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대 국회

 



'''대한민국
제6대 국회
第6代 國會
'''
'''1963년 12월 17일 ~ 1967년 6월 30일'''
<rowcolor=#FFF> '''이전'''
'''이후'''
'''제5대 국회'''
'''제7대 국회'''
'''의원정수'''
175석[1]
'''의장'''
'''전반기''': 이효상(1963.12.17.~1965.12.16.)
'''후반기''': 이효상(1965.12.17.~1967.6.30.)
'''부의장'''
'''전반기''': 장경순, 나용균
'''후반기''': 장경순, 이상철
'''제1당'''
'''민주공화당'''

'''원내정당[2]'''
'''[ 의석수 보기 ]'''
민주공화당, 신민당

[clearfix]

1. 개요


1963년 11월 26일 실시된 총선거를 통해 구성된 대한민국의 여섯 번째 국회. 종전의 양원제 국회에서 다시 단원제 국회로 환원하였고 이는 현재까지도 이어진다. 대한민국 의정 사상 처음으로 전국구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국회이기도 하다.[3]

2. 국회의원




3. 원구성




3.1. 의장단





3.2. 상임위원회 / 상설특별위원회


제5대 국회에 있었던 부흥위원회가 재정경제위원회에 흡수되고 예산결산위원회가 예산심의 기간에만 구성되는 특별위원회로 변경되었다. 그리고 건설위원회가 신설되면서 총 12개의 상임위원회로 재편되었다.
  • 국회운영위원회
  • 법제사법위원회
  • 외무위원회
  • 내무위원회
  • 재정경제위원회(부흥위원회와 통합)
  • 국방위원회
  • 문교공보위원회(기존의 문교위원회)
  • 농림위원회
  • 상공위원회
  • 보건사회위원회
  • 교통체신위원회
  • 건설위원회(신설)

3.3. 비상설특별위원회


특별위원회는 모두 9번 구성되었다.
  • 일본자금사전수수발언진상조사특별위원회(위원장: 조시형(민주공화당, 부산 중))
  • 국공유지등부정불하진상조사특별위원회(위원장: 김장섭(민주공화당, 포항·영일·울릉)) 등
특정사건을 조사하기 위한 특별위원회가 6번,

  • 한일간조약과제협정비준동의안심사특별위원회(위원장: 민관식(민주공화당, 동대문 갑)) 등
의안의 심사를 위한 특별위원회가 2번,
특정사안에 대한 대책강구 및 지원을 위한 특별위원회가 1번 구성되었다.

3.4. 교섭단체


제6대 국회부터는 의원 10명만으로도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었고, 소속 의원들이 같은 정당 소속이 아니라도 가능해졌다.
  • 제6대 국회 개원 당시 기준
    • 민주공화당 110명(대표의원: 김용태)
    • 민정당 41명(대표의원: 서범석)
    • 민주당(13명)과 자유민주당(9명), 국민의당(2명)이 합쳐 삼민회(24명)(대표간사: 유성권) 결성

4. 주요 활동


아래에 열거한 법률은 †로 표시한 것 외에는 이 문서 최종수정일 현재에도 시행 중인 법률(후에 개정된 것 포함, 폐지제정된 것 제외)이다.
  • 1964년
    • 8월 5일: †언론윤리위원회법[4] 제정.
  • 1965년
    • 2월 9일: 정치자금에 관한 법률[5] 제정.
    • 8월 14일: 한일협정 비준동의안 통과.
    • 12월 20일: 조세감면규제법[6] 제정.
  • 1967년
    • 1월 16일: 결핵예방법, †과학기술진흥법[7] 제정.
    • 2월 28일: 풍수해대책법[8] 제정.

5. 관련 문서



[1] 지역구 131석, 비례대표 44석.[2] 임기 종료시 기준[3] 그러나 전국구 비례대표제를 시행하면서 제1당에 전국구 의석 총수의 50%를 배정하여 민주공화당과 같은 권위주의 정부의 여당이 국회를 장악하는데 기여하였다는 문제점이 있었고, 이러한 비민주적 의석 배분은 민주화 이후인 13대 국회까지 지속되었다.[4] 언론을 억압하기 위한 관제기관인 언론윤리위원회를 설치하는 법이었으나 언론계의 반대투쟁으로 위원회 설치가 무기한 보류되었고 이후 신군부가 언론기본법을 제정하면서 1980년 12월 31일부로 폐지되었다.[5]정치자금법.[6] 현 조세특례제한법.[7] 2001년 1월 16일 과학기술기본법을 제정하면서 타법폐지.[8] 현 자연재해대책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