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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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김종부 스카우트 파동 이후, 대우 로얄즈와 현대 호랑이 축구단의 공동 임대 형식으로 포항제철 아톰스에 2년 임대되었다. 어부지리로 김종부를 얻은 포항은 대우에만 이적료 1억 1천만원을 지급하며 김종부 영입에 열의를 보였다. 우여곡절 끝에 프로에 입성한 김종부는 데뷔 시즌 K리그 도움왕을 차지하면서 역시 김종부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였다. 그러나 후술될 스카우트 파동으로 1년여간 운동을 쉬었던 부작용이 오래가지 않아 나타나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체력은 갈수록 떨어져 교체되는 횟수가 잦았고, 잦은 부상과 컨디션 난조에 시달렸던 것. 결국 포항제철은 김종부가 이름값을 못한다는 평가와 함께, 대우와 현대 측에 김종부의 처분을 논의했고 대우는 수비수 손형선과 이적료 2천만원을 내주는 트레이드를 하게 된다.
그토록 본인이 원하던 대우에 입단한 김종부는 친정 팀이였던 포항제철을 상대로 득점포를 가동하는 등 1990 시즌에만 5골을 기록하며 서서히 부활하는 것이 아니냐는 희망섞인 기대도 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1991년 조덕제가 김종부의 자리를 노리며 급성장했고, 김종부는 몇 경기 출장하지도 못했거니와 출장한 경기마다 부진한 움직임 끝에 교체당해 아쉬움만을 남겼다.
결국 1993년 김종부를 청소년 대표 시절부터 키웠던 박종환 감독이 이끄는 일화 천마에 입단하게 되었다. 계약금은 0원, 월봉 120만원의 조건이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일화에 입단한 김종부였지만, 일화에서의 생활도 순탄치는 않았다. 김종부 의 포지션에는 1993년부터 1995년까지 K리그 3연패라는 무지막지한 업적을 일구게 되는 전설적인 선수들이 즐비했고, 제 기량이 아닌 김종부가 이들과의 경쟁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았던 것. 결국 1994년을 끝으로 일화에서도 퇴단한 김종부는 1995년 대우에서의 생활을 마지막으로 쓸쓸하게 은퇴하고 만다.
2.2.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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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에 처음 국가대표로 데뷔하여 1990년까지 A매치 25경기에 출장해 8골을 기록하였다. '''그 8골 중 하나가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기록한 골이다.''' 그것도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에서 불가리아를 상대로 0:1로 뒤지고 있던 상황에서 측면에서 올라온 크로스를 수비수 두 명 사이에서 가슴으로 트래핑한 뒤 다이렉트 발리 슛으로 넣은 동점골로 '''대한민국이 월드컵 본선에서 첫 승점을 획득하게 만들어 준 골이었다.''' 여러가지로 당시 대한민국 축구에서 기대가 큰 유망주였으나, 후술될 여러가지 불운으로 빛을 보지 못한 선수.
3. 지도자 경력
3.1. 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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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1997년 대우 로얄즈의 U-18 팀인 거제고등학교 지휘봉을 잡으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2002년 동의대학교 감독을 맡아 FA컵에서 포항 스틸러스를 이기고 16강에 오르는 이변을 일으키기도 하였으며,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중동고등학교 지도자로 부임하였다.
2011년부터 2012년까지 K3리그 소속의 양주 시민축구단의 감독을 맡았고, 2013년에는 K3리그 화성 FC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특히 2014년 소속 팀을 처음으로 K3리그 우승을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3.2. 경남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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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 2016시즌
2015년 11월 17일 경남 FC의 감독으로 내정됐다.
2016 시즌에 팀의 -10점을 4월 안으로 청산하겠다는 목표를 밝혔으나 고전하며 5월 말쯤 되어서야 플러스 승점으로 만들었다. 이후 특유의 지도력으로 팀을 안정화하며 K리그 챌린지 중위권까지 올려 놓았다. 뒤숭숭한 분위기에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한 팀의 기반을 세우는 시즌이었으며 이듬해에 어느 정도 기대를 하게 만든 시즌이었다.
3.2.2. 2017시즌
2017시즌을 앞두고 2016시즌 경남 공격의 핵심 자원이였던 크리스찬, 이호석, 송수영이 팀을 떠났다. 그러나 팀에 새로 합류한 괴물 용병 말컹은 공격진에서 엄청난 파괴력을 보이며 큰 활약을 이어갔고 임대생 정원진과 최영준 정현철 등이 활약하며 경남은 아산 무궁화와의 리그 개막전을 시작으로 6월 4일 부천 FC 1995전까지 총 15경기 무패를 기록하였다. K리그 챌린지 한 시즌 최다 무패 기록을 갱신함과 더불어 K리그 챌린지 통산 최다 무패 기록을 갱신하며 단독 선두에 등극하였으며 이후 성남 FC전까지 총 18경기 연속 무패를 기록하였다. 이후에도 상승세를 유지하였으며 10월 리그 2위 부산 아이파크와의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하면서 정규 시즌 종료를 3경기 남기고 부산과 승점을 9점차로 벌리며 사실상 승격을 확정지었다. 연이은 서울 이랜드 FC와의 경기에서도 2:1 승리를 거두며 K리그 챌린지 우승을 확정, 3년 만에 K리그 클래식 복귀에 성공하였다.
이 시즌에 김종부 감독은 본인이 데려온 선수들의 특성을 잘 활용하였다. 장신인 말컹을 활용하여 전방에 롱볼을 띄우기도 하고, 정원진 브루노 최재수 등 좋은 기량의 측면 선수들에게 직선적인 움직임을 주문하였다. 특히 김종부는 말컹을 집중적으로 가르쳤다. 키가 커서 제공권이 좋고 몸싸움이 강하며 슈팅도 좋은 선수지만 동작이 커서 상대 수비에 잘 걸리던 말컹의 동작을 짧게 줄이고 정확도를 높이는 쪽으로 자세를 잡아줬다. 또한 상대 수비 중앙에서 개인 기량으로 밀고 들어가기 보다는 공간으로 침투할 것을 요구하였고 그 결과 높이와 슈팅, 침투와 돌파 모든 것을 갖춘 말컹은 K리그 챌린지 최고의 골잡이로 거듭났다. 또한 정현철과 최영준을 앞세운 투 볼란치 운영으로 팀의 빌드업과 경기 운영이 급성장했으며, 수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 경남은 2016시즌보다 실점이 줄어들었다. 또한 김종부의 경남 FC는 조직력이 매우 뛰어났고 어느 포지션 하나 구멍없이 모두 제몫을 해낸 점이 인상적이었다.
김종부는 이번 승격을 통해 많은 아마추어 팀 지도자들에게도 큰 희망을 주었다.
3.2.3. 2018시즌
지난 시즌 팀의 승격의 주축이 된 선수들을 거의 다 지켜냈으며 네게바와 쿠니모토 등 탄탄한 보강을 이루었다.
상주 상무와의 개막전에서 말컹의 해트트릭을 앞세워 K리그1 승격 후 첫 승을 거두었으나, 이날 경기에서 과격한 항의로 3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당하면서 3경기를 김종부 감독을 대신해 이영익 코치가 팀을 지휘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다음 경기인 제주 유나이티드전에서 본인도 징계받고 말컹도 상주전에서 퇴장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입 용병 2명인 네게바와 쿠니모토 타카히로의 골로 2:0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 스스로 정립한 독특한 축구관, 이를 실현하기 위해 육상선수 출신인 호성원 피지컬 코치를 선임하는 파격 등 여러모로 특이한 감독이다. 특히 호성원 코치는 경남이 2018년 초 단거리 순발력에서 상대팀보다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결정적인 상황마다 이득을 볼 수 있게 만든 공로자로 평가된다. #
시즌 중반까지 승격팀 돌풍을 일으키며 기존 클래식 팀들을 놀래켰다. 2017년 K리그 챌린지에서 워낙 압도적인 성적과 경기력으로 클래식 무대에서도 어느 정도 활약할 것이란 평가들이 있었지만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에 도달할 것이란 평가는 거의 없었다. 챌린지를 폭격한 말컹은 클래식마저 폭격 중이고 네게바와 쿠니모토란 든든한 응원군을 얻었다. 팀의 언성 히어로라 불리던 최영준은 리그 최고의 활동량과 투지를 지닌 선수로 입소문이 났고 박지수 역시 기량이 상당히 올라왔다. 선수들의 기량을 120% 발휘하게 만든 김종부 감독에 대한 평가도 상당히 높아졌다.
이후 8월까지도 여전히 떨어지지 않고 상위 스플릿, 리그 2위로 AFC 챔피언스 리그 직행존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거기에 8월 5일, 압도적 선두를 달리는 전북도 잡아내면서 우승도 은근슬쩍 욕심낼만한 위치로 변했다. 이대로만 간다면 2005년 장외룡 이후 K리그 2번째 준우승팀 출신의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할 가능성이 높아졌다.[1] 단 시간이 지나고 힘이 좀 달렸던지 전북을 못따라잡고 나가떨어지며 이제 울산과 2~3위 싸움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11월 3일 제주를 이기며 다시 2위자리를 차지했고 다음 날 울산이 전북에게 3:1 패배, 수원이 포항에게 1:3으로 지면서 최소 ACL PO권을 확보했다. 이후 '''11월 25일 수원을 이기고 울산이 제주에게 패하면서 리그 준우승과 아챔 본선 진출을 확정했다.'''
시즌 막판 다롄 이팡의 '''연봉 20억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으며,''' 경남과 재계약했다.
3.2.4. 2019시즌
지난 시즌의 대성공의 여파로 팀의 주축 공격수 말컹을 중국 허베이 종지로, 주축 미드필더 최영준을 전북 현대로, 주축 수비수 박지수를 광저우 헝다로 떠나보냈지만 박기동, 김승준, 곽태휘 등 폭풍 영입을 감행하며 선수단을 탄탄하게 보강했으며, 특히 조던 머치, 뤽 카스타이흐노스같은 거물급 용병까지 영입하였다.
성남 FC와의 리그 개막전에서 2:1 승리하며 기분 좋은 시작을 알렸으며, 산둥 루넝과의 역사적인 첫 ACL 경기에선 마루앙 펠라이니, 그라치아노 펠레 같은 세계적인 스타를 상대로도 팽팽하게 싸워 2:2 무승부를 거두면서 충분히 ACL에서도 영향력 있는 모습과 가능성을 보였다.
하지만 인천과의 2라운드에서 2:1로 패했는데 실점 장면에서 오프사이드를 선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김종부 감독이 주심인 이동준 심판에게 욕설을 섞어 항의했고, 심판실까지 난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구설수에 올랐다. 결국 3경기 출장 정지에 벌금 천만원 징계를 받게 되었다.
이후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ACL 원정 경기에서 구단 첫 ACL 승리를 따내기도 했지만, 쿠니모토를 비롯해 배기종, 룩, 조던 머치, 최재수 등 전력의 핵심들이 모두 부상 당하는 악재 속에 3무 4패라는 부진한 성적 속에 리그 10위로 떨어졌다.
초반에는 부상 문제가 운이 없어서 그렇다는 평이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감독과 스태프의 체계적이지 못한 관리[2] 가 문제라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다. 리그 중간 휴식기에 호성원 코치를 필두로 강력한 체력 훈련을 펼쳤는데 가뜩이나 로테이션을 선호하지 않은 김종부 감독의 성향과 더불어서 재앙을 일으켰다. 호성원 코치의 훈련 방식이 지난 해에 성과를 낸 것은 맞지만 ACL을 병행하는 빡빡한 일정에 상식적이지 못한 행보였고 ACL 경험이 처음인 초짜 감독의 한계라는 평도 나왔다. 또한 이 탓에 선수단과 코치진의 사이가 매우 안좋아졌고 상위 리그를 경험했던 외국인 용병들은 입에 욕을 달고 사는 등 선수단과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김종부 감독이 똥고집 이미지를 벗어던지지 못하면서 리스크의 근원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으며, 2018년은 사실상 말컹빨이었다는 말이 나오는 등 많은 사람들이 김종부의 지도력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3]
이후 ACL에서는 끝까지 경쟁했지만 조호르 원정에서의 무승부와 가시마 홈경기 역전패가 발목을 잡아 아쉽게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리그에서도 18경기 연속 무승이라는 극심한 부진 속에 강등권까지 떨어졌다.
여름이적시장에서 김종부는 부상과 태업 문제의 조던 머치, 십자인대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네게바와 과감히 작별하고 강원으로부터 제리치를 영입하고 오스만을 데려오는 것으로 반전을 꿈꿨다. 8월 10일 성남전에서 김효기의 멀티골을 앞세워 가까스로 무승 행진을 끊어냈지만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하면서 결국 하위 스플릿 B로 떨어졌고, 인천, 제주와 같이 강등권 탈출 경쟁을 하게 되었다. 인천과의 하위 스플릿 최종전에서 승리하여야 10위로 승강 플레이오프를 피할 수 있는 상황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하며 결국 11위로 부산과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되었다. 그리고 승강 플레이오프 2경기 내내 졸전만 거듭하다 1차전 0대0 무승부, 2차전 0대2로 패배해 2부리그로 강등되었다.
각 포지션의 중추인 말컹, 박지수, 최영준을 떠나보낸 전력을 복구하지 못했다. 이적료 수익은 높았으나 승강 플레이오프로 떨어진 FC 서울에서도 밀린 곽태휘, 곽태휘와 함께 자동문 듀오를 결성한 송주훈, 거액으로 데려왔으나 도움이 안돼 후반기에 임대 보낸 박기동등 먹튀가 난무했다. 기껏 주력 용병으로 영입한 조던 머치는 부진한 모습을 보이다가 시즌 중반에 이탈해버렸으며, 네게바도 중반에 부상으로 시즌아웃 당했다. 네게바의 대체자로 어렵게 데려온 오즈망 주니오르도 괜찮은 기량을 보여줬지만 그또한 몇 경기 못뛰고 부상으로 시즌아웃 당하는 등 악재가 이중삼중으로 겹치면서 '''작년 준우승팀, 당해년도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팀을 강등당하는 초유의 사태를 불렀다.'''
이런 가운데 심판의 부당한 판정으로 강등되었다고 울분을 토로하기도 했다.# '운동하는 후배들에게 미안하지 않느냐'라면서 심판이 부산 아이파크 구단주이자 대한축구협회 회장인 정몽규의 눈치를 봐서[4] 부산에게 유리한 판정을 했다고 주장하는 한편, 인천전에서도 심판들이 투병 중인 유상철을 위해 인천에게 유리한 판정을 내렸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로 인해 심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명목으로 제재금 500만원 징계를 받았다.
이처럼 실망스러운 시즌을 보낸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조기호 대표이사와의 틀어진 관계였는데 2018시즌 종료 후 재계약 협상 과정에서 사이가 벌어진 조기호 대표이사와 김종부 감독의 관계가 1년 간 한 치도 좁혀지지않았다는 것이 컸다. 위기의 순간을 타개하기 위해 프런트와 선수단의 두 수장이 마음을 합치는 일은 2019년 동안 한 차례도 볼 수 없었다. 김종부 감독은 위태로운 마이 웨이를 걸었는데 문제는 조기호 대표이사는 그런 상황을 방치만 했다.
또한 김종부 감독은 챔피언스리그를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독선에 가까운 선수 영입을 이어갔고, 규모만 큰 비효율적 스쿼드를 구축했다. 우려했던 공수 불균형에 챔피언스리그는 일찌감치 떨어졌고. 본인이 점찍어 데려온 선수들은 끔찍한 경기력으로 팀을 망쳤다. 게다가 본인이 데려온 코칭스태프와의 사이도 멀어지는 등 갈피를 잡을 수 없을만큼 팀이 망가져버린 것이었다.
지난 성공에 숨겨졌던 전술 복사 붙여넣기도 문제가 되었다. 본인이 인터뷰했던대로 좋은 선수가 있으면 다양한 전술을 쓴다고 했던 말이 허풍은 아니었는지 시즌 초반에는 김승준을 박스에 두고 오프사이드 트랩을 무너트리기도 하고 머치와 쿠니모토의 빌드업에 네게바 이광진의 크로스 등 다양한 공격전개를 가져갔으나 어느 순간부터 후반만 되면 배기종이 들어갔고, 지고 있으면 수비수 이광선을 최전방으로 올리는게 다였다. 최전방에서 제공권이 밀리는 모습이 있어도 하던대로 크로스 크로스 크로스 일변도로 공격을 진행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수비적으로는 스리백, 포백을 오갔지만, 정작 선수들은 "수비 전술에 대한 체계적 훈련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사실 승격한 지난 시즌부터 수비 조직력은 최악이었는데 박지수 최영준이 죽어라 막아냈을 뿐이라는게 드러났다. 이들 자리에 곽태휘 송주훈 여성해 조재철 등이 들어갔는데 리그 베스트 선수를 워스트 선수로 대체했으니 당연하게도 경기력은 지하로 들어갔다.
소통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커졌다. 김 감독은 선수 시절부터 상처가 깊었고 야인 생활도 오래 했으며 본인 사단이 없어 소통이 약한 지도자였다. 이런데다가 성적 부진으로 스트레스는 커졌고, 선수들에게 화살을 돌리는 횟수가 늘어났다. 그나마 선수단 지원팀에서 선수들을 달래며 시즌을 끌고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12월 26일부로 경남 FC에서 계약 연장을 하지 않기로 결정함에 따라,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그의 후임으로 설기현이 신임되었다.
경남 구단에서는 구단을 떠나게 된 김종부 감독에게 헌정영상을 올리며 그 동안의 노고를 위로하였다.
이후 충분한 휴식기를 통해 본인이 경남 FC시절 부족했던 전술
그리고 공격전개 당시의 빌드업을 다시 공부하고 현장복귀에 준비
한다는 기사가 났다. K리그1과 K리그2 팀들 중 감독이 공석인 팀에서도 관심을 가진다는 루머가 있었다. 2021년 1월 14일 말컹이 있는 중국 슈퍼리그 허베이 화샤로 이적한다는 단독보도가 나왔다.
3.2.5. 총평
경남 FC의 전성기와 강등을 모두 가져온 명과 암이 공존하는 감독이다. 허허벌판같던 경남 FC를 바닥부터 다져가며 K리그 챌린지 승격과 K리그 클래식 준우승이라는 기적을 일궈낸 능력은 인정받았으나 선수 시절의 상처와 프로 감독 경력의 미비함이라는 문제로 독선적인 모습을 보이며 팀을 강등에 구렁텅이에 빠트리기도 하였다.
구단 최악의 승부조작 스캔들로 어수선해진 2016 시즌에 부임하여 준수한 지도력으로 구단을 수습하고, 2017시즌은 압도적으로 K리그 챌린지 우승을 이루어 내었다. 게다가 2018년에는 승격팀이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돌풍을 일으키며 정규리그 준우승이라는 업적을 달성해냈다.
하지만 2019시즌의 김종부는 상당한 권한과 존경을 받은 위치에 있었으나 말컹이나 최영준, 박지수 등의 이적으로 인한 공백을 제대로 메꾸지 못했으며, 본인이 선택한 영입 선수들 역시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선수빨이라는 비난을 피하지 못했으며, 선수단 장악력 및 조직력, 전술에서 문제를 노출하였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축구 외적으로 구단 대표와도 시즌 내내 불화를 겪는 등 결국 좋지 못한 마무리를 보여주었다.
전술적으로는 상당히 조직적인 축구를 구사하여 팀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큰 변화는 주지 않는 편이다. 17, 18시즌을 거의 4-4-2의 일관적인 전술로 이어갔는데 팀성적이 뛰어났기때문에 전술에 대한 비판도 변화를 가져갈 이유도 없었다. 19시즌에는 본인이 원하는 전술 변화를 가져가기도 했고 인터뷰에서도 스쿼드가 좋다면 더욱 공격적이고 다양한 전술을 가져갈 것이라 밝힌 바 있다. 교체 자원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공격 자원을 투입한다. 오랜 기간 미드필더로 잔뼈가 굵은 조재철을 공격수로, 이광진을 풀백으로 포지션 변경시키기도 했는데 조재철은 조커로 쏠쏠한 활약을 했고 이광진은 완전히 정착하여 주전 자리를 꿰차기도 했다. 측면 수비도 적극적으로 공격에 참여하게 유도하는 편으로 왼쪽의 최재수와 오른쪽 이광진의 크로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명과 암이 있는 지도자이지만 나락에 빠져 있었던 경남을 구해내고 성장시켰고, 경남 구단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15시즌 2부 리그에서 하위권을 기록할 정도로 망가져 있던 팀 경남을 이젠 많은 축구 팬들에게 이름을 오르내릴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업적만큼은 폄하될 수 없을 것이며, 과연 김종부가 아니었으면 경남이 1부 리그까지 올라왔을 것이라는 점 역시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4. 흑역사
4.1. 김종부 스카우트 파동
[image]"혼자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이였다. 아무도 충고를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파동이 일어났던 당시는 축구에 눈을 뜨는 시기였다. 선수들의 움직임이나 수비수들의 태클 들어오는 다리가 보였다. 그럴 때 축구 실력이 향상되는데, 그 좋은 시기에 경기를 뛰지 못했다." -김종부
1983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5] 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친 김종부는 각 프로 팀들에게 눈독의 대상이었다. 해외의 각종 잡지에서 김종부를 1986년 월드컵 대표팀의 핵심으로 간주했고 실제로 월드컵 대표팀에서 좋은 활약을 하면서 기량을 발전시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3월 21일 대표팀 전지훈련으로부터 귀국한 김종부를 놓고 현대와 대우가 쟁탈전을 벌이게 된다. 대우는 이미 김종부의 작은 형을 구단 경리 담당으로 임명하고, 과거 2년 동안 김종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가족까지 접촉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인 상황이었다. 현대도 만만치 않아서, 김종부의 모교인 고려대학교에 3억원의 시설 투자를 약속했고, 고려대 측에서는 김종부에게 현대로 갈 것을 권유하게 된다.[6]
김종부는 대우로 가고 싶은 의사를 여러 번 드러냈으나 학교의 허락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러한 상황은 점점 악화일로를 걷게 된다. 현대는 김종부와의 가계약[7] 을 맺었다고 주장하며 법정 싸움으로 옮겨가겠다는 자세를 취했고 김종부가 대우와 현대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혼란을 빚자 여론 또한 악화되어 간다. 결국 체육부가 나서서 이 사건을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고려대가 김종부의 제명을 요구하면서 축구 협회는 김종부를 월드컵 대표에서 제외하는 충격적인 일로 이어진다.
축구계가 나서서 김종부 구명운동이 일어나고 김종부는 우여곡절 끝에 대표팀에 합류하여 득점도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대우와 현대는 한 치도 물러섬이 없이 김종부를 두고 계속 대결을 벌였고, 이 와중에 상처를 받는 것은 선수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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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이후로도 계속된 싸움은 현대의 팀 해체 위협과 축구계 내분으로 이어졌고 결국 대우도 현대도 아닌 포항제철로 김종부는 리그 데뷔를 이루게 된다. 그러나 1년간 운동을 쉰 김종부는 이전의 기량을 회복할 수 없었고 여기저기를 전전하다 결국 1995년 그렇게 가고 싶었던 대우에서 씁쓸한 은퇴를 하게 된다. 고려대학교 시절의 전성기 기량을 보여주지 못한채 선수 생활을 은퇴해야만 했으며 이후 K리그는 K리그 드래프트라는 제도가 탄생하게 되었다.
5. 기타
- 장어집 사장이다. 2015년 6월 화성 감독 시절, 대한축구협회 FA컵 16강에서 FC 서울을 상대로 '이기면 장어 회식 한 번 하겠다'라고 인터뷰하였다. 경기에서는 아쉽게 패했다.[8] 경남 감독 취임 이후에는 장어집 운영권을 누나에게 줬다고 한다. 장어집을 하게 된 이유도 축구인으로서 당당해지고 부적절한 돈을 벌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인터뷰
- 2017 시즌 중 모친상을 겪었다. 그리고 49재가 지나가기 전에 10월 8일 상대했던 2위 팀 부산 아이파크와의 경기에서 2:0으로 이겼는데 이틀 후 부산 조진호 감독이 급성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이에 우승 확정을 짓고도 헹가래는 자제했으며 이 우승을 조 감독에게 바친다고 얘기를 했다.[9]
- 라고 기사화되어 알려졌지만, 사실이 아니다. 김종부의 가까운 지인이 오해를 하고 인터뷰에 응했다.
- 경남의 새로운 공격진의 핵심인 쿠니모토 타카히로의 경우, 그동안 J리그에서 숱한 사고과 문제를 일으켜서 자국내에서도 저 선수는 안된다라는 부정적 평가[10] 가 오곤 했으나, 2018년 경남에 입단한 후, 김종부 감독의 지도하에 쿠니모토는 어느덧 경남 FC의 핵심용병으로 우뚝 서게 되었고, 어느덧 국가대표 승선을 꿈꾸는 프로선수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되었다.
- 닮은꼴로는 배우 이종혁이 자주 언급된다.
[1] 또한 K리그2 올해의 감독상의 저주도 끊을 가능성이 높다. K리그2 올해의 감독상 수상자 거의 모두다 얼마후 비참한 결말을 맺는다는 징크스다. 2014년 조진호 대전 감독=>2015시즌 도중 사퇴 후 2017년 심장마비로 별세, 2015년 조덕제 수원 FC 감독=>2017시즌 도중 사퇴, 2016년 손현준 대구 감독=>2017시즌 사퇴가 대표적 사례.[2] 요즘은 훈련에도 GPS를 달아서 거리를 측정해가며 효율적인 훈련을 중요시하며 코치진들에게 스포츠 생리학은 필수적인 지식이 되었다. 옛날처럼 무식하게 노력 타령하는 시대가 아니다.[3] 이 부분은 당장 후임자인 설기현과도 비교가 되는데, 유럽 생활을 오랫동안 해온 설기현은 자율적으로 훈련을 하고 선수들에게 개인 시간을 보장해주기도 한다.[4] 실제로 정몽규는 이날 경기장을 찾았다.[5] 한국 축구팀이 처음으로 붉은악마로 불려지게 된 그 대회 맞다.[6] 이러한 접촉을 안종복 당시 대우 사무국장이 등장해서 저지한다.[7] 계약금 1억 5000만 원, 연봉 2400만 원, 연봉과 별도로 고려대 졸업 전까지 장학금 월 200만 원 지급, 프로 입단 후 팀 공헌도에 따라 추가로 상여금 지급.[8] K3리그 팀 감독이 웬만한 중고등학교 축구부 감독보다도 월급이 적다고 한다.[9] 이 49재 때문에 김종부 감독은 조문을 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조화를 보내는 걸로만 했고 헹가래를 하지 않았다.[10] 심지어, 쿠니모토의 에이전트 (혼다 케이스케의 친형)조차도 "저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 쿠니모토가 인간이 되면 홈페이지 리스트가 기재하겠지만,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라는 비난과 함께 그를 에이전트 리스트에 올리지도 않았었다가, 2018시즌 경남에서의 정상적인 활약에 그를 에이전트로 정식 인정했다. 오죽하면, 담당 에이전트도 쿠니모토 같은 망나니를 어떻게 조련했는지 김종부 감독이 대단하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