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순

 

정은순의 수상 및 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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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 시절. 유영주정선민의 더블팀을 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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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름
정은순(鄭銀順)
생년월일
1971년 7월 18일 (52세)
국적
대한민국
출생지
인천광역시
출신학교
인천송현초 - 인성여중 - 인성여고
포지션
센터
신체 사이즈
185cm, 75kg
프로입단
1990년 삼성생명 농구단 입단
소속팀
삼성생명 농구단 - 수원 삼성생명 비추미 (1990~2003)
등번호
15번
종교
개신교[1]
1. 소개
2. 선수 경력
3. 은퇴 이후


1. 소개


대한민국의 전 여자농구 선수. 포지션은 센터. 박신자-박찬숙 이후로 이어지는 한국 여자농구 레전드 센터 계보를 잇는 선수이다. 그리고 한국 여자농구 최후의 정통파 센터.[2] 이제는 박지수가 그 계보를 이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2. 선수 경력


인성여중과 인성여고 시절부터 이름을 날렸다. 고등학교 시절에 이미 국가대표로 발탁되면서 이름을 떨쳤던 선수다. 인성여고 동기인 유영주와 함께, 고교 무대를 제패하고 성인 무대로 진출했다. 유영주와는 진로가 엇갈렸는데, 정은순은 삼성생명으로, 유영주는 SKC를 선택하면서 둘의 진로는 갈라졌다. 훗날 외환위기로 SKC가 해체되면서 유영주가 삼성생명에 입단했을 때, 잠시 같은 팀에서 뛴 적은 있다.
1990-91 시즌 유영주와 함께 공동으로 농구대잔치 신인상을 차지하면서 국내 정상급 선수로 명성을 떨쳤다. 농구대잔치 역사상 여자부 통산 득점 2위, 리바운드 1위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WKBL 출범 후에도 역사상 첫 트리플 더블을 기록하고, 초대 WKBL 정규시즌 MVP를 차지하는 등, 맹활약을 펼친 바 있다. 다만, WKBL 출범 당시에는 이미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서 노쇠한 기미를 보이기도.
국가대표로서 한국 여자 농구의 중흥기를 이끈 장본인이다. 1997 ABC 대회에서 한국의 우승을 이끌면서 대회 MVP에 올랐고, 두 차례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안겨주었다. 특히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주장으로 후배들을 독려하면서 전주원, 정선민과 함께 팀을 4강에 올려놓은 것이 백미.
박신자, 박찬숙의 뒤를 잇는 여자농구 최후의 정통파 센터라는 평을 듣는다. 피벗, 리바운드, 블록에 능했고, 센터로서의 기본기와 농구 센스도 갖추고 있었다. 포스트업 플레이만이 아니라 중거리슛과 페이스업 돌파 능력까지 갖추고 있었으며, 자신보다 20센티 이상 큰 선수들과도 골밑에서 맞서는 투쟁심까지도 겸비한 선수였다.[3]
농구 유망주가 갈수록 줄어드는 여자농구의 현실에서 정은순 같은 센스와 기본기, 골밑 장악력을 갖춘 센터의 출현은 쉽게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그렇기 때문에 정은순에 대한 가치와 그리움이 여전한 것이고. 이는 WKBL 출범 10주년 올스타전에서 당당 1위를 차지한 것으로 증명되었다.
곱상한 얼굴로 인기를 얻었다. 1998년 3월 결혼해 슬하에 1녀가 있다. 이후 출산을 하게 되며 소속팀인 삼성생명에서 강제 은퇴를 종용받았고, 결국 소속팀의 은퇴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2003년 6월 은퇴를 선언하면서 정든 코트를 떠나게 된다. 이 당시 소속팀 삼성생명이 정은순에게 강제적으로 은퇴를 종용하는 등 상당히 논란이 있었다.[4] 대신 WKBL에서 나서서 공식 은퇴식을 가져주면서 2003년 7월 7일 공식 은퇴식이 열렸고, 그렇게 여자농구계의 전설적인 선수 한 명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다만 선수로 더 뛰고 싶었는데도 소속팀에 의해 강제로 은퇴하게 된 게 아쉬웠는지 은퇴식 당시 기자회견 도중 "선수로 코트에 다시 복귀하고 싶다" 라는 발언을 하여 파장을 일으켰던 바 있다.
실제로 은퇴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중국리그 외국인 선수로 스카우트 될 예정이다, 삼성생명이 아닌 다른 팀과 계약을 마쳤고 선수로 복귀할 것이라는 등 현역 복귀설이 돌았으나,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고 무산. 아이러니하게도 삼성생명은 정은순을 강제 은퇴시킨 후, 4시즌 연속 준우승 에 그치며 정은순의 저주라는 말이 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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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시드니 올림픽 개막식에서 분단 이후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남북선수단 공동입장으로 화제가 되었을 당시 한반도기의 남측 기수를 맏았다. 북측 기수는 북한의 유도 감독인 박정철 감독. 세븐 네트워크 샌디 리처드 기자는 그것을 "전 세계에 대한 특별한 신호"라고 불렀다.

3. 은퇴 이후


2013년 현재 KBS N 스포츠 해설위원[5]과 농구교실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KBS 김기웅 캐스터가 정은순 해설위원의 성대모사(?)를 기막히게 잘한다. 네이버 스포츠 라디오 여농시대를 듣다보면 가끔 나오곤 하는데 나올 때마다 빵빵 터진다. 글로 쓰기는 어렵지만 예를 들자면 "내에가 지금 뛰어야 하는대에에-엑 (내가 지금 뛰어야 하는데)" 그리고 김기웅 캐스터는 언제나 등짝스매쉬를 당한다. 여농시대 4회
[1] 수원 명선교회에 출석했고, 봉사활동 목적으로 해당 교회 신도들을 대상으로 농구 교실을 개최한 적도 있다. 2019년 2월 CBS <새롭게 하소서> 에 집사 신분으로 출연해 간증을 하기도 했다. 당장 위에 해설가 시절 사진을 보면 십자가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다.[2] 정은순 이후의 계보는 신정자로 이어질 수 있겠으나 국제대회 실적은 윗대 선배들에 비해 아쉬운 게 사실이다. 그리고 정은순처럼 토털 패키지이면서도 기본기가 아주 충실한 센터를 보기 힘든 게 현재의 한국 여자농구이다.[3] 투쟁심에 대한 한 일화로, 1994-95 시즌 SKC와의 농구대잔치 결승전에서 감기가 걸린 상태에서 열심히 싸웠으며, 절친이기도 하지만 상대편 SKC의 에이스이기도 한 유영주가 5개 이상의 3점 슛을 성공한 거에 분한 나머지 종료 5초를 남기고 3점 슛을 쏘는 유영주에게 파울을 걸어 일부러 5반칙 퇴장으로 나갔다. [4] 은퇴 당시 정은순의 나이는 32세였고 고교졸업 이후 대학 진학 대신 곧바로 실업 무대에 뛰어든 덕에 14년차에 속하는 노장 축에 들기는 했지만 당시에도 기량과 나이에 비해 은퇴가 빨랐다는 의견이 컸고, 실제로 정은순 본인도 현역으로 더 뛰는 걸 원했다고 한다. 당장 정은순보다 1살 어린 전주원의 경우 도중에 출산으로 인해 쉬었음에도 40세까지 현역으로 뛰는 등 정은순보다 8년을 더 뛰고 은퇴했다.[5] WKBL 중계권을 2013-2014시즌부터 KBS N 스포츠가 가지고 있고 실제 중계방송 제작도 KBS N 스포츠에서 한다. 당연히 캐스터 등 중계진도 KBS N 스포츠 소속. 다만 KBS N 스포츠가 V-리그 주관방송사이기도 해서 경기시간이 겹치는 평일 저녁에는 시청률이 높은 V-리그 경기를 우선 편성하기 때문에 2014-2015시즌 기준 KBS Prime (현 KBS N Life), 2013-2014시즌에는 KBS W에서 대신 중계편성을 하였다. 평일 녹화중계와 V-리그와 경기시간이 다른 주말-월요일 생중계는 KBS N 스포츠 채널에 편성되었다. 2018-2019시즌 부터 SPOTV2에서 생중계 되고 배구경기가 종료된 후 4쿼터에 KBS N SPORTS에서 중계를 한다. KBS N SPORTS에서 바로 중계할때 또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