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득
1. 개요
대한민국의 전직 축구선수이자 축구인. 할렐루야 축구단에서 창단 때부터 1986년까지 활동했으며 1987년부터 1990년까지 포항제철 아톰즈 소속으로 뛰었다. 80년대 최고의 우리나라 골키퍼로 거론된다. 1980 아시안컵, 1986 아시안 게임, 1988 올림픽, 1988 아시안컵 총 4번의 메이저 대회에서[1] 국가대표 주전 수문장으로 활약했으며 아시안 게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한준희, 장지현 두 해설 위원 모두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11의 골키퍼 자리에 조병득을 뽑았다.[2]
2. 선수 시절
2.1. 클럽 경력
1980년 할렐루야 축구단이 창단하자 합류하여, 원년 멤버가 되었다. 이후 1983년 수퍼리그에서 할렐루야 원년 우승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하며, 시즌 베스트 일레븐과 우수 골키퍼 상까지 휩쓰는 좋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 자금력을 앞세운 대기업 구단이 연이어 창단하자, 할렐루야 축구단은 제대로 된 성적을 내지 못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수는 할렐루야의 문전을 지키며 분전하였다. 이후 1985시즌을 끝으로 할렐루야가 아마 전환을 선언하였음에도 할렐루야에 남아있다가, 1987년 포항제철 아톰즈에 입단하며 프로 무대에 복귀하였다. 이후 1990년까지 포철에서 활약하다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2.2. 월드컵과의 악연
1980년대 K리그 최정상급 골리 중 한명이었지만, 유독 월드컵과 인연이 없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오연교에게 밀리며 벤치 신세를 감내해야 했고,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아시아 예선만 참여하고, 본선 엔트리에는 들지 못했다. 이후 1997년에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대표팀 체제가 발족됐을 당시만 해도 코치로 이름을 올렸지만, 아시아예선 도중 할렐루야 축구단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결국 코치진에서 빠지게 된다. 이후 프랑스 월드컵 대표팀은 네덜란드에게 0:5 대패 이후, 차범근 감독이 경질되고 김평석 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승격하여 본선 잔여일정을 치루었는데.. 만약 조병득 씨가 계속 국가대표 코치직을 했더라면 조병득 대행이 벨기에 전을 치뤘을지도 모른다.
3. 지도자 생활
현대 호랑이와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대표팀, 애틀란타 올림픽대표팀, 전북 현대 모터스, 전남 드래곤즈, 수원 삼성 블루윙즈 등 여러 팀을 지도하며 코치로 활약하였다. 1997년과 1998년에는 할렐루야 축구단의 감독을 맡아 지도하기도..
4. 행정가 생활
2014년부터는 대한축구협회 경기분과위원회 경기위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2019년 현재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으로 재직 중이다.
5. 이야깃거리
- 차범근 감독과 각별한 사이다. 현대 호랑이와 국가대표 그리고 수원 삼성 블루윙즈 코치 시절에도 차범근 감독을 보좌했다.
- 독실한 개신교 신자이며, 현역 시절에는 경기를 승리하면 그라운드에 무릎 꿇고 기도 세리머니를 하였다. 현재 경기가 끝난 후 항상 기도 세리머니를 하는 선수들의 원조격이다. 또한 승부차기에 돌입할 때마다 페널티박스를 등지고 서서 기도를 올린 후 상대 키커와 맞섰다. 대표적인 경기가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8강 이란전에서 승부차기 직전에 기도를 올린 후 상대 키커의 슛을 선방하여 준결승 진출에 기여한 경기이다.
- 경인방송 원기범 아나운서의 외삼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