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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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합당'''
'''한문명'''
民主統合黨
'''영문명'''
Democratic United Party
'''등록 약칭'''
민주당
'''고유번호'''
107-82-12235[1]
'''창당일'''
2011년 12월 16일[2]
'''당명 변경'''
2013년 5월 4일 (민주당)
'''해산일'''
2014년 3월 26일 (새정치민주연합으로 흡수합당)
'''통합한 정당'''


'''주소'''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영신로 166
(영등포동6가, 농협)[3]
'''대표'''
김한길 / 4선 (15·16·17·19대)
'''원내대표'''
박기춘 / 3선 (17·18·19대)
'''사무총장'''
김영록 / 재선 (18·19대)
'''정책위의장'''
변재일 / 3선 (17·18·19대)
'''의석 수'''
'''127석 / 292석'''
'''당 색'''
노랑 (#FFD400) [4]
연두 (#3AB34A) [5]
'''이념'''
자유주의, 사회자유주의[6]

'''내부계파:'''
진보주의
사회민주주의
중도개혁주의
사회보수주의
보수자유주의
'''정책 연구소'''
민주정책연구원
'''공식 사이트'''

아카이브
2013년 5월 4일 기준
1. 개요
2. 강령 및 성향
3. 당가
4. 역사
4.1. 창당 과정
4.2. 전당대회
4.4. 총선 패배 이유는?
4.5. 임시 지도 체제
4.6. 원내대표 경선과 당대표 경선
4.7. 2기 지도부 총사퇴
4.8. 대선 레이스
4.9. 대선 이후
5. 역대 지도부
5.1. 대표
5.2. 원내대표
6. 역대 선거결과
6.1. 대통령 선거
6.2. 국회의원 선거
6.3. 재보궐선거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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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1년 12월 16일에 출범해 2013년 5월 4일까지 존재한 대한민국정당이다.[7]
야권의 제1정당인 민주당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문성근[8], 김기식[9], 창조한국당/국민참여당 탈당파, 복지국가소사이어티[10], 박용진[11] 등을 중심으로한 “혁신과 '''통합'''”이 창당한 시민통합당, 한국노총이 합쳐져서 만든 민주당계 정당이다.

2. 강령 및 성향


당의 강령에는 1979년 부마민주항쟁, 1987년 노동자 대투쟁, 2008년 촛불시위의 정신을 계승을 추가했다. 실제로 강령에는 재벌대기업의 근본적 개혁, 원자력 발전소 정책 재검토, 조중동 종합편성채널 원점 재검토등 파격적인 내용들이 들어 있어, 중도개혁주의적인 성향의 구 민주당의 강령과 비교해서 확연하게 왼쪽으로 옮겨졌다. 한미 FTA 재협상 주장도 특징이었다.
사실 구 민주당은 당시로부터 불과 4년 전인 2008년 총선 패배 직후 그나마 있던 왼쪽 성향마저 버린 "뉴 민주당 플랜"으로 우경화의 정점에 올랐다. 하지만 민주통합당의 이 강령은 삼무일반(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반값등록금)도 놀라운 변화로 평가받던 2010년에 비하면 더 좌회전 한 것.
단순히 강령으로만 보면 민주통합당이 통합진보당 못지않게 좌클릭한 여러모로 오묘한 상황이 돼버렸다. 이는 역시 한미 FTA를 제외하고는 민주당에 가깝게 좌클릭한 한나라당 친박계의 변화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보수층들이 통합진보당보다 더한 좌파 정당이라는 공격을 퍼붓기도 했고, 19대 총선에서 한미FTA나 제주도 해군 기지 건설 논란 등에 대해 "말 바꾸는 정당"이란 공세가 이루어진 이유기도 했다.
(분당 이전의) 통합진보당 강령에는 이른바 '전문'이 없어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두 정당의 성향을 비교하기 애매하다. 다만 과거 극좌라는 이야기 까지 들었던 통합진보당의 진보성향은 과거보다 온건해 졌던 것이 사실이었다.[12][13] 반면 민주통합당의 강령에는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경제민주화 실현'''이라는 내용이 들어가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내용까지 추가했다.[14]

3. 당가



나가자 민주통합당 민주통합당 민주통합당 민주통합당
나가자 민주통합당 민주통합당 민주통합당 민주통합당
영원히 빛나는 민주주의 우리의 피끓는 사랑이
이 땅의 평화와 통일로 힘차게 용솟음친다
우리의 한마음 겨레사랑 민중 속에 활짝 피어라
손에 손 맞잡고 나아가자 우리는 자랑스런 민주통합당
겨레의 희망 민주당 온겨레의 내일 밝힐 용사가 되어라
이 나라 지킨 민주당 피땀흘려 쌓아올린 민주주의 영원하라
민족의 등불 민주당 평화통일 번영의 나라 우리의 사명
힘차게 전진하여라 우리 민주통합당
당시 대통령 후보 경선과 문재인 대통령 후보 유세에 널리 쓰였던 당가는 민주통합당당가이다. 전신인 통합민주당의 당가 음색을 그대로 차용해 가사만 바꾼 것이다. 해당 당가 예시는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 유세동영상 안무까지 담겨있다. 문재인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에서도 배경음으로 쓰였다.
이외에도 위 수락 연설을 플롯으로 삼은 응원가인 사람이 웃는다도 널리 사용되었다. 이 곡은 발라드 작곡의 거장 김형석문재인 후보자에 대한 공개 지지와 더불어 문 후보를 위한 로고송으로 무상 작곡해 준 것이다. 원래 흥겨운 댄스곡 스타일로 소화하려 했으나 어울리지 않다는 판단으로 그의 주 종목인 발라드 풍으로 편곡했다고 한다.[15]

4. 역사



4.1. 창당 과정


민주당2011년 12월 11일 전당대회를 거쳐서 야권통합이 의결되었고 이후 2011년 12월 16일 민주당과 시민통합당이 합당을 선언하면서 공식적으로 출범을 선언하게 되었다.[16] 당명 결정을 위해 민주당, 통합민주당, 시민민주당 3개의 후보를 놓고 여론조사를 실시하였는데, 통합민주당과 시민민주당이 비슷하게 나오자 민주당 측에서는 시민민주당은 시민(市民)은 군 지역 사람들은 배제하는듯한 인상을 심어준다며 통합민주당으로 할 것을 주장하였고, 이에 시민통합당 측에서는 반발하였다. 결국 통합과 민주의 어순을 변경한 민주통합당으로 선관위에 등록했다.
지도부는 30%의 대의원과 70%의 당원, 일반시민들이 참여하는 경선을 통해 총 6명을 선출하며 4명의 지명직 최고위원, 1명의 당연직 최고위원으로 총 11명의 집단 지도체제로 구성될 예정이다. 특히 젊은층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35세 이하의 청년층에 최고위원 한자리를 배정하고 청년 최고위원은 슈퍼스타K 방식으로 선출한다고 홍보되었다. 구체적인 방식은 3단계에 걸쳐서 20세에서 35세 사이의 청년층 입지자를 선별한뒤 3단계에 걸쳐서 최종적으로 남녀2명씩 4명을 선정하고 4명중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후보를 청년 최고위원으로 선정하며 네명의 후보들은 2012년 4월 총선에 비례대표로 출마하게 되는 식. 민주통합당에서는 여건이 맞으면 '''방송국 생방송까지 고려'''했으나 방송에 나오지는 못했으며, 후보가 지방 당직자들로 결정되면서 이미 정해놓은 결론 아니었냐며 잠시 논란이 되기도 했다.

4.2. 전당대회


당 대표에는 친노계인 한명숙국무총리가 유력 했고, 그외에 구 민주계인 박지원 원내대표, 친노계 문성근 시민통합당 공동대표, 민평련 이인영 의원, 정동영계 이종걸 의원, 김한길계 박영선 민주당 정책위의장등도 지도부 입성이 유력한것으로 점쳐졌다.
2012년 1월 15일의 대표경선에 참여하는 일반 시민 선거인단의 숫자가 '''50만'''을 돌파했다(!). 이런 폭발적인 반응에는 모바일 투표 선거인단 모집과 한국노총 및 나꼼수의 영향을 받은 정봉주 전 의원 팬카페등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참고로 당일은 정봉주 前 의원의 구속이 예정된 날이었다.)
사실상 이렇게 되면서 일반 시민 선거인단이 당대표 경선을 좌우할 공산이 커졌다. 이에 따라 한명숙 전 총리와 문성근 대표가 대표직을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일 것으로 예측되었다. 이른바 친노 직계와 원외 시민사회계 친노 비주류의 대결로 해석되었다.
여담으로 본래 3사 공동생중계였던 합동토론회를 돌연 KBS, MBC에서 생중계를 취소하는바람에 SBS에서만 방송했는데, 현재 미디어렙, TV수신료와 관련해서 민주당의 입장이 방송사 이익과(KBS는 수신료 인상,MBC는 자체 미디어렙) 상충되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있었다.
2012년 1월 15일 경선을 통해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2위로 문성근 후보가 당선되었고 그 외에 박영선, 이인영, 박지원, 김부겸 후보가 당선되어 6명의 선출직 지도부가 구성되었다.

4.3.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 전개과정


당초 민주통합당은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드리겠다'''라고 공언하면서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의 후보자는 오픈 프라이머리로 선출한다고 밝혔다. 이런 공언으로 민주통합당은 전당대회 이후 한명숙 대표체제가 출범하면서 1월 정당 지지율이 한나라당을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한명숙 대표체제는 임종석 전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하면서 부터 삐그덕거리기 시작했다. 임 전 의원의 경우, 보좌관이 저축은행 비리사건에 연루되어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재판에 회부된 상황이었던지라 논란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임종석은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했으나 여론이 좋지않자 스스로 사무총장직을 사퇴하면서 한명숙 대표를 벙쩌게 만들었다. 다만 얼마 못가 임종석은 무죄판결을 받았다. 진짜로 결백했었던 것.[17]
민주통합당은 본격적으로 19대 국회의원 공천심사위원회를 구성하고 공천심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수도권의 현역 의원 전원이 탈락없이 공천을 받았으며 일부는 단수공천자로 선정되었다.[18] 또한 새누리당 현역의원이 있는 지역구, 특히 부울경의 경우에는 이른바 적지공천으로 17대 총선 때 당선 된 열린우리당 시절의 전직의원들을 대거 공천하였다. 대표적으로 김영춘 의원.
그런데 그 결과 친노 486들은 무혈입성(?)하는 반면,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계열의 구 민주당계는 경선 대상으로 지정되거나 아예 탈락하면서 뿔이 난 구 새천년민주당계 후보들이 탈당해 "민주동우회"를 구성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른바 정통민주당의 시초였다(...)
18대 총선보다 중진의원들의 험지 등판론이 더욱 돋보였는데, 이 번에는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에 당 대표를 지냈던 '''정세균'''을 서울 강남 을에 비노계 좌장 '''정동영'''을, 서울 송파 을에 천정배, 서울 강서 을에는 김효석, 서울 광진 갑에 김한길을 공천했다.
여기에 민주통합당이 선거혁명이라면서 자랑하던 국민경선과 모바일 투표도 허점이 발견되었다. 대표 경선이야 전국적인 이슈라서 국민경선인단이나 모바일 투표인단들이 많았지만, 총선은 지역구별로 상황이 다른 판국에 일괄적으로 국민선거인단이나 모바일 투표인단을 모집하게 되면 자칫 조직동원으로 점철될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었으나 한명숙 대표는 국민경선을 확정지었던 것. 그리고 과연 결국 광주광역시 동구에서 국민경선인단을 모집하던 전직 동장이 선관위에 발각되자 투신자살하는 사태로 모바일 투표에 대한 회의적인 지적이 어느정도 맞아 떨어졌다.[19]
새누리당이 박근혜의 친이계 학살이다 뭐니 해도 어찌되었건 문제 있던 현직의원들을 다수 날리는데 성공한 반면, 민주통합당은 현역의원 탈락은 없고 전직 열린우리당 의원들만 줄줄히 공천한다는 비난에 시달리자 결국 여론을 만회하기 위해 호남권 의원들을 대부분 날려버리는 물갈이를 단행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형평성의 문제로 탈락된 호남권 의원들의 탈당만 불러왔다. 여기에 한국노총측에서는 자신들의 후보를 공천하지 않는다면서 이탈 운운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구 혁신과 통합측에서도 시민사회 출신 신진인사들이 국민경선도 못치루고 줄줄이 나가떨어지자 이해찬 전 총리가 탈당까지 운운하는등 말 그대로 '''헬게이트의 극치'''인 상황이 돼버렸다. 게다가 필수사항이 된 통합진보당과의 야권연대도 서로의 입장차로 협상이 파토 위기에 처하는 등 상황이 악화되었다.
어쨌든 대표 회동으로 불씨를 되살린 야권 연대협상은 3월 10일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16곳을 통합진보당으로 양보하고 73곳에서 민주통합당 후보와 통합진보당 후보간에 경선을 통한 후보단일화를 하기로 합의한 것. 3월 17-18일에 걸친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 경선을 통해 다수의 지역에서 단일화가 확정되었고 통합진보당의 빅4인 이정희, 노회찬, 심상정, 천호선 후보의 단일화도 확정되어 윈윈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으나...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관악乙 선거구[20]단일화 경선 과정에서 이정희 대표의 보좌관과 선거캠프국장이 여론조사 조작을 했다는게 밝혀지면서 다시 격랑으로 치달았다. 문재인 고문이 나서서 중재를 한 끝에 이정희 대표가 사퇴를 선언하면서 일단락이 되었다.[21]
당초 한명숙 대표는 과반의석 확보를 기대한다고 밝혔으나 일각에서는 과반(150석 이상)은 커녕 130석도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새누리당에서는 야당의 삽질 덕분에 제1당은 물론이고 더 나아간다면 과반 이상도 가능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을 정도였으니...[22]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선거 결과 당초 17대 총선에서 얻은 121석만 얻어도 감지덕지라던 새누리당은 '''152석'''으로 과반+1석이라는 승리를 거두었으며 반대로 민주통합당은 그 좋던 분위기를 다 까먹고 127석이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23] 당 내부에선 국민들이 밥상을 차려줬더니 민주통합당이 스스로 상을 걷어찬 꼴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 망했어요

4.4. 총선 패배 이유는?


어찌 보면 희한한 선거였다. 민주통합당이 서울과 경기에서 압승을 거두었음에도 과반은 새누리당이 가져가는 사태. 이는 수도권과 지방의 민심이 괴리되었기 때문이었다. 야심차게 추진한 부산/경남 공략에도 불구하고 영남에서 3석 확보에 그친 것이 대표적이었다[24].
반면 새누리당이 67석이나 되는 영남권을 '''철통방어'''한 것을 넘어서 울산 지역을 내리 석권해버렸고, 박근혜 위원장이 육영수 여사(박정희 前 대통령의 영부인)에 대한 정서를 바탕으로 충청권을 탈환했으며, 강원권에도 북한 미사일을 통한 안보바람을 일으켰다. 심지어 민주통합당은 충북 등에서 다수당으로서 역 심판을 받았던 것. 만약 민주당이 18대 때 차지했던 충청, 강원권의 의석만 지켰어도 통합진보당과 합쳐서 과반을 넘기는게 가능했던 상황. 결국 중원싸움에서 패배한 것이 결정타였다.
또한 서울과 경기에서 민주당이 3분의 2를 가져갔지만 의외로 새누리당도 3분의 1은 건졌다는 점도 여당의 과반 확보에 영향을 미쳤다. 인천은 심지어 반반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결국 '''리더십과 컨트롤 타워의 부재'''라는데에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애당초 민주통합당이 단일 세력이 아니라 여러 세력들의 연합이었기 때문이었다. 새누리당이 박근혜 위원장 중심으로 공천 탈락자들을 달래가면서[25]전국적으로 선거운동을 했던 반면, 민주통합당은 각각 지분을 가진 거물급 정치인들이 선거위원장들을 맡았지만 '''자기 지역구 이상을 넘어서질 못했다'''라는게 문제였다는 지적이다. 부산 사상에 출마한 문재인 고문도 부산 경남권 이외에는 커버를 못했을 정도였다.
한명숙 대표가 이런 약점을 커버했다면 몰라도, 공천실패로 이미지가 추락한 한 대표로선 이를 막을 수 없었다. 애초 한 대표는 유력 대선주자가 아니라 유력 대선주자들에게 전권을 위임받은 일종의 CEO형식의 대표인 탓에, 당연히 당 장악력이 약할 수밖에 없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친노 486들을 중용하고[26] 공천에서 우대를 했는데, 이것이 도리어 화를 불렀다. 국민들이 새로운 정치의 기대감을 가졌다면 그 기대감을 충족시키는 포장이라도 잘해야 할텐데, 그마저도 못하면서 결국 민주통합당의 지지율은 이미 '''선거 전에 새누리당에게 추월당했다.''' 게다가 진보진영에게는 호남권의 의원들은 날리면서 한미 FTA로 논란이 된 김진표 원내대표[27] 등은 그대로 공천하는 등 "과연 공천에 기준이 있긴 했나"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지역적으로 여소야대에서 여대야소가 된 충청권의 경우는 야당의 공천 실패와 박근혜 위원장의 영향력이 컸다는 지적이다. 청주 상당에 공천된 국회 부의장까지 지낸 홍재형 의원 같은 거물[28][29]조차 '''맨날 보던 인간이 왜 또 나왔냐'''라는 비아냥을 대놓고 들었다고 할 정도니 말 다 한 셈.(...) 기본적으로 충청권에 깔려있는 육영수 여사-박근혜 위원장으로 이어지는 강한 정서적 연대를 참신한 인물과 지역 발전 공약으로 뚫어야 했는데 이것이 안 되면서 실패했다는 분석이 나왔었다.
통합진보당과의 야권연대를 이룬건 성과이긴 했으나 오히려 이것이 '''중도성향 유권자에겐 악영향을 미쳤다'''라는 주장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비하칭인) "고대녀"로 알려진 김지윤 후보의 해군기지에 대한 "해적기지 발언"으로 중도성향의 유권자들을 경악하게 했지만 민주통합당은 야권연대에 급급해서 이를 제어하지 못했다.[30] 이후로도 제주도 해군 기지 건설 논란이나 한미 FTA 등 논란이 심한 정책에서 통진당, 나는 꼼수다로 목소리가 커진 신규 지지층에 끌려다니면서 결국 중도성향 유권자들이 등을 돌렸다는 주장이다.
선거 막판에 터져나온 노원구 갑의 김용민 후보의 위안부 망언 파문에 대한 대처도 소홀했다. 막말 파문에 대해서 나꼼수 애청자들의 지지를 잃지 않으려 사퇴를 둘러싸고 갈팡질팡 했고, 뒤늦게 당 차원의 사과와 함께 김 후보에 사퇴 권고를 했으나 너무 늦어 되려 보수층들의 역결집 효과만 불렀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용민 후보는 사퇴는 커녕 강행하다가 큰 표차로 낙선했다.[31]
어쨌든 통진당과 합쳐서 140석(여기에 민주계 무소속 2인을 합치면 142석)을 확보하여 2008년 통합민주당의 80석보다는 약진했으며, 나꼼수와 박원순 효과로 서울의 20대들의 참여를 이끌어 수도권에서 새누리당을 누르고 1당을 차지했으며 제주도에서 3연속 싹쓸이를 했다는 것은 위안점이었다. 거기에 통진당과 합쳐서 총 득표수에선 새누리당을 넘어섰다는 점은 향후 대선엔 긍정적인 시그널이라는 분석도 있다.
또한 총선을 앞두고 공천에서 탈락한 일부 동교동계 인사들이 민주통합당을 탈당하고 정통민주당을 창당하여 후보를 내는 등, 출구조사에서 야권연대(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 후보가 근소하게 앞선 지역[32]에서 표를 갉아먹어 야권 분열로 출구조사 결과를 뒤엎고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게 만들었다.
결국 4월 13일, 한명숙 대표는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대표직 사퇴를 밝혔다.

4.5. 임시 지도 체제


한명숙 대표 사퇴 이후 지도부는 2위 최고위원인 문성근 최고위원이 대표대행으로 이끌다 5월 4일 선출되는 원내대표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6월 9일 임시 전당대회까지 이끌고 가는 것으로 합의했다.
친노계의 문성근 대표대행체제와 비노계의 비상대책위원회체제가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당헌 당규에도 어긋나지 않고 책임도 지는 모양새를 이루었다. 일각에서는 20일짜리 대행을 세울 바에는 새누리당처럼 비대위를 구성하고 비대위 중심으로 대선을 치뤄야한다는 말이 나왔지만 묻혔다.
한편으로 한대표 이후의 당권 경쟁에도 가속도가 붙은 상황으로 당내 중진이자 친노인 이해찬 의원이나 정세균 의원이 거론되고 있으며 비노쪽으로는 박지원 의원이 거론되고 있다. 탈계파적인 인물로는 김한길 의원[33]등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이런 당권경쟁에만 골몰할 경우 대선도 결국 놓칠것이라는 불안감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총선패배 이후 언론에서 당권경쟁만 부각시키는 양상이라 이런식이라면 민주당의 미래가 불안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중.
원내대표 경선을 위한 준비가 진행되던중 4월 26일, 친노 중진인 이해찬 전 총리와 호남 중진인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만나서 이해찬 대표-박지원 원내대표체제로 가기로 합의했다는 사실이 각 언론에 보도되면서 민주당의 원내대표 경선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친노 대 비노의 대결구도가 격화되면 대권에 가기도 전에 당이 망할 것이라는 불안감에서 나온 결과지만 원내대표 경선을 준비하던 다른 계파에서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34] 여기에 유력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문재인 고문까지 이 합의에 팔을 걷어붙혔다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합의에 반대하는측에서는 사실상 (문재인-이해찬을 필두로한) 친노 주류와 호남세력의 야합이라고 맹비난하는 중이고 문재인 고문이 여기에 끼어듬으로서 사실상 이해찬 대표 체제에서 공정하지 못하게 사실상 문재인 고문을 당의 대선후보로 끌어올리려는 꼼수가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당내 경선에서 계파끼리 연합하는 건 '''어느 정당을 불문하고 매우 흔한 일'''이다. 이해찬-박지원이 경선을 치루지 않겠다는것도 아니고 당내 경선에서 합법적으로 서로를 지원하겠다는건데 이를 야합이라고 하는건 그저 반대세력의 정치적 공격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일리는 있었다.[35]

4.6. 원내대표 경선과 당대표 경선


그리고 5월 4일 원내대표 경선에서 박지원 의원이 당선되었다. 1차 투표에서 박지원 의원이 49표로 1위, 유인태 의원이 35표로 2위, 전병헌 의원이 28표로 3위, 이낙연 의원이 14표로 4위를 얻었다. 유인태-전병헌-이낙연 의원은 2차 결선투표에서는 서로 표를 몰아주기로 연합한 상태라 박지원 의원이 낙선하는게 아닌가 했지만 전병헌-이낙연 의원을 찍었던 표가 대거 이탈, 박지원 후보에게 쏠리면서 2차 결선투표에서 67:60으로 박지원 의원이 당선되었다. 그러나 박빙의 표차였다는 점에서 박지원-이해찬 연합에 대한 반발이 생각보다 당내에서 만만치 않다는 것을 입증했다.[36]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6월 9일 전당대회에서도 모바일 투표를 실시하기로 했다. 다만, 고령자와 일부 농촌에서는 모바일 투표 참여가 불편한 점을 감안해 유선전화 면접원 조사 투표도 도입하기로 했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이해찬 전 총리가 대표경선에서 우위를 보일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5월 14일부터 15일까지 대표경선 후보자 등록이 진행되었다. 이해찬 전 총리는 당연히 등록했으며 이에 맞서서 김한길 당선자도 등록을 마쳤다. 그외에 추미애, 이종걸[37], 강기정, 조정식, 우상호, 문용식 등의 후보들이 등록을 마쳤다. 사실상 대표자리를 놓고 이해찬-김한길의 2파전이 벌어질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며 조직력이 강한 이해찬 전 총리 쪽에 우세가 점쳐지지만 이-박연대에 대한 거부감을 등에 업고 이변이 일어날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리고 그 예측은 현실이 되었다. 5월 20일 울산에서 열린 대표경선 첫 대의원 투표에서 '''김한길 후보가 1위, 이해찬 후보가 4위'''라는 이변이 벌어진것. 울산은 친노의 텃밭이라 일컬어지는 지역이라 이해찬 후보가 우세할것이라는 전망이 나온것과는 반대로 김한길 후보가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추미애 후보가 2위, 우상호 후보가 3위인 상황.
이런 상황을 두고 이-박 연대에 대한 불만이 고개를 든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울산의 대의원이 전체 민주통합당 대의원의 1% 수준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아직 섣불리 김한길 후보가 대세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의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5월 21일 부산에서의 대의원 투표 결과에 이목이 쏠리고 있는데 부산 대의원들의 성향은 이해찬 후보쪽으로 기울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결국 예측대로 이해찬 후보가 1위를 차지했지만 김한길 후보와의 차이는 불과 150여표차에 불과해 대세론 형성에는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한편 2위를 차지한 추미애 후보는 5월 22일 화순에서 열리는 광주전남 대의원 투표 결과에서 호남표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운 상황.
5월 22일 광주-전남 대의원 투표결과 광주 북구 현역의원인 강기정 후보가 1위, 김한길 후보가 2위, 이해찬 후보가 3위를 차지했다. 누적 표수는 772표를 얻은 이해찬 후보가 1위를 유지했으나 김한길 후보의 누적표수도 744표로 그야말로 박빙의 승부가 이어지고 있음이 나타났다.
노무현 대통령의 기일인 5월 23일을 넘기고 대구에서 치러진 대구-경북 대의원 투표결과에서는 김한길 후보가 1위를 차지했다. 비교적 중립적 성향의 대구경북 대의원들의 결과가 이런 상황이라 결국 김한길-이해찬의 치열한 박빙승부가 끝까지 펼쳐질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어서 치러진 충남-대전 대의원 투표결과에서는 지역 거물 정치인인 이해찬 후보가 압도적 1위를 차지하면서 전체 1위를 탈환하고 김한길 후보와의 표차를 벌렸다.
5월 26일 경남 대의원 투표결과에서는 김한길 후보가 1위를 차지했고 27일 제주 대의원 투표결과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경남 대의원 투표에는 김두관 경남지사의 입김이 작용했지만 제주에서는 대의원들의 자체판단의 결과라는 분석이다. 여전히 이해찬 후보가 1위를 차지하고는 있으나 표차이는 불과 90여표도 안되는 상황. 전문가들은 문재인-김두관의 대리전 상황이라고 분석중이다.
남은 일정상 5월 29일의 세종, 충북 대의원 투표는 이해찬 후보의 압도적 우세가 예상되었으나 김한길 후보가 1위를 차지했다. 이해찬 후보측에서는 손학규 고문의 세력이 강해서 예상한 결과였다고 한다. 누적 순위로는 이해찬 후보가 여전히 1위지만 표 차이는 13표차로 줄어들었다. 5월 30일, 31일에 열린 강원과 전북 대의원 투표결과는 김한길 후보가 잇달아 승리를 거두면서 10개 지역 경선에서 7곳을 승리한걸로 일단락이 지어졌다. 누적표수 1위도 탈환한 상태이고 이해찬 후보와의 표차는 210표차까지 벌어졌다. 남은 일정은 모바일 투표와 여론조사 및 6월 9일에 서울에서 치뤄지는 수도권 대의원 투표가 있는데 여기서의 결과는 예측 불허인 상태이다. 상황이 이리되자 초반의 분위기와는 달리 이해찬 후보가 추격자로서 공격하고, 김한길 후보가 챔피언으로 방어을 하는 웃지 못할 상황에 이르렀다.
박빙의 대표경선에 민주당은 흥행효과로 총선 패배의 후유증을 어느정도는 씻어내는 분위기다. 다만 일부에서는 대표에 출마한 후보들이 대선과 미래 비전제시 보다는 이-박 담합론의 틀에만 갇혀있는게 아니냐는 비판을 하기도. 여기에 임수경이 술김에 막말 파문을 일으켜서 잔치상을 뒤엎는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6월 9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임시전당대회장에서 최종 결과가 나왔다. 이해찬 후보가 재역전에 성공, 1위로 당대표에 당선되었고 이어 김한길, 추미애, 강기정, 이종걸, 우상호 후보가 최고위원에 당선되었다. 당초 김한길 전 대표가 유력하다는 전망이 나왔으나 이해찬 후보가 조직력으로 이를 극복했다는게 대체적인 분석.

4.7. 2기 지도부 총사퇴


안철수 후보가 출마를 선언하면서 단일화의 조건으로 민주당의 정치혁신을 주장하면서 민주당내에서는 혁신과 친노세력의 퇴장을 놓고 친노-비노간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2012년 11월 1일 김한길 최고위원이 지도부 총사퇴론을 제기하며 최고위원직을 사퇴했으며, 11월 18일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에서 지도부 인적쇄신론이 불거지자[38] 이해찬 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 전원이 총사퇴를 결의하였다. 그리고 문재인 후보에 당 대표 권한 대행을 맡겼다.
이로 인해 민주통합당의 2기 지도부도 3개월 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4.8. 대선 레이스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대선 경선 과정이 적혀있다.

4.9. 대선 이후


문재인 후보가 낙선하면서 민주통합당에는 후폭풍이 불가피해 보였다. 당장 심각한 문제는 전면적 쇄신으로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과제였다. 그러나 대선 과정에서 지도부가 총 사퇴하고 문재인 후보가 당 대표 대행을 겸임한 탓에 대선 패배의 책임을 안은 문재인이 이를 추진할 동력은 없다는게 일반적인 분석이었다. 실제로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정동영 고문도 대선 패배 이후 자신의 계파가 완전히 와해되어버리고 당내에서의 기반을 완전히 상실했던 전력이 있기 때문에 문 후보와 친노계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문 후보도 이를 알고 있는지 캠프 해단식에서 차기 대권도전은 없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39]
일단 비대위를 구성하고 비대위 체제로 2013년 1월이나 2월에 있을 전당대회를 준비할 것으로 보였지만 친노계가 퇴장한 뒤의 힘의 공백을 메꿀 대안세력이 없다는 것 때문에 민주당의 미래가 암담하다는 지적도 많았다. 최악의 경우에는 야권의 대안세력으로 안철수 전 후보가 부상하면서 결국 친노계만 민주당에 남고 비노계들은 탈당하여 안철수 신당으로 가면서 야권이 분열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던 상황. [40]
2012년 12월 21일에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는 일단 책임론보다는 대선 패배의 원인에 대한 반성과 쇄신 필요성이 주로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지원 원내대표가 사의를 표명했고 문후보는 비대위원장과 비대위원을 인선한 뒤에 2선 후퇴할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에서는 일단 쇄신형 비대위로 외부 인사를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고 비대위원들을 구성한 뒤에 조기 전대보다는 최대 9-10개월까지 비대위 체제로 가면서 당권 다툼으로 신뢰를 잃는 문제를 없애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고. 그러나 비주류 의원들 쪽에서 문재인 후보는 이제 전 후보인데 후보에게 위임한 대표권한이 성립하느냐는 문제 제기가 있어서 비대위 체제는 결정이 나지 않은 상황. 일단 12월 24일 의원총회를 다시 열어 이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고 박지원 원내대표의 빈 자리는 박기춘 원내수석부대표가 대행하기로 했다. 주류와 비주류 사이에 비대위원장 인선을 놓고 내홍이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12월 24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비주류의 문재인 전 후보의 비대위원장 지명불가론에 문 전 후보가 이를 수용하면서 비대위원장은 연내에 선출할 원내대표가 겸임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12월 28일에 원내대표를 선출하기로 하고 당규를 개정해서 새 원내대표의 임기를 1년으로 늘려야한다는 주장과는 달리 새 원내대표는 박지원 전 원내대표의 잔여임기만 맡기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예상대로 선거패배의 책임을 놓고 주류와 비주류 사이에 격론이 오갔다. 비주류 측에서는 아예 문재인 전 후보의 의원직 사퇴와 친노계파 소멸론까지 제기했다. 이런 모습에 인터넷 상에서는 친노 진영이 책임을 지고 2선 후퇴와 정계 은퇴를 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왔는가 하면 비노 진영도 잘한것 없는데 당권 욕심만 낸다는 비난도 나왔다.
한때 중진의원의 원내대표 추대론이 제기되었으나 결국 박기춘 현 원내대표 대행과 신계륜, 김동철 의원이 원내대표 출마를 선언해 3파전이 되었다.[41] 어느 쪽이 유리할 지는 가늠하기 쉽지 않은 상황으로 28일 의원들의 투표를 통해 새 원내대표가 선출될 예정이었다. 박기춘 원내대표 대행은 자신이 원내대표가 될 경우에는 비대위원장을 겸임하지 않고 따로 비대위를 구성하는 것을 제안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12월 28일 원내대표 경선 결과 1차 투표에서 박기춘 의원과 신계륜 의원이 47표씩을 얻고 김동철 의원이 29표를 얻어 박기춘 의원과 신계륜 의원의 결선투표가 치뤄져 박기춘 의원이 63표, 신계륜 의원이 58표로 박기춘 의원이 원내대표에 당선되었다. 박 원내대표는 자신이 공언한대로 비대위원장을 겸임하지 않고 분리해 구성할것을 당 중앙위원회에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 중앙위원회는 박 원내대표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2013년 연초에 비대위원장을 선출하겠다고 결정했다. 일단은 비대위원장이 선출될때까지 박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겸임한다고 했다.
2013년이 밝았지만 아직까지도 비대위원장이 나오지 못했고, 비대위원장이 관리형이 될 것이냐 쇄신형이 될 것이냐, 당내인사냐 외부인사냐를 놓고 계파별로 계산이 엇갈려서 합의가 나오지 않았다. 결국 당의 원로인사들이 나서서 당내 인사로 조기 전당대회까지 당을 관리하는 관리형 비대위원장으로 중론을 모았다.
결국 1월 9일 5선에 계파색이 상대적으로 엷은 문희상 의원(범친노계)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관리형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만장일치로 합의추대했기 때문에 당분간 계파간의 갈등은 수면아래로 가라앉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그러나 문희상 위원장은 선출되자 문재인 전 후보를 비대위에 중용하고 대선평가를 맡기겠다는 발언을 했다가 당내의 반발로 하룻만에 철회하는 진통을 겪었다.
1월 16일, 7명의 당내 인사들로 구성된 비대위원들을 발표했다. 설훈, 김동철, 문병호, 배재정, 박홍근 등 현역의원 5명과 이용득 전 최고위원, 오중기 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의 원외인사 2명으로 구성된 인선. 외부인사 2인을 영입하려 했으나 당사자들의 고사로 영입에 난항을 겪고 있어 일단 당내인사들로 구성된 비대위 인선을 발표했다. 그러나 비대위원 대부분이 비주류 의원들이란 점, 그리고 대선 패배에 대한 평가를 놓고 구주류와 비주류 사이에 갈등이 다시 폭발할 것이라는 지적도 많았다.
소위 회초리 민생투어란 이름으로 전국을 순회하기 시작했지만 듣는 이야기는 '''생쇼 그만하라'''라는 말뿐. 광주에서 처음 쓴소리를 들었을 때는 원로급 당원 얼마만 참석했을 뿐 40대 이하로는 보이지도 않았다는 후문이다. 당내에서도 생쇼 논란이 가열되기도 했고, 구체적인 혁신의 비전도 제시하지 않고 당장 면피용 퍼포먼스만 벌이려는게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런 비난 가운데 민생투어를 마치고 1월 18일, 대선평가위원회와 정치혁신위원회를 조직했다. 외부인사들이 고사를 거듭하던 거운데 대선평가위원회의 위원장에는 안철수 전 후보를 지지했던 한상진 교수, 정치혁신위원회의 위원장은 정해구 교수가 위촉되었다.
많은 비판과 논란의 와중에도 민주당은 일단 발목잡기 보다는 대안을 제시하는 수권정당으로의 변신을 모색 중이고 연평도에서 안보 워크숍 개최를 말할 정도까지 되었다. 일단 문희상 비대위원장 체제에서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를 사실상 낙마시키는 등 혼란상을 수습해가는 모양새로 보였는데...
1월 28일, 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에서 '''안철수 전 후보가 민주당에 들어오면 당내 혼란이 가중된다'''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돌린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간신히 봉합 중인 당내 갈등이 안철수 논란으로 다시금 폭발하지 않느냐는 우려가 나왔다. 그러나 여론조사는 민주당의 안철수 책임론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60%대에 이르면서 민주당이 아직도 정신 못차렸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런 가운데 민주통합당은 끈질긴 종북 꼬리표를 떼기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해야만 했다. 연평도에서 비대위 회의를 열고 북한을 성토했으며 박근혜 당선인이 북한 핵실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3자 회동을 제안하자 이를 수용해 2월 7일 여야간의 첫 만남이 성사되었다. 이 회동은 박근혜 당선인과 민주당 모두에게 득이 되었다는 평가다. 박 당선인은 야당과의 회동을 통해 그간의 불통 이미지를 벗어날 계기를 마련했고 민주당은 종북 논란에서 벗어나서 약점으로 지적되어 오던 안보 문제에 대한 우려를 불식할 수 있게 되었다는 평가다.
한편으로 3월 전대론과 5월 전대론이 맞섰다. 결국 비대위 산하 전당대회준비위는 표결을 통해 3월 말에서 4월 초 사이에 전당대회를 치루기로 했다. 그러나 구 주류와 비주류 사이에 모바일 투표 존폐를 놓고 논란이 지속되었다.
선거 패배 이후 내분이 격화되면서 당내 수습이 제대로 안 되는 모습이 바다 건너같은 이름을 쓰는 정당과 비슷하다.
대선 이후 몇 달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구제불능인''' 정당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대선 패배 결과에 대한 보고서가 발표되자 당내에서 내분이 격화되었으며 심지어 당내에서는 당명과 당색까지 바꾸자는 이야기까지 나왔을 정도. 새누리당이 파랑색에서 빨강색으로 바꿨듯이 노랑색에서 파랑색으로 바꾸자는 말이 나왔지만 일각에서는 실질적으로 달라지는 것도 없으면서 파랑색으로 바꾸면 뭐가 되냐고 비아냥거렸는데... 결국 훗날실현되기는 했다.
2013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전국 12개의 선거구에서 단 한명의 당선자도 배출하지 못함으로써 민주당의 진통이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였다.[42]
5월 4일 당대표 경선이 열릴 예정이지만 민주당의 혼미는 계속되었고, 비주류의 좌장인 김한길 의원과 범주류의 지원 및 강기정 의원과의 단일화를 성사시킨 이용섭 의원의 2파전으로 좁혀졌으나 각각 정세균계, 친노인 범주류쪽 사람들인 만큼 강기정-이용섭 단일화 자체가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었다는 평가이고 당대표가 유력해 보이는 김한길 의원도 딱히 민주당을 살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서 누가 당대표가 되더라도 민주당의 앞날이 밝다고는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면서, 결국 민주당의 혼미가 계속된다면 안철수 의원이 10월 재보궐 이전에라도 신당을 띄울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만약 10월 재보궐 선거에서 안철수 신당이 약진할 경우 민주당은 안철수 신당의 블랙홀에 빨려들어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5월 4일 전당대회에서 당명을 민주통합당에서 다시 '''민주당'''으로 변경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이제 모든 세력이 통합되었으니 통합을 뺐다는 표명을 했지만, 전당대회 전날인 5월 3일 친노의 핵심으로 꼽히던 시민사회계열의 문성근 고문이 탈당을 선언해서 이 표명도 다소 무색해졌다. 또 당명 교체 1년 반만에 당명을 바꾼 것이라 내외적으로 반발의 목소리도 있었다. 이날 전당대회에서는 강헌과 강령도 개정했는데 촛불시위 정신 계승과 반값등록금 등의 내용을 삭제하거나 수정했으며, 경제민주화와 더불어 기업의 건전한 활동을 보장한다는 내용과 북핵으로 인한 안보 위협을 추가했다. 좌클릭에서 벗어나 우클릭으로 중도층 공략을 시작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리고 당 대표 선거에서는 비주류의 대표주자였던 김한길 의원이 범 친노계 이용섭 의원을 누르고 새로운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이후의 역사에 대해서는 민주당(2013년) 문서 참고.

5. 역대 지도부



5.1. 대표




5.2. 원내대표




6. 역대 선거결과



6.1. 대통령 선거


'''연도'''
'''선거명'''
'''후보자'''
'''득표수 (득표율)'''
'''결과'''
2012년
18대
문재인
14,692,632 (48.0%)
2위

6.2. 국회의원 선거


'''연도'''
'''선거명'''
'''지역구 (비율)'''
'''비례대표 (득표율)'''
'''총 의석 (비율)'''
'''결과'''
2012년
19대
106 / 246 (43.1%)
21 / 54 (38.8%)
127 / 300 (42.3%)
원내 2당

6.3. 재보궐선거


'''연도'''
'''국회의원'''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2012년 4월

0 / 1
2 / 5
12 / 37
9 / 19
2012년 12월

0 / 1
1 / 3
0 / 2
6 / 19
2013년 4월
0 / 3

0 / 2
0 / 4
0 / 3

7. 둘러보기





민주당

'''민주통합당'''

민주당
시민통합당
창조한국당
(개별 합류)
정통민주당

[1] 2020년 현재의 더불어민주당도 이 고유번호를 쓰고 있다.[2] 선거관리위원회 공고일은 2011년 12월 23일.[3] 현재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이다.[4] 2012년 2월 20일까진 민주당(2008년)과 동일한 녹색을 사용했었다.[5] 공식 색은 노란색이였지만, 18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포스터에 연두색이 주색으로 사용되었고, 또한 일부 언론사에서 민주통합당을 연두색이나 녹색으로 표기 했었다. * * [6] 열린우리당 시절보다 훨씬 더 리버럴해졌다.[7] 5월 4일 전당대회에서 민주당(2013년)으로 당명변경.[8] 야권단일정당 운동을 추진한 “국민의 명령” 대표다[9] 참여연대 출신의 빅텐트론 시민운동가[10] 복지국가 운동을 계속해온 이상이 교수가 있는 곳. 이후 복지국가당을 차렸고 이후 사회민주당과 합당했으나 당원수 부족으로 해산되었다.[11] 진보신당민주노동당과 합당 부결된 후 합류했다.[12] 통진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강령에는 '''자본주의 폐해 극복'''이 들어가 있는데 반해 통진당은 '''복지국가'''를 이룬다는 수준에 그친다.[13] 이런 변화는 자유주의 성향의 구 국민참여당도 함께 통합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민노당은 통합과정에서 민주노총과 제대로 논의조차 없이 결정했다. (민주노총은 국민참여당은 "진보정당"이 아님을 여러차례 내부에서 확인한 바 있다.) 이는 민주노총의 노총차원의 통합진보당 지지를 무산시켰다. 반면에 민주통합당은 한국노총을 창당과정에 직접 참여시켰다.[14] 참고로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계승해서 만들어진건 한국노총이 아니라 전노협민주노총이다.[15] 나중에 김형석 작곡가는 후신 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당가도 작곡하였다. [16] 사실 이 헬게이트도 언론에 의해 조금은 과장된 편이 있다는게 민주당측의 주장이다. 결과적으로 합당반대, 혹은 온건합당파였던 박지원 전 원내 대표 역시 차질없게 합류했으며, 애초에 전당대회 자체가 무난하게 진행된 편인데 헬게이트로 지나치게 과장되었다는 평.[17] 이후 임종석은 서울특별시 정무 부시장을 박원순 밑에서 지내다가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에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영전했다.[18] 물론 이것도 생각하기 나름이라서, 비주류 계파 의원들 가운데는 주류의 훼방이라며 경선 자체를 불쾌하게 여기는 경우도 많았다(...) 게다가 현역 의원이라고 함은 대부분 지난 선거에서 통합민주당이 수도권 81석 중 26석을 차지하는 최악의 참패를 거두었던 와중에 당선되었다는 의미라 공헌도도 높으며 경쟁력이 남다를 수 밖에 없기도 하다. [19] 이 지역은 사실상 현직 의원인 박주선의 당선이 확정 된 상태에서 보좌 그룹 내부에서 경쟁적인 경선인단 모집이 일었고, 결국 해당 의원은 탈당 후 무소속 출마했으나 지역 민심은 그야말로 싸늘했다. 그렇게 18대 총선 최대 득표율 당선자였던 박주선 의원은, 무소속으로 출마해 19대 총선 최저 득표율 당선자가 되었다.[20] 본래 1988~2008년에는 이해찬의 지역구였지만, 본인이 18대 총선에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구 민주계 출신인 김희철 전 구청장이 공천을 받아서 현직의원인 상황이었다.[21] 하지만 통합진보당에서는 이정희 대표의 대타 후보인 이상규를 내세우며 다시 후보를 등록했고, 미심쩍은 경선 이후 다시 단일화가 이뤄졌다. 물론 김희철 의원은 이에 불복해서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나왔지만 낙선.이는 조작으로 사퇴했지만 어떻게든 의석을 얻겠다는 의지였고, 결국 의석을 얻고 말았다(...) 결국 이 사건은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사건의 예고편이었다![22]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24187.html[23] 기존의 89석에 비하면 크게 증가한 수치지만 공천잡음이 불거지기전까지만 해도 (여론조사상으로는)대구, 경북을 제외한 모든 지역(참고로 광역단위)에서 새누리당을 앞서고 과반수를 확보할 것이라는 예측에 비하면...[24] 의석은 3석밖에 확보 못했으나, 비례대표 득표율이나 지역구 후보 득표율은 18대 총선에 비해 5~10% 이상 상승했다. 지역구 의석을 확보하는데 실패했을 뿐, 민주당의 영남 공략이 실패라고 볼 수 만은 없는 것. 그 씨앗들은 4년 뒤의 20대 총선에야 결실을 맺었다.[25] 특히 2번 연속으로 공천에서 탈락한 김무성이 공천탈락한 친이계를 규합하고 자유선진당과의 연합전선을 펼치면서 보수신당을 창당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다가 스스로 포기한 것도 박근혜 중심으로 뭉치는데 한 몫을 했다.[26] 당장 사무총장인 임종석이 486세대로 분류되는 인사이다.[27] 참여정부 시절에 경제부총리를 맡았을 당시에는 한미 FTA를 지지했으나 이명박정부 시절에는 반대를 하는 내로남불을 보이더니 교육부총리를 맡았을 때는 '국립대 등록금을 사립대 수준으로' 같은 망언을 했다.[28] 문민정부 시절에도 경제부총리를 지낸 이력이 있다.[29] 다만 새누리당이 홍재형을 잡기 위해서 충북지사를 지냈던 정우택 의원이라는 지역 거물을 공천한 것도 한 몫 했다.[30] 다만 김지윤 후보가 통진당 비례대표 경선에서 탈락하긴 했다. [31] 이는 8년 후인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미래통합당이 노인 비하 논란을 일으킨 관악구 갑 김대호 후보를 제명시킨 것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분명 발언의 수위가 김대호 후보가 김용민 후보보다 약했을지라도 19대 총선에서의 학습효과가 발동하여 김대호 후보를 제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뒤이어 차명진 세월호 유가족 망언 파동이 터지자 차명진을 제명하려 했지만 일부 당원들의 반발로 즉시 제명하지 못했고 결국 미래통합당은 19대 총선의 민주통합당보다 더 비참하게 깨졌다.[32] 서울 서대문구 을, 서울 은평구 을, 경기 의정부 을, 경기 광주[33] 물론 김한길도 비노계이긴 하다만 박지원보다는 비교적 유연하다는 평을 받았었다.[34] 왜냐면 자기들이 미는 원내대표 후보가 박지원에 밀려 낙선할 게 예상되므로.[35] 당내경선에서의 연합조차 야합이라면 97년 김대중-김종필의 DJP연합2002년 노무현-정몽준의 단일화도 야합이다. 참고로 저 당시에도 반대세력은 야합이라고 공격했다.[36] 계파를 분석하면 유인태는 범 친노, 전병헌도 범 친노(정세균 계), 이낙연은 새천년민주당 신 주류 출신이다.[37] 참고로 출마 당시 다른 의원들과 달리 포부가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표를 향한 발언까지 했을 정도였는데 정작 본인은 할아버지 좀 닮으란 소리를 많이 듣는다고 한다.[38] 안철수 후보가 친노의 총선패배 책임론을 제기한것이 결정타였다.[39] 5년 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어 대통령이 되었다. 보통 대통령 후보들은 낙선한 뒤 곧바로 재선 의지를 밝히는 경우는 별로 없다.[40]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서 그 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다만 비주류계가 모두 이탈한 것은 아니고 일부는 잔류했다.[41] 계파별로 보면 신계륜 의원은 범친노파, 김동철 의원은 강력한 비노파, 박기춘 원내대표 대행은 한나라당 출신으로 중립성향이라고 볼 수 있다.[42] 물론 부산 중-영도와 충남 부여-청양은 김무성 전 18대 대선 선대위원장과 이완구 전 지사라는 거물들이 나왔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