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복
1957년 2월 28일 ~ (62세)
1. 소개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민선 4~5기 충청북도 영동군수였다.
영동군 출신으로 영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밭대학교 학사학위를 취득했다.
1995년 부터 지방선거에 꾸준히 출마하여 영동군의회 의원, 영동군수등을 역임하였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영동군의회 영동읍 선거구에 무소속[1] 으로 출마하여 1위로 당선되었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영동군의회 영동읍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1위로 당선되었다. 2000년~2002년에는 3대 영동군의회 하반기 군의회 의장을 역임하였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 영동군수 후보로 출마 하였으나 한나라당 손문주 후보에게 밀려 3위로 낙선 하였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으로 입당하여 영동군수후보로 출마, 한나라당 손문주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이용희의 공천 탈락의 반달로 열린우리당의 후신인 통합민주당을 탈당하자 동반 탈당하여, 자유선진당에 입당하였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선진당 영동군수 후보로 출마하여, 한나라당 정진규 후보를 누르고 재선하였다.
2011년 이용희의 민주통합당 복당시 선도탈당하여 복당하였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직전에 김영만 옥천군수가 탈당 후 새누리당 입당, 정상혁 보은군수가 탈당[2] 후 무소속 출마하는 와중에 남부 3군 군수 중 혼자 탈당 하지않고 새정치민주연합 영동군수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 박세복 후보에게 343표차 석패하며 낙선하였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공천을 신청하였는데, 현재까지 다른 경선 상대가 나오지 않아 전략공천으로 출마하는 박세복군수와 재대결이 성사 되어 징검다리 3선을 노리게 되었다. 하지만 이전 선거보다 더 큰 표차인 2,305표차로 밀려 다시 낙선했다.
사실 8년간 군정을 이끌면서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못한 것이 그보다 짧은 4년을 재임하면서 소기의 성과라도 보여준 박세복 현 군수에 대비되어 지역에서는 박세복 후보의 재선이 점쳐지던 상태였다.[3] 지역 정가에서도 별로 인망이 없었는지 민주당 군의원이 유세에서 박세복 군수를 뽑아달라고 말실수를 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바로 정정하긴 했지만.
여러모로 남부 3군의 맹주였던 이용희의 영향력에 너무 기대어 자신만의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 것이 한계였다. 이용희가 현직 국회의원이었을 시기에는 무난히 당선되었지만 은퇴하자마자 연거푸 낙선했다. 이용희를 따라다닌 남부 3군 군수 중 유일하게 민주당에 잔류한 의리는 있지만 딱 거기까지.[4]
낙선 이후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으나, 2019년 11월 1일에 더불어민주당 충북도당 부위원장에 임명되었다.
2. 선거 이력
[1] 3회 지방선거 까지는 기초자치단체 의원들은 당적을 보유할 수 없었다.[2] 이는 정구복 군수가 민주당계 출신이었고 김영만 군수와 정상혁 군수는 원래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에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는 점이 있다. 김영만 군수는 바로 입당했으나 정상혁 군수는 선거법문제로 시간이 지난 뒤에 입당하였다.[3] 공보물이나 유세에서 '딱 한번만 하고 은퇴하겠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했는데 이걸 주민들이 '한번만 더 해먹겠다는 소리냐'라고 받았을 정도. 실제 선거결과에서 민주당이 군의회의 과반을 점유했음에도 낙선한것으로 얼마나 당적 버프를 못받았는지 알수있다.[4] 사실 이용희로부터 지역구를 물려받은 아들 이재한이 남부 3군에서 도통 먹히지 않는다는 것도 원인이겠지만.[5] 중앙선관위 역대선거정보시스템을 보면 영동읍 선거구 1위는 양해찬 후보이고, 2위가 정구복인데 당선인 명부에는 둘 다 당선인으로 뜨나 영동군의회 홈페이지의 역대의원 목록을 보면 이름이 없다. 기초의회 중대선거구제가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부터 적용되었음을 생각하면 선관위의 기록에 의아한 부분이 있다.[6] 2008.3.17 통합민주당 탈당, 동일 자유선진당 입당[7] 2011.12.1 자유선진당 탈당, 12.2 민주당 복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