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수

 

'''전형수의 감독 경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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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의 농구코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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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전형수(全亨洙)
'''생년월일'''
1978년 9월 13일 (46세)
'''국적'''
대한민국
'''출신학교'''
명지고등학교 - 고려대학교
'''포지션'''
포인트 가드, 슈팅 가드 [1]
'''신체 사이즈'''
180cm, 80kg
'''프로입단'''
2001년 드래프트 1 라운드 2 순위 (여수 골드뱅크 클리커스)[2]
'''소속팀'''
여수 코리아텐더 푸르미 (2001~2002)
울산 모비스 피버스 (2002~2004.1, 2007.11~2008)
창원 LG 세이커스 (2004.1~2004.4, 2008~2012)
서울 SK 나이츠 (2004~2005, 2007.10~2007.11)
고양 오리온스 (2012~2014)
'''등번호'''
8[3], 4[4], 2[5], 7[6], 6[7]
'''지도자'''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 코치 (2014~2019)
안양고등학교 농구부 코치 (2019~2020)
명지고등학교 농구부 코치 (2021~)
'''종교'''
개신교
1. 소개
1.1. 아마추어 시절
1.2. 프로 선수 시절
2. 은퇴 이후
3. 관련 문서


1. 소개


전 프로농구 선수. 전 신한은행 에스버드 코치. 현역시절 별명은 백만돌이.

1.1. 아마추어 시절


명지고등학교 시절부터 주목받던 가드였고, 이후 고려대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왼손잡이 공격형 가드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이규섭과 함께 고려대를 이끌던 공격형 포인트 가드로 대학무대에서 활약했고, 이후 2001년 드래프트에서 포인트 가드 문제를 해소시켜줄 구단들 사이에서 최대어 대접을 받게 된다.
저니맨 생활로 프로선수 생활을 마친 전형수이지만, 대학 시절에는 속공 패스 플레이와 뛰어난 득점력을 선보였던 가드이고, 전형수는 당시 상위 순번에서 지명되어도 인정할 만한 기량을 지닌 가드였다. 전세계 농구흐름에 따라 2010년 이후로 대두되고 있는 듀얼가드의 측면에서 봤을 때, 전형수는 한국농구의 거의 유일했던 1세대 듀얼가드라고 볼 수 있다.

1.2. 프로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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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데뷔시즌인 2001-2002시즌에는 뛰어난 공격능력을 발휘하면서 신인왕 후보로도 점쳐졌다. 다만 김승현의 센세이셔널한 플레이로 대구 동양 오리온스가 일약 뛰어난 팀으로 급부상 했기 때문에 스포트라이트를 상대적으로 덜 받았고, 신인왕도 결국 김승현에게 빼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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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형수의 팀인 코리아텐더 푸르미는 모기업이 IT기업이었기 때문에 당시 IT거품이 꺼지던 상황에서 농구단 운영에 재정난을 겪었고, 결국 전형수는 울산 모비스 피버스에 현금으로 트레이드 된다.[8] 그렇게 엄청난 활약을 펼치던 그 였는데, 2003-2004시즌 중 트레이드 되어 창원 LG 세이커스에서 포인트 가드로 활약했다. 당시 LG에는 가 포인트 가드로 있었는데, 노쇠화로 인한 기량의 저하를 우려해 주전 포인트 가드의 역할 수행을 위해서 트레이드 했다. 뛰어난 공격력에 비해 포인트 가드로서의 센스가 부족했고 군문제까지 겹친 전형수를 LG는 다시 SK로부터 황성인을 트레이드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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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시절에는 황진원임재현에 밀려서 전에 보여줬던 뛰어난 공격능력을 전혀 보여주지 못한채 군에 입대하게 된다. 이후 군문제를 해결한뒤에도 SK에서 도저히 부활할 기미를 보여주지 못하자, 2007년 11월에 모비스의 김학섭, 이병석김두현과 묶여서 다시 모비스로 트레이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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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스에서는 전형수가 이전에 보여주던 모습을 기대하고 트레이드를 시켰는데, 유재학 감독의 기대대로 과거에 보여준 공격능력을 다시 모비스에서 선보이며 양동근이 부재한 모비스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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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수의 부활을 본 창원 LG 세이커스는 FA로 전형수를 영입하게 된다. 그러나 이후 전형수는 자신의 장점인 모비스에서 뛸 때의 특유의 공격적인 농구 스타일을 점점 잃어버리며 나이가 들면서 점점 하락세를 보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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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전형수는 LG에서 은퇴를 제의 받지만 거부한 뒤 고양 오리온스로 이적했고, 베테랑 식스맨으로 활약했으며 플레이오프에서 쏠쏠한 활약을 하기도 해 잠시나마 조명받은 뒤 은퇴했다. 커리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군 복무 기간을 제외하고 11시즌을 뛰는 동안 '''챔피언 결정전 무대를 한 번도 밟지 못했다.'''

2. 은퇴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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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의 코치로 팀을 이끄는 모습
은퇴 후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의 코치로 선임되었다.
2015-2016 시즌 중반 성적 부진으로 사임한 정인교 감독을 대신하여 잠시 팀을 이끌게 되었다. 그리고 후임으로 신기성이 임명되자 다시 코치로 돌아갔으나, 2018-2019 시즌 종료 후 성적 부진의 책임을 물어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아 신기성 감독, 정선민 코치와 함께 팀을 떠나게 되었다.
그 뒤 안양고등학교를 거쳐 2021년부터는 모교인 명지고등학교 코치를 맡고 있다.

3. 관련 문서


[1] 신인 시절에는 락사마가 버티고 있어서 슈팅 가드였다.[2] 전형수 이후로 고려대는 2013년 가을 드래프트에서 박재현이 4순위로 삼성에 지명되기 전까지 로터리픽(1~4순위) 지명자를 1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골드뱅크는 차기 시즌 코리아텐더에 인수되었다. 팀명칭은 여주 코리아텐더 푸르미다.[3] 여수 코리아텐더, 군 입대 이전 서울 SK 시절[4] 울산 모비스 1기, 창원 LG 1기 시절[5] 군 제대 이후 서울 SK 시절[6] 울산 모비스 2기, 창원 LG 2기 시절[7] 고양 오리온스 시절[8] 당시 전형수는 경희대와 마지막 연습경기에서 스트레칭 도중에 트레이드 소식을 들었다고 하는데, 그 충격으로 인해 전형수는 주저 앉아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