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중앙은행으로, 통화·신용 정책의 연구 및 결정[2] , 국내외 경제·금융 조사, 금융시스템 건전성 관리, 지급결제시스템 관리, 경제통계 산출, 원화 발권[3] , 외환보유액의 관리, 국제금융기구와 협력 등을 담당한다. 대한민국의 GDP(국내총생산) 역시 한국은행에서 작성하여 발표한다.[4]
대한민국 정부에서 설립한 무자본[5] 특수법인이나 한국은행법 등 법령에 의거하여 그 독립성을 인정받고 있다. 본점은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에 위치하고 있으며[6] , 전국 각 지역에 16개의 지역지점이 산재한다.
수장의 명칭은 한국은행'장'이 아닌 한국은행 '총재'이다. 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한 인물이라 장관급 대우를 받으며,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이다.[7]
2. 역사
한국은행의 전신은 일제 수탈의 한 도구였던 조선은행이었다. 서울역 구역사스러운 건물 모양만 봐도 보이는 사실이다. 이 건물은 원래 구한말 대한제국의 사실상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던 일본 제일은행 경성지점으로 후에 (구)한국은행에 이관되었고 (구)한국은행은 이름이 조선은행으로 바뀌었다. 건물의 건축가는 도쿄역과 일본은행, 구 부산역의 건축가인 다쓰노 긴고(辰野金吾)가 설계했다. 다만 서울역은 다쓰노의 제자가 설계에 참여했을 뿐 건축을 총괄한 실제 건축가가 누구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하여튼 한때 일본의 자랑 중 하나였던 만큼, 한국은행 바로 앞의 사거리는 역시 한때 일본인 거리이자 당대 모던뽀이의 거리였던 명동의 코앞에 있었고, 일본어로는 센긴마에(조선은행앞, 鮮銀前)라 불리웠다. 정확히는 현재의 소공로가 구한말에 '하세가와초'(長谷川町)라는 이름으로 뚫리며 시작되었는데, 이는 중국인들이 구한말부터 거대한 차이나타운을 형성하고 있던 걸 눈꼴사나워하던 일본군이 군사용 목적으로, 차이나타운을 반 갈라놓는 목적으로 짓고 거기에 조선은행을 떡 박아놓은 것.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명동, 충무로와 함께 일제시대 최고의 번화가였으며, 1950년 한국은행이 되어 수탈셔틀 신세를 벗어난 현재도 이곳은 한국은행 앞 사거리로 불리며 서울시내 주요 광장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사거리 한복판에는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분수대가 있었고 과거 서울시내에 전차가 다닐 시절에는 이 분수대 옆으로 전차가 지나갔다. 현재 사거리 광장의 분수대는 해방 이후 30년도 한참 지난 1978년에 설치한 것이다. 과거에는 섬처럼 길 한가운데에 외따로 떨어져 있었으나 서울 중구청 측이 분수대 광장을 시민공원 형태로 개편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화폐를 찍어내는 권한인 '발권력'은 국가가 경제와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러 가지의 수단 중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발권력을 통해 화폐 수량을 변동시키는 것을 '통화량을 조절한다' 라고 하며, 이를 곧 통화정책이라 한다. 만약 정부가 통화정책 발현을 위해 통화량을 확대시킬 경우, 일시적으로 경기가 과열되고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는 효과를 얻게 된다.[8] 하지만 통화량 확대가 과할 경우 물가가 급상승하게 되고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는 부작용이 발생하게 된다.
정부는 대개 자신의 정권 기간 동안 경제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계속해서 통화량을 늘리고 싶어한다(유인이 발생한다). 이렇게 발권력을 남발하게 될 경우 정권이 지난 후에는 심각한 물가상승과 금융시장 불안정이 유발될 위험이 생기게 된다. 따라서 정권상황을 떠나서 통화량을 적절하게 조절할 필요가 있는데, 그간의 경제학 연구는 통화정책을 독립적으로 수행할수록 그 나라의 경제 안정성은 높아진다는 것을 입증해왔다. 따라서 경제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모든 국가에서는 특수한 한 은행에 발권력을 부여하고 정부로부터 독립하여 독자적으로 통화정책을 수행하도록 한다. 이렇게 발권력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통화정책을 수행하는 은행을 중앙은행이라고 한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통화량 조절을 통한 물가안정'''을 제1의 핵심목표로 삼고 있는 경우가 많다. [9]
적절한 통화정책 수행을 위해선 국내외 경제상황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야함은 당연하다. 따라서 중앙은행은 보통 최고의 경제인력수준을 가지고 경제금융 상황에 대한 조사연구 기능, 경제통계 작성 기능[10] 을 담당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조사연구 기능은 거시경제를 이해하는데 있어 우수하다는 점과, 금융기관에 위기가 발생할 경우 무제한 발권력을 이용한 구제기능을 갖고 있다는 점으로 인해 대침체 이후 중앙은행들은 금융안정, 지급결제시스템 안정 등으로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은 한국은행권 원화를 발행하며, '''국민경제 발전을 위한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이 한국은행법에 규정된 한국은행의 최우선 목표이다. 통화량 조절(물가 관리)을 위해 공개시장운영(기준금리 조절)[11] 과 여수신제도, 그리고 지급준비율 제도를 운영한다. 이와 함께 최근 개정된 한국은행법에 따라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하여 금융기관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이 있다. 다만 이 부분은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감독원과 공동으로 행사한다.[12] 화폐의 신뢰성을 위하여 위조지폐에 대한 대응도 담당하고 있다. 다만 화폐의 디자인과 발행권은 가지고 있지만, 화폐 제조는 기획재정부 산하 공기업인 한국조폐공사에서 전담한다.[13]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와 달리 완전고용을 목표로 하고 있지는 않다.[14]
정부 입장에서는 통화정책이 굉장히 매력적인 수단이기에 계속해서 시장을 통제하려는 유인이 발생한다. 따라서 대대로 재무부(현 기획재정부)와 그리 좋지 않은 사이를 보여 왔다. 광복 직후부터 제2공화국까지는 한국은행의 인적자원이 재무부보다 월등하여 고위층의 파견근무 등이 잦았고, 이로 인해 재무부를 '한국은행 세종로 출장소'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제3공화국 출범 이후, 정부는 수출을 통한 고도 성장을 목표로 세우고 일사불란한 경제정책 집행을 위해서 중앙은행에 대한 전면 통제를 강화하였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법'을 개정하면서 독립성이 크게 약화되어 재무부와의 관계가 역전되었다. 이후, 한국은행이 확실한 독립을 하기 전까지는 기획재정부의 한 부서로 인식할 정도였다. 실제로 1997년까지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은 재무부 장관이었다. 그로 인해 그 당시 불렸던 별칭은 '재무부 남대문 출장소'였다. 나름의 흑역사.[15]
1997년 한국은행법 개정으로 확실한 독립기관이 되었지만, 여전히 대통령 및 정부의 눈치를 본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법적으로는 한국은행법을 통해 독립이 되었지만, 그동안의 관습적인 운영 원리를 보면 정부의 간섭이 상당히 잦은 편이다. 한국은행 총재, 부총재를 대통령이 임명하고, 금융통화운영위원회 구성에 정부가 노골적으로 개입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열석발언권, 기재부 출신의 감사위원, 경비성 예산에 대한 기재부 장관의 승인, 감사원 감사[16] 등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요소가 곳곳에 남아있다.
최근엔 통화정책 운용에 있어서 일부 정신나간 국회의원이나 장관들을 제외하곤 독립성이 크게 확보된 편. 요즘엔 기재부, 금융위 등과 같은 급끼리 회의도 하고 인사교류도 하는 등 중앙은행으로서의 지위도 정상을 되찾아가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정부가 한국은행에 간섭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며 국제적으로 중앙은행의 역할을 확대하는 추세와는 반대로 정부 견제에 막혀 제 기능을 다 하지 못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17]
한국은행에 막상 가보면 은행업무나 대출, 저축 등 시중은행처럼 일반적인 업무를 볼 수 있는 은행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일례로 헌 지폐, 찢어지거나 불에 탄 지폐의 화폐 교환 등이 있다. 따라서 추석이나 설날이 되면 한국은행은 의도치 않게 사람들이 많이 모이게 되는데 "헌 동전으로 바꿔주세요"와 같은 화폐수집가들의 주화교환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이 나타난 이유는 1997년 'IMF구제금융 요청'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1997년 당시 비교적 액수가 큰 500원 주화가 시중은행을 통해 한국은행에 너무 많이 들어와 쌓인 것이 원인인지 다음해 1998년엔 500원 주화를 유통 목적으론 발행하지 않았다. 근데 유통 목적 외에 발행된 동전들마저도 아이들의 군것질이나 다른 기타 목적을 위해 사용돼버렸는지, 현재 시중엔 1000개내외의 수량만 유통 중인것으로 추측된다. 물론 상기의 서술된 글은 하나의 설일 뿐이다. 1997년 IMF의 구제기간동안 발행된 동전을 찾기 위해 수집가들이 헌 동전을 찾아다니기도 한다.
3. 관련 문화재
- 한국은행 제2별관. 1932년에 건립된 건물이지만 구 본관과 달리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다. 당초 한국은행 본점 리모델링 추진 과정에서 헐릴 뻔했지만 근대 건축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건물로 평가돼 남겨두기로 했다. 2017년부터 내부 수리가 진행될 예정이다. 그 옆에 있는 제1별관은 철거한 후 재건축 예정.
- 한국은행 소공별관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유리로 덮인 건물. 사진을 저렇게 찍어놔서 그렇지 여기도 일단은 한국은행 건물이다. 원래 이곳에는 한국상업은행 본점이 있었는데, 광복 이후 주요 은행으로 성장하면서 그때 그건물 위층으로 하얀 콘크리트 건물을 증축했다. 후에 IMF를 지나면서 상업은행은 현재의 우리은행으로 합병되었고, 상업은행 본사는 한은에 팔리고 리모델링되어 유리궁전이 되었다. 다만 2015년부터 한국은행 본점 부지 전체를 리모델링하면서 매각 얘기가 나오고 있다.
- 서울중앙우체국
여기도 원래는 서울역풍의 건물이 있었다. 1915년에 일본이 처음으로 우체국을 지을 당시에는 당연히 벽돌건물. 그러나 6.25 전쟁으로 우체국이 뼈대만 남아버려서 이후 복구할 때는 뼈대에 콘크리트만 덧씌웠다. 이후 1981년 헐리고 성냥갑이 지어졌으며, 이는 2003년까지 쓰이고 현재 포스트타워로 불리는 사옥이 지어지게 된다. 한국에 있던 근대건축물 중 제일 크던 건물이라 근대건축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사뭇 아쉬운 감이 있다.
- SC제일은행 제일지점. 서울시유형문화재 71호.
조선저축은행 본점으로서 지어졌고, 해방 이후 제일은행이 되어 본사는 종각 옛 신신백화점 터로 가고 제일은행 제일지점이 되었다. 그러다 제일은행이 영국계 스탠다드차타드에 팔려 오늘날 SC제일은행 제일지점에 이르고 있다. 실내 장식을 근대에 준하게 꾸며놓았기 때문에 다크나이트의 고담시 은행같은 고풍스러운 느낌을 느낄 수 있다. 2015년 건물의 소유권이 SC제일은행에서 바로 옆 건물의 주인인 신세계그룹으로 넘어갔다.
4. 논란
4.1. 구 본관 머릿돌의 이토 히로부미 친필 확인
2020년 10월 21일, 조선은행 때부터 사용했고 사적 제280호로 등재된 한국은행의 구 본관의 머릿돌이 이토 히로부미의 친필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앞서 10월 12일 문체위 국정감사에서 전용기 의원이 조선은행이 발간한 과거 자료를 확보해 문화재청에 사실 확인 및 조치를 요구했고, 전문가 감정 결과 이토 히로부미의 친필이라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이후 문화재청은 여론조사를 통해 머릿돌을 어떻게 처리할지 국민의견을 듣고 조치하겠다고 밝혔으며 현재 진행 중이다.
5. 입행
한국은행 입행은 종합기획직원(G5)와 일반사무직원(C3)로 나누어진다. G5는 통화신용정책, 경제동향조사, 금융시스템 관리 등 주요핵심업무를 담당하며[18] C3는 총무, 회계, 경리, 국고, 출납, 여수신, 외환심사, 국고, 증권, 통계, 비서 등 일반사무업무를 담당한다. 두 직종 간 전환은 허용되지 않으며 보수 및 인사를 비롯한 대우 또한 상이한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종합기획직원(G5)의 경우, 초임이 세전 4600이고 평균연봉이 9942만원 (2018)으로 높다.(물론 평균연봉이 높은것은 극심한 인사적체가 주된 이유이다)[19] 그만큼 들어가기도 힘들다. 경쟁률은 60:1 정도다. 다만 서류전형은 비교적 널널한 편.[20] 과거에는 필기 시험에서 대부분의 합격 여부가 결정되었으나, 2015년 즈음부터 면접을 제로베이스로 바꾸었다. 면접전형은 1차의 경우는 집단으로 평가하는 전형과 개인으로 평가하는 전형이 있으며, 1차를 통과한 인원에 대해서는 간부 면접이 있다. 간부면접까지 패스하고 나면 신원조회와 신체검사 부적격자 외에는 모두 입행 가능하다.
즉 입행 프로세스는 서류, 필기, 1차면접, 2차면접, 신원 및 신체검사의 순. 입행이 완료되고 나면 1월부터 일을 한다. 한은 내부 소식지는 1월 소식지에 입행 인원 전원의 이름과 증명사진을 싣고 있으며 이것이 한국은행 나름의 전통인듯.
한국은행 G5 시험은 행정고시, 입법고시 등과 동급으로, 통칭 '''한은고시'''라고 부른다. 그 정도로 어렵고, 중요한 시험이다. 중앙은행에 입행하는 시험은 옛날 과거 제도의 대과 합격 후 호부/호조에 배치받는 것과 동급이다. 타 공기업 시험과 달리 결시자도 적어서 매 시험마다 응시율이 95% 가량 된다.
한국은행 G5 시험 직렬은 경제학, 경영학, 컴퓨터공학, 법학, 통계학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전공에는 제한이 없다. 그러니까 컴공 출신이 법학 시험 칠 수 있다. 물론 5개 전부 다 살인적인 난이도이다.
시험문제는 각 직렬별 서술형 전공문제와 전공논술 1문제, 일반논술 1문제가가 나온다. 문과 직렬은 그냥 닥치고 1문제당 앞뒤 2페이지씩 꽉꽉 채워야 한다. 최소 1페이지 이상 쓰라고 되어 있다. 논술은 2010년 김중수 총재 때 철학 논술로 도입됐으며 시간이 지날 수록 비중이 약화되고 있다. 이주열 총재 취임 이후로 전공 문제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시험 난이도는 해당 년도 총재의 출신이 어떠냐에 따라 격변한다. 승진 출신 총재면 난이도가 4년 내내 올라간다. 반대로 모피아나 외부 학계 출신 총재라면 난이도가 내려간다. 2021년 현재 이주열 총재는 내부승진 총재고 심지어 '재선' 총재이므로 2022년까지는 입행 난이도는 올라가기만 한다고 보면 된다.
경제직렬의 경우, 행정고시와 한국은행을 같이 준비하려는 대담한 사람도 있으나 필요 과목과 준비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둘 다 말아먹기 십상이다. 경제직렬의 경우 최근 갈수록 매해마다 시험난이도와 합격자 수준이 금융공기업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상승하고 있다. 엄청난 난이도로 시험장을 고통에 빠뜨렸던 2015년 한국은행 필기시험은 절반을 맞춘 사람조차 거의 없어 채점자들이 점수 산출 방식을 바꾸기도 했으나 2018년에는 비슷한 수준에서 합격점수 컷이 훨씬 높아졌다. 그리고 보통 학부 책에서는 실마리만 던져주고 끝내고 마는 내용도 적당히 변형해서 내기 때문에 석사 1학년 과목을 듣는 준비생도 종종 있다. 그리고 실질적인 업무에도 높은 수준의 경제 지식이 필요하며, 경제직렬 시험과목도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 국제경제학, 화폐금융론, 계량경제학이다.
계량경제학의 경우 대부분의 경제학과에서 경제수학, 경제통계학을 수강한 이후 2학기에 걸쳐 가르치기 때문에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계량이 전공필수가 아닌 학교가 많고 행시 경제학이나 공공기관 시험에도 출제 대상이 아니다. 기출을 보면 다른 경제학 과목의 문제도 어렵지만 계량은 기출 범위 자체가 광범위하다. 특히, 한국은행 시험에서는 시계열 분석도 출제 대상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의 경우에도 시계열 수업은 2년에 한번 열리며, 계량경제학 수업에서는 보통 가르치지 않는다. 또한 비슷한 시험으로 취급되는 다른 금융공기업에서도 계량경제학을 출제하지만, 시계열까지는 요구하지 않는다. 시계열은 다루기 까다롭기 때문에 대개의 경우 대학원 과정에서나 배운다.
경제학을 제외한 나머지 중 절반 정도가 경영학 전공이라 10~20여명 정도를 모집한다, 2014년에는 합격자 24명 중 12명이 대한민국 공인회계사 가산점을 받았다. 다만 2015년 부터는 한국은행 주관 금융통화경시대회 수상 실적 이외에는 (KICPA, AICPA, CFA, FRM 등) 가산점이 없다. 경영학 필기시험의 난이도는 공인회계사 1차와 2차 시험의 난이도 사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회계사 시험의 유형과는 다른 유형의 시험이기 때문에 별도의 준비가 필요하다. 주요 과목은 재무회계(고급회계는 제외), 재무관리, 원가관리회계, 경영학이며, 회계사 시험과는 달리 경영학 과목 문제도 숫자를 써서 푸는 문제가 출제된다. 시험에서는 재무관리의 비중이 높은 편이고, 그중에서도 선물옵션스왑의 난이도가 악명 높다.
경영학 직렬은 재무관리 1문제는 기본으로 출제되며 난이도가 악명이 높다. 투자론을 완벽하게 이해, 암기해야 풀 수 있는 문제가 출제된다. 예를 들어 펀드 A, B, C를 운용하는 펀드매니저 묻지마 씨가 업계 최고라면서 보너스를 쓸어갔는데, 진짜 주어진 자료의 비교 펀드 및 KOSPI지수 벤치마크와 비교해서 얼마나 초과수익을 냈는지 젠센의 알파, 샤프비율, 트레이너 비율 등을 사용해서 평가하시오. 묻지마 씨는 진짜 보너스를 지급받아야 하는가? 아니면 받은 보너스를 토해내야 하는가? 이런 것을 묻는다.
경영학의 재무관리 외에 나머지 2문제는 돌아가면서 나온다. 재무관리를 뺀 나머지 문제들은 정부 주요 이슈에 대해 문제를 낸다. 2018년 한국은행 경영학 직렬에서는 주 52시간 근무제가 출제됐다. 정부 주요 이슈에 대해 한국은행이 제시하는 평가 척도로 해당 정책을 평가하고 중앙은행으로써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를 묻는 일종의 경영학 + 행정학 결합문제이다.
통계직렬은 6명을 채용한다. 필기는 수리통계 과목을 기초로 하여 표본조사, 시계열, 비모수, 다변량통계, 회귀분석, 실험계획법이 주요 출제내용이다. 가끔 베이즈통계, 알고리즘, GLM을 묻는 경우도 있다. 서울대학교 통계학과 커리큘럼을 기준으로 하여, 통계학과 2,3학년 과목 전부를 토대로 하여 4학년 과목 일부가 출제된다고 보는 것이 옳은데, 서울대학교 통계학과 3,4학년 과정은 타 대학 석사 1학년 과정과 맞먹기 때문에, 실제 합격 인원을 보아도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나 통계학과를 주전공이나 복수전공으로 하고 있는 학생이 많다.
컴퓨터공학직렬은 6명을 채용한다. 필기시험은 소프트웨어공학, 데이터베이스, 논리회로, 컴퓨터구조, 네트워크, 정보보호, 운영체제, 자료구조 등 컴퓨터관련학과 2~4학년에서 배우는 전공과목들이 주로 출제된다. 하지만 프로그래밍언어론이나 최근 각광받는 분야인 인공지능, 블록체인에 대해 묻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사실상 전산학 전반에 대해 두루두루 준비해야 한다. 주어진 시간에 비해 문제의 양이 많고 모두 주관식이어서 공기업 전산직 중에서는 최고의 난이도를 자랑한다.
그 외에 법 6명을 채용하고 있다.
입행 후에는 다음해 1월 초부터 5주간 신입연수가 있고 2월 초부터 첫 출근을 한다. 국가기관 중에서도 일이 빡세다는 평가이다. 다만, 외국 학술연수기회가 있다. 1년에 70여 명이 입행한다면 매년 15명 내외의 직원들이 학비와 생활비를 1~2년에 걸쳐 지원받는다.
산업화 시기에는 상고 졸업 후 바로 한국은행에 입행하는 사례도 많이 있었다. 한국은행 인사를 찾아보면 상고 출신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산업화 시기 특성상 상고에는 가정이 불우하거나 경제 형편이 좋지 않은 인재들이 몰렸고 이들이 한국은행과 국책은행이나 사설 은행에 입행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것도 외환위기 이후 다 사라졌다. 상고 출신으로서 국장의 자리에 올랐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 당시에 6급으로 입행한 인원들이 일정 기간을 채우게 되면 5급 시험을 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 현재의 G5와 C3 분리채용과 인사제도하에서는 불가능하다.
5.1. 입행준비방법: 경제직렬
장단점 둘 다 많은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입행을 희망한다면 다음의 내용을 아주 꼼꼼히 읽기를 추천한다.
0. 입행 준비 여부의 결정
-스펙 축적 및 면접 준비를 충분히 하고 필기 시험 준비를 시작하는 것이 유리하다. (경제 시사를 많이 알게 되는 활동을 해놓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어려운 수업을 많이 듣고 진입하자. 어려운 수업을 많이 듣고 필기 스터디에 참여하면 효율이 훨씬 좋고 우수한 성적으로 입행하여 승진에 유리한 부서를 갈 수 있다.
1. 자소서
-입행을 결심하자마자 바로 써내려가기를 추천한다. 자소서에 대한 완벽한 고민이 되어 있어야 면접에서 불합격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지원동기/전문성/협업이다. 자신이 겪어온 경험과 장점이 한국은행 조직도를 보며 어디와 관련이 깊을지 생각해보면 더 잘 써질 것이다. 다만 어느 부서에 가고 싶은지는 적지 않기를 추천한다. 잘 모르고 적었다가 나중에 면접 가서 후회한다. 면접 직전에 적당한 이유를 찾아 정하여도 늦지 않다.
-겸손하게 적어야 한다. 어려운 내용을 많이 배웠다고 적는 것은 좋지 않다. 말단으로 들어가는데 상사를 우습게 여길 여지가 보이면 안 될 것이다.
-다만, 자신이 한국은행에 어떠한 쓰임새(?)가 있을 것인지는 담담히 적어야 한다. 2019년 입행 자소서 2번 문항이 전문성을 800자 적는 것이었다.
-협업을 묻는 문항에 여자 지원자는 적당한 리더십을 강조하자. 한 팀 당 여자 직원이 한 명 꼴로 배치되는 곳이다. 남자 직원들과 무난히 일을 해낼 수 있음을 보여야 할 것이다.
-왜 물어봤는지 모르겠는 평이한 내용을 묻는 문항에는 그 워딩을 곧이곧대로 믿지 말고 자신의 스펙을 녹여 담아라.
-기본적인 사항이지만 부모님 직업은 적지 말자.
2. 필기
2.1. 문제풀이
-잘할수록 유리한 과목은 동태적 거시경제이론, 시계열 분석을 비롯한 계량경제학이다. (거시경제학 논문에서 어떤 방법이 사용되는지 생각해보면 납득이 갈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동태적 거시경제이론에 해당하는 모형은 거시경제현상과 관련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모형이다. (국경, 화금 등등)
-Wickens와 Romer의 거시경제학을 많이들 보는데, 위킨스는 함의가 좋은 문제만 보고 로머는 다 보자. 특히, 로머 본문에 소개된 모형을 문제화한 모의고사를 구하기를 추천한다. 그냥 시간 잡고 로머를 읽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위의 과목들이 유리하다면 정보경제학, 후생경제학, 수리통계학 공부를 하자. 정보경제학과 후생경제학은 문제를 풀어나가는 원리 정도만 익혀 놓고 수리통계학은 잘하면 잘할수록 많이 유리하다. (경제모형에 불확실성이 도입되는 순간 그냥 수통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효율적인 대비 방법은 두 가지 연습에 집중하는 것이다. (1) 복잡한 계산을 빨리 하는 법 고민 (이 때문에 수학과 출신 지원자가 유리하다) (2) 낯선 새끼 문제 수집
-문제를 풀다가 정의나 원리를 이해할 수 없을 때 영어 원서나 외국대학 대학원 강의노트를 보면 많은 도움이 된다.
-영어로 문제를 푸는 것에 거리낌이 없을수록 훨씬 유리하다. 취약한 주제를 구글링으로 찾아 풀어 실력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영어가 익숙하지 않다면 좋은 문제를 번역한 발제문을 구하는 수밖에 없다. (이게 어렵다면 실력이 좋은 스터디원들을 모아 발제를 많이 해야 유리하다.)
-합격을 보장하고 싶을 때는 박사과정 문제까지 다 풀고 변별력 있으며 출제 가능한 문제들을 추려놓자. 구글에 좋은 문제가 굉장히 많다.
-낯선 개념들을 간략한 정의나 특징과 함께 엑셀이나 워드에 모아놓기를 추천한다. 시험 직전에 리마인딩하고 들어가기 좋다.
-시험 직전에는 모든 새끼문제의 답, 빨리 푸는 요령을 다 외우기를 추천한다.
-모든 새끼문제는 풀이를 세 줄 안에 끝내기를 추천하며, 문제에서 물어본 것만 간단히 적자. (답: ~증가/~임/~이기 때문 등 이런 식으로)
-딱 보고 안 풀릴 것 같은 세트 문제는 첫 문장 읽고 바로 넘기고 마지막 세트까지 갔다가 돌아와서 풀기를 추천한다. 심리적 부담감이 덜어진 채로 풀 수 있다.
-취약하다고 생각하는 과목은 외국대학 대학원 수업 강의노트를 보며 새로운 개념/내용을 보충해도 좋다. 불의타 문제에 대비할 수 있다.
-국내 서적에 있는 문제는 딱 보고 눈으로 안 풀릴 거 같은 문제만 추려서 모아놓자. 계산이 거의 없는 문제 백날봐야 합격률만 감소한다.
2.2. 경제논술
-문제를 다 풀지 못해도 합격하는 지원자들은 논술을 잘 썼기 때문이다. (사실 세 세트 날리고 붙었다는 사람들은 모두 논술 때문이다. 그만큼 논술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를 모르는 채 문제만 잘 푸는 사람은 스터디에 들어가서 논술의 중요성은 알지만 문제를 잘 못 푸는 사람들 도와주다 필기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실력이 좋은 준비생들은 이러한 신세는 면하도록 하자.) 최근에는 경쟁이 더욱 치열해져 문제도 잘 풀고 논술도 잘 써야 한다. 1년 동안 진지하게 공부하는 것을 추천한다.
-총재가 한 모든 말을 외워라. 보도자료로 공개된 연설문, 신문기사에 언급된 총재말을 다 모아 정리해두는 걸 추천한다. 토론 면접에서 할 말 없을 때 언급하기 좋다.
-보도자료를 잘 읽을 줄 알아야한다. 경제 지표 하나하나를 보고 경제 동향을 말로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는 조선비즈 정책란에 다 쉬운 말로 풀어져 기사로 나오니 이를 꾸준히 읽고 공부하자.
-그 외에 관심 있는 내용 위주로 한은에서 발간하는 보고서를 가볍게 읽어나가자. 다 외우지 말고 시장 동향을 파악하여 말로 할 수 있을 정도면 된다.
-통화정책에 대한 학술 동향, 전문가 의견 등은 정리해두는 것이 좋다. 심층 면접에서도 심심치 않게 질문으로 나온다.
-경제 기사를 읽어가며 경제 지표를 해설한 문장을 읽으며 공부하라.
-공부가 많이 되어 있으면 시험 직전에 어떤 문제가 출제될 지 어느 정도 예상이 간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주제 위주로 키워드를 달달 암기하자.
2.3. 일반논술
-문제에서 물어보는 것을 다 썼으면 합격에는 지장이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평소에 신문을 꾸준히 읽고 행정학을 공부한 경험이 있는 지원자는 더욱 수월하게 답안을 적어내려 갈 수 있다.
3. 면접
-문제를 거의 다 풀었고, 예상한 문제가 전공 논술로 출제되어 20분 안에 중요한 키워드를 다 적어 넣었다고 판단되면 필기 시험 직후 바로 면접 준비를 시작하기를 추천한다.
-경제 토론 50분, 자소서 대비 면접, 공공기관 채용 면접에 흔히 출제되는 문항들에 대비하면 된다.
-깊은 생각을 하지 않고 적은 문장이 자소서에서 뒤늦게 발견된다면 적절하게 방어할 방법을 마련해놓자. 자신의 판단이 아닌 조언을 줄 수 있는 누군가의 조언 하에 그러한 생각/행동을 했다고 하면 무난할 것이다.
-공공기관 채용 면접에 어떻게 임해야 하는지 유투브나 구글에서 찾아보면 유리하다.
6. 역대 총재
- 1대 구용서(1950~1951)
- 2대 김유택(1951~1956)
- 3대 김진형(1956~1960)
- 4대 배의환(1960)
- 5대 전예용(1960~1961)
- 6대 유창순(1961~1962)
- 7대 민병도(1962~1963)
- 8대 이정환(1963)
- 9대 김세련(1963~1967)
- 10대 서진수(1967~1970)
- 11대 김성환(1970~1978)
- 12대 신병현(1978~1980)
- 13대 김준성(1980~1982)
- 14대 하영기(1982~1983)
- 15대 최창락(1983~1986)
- 16대 박성상(1986~1988)
- 17대 김건(1988~1992)
- 18대 조순(1992~1993)
- 19대 김명호(1993~1995)
- 20대 이경식(1995~1998)
- 21대 전철환(1998~2002)
- 22대 박승(2002~2006)
- 23대 이성태(2006~2010)
- 24대 김중수(2010~2014)
- 25대 이주열(2014~ )
7. 기타
2015년 한국은행 본점 리모델링 및 별관 재건축 계획이 발표되었다. 당초에는 제1별관과 제2별관을 재건축한 뒤 순차적으로 본관 등을 리모델링할 계획이었으나 보안 문제 및 공사기간 단축 등을 이유로 본점을 임시이전한 뒤 본점 전체를 공사하기로 하였다. 공사가 완료되면 현 소공별관에 입주해있는 부서를 모두 옮겨오고 소공별관은 매각할 것이라고 한다. 한편 6.25 이후 남대문로를 떠난 적이 없다는 한국은행의 임시이전 후보지는 태평로 삼성그룹 본관이다. 한국은행 본점은 국가중요시설 지정 및 방호 훈령 제 2장 국가 중요시설의 지정 제7조에 의거한 가급 국가중요시설이다. 2017년 12월 조달청에서 계룡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하였는데 2순위였던 삼성물산에서 이의를 제기하며 기획재정부 산하 국가분쟁조정위원회에 분쟁조정을 신청하였다가 2018년 6월 삼성물산 측이 분쟁조정을 취하하면서 계룡건설이 최종적으로 낙찰되었다. 당초 2020년 6월경 입주 예정이었으나 2년이상 밀려 2022년 3월경 준공될 것으로 보인다.
내부 결정 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통화정책을 결정한다. 또한 한국은행의 운영[21] 에 관련된 의사결정을 내린다. 이 부분은 사기업의 이사회와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대한민국의 중앙은행인만큼 시중은행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철저한 보안을 자랑한다. 청원경찰이라고 편의상 부르지만 실제론 일반 경비원이 배치되는 시중은행과 달리 한국은행은 정식 청원경찰들이 보안을 담당하며 이들은 평소에 총기를 휴대하는 것도 가능하다. 한은 청경들은 권총과 소총은 물론 기관총까지 보유하고 있으며 민방위훈련 중에도 현금수송차를 그대로 운행시켜 경찰의 추격을 받았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그러나 현금수송차 동선이 노출되어 범죄에 취약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1946년부터 남자 실업농구단을 운영하여 1970년대까지 산업은행, 기업은행과 함께 금융팀 삼대장으로 군림하여 명센터이자 훗날 KBL 패밀리 초대 회장을 지낸 백남정, 前 삼성전자 감독 김인건 등의 국가대표 선수들을 배출해냈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삼성, 현대 등 대기업이 실업팀을 창단해 거액을 들여 좋은 선수들을 스카우트하는 바람에 성적이 급감하여 1983년 농구대잔치 출범 이후 오동근과 김재득이 분투했음에도 언제나 승수셔틀 신세로 밀려났다. 결국 1996년에 팀이 해체되었다. 해체 후 이승학, 김상준, 김영래 등 3명은 원주 나래 블루버드에 입단하고[22] 다른 선수들은 그대로 은퇴.
조사-연구자료 섹션에 있는 자료들은 현직자들도 자주 찾아볼 정도로 방대하고 정교한 자료들이 그득하다. 이 자료들을 출판도 하고 있는데, 말 그대로 재료값 수준의 돈만 받고 팔고 있다. 400페이지가 넘는 책을 5천원 정도 가격에 파는데, 대학교 복사실에 가도 이 정도 가격은 안나온다. 물론 홈페이지에서 PDF파일 다운로드도 가능하다.
한국은행법상 다른 은행에 출자를 할 수 없지만, 한국수출입은행의 주요주주이며, 외환은행의 주요주주이기도 했다. 은행 이외에 출자는 허용되어 있어서 대한민국의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KIC)에 매년 100-150억 달러수준의 외환보유액을 출자하고 있다.(물론 KIC 출자와 동시에 외환보유액에서는 빠진다.)
의외로 미술계에서 '큰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소유하고 있는 미술품만 1000점이 넘는다. 총 감정가도 40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주로 195~60년대에 구입한 작품으로, 당시 생활고에 시달리던 무명 화가들의 그림을 구입해 준 것이 현대까지 전해진 것이다. 이중에는 이후 가격이 크게 오른 작품도 적지 않다. 이 작품들은 한국은행 산하 화폐박물관에서 상설 전시하고 있다. 비슷한 이유로 KDB산업은행에도 적지 않은 수의 작품들이 있다.
IMF의 글로벌 전망모형 GPM을 들여와 BOKGPM으로 운영중이다. GPM 네트워크에는 가입되어있지 않다.
1965년 한국은행은 단 한번 털린적이 있다. 6700만원이 도난되었고 범인은 검거되었다.#
8. 바깥고리
- 중앙은행 오디세이 ⑦일본이 세운 구(舊)한국은행 - 식민지 조선 침탈하는 일본 제국주의의 첨병 노릇
- 한국은행 오년사 (1955)
- 한국은행 십년사 (1960)
- 한국은행 십오년사 (1965)
- 한국은행 20년사 (1970)
- 한국은행 이십오년사 (1975)
- 한국은행 삼십년사 (1980)
- 한국은행 사십년사 (1990)
- 한국은행 50년사 (전 2권, 2000)
- 한국은행 60년사 (2010)
9. 같이보기
[1] 2009년 행표가 아래의 CI로 교체되면서 본 휘장은 지폐 디자인에만 쓰인다.[2] 금융정책 전체가 아니라, 금융정책의 일부인 통화정책을 수행한다. 금융정책이 아닌 재정정책은 정부(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의 고유 권한이다. 그러나 최근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한국은행법 제1조 제2항에 "한국은행은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함에 있어 금융안정에 유의하여야 한다."는 조항이 생겨서 금융 쪽에도 그 영향을 넓혀가고 있다. 금융안정은 한국은행이 아니면 파악하기 힘든 것이 금융기관 사이 지급결제망을 한국은행이 운영하고 있고, 금융기관의 거시안정성이 통화정책에 밀접한 영향이 있다는 사실에 기반한다.[3] 발권국은 한은 본점 리모델링 공사로 인해 강남구 역삼동 강남본부로 이전했다.[4] '''통계청 소관이 아니다!''' 단, 지방자치단체별 GRDP는 통계청 소관.[5] 한국은행법 제2조에 근거.[6] 본점에서는 화폐 금융 화폐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짐바브웨 달러 같은 국내에서 보기 힘든 신기한 돈도 있다.[7]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이 '총재'라는 단어가 너무 권위적이므로 바꾸자고 했었으나, 지폐에 '한국은행총재'의 도장이 찍혀 있다는 현실적인 사유로 일단 놔두기로 했다. 명칭 하나 바꾸는 데만 해도 화폐 도안 변경, 이로인한 ATM기 인식시스템 변경 등의 사회적 비용이 지출된다. 구권은 '총재의인' 도장이 찍혀 있다. 신권으로 화폐가 변경될 때가 직함을 변경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으나, 당시로서는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되며, 화폐개혁 정도의 본격적인 사례가 나오지 않는 이상 해당 직함은 그대로 둘 것으로 보인다. 옆나라 사례를 보면 일본은행은 '총재'라는 단어를 계속 쓰고 있기 때문에 바뀌지 않았고, 중국인민은행은 '장'으로 호칭하고 있다.[8] 대개 통화량 조절을 위해 기준금리 조절을 사용하는데, 기준금리를 인하할 경우 장기금리가 하락하게 된다. 이때 소비증가, 투자증가, 자산가치 상승, 환율 상승, 주가 상승이 발생한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외국인 투자자본 비중이 높아 주가와 환율이 기준금리보다는 국제금융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도 많다.[9] 단 꼭 관련법이나 기타등등에 제1의 핵심목표를 물가안정으로 명시해 놓은 곳은 별로 없으며, 특히 선진국으로 갈수록 그렇다. 한국은행 역시 외환위기 당시 IMF가 경제체질 개선의 일환으로 한국은행법에 물가안정을 명시하도록 강요한 것에 가깝다. 이렇게 중앙은행의 제1목표를 물가안정으로 명시하는 것을 물가안정목표제라고 하며,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대한 시장의 신뢰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10] 정책 기조에 따라 작성 기준이 바뀌기도 한다.[11] 공개시장조작이라는 용어가 16년부로 공개시장운영으로 바뀌었다.[12] 금융감독원이 각 금융기관의 미시안정성을 감독한다면 한국은행은 금융시스템의 거시안정성을 담당한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의 금융감독권은 확대 추세에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은행에 금융안정 역할을 부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달성할 수단이 부족한 상황이다.[13] 그래서 근 몇 년 사이 오만원권 지폐 인물 문제 등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14] 통화정책 시행 시 완전고용 달성은 고려요인이긴하나 일반적으로 재정 즉 정부 측의 목표이다.[15] 사실 경기 활성화를 위해서 저금리를 원하는 정부와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서 고금리를 주장하는 중앙은행 간의 마찰은 선진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70년대 말 지미 카터 대통령과 폴 볼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의 대립. 폴 볼커는 20%에 달하는 초고금리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진압했지만, 한계기업의 파산과 실업자 급증으로 1980년 대선에서 지미 카터 대통령은 참패한다.) 동시에 물가 등을 핑계로 저금리 시대에도 금리 인하를 하지 않아 경기 부흥의 타이밍을 놓치게 만들었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2016년에는 너무 지속적으로 저금리를 유지해 가계부채 규모를 키우고 디플레이션 우려가 있지 않느냐는 지적을 받는다. 사실 한국은행 금리결정은 미국이나 강대국과 달리 주변이나 타국의 경제 상황 및 정책을 고려해야 하는 외생적인 결정이라 주도적으로 이끌기 대단히 어렵다.[16] 미 연준은 정부의 감사를 받지 않는다[17] 한국은행 역할 확대에 관한 학계의 성명과 국회의 시도가 여러 차례 있어왔으나 개발시대 관성에 젖은 정부 관료의 반대로 번번히 좌초되어왔다. 국회의원들이 개혁의지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시도하지 않는 이상 선진국과 같은 중앙은행제도는 아직 요원해보인다.[18] 하지만 학부 전공, 입행 직렬과 무관한 부서에 배치될 수 있다..! 한편, 이를 한은의 장점(?)으로 생각하고 입행 준비를 하는 사람도 꽤 된다.[19] 주의해야 할 점이 한국은행은 공공기관이 아니다. 기획재정부가 지정하는 공공기관 지정에서도 당연히 빠져있다. 이는 중앙은행으로서의 독립성과 중립성이 중요하기 때문. '한국은행은 중앙은행이며, 중앙은행으로서 공익을 위해 노력한다.' 라는 것이 바람직한 설명이다. 한국방송공사가 '''공공기관 위의 공공기관'''이라고 하는데, 한국은행은 KBS처럼 표현하면 '''공공기관 위의 공공기관 위에 있는 중앙은행'''이라고 표현하는게 맞다.[20] 보통 20-30배수의 인원에게 필기 시험 자격을 부여한다.[21] 이는 한국은행 법에 한국은행 정관변경, 한국은행 조직 및 기구, 한국은행의 예산 및 결산, 한국은행 직원의 보수기준의 결정으로 명시되어 있다.[22] 프로농구가 출범할 때 금융권 팀들은 모두 없어졌다. 원주 나래 블루버드가 창단할 때 위의 한은 선수 3명과 산업은행 농구단 출신 선수들이 한 팀으로 모였고 기업은행 농구단 선수들은 광주 나산 플라망스로 소속팀이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