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래/선수 경력

 



1. 클럽 경력
1.1. 프로 출범 이전
1.2. 대우 로얄즈 (1983~1987)
2. 대표 팀 경력
3. 기록


1. 클럽 경력



1.1. 프로 출범 이전


연세대학교 출신이다. 1978년 당시 실업 축구단이었던 포항제철에서 자신의 성인 축구 경력을 시작하였다. 1980년 상무에 입대해 군복무를 마쳤다.
1982년 대우 축구단에서 데뷔하였고, 다음해 슈퍼리그가 출범하고 대우 축구단이 참여하여 자연스럽게 프로축구 선수가 되었다.

1.2. 대우 로얄즈 (1983~1987)


대우 로얄즈에서 미드필더로 뛰었고, 정확한 패스로 '컴퓨터 링커'라는 별명을 얻었다.[1]
1983년 그 해 준우승 등에 공헌하였다. 1987 시즌이 끝난 뒤 은퇴하였다.

2. 대표 팀 경력



2.1.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1977~1986)


사실 1980년대 이후 출생자들이 선수 조광래에 대해서는 어떠한 느낌의 편린조차도 잡을 수 없겠지만 선수 조광래는 10년간 국대 주전 자리를 맡아놓은 대선수였다. 1970년대 초중반 한국의 국대 시스템은 주전 팀 화랑과 비주전 팀 충무로 나뉘었는데 조광래는 연세대학교 시절 국대로 뽑힌 순간부터 은퇴할 때까지 화랑이었다. 선수 조광래의 킥과 패스는 현재까지도 정확성에 있어서 역대 최고로 회자되고 있고, 수비함에 있어서도 순간적으로 상대에게 접근하며 부담을 주는 수비에 능했다.

2.1.1. 김정남호 시절 (1984~1986)



2.1.1.1. 1986년 FIFA 멕시코 월드컵

1986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활약했는데 당시 대한민국의 조에 1978년 월드컵에서 우승한 아르헨티나와 1982년 월드컵에서 우승한 이탈리아가 같이 들어와버렸다.[2] 첫 경기 아르헨티나전에서는 허정무디에고 마라도나를 발로 걷어차가며 수비했음에도 불구하고 호르헤 발다노가 두 골을 넣으며 0:3으로 뒤지다가 후반 28분 박창선이 만회골을 넣어 1:3으로 패배했다.
2차전 불가리아전에서 전반을 0:1로 마쳤지만 후반 25분 '''조광래의 어시스트'''가 김종부의 동점골로 이어지며 16강 진출에 희망이 생겼다. 그러나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인 이탈리아전에서 조광래는 1:2로 지고있던 후반 37분에 자책골을 넣는 바람에 박빙의 승부에서 대한민국은 2:3의 점수로 패배하고 광탈했다. 조광래의 자책골만 아니였어도 불가리아와 동률(2무 1패)이지만 다득점(한국은 +4-6, 불가리아는 +2-4)에서 불가리아를 제치고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광래의 자책골이 결정타가 되어 한국은 1무 2패가 되었고 결국 조 꼴찌로 광탈했다.[3]

2.1.1.2.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월드컵의 쓴 경험을 뒤로 하고 같은 해 서울에서 열린 아시안 게임을 끝으로 조광래는 은퇴를 결정한다. 허나 조광래는 은퇴하는 순간까지도 준결승전과 결승전에서 연속으로 골을 넣어 금메달을 목에 걸며 엄청난 경기력을 과시했다. 특히 조광래는 결승 사우디전을 자신 최고의 경기로 꼽고 있는데, 경기장을 누비며 선제골을 작렬해 2:0으로 게임을 지배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것이냐면, 사우디 아라비아는 당시 명실공히 아시아 최고의 팀이었다. 84년 올림픽 본선 진출, 84년 아시안컵 우승, 88년 아시안컵 우승, 92년 아시안컵 준우승, 94년 월드컵 16강, 96년 아시안컵 우승이라는 전성기를 달리고 있었다. 당시 아시안 게임은 성인 대표팀 출장 무대였는데, 이런 아시아 최고의 팀을 상대로 조광래가 최고의 경기력을 선보이며 홈경기에서 우승한 것이다.
우승 후 조광래는 관중들에게는 박수를, 병역을 면제받은 후배들에게는 헹가레를 받는 최고의 순간에서 은퇴 선언을 했다. 감독으로는 몰라도 선수로는 한국축구사에 레전드급 대선수임은 틀림 없다.

3. 기록



3.1. 대우 로얄즈


  • K리그 우승 2회 : 1984, 1987
  • K리그 준우승 1회 : 1983
  • 프로축구선수권대회 준우승 1회 : 1986
  •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우승 1회 : 1986

3.2.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 AFC 아시안컵 준우승 : 1980

3.3. 주요 개인 수상


  • K리그 베스트 11 : 1983

3.4. 표로 보기


'''1983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FW
박윤기
FW
이길용
FW
이춘석
FW
김용세
MF
'''조광래'''
MF
박창선
DF
박성화
DF
김철수
DF
장외룡
DF
이강조
GK
조병득

[1] 이 링커라는 말은 '이어 주는 사람'식으로 해석됐고 지금 식으로 말하면 중앙 미드필더, 그 당시 식으로 말하면 '플레이메이커'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2] 참고로 톱시드 제도는 이미 1974년 서독 월드컵 때부터 도입 중이었다. 다만 피파 랭킹 같은 게 있을 때가 아니여서 전 대회 성적을 기반으로 했다. 1986년 월드컵 탑 시드는 개최국 멕시코와 전 대회에서 4강에 들었던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폴란드와 나머지 한 자리는 브라질이 차지했고 2번 시드를 보면 잉글랜드, 소련, 우루과이, 스페인,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등이었다. 폴란드가 왜 톱시드인지 의아할 수 있지만 당시 폴란드는 1974 월드컵부터 1982 월드컵까지 4강-8강-4강의 꾸준한 성적을 내고 있었다. 아르헨티나는 1978 월드컵에서 우승하긴 했지만 1982 월드컵의 2차 조별리그에서 브라질, 이탈리아를 만나는 헬대진에 걸려 탈락하는 바람에 1986 월드컵에서 불운하게 2번 시드로 밀려있었다.이를테면 순수 성적순으로만 시드를 배정해서 생긴 일로 2006년 월드컵으로 따지자면 2002년 월드컵에서 미국이 프랑스보다 높은 순위로 높은 시드를 받았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3] 사실 이탈리아의 알레산드로 알토벨리 당시 선수가 골문으로 쇄도하는 것을 막다가 그렇게 되었다. 마크를 하지 않았으면 어차피 그 선수가 넣었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손'''에 맞고 들어간 거라, 만약 노 골이 되었다 해도 페널티킥이 선언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