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용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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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그의 아들 라종일은 김대중 정부 때 국가정보원 차장을 역임하였다.
2. 생애
1895년 전라도 고부군 북부면 운학동(현 전라북도 정읍시 영원면 운학리)에서 건릉참봉을 지낸 나도진(羅燾珍)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일본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부 정치학과에 유학하고 있던 중인 1918년, 미국 대통령 토머스 우드로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 원칙 발표와 제1차 세계대전 종결로 인한 식민지 국가의 독립분위기에 따라 도쿄에서 김도연 등 다른 유학생들과 3.1 운동 직전에 2.8 독립선언을 발표하였다. 같은 해 4월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속하여 독립운동을 하였다.
1945년 8.15 광복 이후 귀국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민주당 후보로 전라북도 정읍군 갑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제2대 국회의원 선거,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낙선하였다.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당 구파에 속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뒤이어서 대한민국 국회에서 대통령 간선제에 따라 치러진 제4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같은 해 9월부터 1961년 1월까지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정당 후보로 전라북도 정읍군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3년부터 1965년까지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였다.
1977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이 수여되었으며, 그의 사후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그의 호 백봉을 따서 대한민국 국회에서 '''백봉신사상'''이 수상되고 있다.
3. 기타
원래 성은 라인데, 두음법칙 때문에 사전에는 '''나''' 씨로 나오는 것이다. 이분의 아들들은 본인의 성을 라씨로 표기한다. 통일문화연구원 이사장인 라종억 씨가 대표적. 또한 위에 언급된 백봉신사상의 수여단체 정식 명칭 또한 '백봉라용균기념사업회'이다. 라미란의 경우에도 과거 데뷔 초 언론에서 '나미란''이라고 표기한 적이 많았다. 2007년 법이 개정되어 대법원이 호적예규 변경을 통해 두음법칙을 적용하는 성씨(姓)에 예외를 둠에 따라 '라'씨로 정정신청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신청한 사람들이 있지만 실제로 신청할 때 아버지 호적까지 라씨로 바꿔야 하는 규정이 있어 행정상 복잡한 부분도 있고 하기에 대부분의 라씨들이 안 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라미란의 경우에는 이를 신청하여 이후 언론에서 나미란이 아닌 라미란으로 표기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4.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