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LG 세이커스/선수단
1. 감독/코칭스태프
2. 현역 선수
2.1. 가드
2.2. 포워드
2.3. 센터
3. 군입대 선수
4. 은퇴 및 이적선수
4.1. 프랜차이즈 스타
트레이드가 유독 많았던 팀으로 인해 10년 이상 뛴 선수는 전무하다.
원클럽맨 슈퍼스타는 전무하며 원클럽맨도 트레이드를 겪었다.
역대 출장 순으로 박규현,기승호,양우섭 정도가 300경기 이상 출장했다.
그 중 고려대 농구부를 살리는 구단의 전통을 보면 박규현과 박재헌 정도가 8년 이상 프랜차이즈로 활약했다.
성적조급증 특히 KBL 플레이오프 무관으로 인해 아쉬운 부분.
자세한 건 역대선수단으로 대신하며 기승호의 경우 흑역사가 있는 바람에 첨부문서로 대신.
창단멤버를 포함해서 초창기 시절 역대 성적을 기준으로 보면 양희승과 박재헌 및 오성식이 있었고 이후 조성원과 조우현 정도다.
그 중 창단멤버였던 오성식과 팀 MVP 출신인 조성원은 이천 챔피언스파크 동상 내에 새개져있다.
기아 엔터프라이즈 출신이자 동부 프로미의 코칭스테프였던 강동희와 김영만도 거쳐갔지만 프랜차이즈는 아니다.
2002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 멤버인 현주엽과 조상현은 FA로 팀에 이적했지만 전 국가대표 출신이자 2006-2007 시즌 정규리그 2위와 함께 이천 챔피언스파크 동상 내에 새개져있다.
2013-2014 시즌 정규리그 우승의 주역으로 문태종을 시작으로 김영환과 김종규 그리고 김시래가 활약을 했고 이들은 LG 팬들에게는 영웅으로 불리운다.
그 중 2013-2014 시즌 정규리그 우승의 주역이자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LG 소속으로 금메달을 함께한 문태종은 이천 챔피언스파크 동상 내에 새개져있다.
올드 멤버 내 역대선수로 대신.
4.2. 올드 멤버
4.2.1. 역대 선수
- 양희승 (1997~2000) : 창단멤버
- 박재헌 (1997~2004) : 창단멤버 겸 구단 창단 첫 주장 및 코치 겸 수석코치
- 박규현 (1997~2004, 2006~2009) : 창단멤버 겸 주장 및 수비 5걸상 수상
- 박훈근 (1997~2000, 2006~2007) : 창단멤버
- 오성식 (1997~2002) : 창단멤버 겸 코치
- 김태진 (1997~2001) : 창단멤버
- 조성원 (2000~2002) : 구단 창단 첫 3점슛왕 겸 구단 창단 최초 정규리그 MVP 수상 및 LG 선수 출신 감독
- 조우현 (2000~2006)
- 송영진 (2001~2005) : 구단 창단 최초 1순위
- 강동희 (2002~2005) : 구단 창단 선수 겸 코치
- 김영만 (2002~2006) : 구단 창단 선수 겸 코치
- 박광재 (2003~2009) : 연예인, 농구선수로서 데뷔를 여기서 했다.
- 김현중 (2005~2008, 2009~2012)
- 현주엽 (2005~2009) : 2002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 및 LG 창단 최초 선수 출신 감독, 예능인
- 조상현 (2006~2011) : 2002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 및 3점슛왕 수상
- 박지현 (2006~2009) : 수비 5걸상 수상
- 이현민 (2006~2011) : 구단 창단 첫 신인왕 수상
- 전형수 (2004, 2008~2011)
- 강대협 (2001~2002, 2009~2011)
- 이창수 (2009~2011)
- 문태영 (2009~2012) : 구단 창단 첫 토종 득점왕 수상
- 기승호 (2008~2018)
- 오용준 (2011~2012)
- 정창영 (2011~2019)
- 백인선 (2009~2010, 2011~2015) : 구단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멤버
- 송창무 (2007~2014) : 구단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멤버
- 김영환 (2012~2017) : 구단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 멤버 겸 주장 및 3점슛왕 수상
- 양우섭 (2012~2020) : 구단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 멤버
- 박래훈 (2012~2018) : 구단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 멤버
- 유병훈 (2012~2020) : 구단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 멤버 및 식스맨상 우상
- 문태종 (2013~2015) : 구단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 멤버 겸 정규리그 MVP 수상 및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 김종규 (2013~2019) : 구단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 멤버 겸 신인왕 수상 및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 김시래 (2013~2021) : 구단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 멤버 및 어시스트상 수상
4.2.2. 구단 최고 성적으로 배너를 기준으로 본 역대 정규리그 2위 이상 및 플레이오프 4강 이상 감독
- 이충희 (1997~2000) : 구단 창단 초대 감독. 82 뉴델리 아시안게임 금메달 멤버이자 농구대잔치 득점왕 신기록의 스타 출신 슈터다. KBL에 데뷔했던 1997-1998 시즌 정규리그 2위를 기록하면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하면서 LG 전자 광고에서 농구단 홍보를 하기도 했다.
- 김태환 (2000~2004) : 팀의 창단 첫 KBL 파이널 진출을 포함해서 2000-2001 시즌과 2002-2003 시즌 정규리그 2위 두번을 포함해서 재임기간 유일의 4년 연속 4강 플레이오프를 기록하며 팀의 공격농구를 이끌었다.
- 신선우 (2005~2008) : 82 뉴델리 아시안게임 금메달 멤버. KBL에서 당시 맡았던 팀을 2년 연속 KBL 통합우승을 포함해서 5년 연속 KBL 플레이오프 진출 및 2003-2004 KBL 플레이오프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LG 세이커스에서 창단 10주년이었던 2006-2007 시즌 정규리그 2위를 기록하면서 4강 플레이오프에 자동으로 진출했다. KBL 통산 300승을 LG 감독 재임 시절에 달성했다. 참고로, KBL 역대 통산 362승으로 KBL 역대 통산 승리 5위 감독이기도 하다.
- 김진 (2011~2017) : 구단 유일 창단 이후 첫 정규리그 우승 감독. 2002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 감독. KBL에서 당시 맡았던 팀을 2001-2002 KBL 통합우승과 2002-2003 KBL 정규리그 우승과 함께 6년 연속 KBL 플레이오프를 이끌기도 했다. LG 세이커스에서 역대 최장수인 6년을 지휘하면서 KBL 통산 300승과 400승을 LG 감독 재임 시절에 달성했다. 2013-2014 시즌 팀 창단 17년만에 첫 정규리그 우승과 2014-2015 시즌까지 2년 연속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역대 LG 감독 중에서 KBL 감독상 수상을 했다. 참고로, KBL 역대 통산 415승으로 KBL 역대 통산 승리 3위 감독이기도 하다.
4.3. 흑역사
- 양희승 : 1997~2000, 창단 멤버 중 스타 플레이어. 그러나, 구단과의 부상과 연봉문제의 불화로 인해 조성원과의 맞트레이드 이후 SBS 스타즈-KT&G 카이츠에서 전성기를 보냈다.
- 버나드 블런트 : 1997~1999, 1998~1999 득점왕. 1999~2000 시즌을 앞두고 야반도주하면서 LG는 몰락했고, 이충희 초대 감독은 재계약에 실패하였다. 구단에서도 금지어로 소문이 자자하다.
- 송영진 : 2001~2005, LG의 첫 전체 1순위 신인이자 고향 마산 출신으로 인기를 모았지만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고 현주엽의 FA 보상 이적으로 부산 KTF 매직윙스으로 이적하게 된다. 그러나 KTF에서 기량이 오르며 그 해 기량발전상을 수상하면서 성정을 하게 된다. 2006-2007 시즌에는 정규리그 3위와 함께 4강 플레이오프에서 경쟁하면서 LG의 KBL 파이널 진출을 수비로 막아내면서 KTF의 창단 유일의 KBL 파이널 진출을 이끌면서 승리자가 된다. 추가로 2010-2011 시즌 KTF의 후신인 kt의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의 주역이었다. 현주엽을 영입했으나 이건 완벽한 LG의 패배였다.
- 퍼비스 파스코 : 2006~2007, 2006~2007 시즌 4강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심판 가격으로 영구제명. 이는 KBL 첫 영구제명이다.
- 현주엽 : 2005~2009,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농구 금메달 멤버. 2005 FA로 부산 KTF 매직윙스에서 이적으로 합류했으나 무릎 부상으로 인해 전성기에서 내리막이었고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갑작스런 은퇴 기자회견을 통해 선수 시절 챔피언의 한을 풀지 못했다. 신선우 감독이 재임할 때 출전시간 문제로 기싸움을 하면서 불화설이 나왔으며 실력이 부족했으나 사실 모교 1년 선배였던 박규현에게 연습과 경기에서 항상 혼이 나기도 했다. 그 동안 약팀의 에이스였는지 홀로하는 농구 속에 있었던 따가운 비판의 슈퍼스타였다. LG 이적 이전 단 1번도 4강 플레이오프 이상을 나가지 못했다. 결국 강을준 감독에 의해 문태영을 영입하면서 은퇴. 모교인 고려대 감독설까지 나왔으며 은퇴 이후 8년만에 LG 7대 감독으로 부임했지만 역대 최저성적인 9위를 두번 기록하며 팬들에게 흑역사로 불린다.
- 전형수 : 2004, 2008~2011, 포인트 가드지만 전형적인 슈팅 가드. 믿고거의 대표. 체력과 슈팅이 좋았지만 느린발과 부족한 시야로 발목이 잡혔다. 여수 코리아텐더 프루미에서 데뷔를 했으나 모기업 매각으로 인해 울산 모비스 피버스로 이적 이후 부활을 했다. 하지만, 강을준 감독의 부름과 함께 2번 이적해서 뛰게 된 팀에서 데려갔으나 가드들과의 주전경쟁에서도 나은 점을 보여주지 못했다. KBL 프로농구 역사상 최악의 FA계약으로 좋은 모습과는 거리를 보여주었다. 이후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에서 활약한 뒤 은퇴를 하게 된다.
- 기승호: 2008~2018, 원클럽맨. 하지만, 좋게 보면 디펜스 스페셜이고 나쁘게 보면 이관희와 동급. 상무 입대 전에는 강을준호의 황태자로서 문태영 다음으로 국내 에이스로써 버금가는 활약을 했었다. 수비와 궂은일을 바탕으로 심지어는 김동욱, 박상오처럼 가드진의 연결고리까지 도맡으면서 슈팅도 준수했다. 하지만, 상무 전역때 뛰어난 활약을 했음에도 부상이 잦아서 그 이후로 폼이 떨어져 버렸다. 거기에 발목 부상까지 당한데다가 활약도에 비해 터무니없는 고연봉(현재 3억이다!)으로 만인의 농구팬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여기에 13-14 KBL 파이널에서는 옛 동료였던 문태영과의 주먹다짐이 있었다. 이로인해 팬들에게 매너가 좋은 그 모습과는 다르게 이미지를 많이 말아먹었다. 이후 부상으로 큰 공헌을 하지 못했으며 LG 역대 출장기록만 남기고 10년만에 팀을 떠나게 되었다. 그 이후로 고향팀인 안양 KGC인삼공사로 쫓겨나듯이 트레이드 되었고 거기서는 어느 정도 폼을 되찾으면서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로 이적하면서 최진수와 경쟁중이다.
- 아이반 존슨 : 2008~2009, 기행의 대표. 강을준 감독이 한국형으로 장악할려고 했으나 부모를 여의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경기에 집중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 데이본 제퍼슨 : 2013~2015, 2014~2015 득점왕. LG의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에 기여했지만 그 다음 시즌 4강 플레이오프에서 애국가 몸풀기 및 SNS 문제로 인해 퇴출되었다. 창단 시절 버나드 블런트가 되었다.
- 트로이 길렌워터 : 2015~2016, 1시즌동안 답이 없는 LG를 먹여살렸지만 각종 기행을 일삼으면서 벌금 1,400만원을 물었다. LG는 길렌워터와 재계약하기를 희망했지만 이런 행동으로 인해 트라이아웃 1년 참가제한 징계를 받고 재계약에 실패했다. 현재는 일본 도요타 엘버크에서 뛰기도 했으며 5년만에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에 돌아왔다.
- 김영환 : 2012~2017, LG의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 시절 3점슛왕 및 주장. 전 소속팀이었던 kt 전신인 KTF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면서 LG에서 김진 감독이 직접 공을 들여서 키운 선수다. 4년반을 주장으로 하면서 선수단의 단합과 팀의 승리와 함께한 영웅이었다. 그러나, 구단 최고위층 앞에서 3점슛 22개 연속 실패와 함께 원치 않은 트레이드를 당했다. 그것도 데뷔했던 KTF 매직윙스의 후신인 kt 소닉붐이었다. 2017년 02월 24일에는 kt 소닉붐의 주장으로 역대급 버저비터를 터트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LG 구단 프런트에 쌓였던 게 있었는데 평소 덩크를 하지 않던 그가 골대를 잡고 흔들면서 절정의 환호를 했다. 이 과정에서 LG 팬들은 그래도 정규리그 우승팀 시절 주장이었는데 큰 상처와 함께 배신자라는 비판도 있었다. 비판했던 kt 팬들도 성장한 주장인지 180도 다르게 지지한다. 하지만, 이 경기만 그랬을 뿐. LG에서 정들었던 후배들과는 친분이 여전하다. kt 소닉붐에서도 선후배 단합의 리더로 손색이 없다. 감독이 바뀐 이후 2019-2020 시즌부터 회춘하면서 농구인생의 어록까지 바뀌고 있다.
- 김종규 : 2013~2019, LG의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 시절 신인왕. FA 협상 과정에서 LG에서 12억을 제시했으나 이를 거절함, 그러나 LG에서 사전 접촉 의혹이 제기되자, KBL 재정위원회에 회부 당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FA 자격을 얻게되었다. LG는 김종규와의 협상 과정에서 현주엽 감독과의 통화 과정에서 불법 녹취를 해 팀의 이미지가 깎이게 되었다. 현주엽과 LG 구단 관계자의 꼼수 속에 신뢰가 무너지면서 6년간 응원했던 창원 LG 팬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으로 이별을 하게 되었다. 전주 KCC 이지스와 원주 DB 프로미 두 팀이 영입 의사를 밝혔으나, 결국, 원주 DB 프로미가 단독으로 영입의향서를 제출하여, DB 소속으로 뛰게 되었다. 이적 이후 전 소속팀이었던 LG 구단 프런트에 쌓였던 게 많았는지 덩크 횟수가 늘어나고 한 때 정희재와도 피카츄 모드로 비판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LG 팬들과 DB 팬들의 다툼까지 나올 지경. 하지만, 그 경기만 그랬고 참된 두 팀의 팬들은 모두 김종규를 응원 중이다. 이 과정에서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을 이끈 단장은 바뀐 프런트에 아마추어라는 비난까지 했다.
5. 역대 드래프트
6. 역대 외국인 선수
- 해당 시즌 외국인 선수 MVP는 ★로, 드래프트 전체 1순위는 ☆로 표시
- 해당항목은 나무위키의 외국인 선수/역대 프로농구 항목을 참고하였습니다.
[1] 트레이드로 인한 지명권 양수양도로 SK 이적[2] 트레이드로 인한 지명권 양수양도로 전자랜드 이적[3] 귀화혼혈선수 3순위[4] 시즌 도중 방출[5] 시즌 도중 방출[6] 시즌 도중 방출[7] 시즌 도중 방출[8] 시즌 도중 방출[9] 시즌 도중 방출[10] 대체 외국인 선수 영입[11] 대체 외국인 선수 영입[12] 시즌 도중 방출[13] 계약 후 방출[14] 대체 외국인 선수 영입[15] 시즌 도중 방출[16] 시즌 도중 방출[17] 시즌 도중 방출[18] 시즌 도중 방출[19] 시즌 도중 방출[20] 시즌 중 부상 교체[21] 시즌 중 트레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