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빈 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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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선조의 간택 후궁. 민사준의 딸로 성종의 딸 경숙옹주와 여천위 민자방의 증손녀가 된다.
같은 여흥 민씨라 해도 원경왕후, 인현왕후, 명성황후와는 사실상 남과 다를 게 없다. 왜냐하면 이들과는 여흥 민씨 4세손(시조 민칭도의 증손자 민영모까지 공통 조상)까지 같고 그 아들 대에서 갈라졌기 때문.
2. 생애
1580년(선조 13) 후궁 간택에서 홍여겸의 딸(훗날의 정빈 홍씨), 정순희의 딸과 함께 종2품 숙의로 책봉된다.
이때 대간들이 민씨는 성종의 외손이니 간택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선조가 따르지 않았다.[2]
민씨는 수진방에 있는 궁으로 옮겨졌다. 이후 정2품 소의, 종1품 귀인을 거쳐 정1품 빈(嬪)으로 책봉된다.
민씨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왕에게 친정 일가의 벼슬을 부탁하지 않았고, 의인왕후에게도 항상 예의를 갖추고 조용히 지냈다고 한다. 다만,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갖은 고생을 다하게 되는데, 이때 민씨는 선조를 따라 행궁으로 가는 갈에 가마 멀미에 시달리기까지 한다.[3]
선조가 승하하고 사가로 나와서 살게 되는데, 이괄의 난이 일어나는 바람에 아들 인성군이 역모에 휘말린다. 결국 유배형에 처해지지만, 인조는 민씨가 병이 들어 위독하다는 이유로 인성군을 유배에서 풀어주었다. 하지만 민씨는 인성군이 한성에 도착하기 전에 죽었고, 인성군은 1628년(인조 6) 유효립 등의 대북 세력이 꾸민 역모에 휘말리는 바람에 자진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