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퐁피두

 




'''프랑스 제19대 대통령
조르주 장 레몽 퐁피두
Georges Jean Raymond Pompidou'''
'''출생'''
1911년 7월 5일
프랑스 공화국 오베르뉴론알프 몽블뤼프
'''사망'''
1974년 4월 2일
프랑스 공화국 파리
'''국적'''
프랑스 [image]
'''신체'''
181cm
'''학력'''
라페루즈 고등학교 (졸업) (-1928년)
리세 피에르데파르마데툴루즈 프레파 과정
리세 루이르그랑 프레파 과정 (학사)
고등사범학교
자유정치대학[1] (정치학 / M.A.) (-1934년)
'''정당'''
'''UDR''']] (1968년-1974년)'''
'''직업'''
정치인, 공무원, 교수
'''가족'''
배우자: 클로드 퐁피두 (1935년 결혼, 2007년 사별)
슬하: 1남
'''종교'''
가톨릭
'''약력'''
헌법평의회 의원 (1959년 - 1962년)
프랑스 제80대 총리 (1962년 - 1968년)
'''프랑스 제19대 대통령'''
'''재임기간'''
'''1969년 6월 20일1974년 4월 2일'''
1. 개요
2. 생애
2.1. 정계 입문까지
2.2. 대통령 취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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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르주 장 레몽 퐁피두(프랑스어: Georges Jean Raymond Pompidou) 1911년 7월 5일 - 1974년4월 2일)는 캉탈 주 몽부디프 태생으로 1969년부터 그가 사망한 1974년까지 재임한 프랑스 국민연합(우파)[2] 소속의 프랑스 대통령이다. 

2. 생애



2.1. 정계 입문까지


조르주 퐁피두는 레지스탕스부터 그와 함께했던 소위 "드골주의의 남작들"이라 불리우는 최측근 써클의 소속은 아니었다. 그는 제2차세계대전 당시 고등사범학교에서 고전문학의 교원자격증 (Agrégation)을 취득해서 앙리 4세 고교에서 가르치고 있었다. 드골과 프랑스 제4공화국의 인사들은 그의 뛰어난 지성을 주목해 영입하려 하나, 정계에 입문한 퐁피두는 잠시 정책 고문으로 활동한 뒤 지인을 공천해 사임하고 로스차일드 프랑스 지사장으로 활동한다. 그가 1959년에 이르러서야 실질적으로 정치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1958년 드골은 제4공화국을 끝맺고 제5공화국을 설립해 각료로 적합한 인물들을 찾고 있었다.
결국 그는 헌법재판장들 중 하나로 임명되고, 1962년에는 샤를 드골 정부 하에서는 총리를 역임하였다.
1969년 드골이 사임한 뒤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드골 사임 뒤 임시 대행 알랭 포에르와 대치했다. 당시 좌파가 힘을 잃어 [3] 1차 선거에서의 결과에 실망한 좌파성향 유권자들이 대거 투표에 불참하며 2차 투표에서 58%의 득표율을 얻어 여유있게 승리하였다.[4]
[image]

2.2. 대통령 취임 이후


기본적으로 그는 드골의 후계자로서 등장하였으나, 드골의 노선을 견지하면서도 보다 실용주의적인 경향을 띠었다. 외교적으로는 영국의 유럽공동체 가입을 이끌었으며[5] 산업화 계획과 유럽 공동의 로켓발사계획을 주도할 프랑스 기업 아리안스페이스 등에 출자하였다. 그가 임명한 총리 자크 샤방델마스가 추진한 68혁명 후의 정치 슬로건인 새로운 사회계획에 회의적이었으며, 정부의 언론통제 완화 등의 정책은 드골주의를 표방하는 우파로부터 비판을 당하는 등 갈등을 빚게 되었다. 퐁피두는 결국 후에 그를 경질하였다.
그러던 중 퐁피두는 예기치 못하게 희귀질환인 매크로글로브린혈증으로 쓰러져 사망하였다.[6] 그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궐위된 대통령직은 상원의장인 알랭 포에르가 임시로 대행하다가, 조기 대선에서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이 당선되어 그의 후임 대통령이 되었다.
그의 이름을 딴 파리퐁피두 센터가 유명하다.

[1] 현재 시앙스포.[2]국민연합과는 다른 정당.[3] 이전 68운동 때 치러진 총선에서 좌파정당들이 예상을 깨고 참패하면서 좌파정당들의 힘이 크게 빠진 상태였다.[4]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알랭 포에르가 좌파성향 유권자들의 표를 죄다 흡수하는데 성공했었으면 최소한 접전이나 승리를 할수있는 수치가 나온다.[5] 과거 영국은 유럽공동체 가입 의사를 나타내 왔지만 드골의 재임 시절 프랑스가 줄곧 반대하여 무산되어 왔다. [6] 장례식에 김종필 국무총리가 참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