았던 신종석은 어느 포지션에 갖다놔도 소금같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신종석의 재학 시절 중앙대는 서장훈의 연세대, 현주엽의 고려대 2강이 너무도 강력했고, 거기에 강혁-김성철-윤영필 트리오가 이끌던 "자줏빛 군단" 경희대의 돌풍에도 밀리면서 매번 2% 아쉬운 성적에 머물러야 했고,[3] 신종석은 4학년 들어 마산고 출신 신입생 센터 송영진(198cm)과 출장 시간을 나누게 되면서 주가가 다소 떨어지게 된다.

2.2. 프로 시절


1998 신인드래프트 2라운드 14순위로 원주 나래 해커스 유니폼을 입은 신종석은, 전 시즌 대비 주전멤버가 완전히 바뀐 원주 나래[4]에서 데뷔 시즌부터 팀의 핵심 식스맨으로 활약하였고, 평균 14분 남짓 뛰며 '''6.0득점-2.3리바-0.8어시-0.9스틸'''을 기록했다. 때로는 4번 자리에서 발생하는 미스매치를 막기 위해 빅맨으로 출격했고, 때로는 노장 허재를 비롯한 주전들의 체력보완 및 백코트 수비강화를 위해 투입되는 등 팀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 쓸 수 있는 카드였다. 신종석의 활약 덕분에 원주 나래는 정규리그 4위로 시즌을 마무리했고, 신종석 개인은 루키 시즌에 '''98-99 시즌 우수후보선수상'''(식스맨상)을 수상하게 된다.[5] 이후 원주 나래 → 삼보 → TG → 동부로 팀명이 바뀌는 7시즌 동안 신종석은 원주의 키 식스맨으로 꾸준한 활약을 보여줬으며, 남들은 한 번도 하기 힘든 KBL 파이널 무대를 3시즌 연속(02-03, 03-04, 04-05) 밟고 그중 '''두 번의 징검다리 우승(02-03, 04-05)'''을 따냈다.
[image]
04-05 챔프전에서 우승하면서 주전들의 연봉 인상으로 인해 팀 샐러리캡이 포화상태가 된 원주 동부는 FA가 1년 남은 고연봉 식스맨 신종석을 대구 오리온스로 현금 트레이드한다. 신종석은 새 팀 오리온스에서 곧바로 주전 스몰 포워드 자리를 차지했고, 김승현-김병철-아이라 클라크-안드레 브라운으로 이어지는 "김승현표 달리는 농구"에서 공-수의 중요한 연결고리가 된다. 2-4번을 모두 커버하는 전방위 디펜스는 여전했고, 공격에서도 2005년 12월 27일에 전주 KCC 전에서 경기 0.7초를 남기고 극적인 버저비터를 터뜨리는 등 깜짝 활약하기도 했으나, 주전 멤버로 한 시즌을 뛰기엔 공격력이 많이 아쉬웠고(시즌 3점슛률 30.8%), 시즌 후반에 들어서며 갑자기 포텐이 터지기 시작한 3년차 포워드 오용준에 밀리면서 다시 식스맨으로 돌아간다.
06-07 시즌을 앞두고 FA가 된 신종석은 서른살의 나이에 전년도보다 무려 43%가 오른 1억 5천만원에 안양 KT&G 카이츠와 FA 계약을 맺는 잭팟을 터뜨린다. 안양 KT&G에서도 주희정, 양희승, 단테 존스 등 주축 멤버를 보좌하는 식스맨으로 활약하며 팀을 6강 플레이오프까지 올려놓았고, 다음 시즌(07-08)엔 김동우공익근무요원으로 빠지면서 포워드진이 얇아진 울산 모비스 피버스 유재학 감독의 부름을 받아 역시 식스맨으로 한 시즌을 더 보냈다. 08-09 시즌을 앞두고 안양 KT&G로 재이적 하였으나, 시즌이 개막하기 전 은퇴하여 안양 KT&G의 전력분석관이 되었다.

3. 지도자 시절


2010년 6월 모교인 경복고등학교 농구부 코치로 부임하였다. 신종석 코치 시절 경복고는 '''"레알 경복"'''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당시 전국의 농구 유망주들을 싹쓸이했던 팀으로 유명했는데, 2011년 당시 경복고는 청소년 대표팀인 3학년 문성곤, 2학년 이종현, 최준용이 같이 뛸 정도였다.[6] 당연하게도 대회만 나갔다하면 3관왕은 기본이었고, 어차피 어느 대회를 나가건 우승이라 춘계연맹전, 쌍용기, 전국체전 등 굵직한 대회만 골라 출전하는 팀이었다. 덕분에 신종석은 매 대회마다 최우수 지도자상을 석권할 수 있었고, 이종현, 최준용이 졸업한 뒤에도 안영준(196cm, F, 연세대), 김경원(201cm, C, 연세대), 양재민(200cm, F, 연세대) 등을 스카웃하며 경복고를 여전한 강호로 유지시켰다.
2017년 1월 경복고 코치 계약이 만료되었는데 웬일인지 재계약에 실패했고, 후임으로는 고교선배인 이지승(경복고-고려대 졸) 전 인헌고 코치가 부임하게 되었다. 이후 곧바로 군산고등학교 코치로 부임하였는데, 군산고 또한 2017년도 전국 최강팀 중 하나라 2017 시즌 성적이 기대되고 있다.

4. 여담


  • 종석 타임
KBL에서 식스맨으로 꾸준히 활약한 선수이긴 하지만, 많은 팬들이 신종석을 기억하는 이유는 바로 02-03 챔피언결정전 6차전 단 한경기 때문이다. 02-03 시즌 챔피언결정전까지 오른 원주 TG 엑써스는 연장 접전끝에 대구 동양(정규리그 1위)과의 5차전을 잡으며[7] 3승 2패로 앞서나갔지만, 주전 포인트가드 허재갈비뼈 부상으로 이탈한 데다 루키 김주성의 체력이 고갈되면서 대구에서 열리는 6,7차전에 대한 전망이 어두운 상황이었다. 실제로 6차전 경기 팁오프부터 1쿼터 종료 때까지 대구 동양이 24점을 넣는 동안 원주 TG는 의 3점슛 하나만 달랑 넣는데 그치며 3:24로 압도되고 만다. 단 한 쿼터만에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자 당시 전창진 감독은 1쿼터 내내 실책과 난사만 일삼던 백코트 김승기, 데이비드 잭슨을 2쿼터 시작과 동시에 모조리 빼버리고, 그 자리에 식스맨 포워드들인 신종석과 지형근(191cm,F)을 투입한다. 1쿼터만 보고도 어차피 망한 경기라 판단하고 전창진 감독은 주전들의 정신교육을 하며 머릿속에 이미 7차전을 대비하는 의도로 보였는데... 코트에 뛰는 원주 TG 선수 5명 중 가드가 한 명도 없어서 2쿼터부터 반강제로 1번을 보게 된 지형근이 갑자기 포인트포워드로 빙의, 1쿼터 내내 주전 멤버들을 괴롭힌 대구 동양의 지역방어를 상대로 안정된 패스로 깨며 패스를 배달했고, 이 패스를 받은 신종석은 시즌 3점 성공률 29.8%의 데이터가 무색하게 레지 밀러로 빙의하며 2쿼터에만 3점 5방(5/5)를 꽂는 "종석 타임"을 시전한다. 전혀 뜬금없는 곳에서 수비가 깨져버린 대구 동양의 선수들은 단체 멘붕에 빠졌고, 공격에서도 헛손질을 남발하면서 19점차의 리드를 다 까먹고 2쿼터를 동점으로 마치게 된다. 벤치에서 반 포기 상태였던 전창진 감독은 급히 후반들어 다시 주전 선수들을 투입했고, 각성한 데이비드 잭슨이 후반들어 대폭발하며 원정경기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기적같은 상황을 연출하게 되었다. 챔피언결정전 MVP는 데이비드 잭슨이 가져갔지만, 당시 무명선수 신종석이 보여준 깜짝 퍼포먼스는 원주 팬들에게 너무도 깊은 인상으로 남게 되었다.
  • 06-07 시즌을 마치고 안양실내체육관에서 결혼식을 올리며 국내 최초의 농구장 결혼식을 치른 선수가 되었다. 근데 곧바로 울산 모비스로 트레이드되어버린 게 함정;;;
  • 2011년 경복고 코치 시절, 대경정보산업고와의 경기를 마치고 상대팀 김승관 코치(대경정산고-연세대 졸)에게 머리끄댕이를 잡히는 폭행(;;)을 당했다. 경복고가 대경정산고의 연계학교인 대경중 출신 선수[8]를 빼갔는데, 이 스카웃에 관여했던 신종석 코치에게 보상(금전;;)을 요구했으나 주지 않아서 달려들었다고 한다. 이듬해 대경정산고와 대경중학교 농구부는 모두 해체되었고 선수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5. 관련 문서


[1] 08-09 시즌을 앞두고 안양 KT&G로 이적한 직후 은퇴, 팀 전력분석원을 맡았다.[2] 10시즌 동안 평균 출장시간이 10분 미만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언제나 기본은 해주었다는 뜻.[3] 3학년이던 1996년 전국체전 금메달 외엔 우승이 없다.[4] 97-98 시즌: 주희정-정인교-윌리엄 헤이즈(188cm, F)-강병수(190cm, F)-제이슨 윌리포드 → 98-99 시즌: 신기성-허재-토니 해리스(191cm, G)- -데릭 존슨(204cm, C)[5] 이 때 신인상은 팀 동료 신기성이 가져갔다.[6] 원래 경복고의 연계학교는 삼선중학교(전희철, 우지원, 장재석 등의 모교)다. 하지만 레알 경복시절엔 오히려 삼선중 출신을 찾기 어려웠고, 문성곤은 부산동아중, 최준용은 마산동중, 이종현은 휘문고와 연계학교인 휘문중학교에서 빼온 선수였다. 하지만 엘리트 중학교 농구부 자체가 적은 환경에서 각 지역의 연계중학교-고교 시스템을 무시한 채, 고작 중학생 선수들을 상대로 벌인 경복고의 무분별한 스카웃을 벌였던 많은 비난을 받고, 심지어 선수를 뺏긴 일부 고교농구부의 해체로 이어지기도 했다. 사실 2010년 부임한 신종석이 이 스카웃들에 관여한건 아니다.[7] 그 유명한 15초 계시기 오조작 사건이 일어난 그 경기[8] 현 경희대 4학년 이민영(180cm, G)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