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윈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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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Alexander "Sandy" Winnefeld, Jr.
미국의 군인.
1956년 4월 24일 캘리포니아 코로나도에서 태어났다. 1978년에 조지아 공과대학교를 졸업[1] 했고 미 해군 ROTC 과정으로 소위로 임관했다.
해군 항공대 전투조종사로 근무했다. 대위 시절 해군전투기전술학교(Navy Fighter Weapons School)[2] 에서 교관으로 근무하던 중에 영화 탑건 제작에 비행 교육, 스턴트 비행 등으로 협조하고 작중에서 MiG-28 조종사로 얼굴 없이 출연하였다.
엔터프라이즈 함장을 지냈는데, 이 시기에 함정에서 9.11 테러라는 전무후무한 사건을 TV로 목격한 후 독단적인 판단으로 6개월간 인도양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희망봉을 거쳐 본토로 가려던 엔터프라이즈에 180도 선회 기동[3] 을 지시, 24시간도 안되어 아프간 공습 준비를 완료하였고 이 공적이 인정받아 제독으로 진급, 이라크 전쟁에서는 USS 시어도어 루스벨트 항모전단장으로 공습을 지휘했다. 그후 제6함대와 나토타격지원사령부에서 근무했다. 그 후 북부사령관 겸 NORAD사령관을 지냈고 합동참모차장을 끝으로 군생활을 마감하였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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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8일에 해외 주둔 미국기지를 방문하던 중에 마크 리퍼트 미국 대사를 병문안했다. 군복이 아닌 사복으로 왔다.
아들을 아편중독으로 잃었다. 아편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는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James Alexander "Sandy" Winnefeld, Jr.
1. 개요
미국의 군인.
1956년 4월 24일 캘리포니아 코로나도에서 태어났다. 1978년에 조지아 공과대학교를 졸업[1] 했고 미 해군 ROTC 과정으로 소위로 임관했다.
해군 항공대 전투조종사로 근무했다. 대위 시절 해군전투기전술학교(Navy Fighter Weapons School)[2] 에서 교관으로 근무하던 중에 영화 탑건 제작에 비행 교육, 스턴트 비행 등으로 협조하고 작중에서 MiG-28 조종사로 얼굴 없이 출연하였다.
엔터프라이즈 함장을 지냈는데, 이 시기에 함정에서 9.11 테러라는 전무후무한 사건을 TV로 목격한 후 독단적인 판단으로 6개월간 인도양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희망봉을 거쳐 본토로 가려던 엔터프라이즈에 180도 선회 기동[3] 을 지시, 24시간도 안되어 아프간 공습 준비를 완료하였고 이 공적이 인정받아 제독으로 진급, 이라크 전쟁에서는 USS 시어도어 루스벨트 항모전단장으로 공습을 지휘했다. 그후 제6함대와 나토타격지원사령부에서 근무했다. 그 후 북부사령관 겸 NORAD사령관을 지냈고 합동참모차장을 끝으로 군생활을 마감하였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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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8일에 해외 주둔 미국기지를 방문하던 중에 마크 리퍼트 미국 대사를 병문안했다. 군복이 아닌 사복으로 왔다.
아들을 아편중독으로 잃었다. 아편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는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1] 조지아텍은 특히 항공우주공학 분야에서 명문으로 꼽힌다. 존 영, 리처드 트룰리 등 우주비행사도 여럿 배출했고, 미군에서도 2차대전기 전략폭격을 이끌었던 헤이워드 핸셀 육군항공 소장이나 현역 중 필립 브리들러브 공군대장 등이 있다. 미군 쪽에서 활동한 동문들을 보면 명예 훈장 수훈자나 고위 장성들 대부분은 미 육군 항공대-공군 쪽에서 두각을 드러낸 이들이 많다. 이외에 이라크와 아프간 야전에서 맹활약했던 한국계 미국인 베테랑 군의관 피터 리 해군 대령이 학부를 조지아텍에서 마쳤다. [2] 이른바 탑건이라 한다.[3] 즉, 집에 안 간다는 말. [4] 의전서열상 미군 제복군인들 중 2위인데... 합참의장으로 올라가지 못하면 바로 퇴역해야 한다. 3군 참모차장으로 퇴역하는 경우는 사고치지 않고서는 별로 없지만 합참차장직은 좌천되기도 올라가기도 애매한지라 이 보직이 끝이 되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