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민
1. 개요
자타공인 여자농구의 '''끝판왕이자 지존'''. 별명은 '''바스켓 퀸'''. 이 별명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농구 관계자나 팬은 아무도 없다. 국내 제일의 파워 포워드이자 센터, 그리고 대한민국 여자농구 레전드 중 한 명. 1993년 성인 무대에 데뷔해 2012년 은퇴할 때까지 20년동안 한국 여자농구의 대들보이자, 여왕으로 군림한 선수다.
동시대 정은순, 전주원 이후 변연하 등 쟁쟁한 스타들이 있었지만 정선민은 레벨이 그 위였다. 여자농구의 서장훈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2. 기록
'''정규시즌'''[4]
415경기 19.61점 7.57리바운드 4.28어시스트 1.86스틸 필드골 46.0% 3점슛 22.2% 자유투 87.1%
'''플레이오프'''
83경기 17.90점 7.35리바운드 4.61어시스트 1.76스틸 필드골 42.8% 3점슛 22.0% 자유투 82.5%
3. 선수 시절
마산산호초등학교 4학년 때 선생님의 권유로 농구에 입문했다. 그 후 마산여자중학교를 거쳐 마산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2부터 고교대회 MVP를 차지하면서 일찍부터 거물급 루키로 평가받았는데, 스카우트 싸움 끝에 결국 1993년 SKC로 진로가 확정되었다. 데뷔 시즌에 농구대잔치 신인상을 받으면서 일찍부터 능력을 보여줬다.
팀 창단 후, 우승이 없던 SK증권[5] 을 이끌고 세 차례 농구대잔치 우승을 일궜다. 그 때 함께 우승을 만든 주역이 유영주, 김지윤, 이종애로 지금도 WKBL의 주역인 선수들이다. 그러나 1997년 우승을 차지하고도 팀이 해체되면서 드래프트를 거쳐 신세계 쿨캣으로 이적하게 된다.
WKBL에서 신세계의 4차례 우승을 이끌었다. 그리고 2003년 한국 여자 농구 사상 최초로 WNBA에 진출했다. 1라운드 8순위로 시애틀 스톰에 지명되어 한 시즌을 뛰었으며 평균 6.9분 17경기 출전에 평균 1.8득점을 기록했다. 성적이 그다지 좋지 못해서 바로 돌아왔는데, 신세계로 복귀한 것이 아니라 2004년 국민은행으로 이적했다. 2006년 당시 국민은행의 여름리그 우승에 일조함에 따라 여름리그 MVP를 수상하게 된다. 이후 2006년 10월 신한은행으로 이적한 뒤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WKBL에서 MVP만 무려 7번을 차지했다. 이 기록은 거의 깨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도 많이 받아서 2008-2009 시즌에는 일부러 후배인 최윤아에게 기자들이 표를 몰아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적수가 없어서 2009-2010 시즌에 바로 정규시즌 MVP를 수상했다. 득점왕에 오른 것도 네 차례, 심지어 2002년에는 센터임에도 불구하고 스틸 부분 1위에 올랐다. 완벽한 만능 선수. 또 한 가지의 기록이 절대 깨지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바로 통산 최다 트리플더블 기록이다. 무려 13차례의 기록을 세워서 WKBL 역대 최다 기록을 가지고 있다.
국가대표로 여자 농구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동료인 전주원, 정은순, 유영주 등과 함께 국가대표를 이끌면서 2000 시드니 올림픽 4강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반대로 그녀가 없던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전패로 탈락하는 수모를 기록했으니까, 그녀의 비중을 짐작할만 하다.[6] 국가대표로 복귀한 이래 다시 맹활약, 2008 베이징 올림픽 8강과 2010 세계선수권 8강을 이끌었다.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을 끝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하려고 했지만, 부상으로 인해 출전이 좌절되었고, 결국 그녀의 마지막 국가대표 경력은 2010 세계선수권이 되었다.
2010-11 시즌에서도 신한은행이 또 우승을 차지했지만, 정작 본인은 부상으로 거의 출전하지 못했다. 마지막 불꽃을 태우기 위해 이미 이룰 것은 다 이룬 신한은행 대신 다른 팀으로의 이적을 요청, 결국 곽주영, 허기쁨이 신한은행으로 가고, 정선민이 국민은행으로 가는 1:2 트레이드가 성립되었다. 점프볼 서민교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임달식 감독과의 불화나 프런트와의 갈등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으며, 스스로의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WKBL 챔프전 우승이 단 한 번도 없'''었던''' KB로 가서 말년을 장식할 듯 하다.
2011-12 시즌 국민은행에서 활약하며, 팀을 챔프전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챔프전에서 3전 3패로 신한은행에게 패하며, 자신의 능력으로 신한은행 상대로 복수하려는 꿈은 이루지 못했다. 패배가 확정적이자 분해서 눈물을 보이는 장면이 안타까움을 자아냈고 결국 이 장면은 정선민의 마지막 장면이 되었다.
2011-12 시즌을 끝으로 선수 생활 은퇴를 공식 선언하고, 화려했던 선수 생활을 접었다. 2012년 4월 30일 은퇴 기자회견을 가진다. 은퇴 후에는 농구 선수가 아닌, 평범한 여성의 삶을 살겠다고 언론을 통해 밝혔다.
4. 지도자 시절
2013년 ABC 선수권대회에서 코치로 합류하여 활동했다. 그리고 2014년 6월 서울 인헌고등학교 남자농구부의 코치로 선임되어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됐다. 여자코치가 남고팀 코치로 활동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
2014년 12월 1일부터 여자프로농구 부천 KEB하나은행의 코칭스태프로 임명되어 선수들을 지도하였고 2015~2016 시즌 종료 후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에 새롭게 부임한 신기성 감독을 따라 옮겨갔으나, 2018~2019 시즌 후 성적 부진의 책임을 물어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아 신기성 감독, 전형수 코치와 함께 팀을 떠나게 되었다.
5. 방송해설위원
부산 출신의 KB 스타즈 영구결번의 주인공인 변연하 부산MBC 해설위원이 BNK 썸 코치로 떠나게 되면서 후임 해설위원 되었다. 주말 홈 경기해설을 맡게 되었고 BNK 썸 구단 유튜브 영상에는 해설과정 영상이 나왔다.
6. 기타
- 동생인 정훈종은 전주 KCC 이지스에서 선수로 뛰었다.[7] 그러나 누나에 비해서 선수로서 이룬 것은 없다. 꿈도 소박한 것이 KCC 시절의 인터뷰에서 은퇴 후에 하고 싶은 일이 PC방 운영이라고 했으니...[8]
7. 관련 문서
[1] 현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2] 6시즌 연속[3] 3시즌 연속[4] 통산 8140점 3142리바운드 1777어시스트 771스틸[5] SKC에서 운영 주체가 바뀌었다.[6] 물론 이 당시에는 전주원을 비롯해 이름있는 노장 선수들은 다 빠졌다.[7] 205cm의 장신으로 누나와 같은 포지션(센터)로 뛰었다. 마산고등학교와 중앙대학교를 졸업했다.[8] 실제로 친했던 선수들의 말에 의하면 정말로 PC방을 차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