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헌영

 

'''대한민국 국회의원 (경상북도 영양군)'''
''제헌 헌법 공포''

'''초대·2대
조헌영'''

제3대
박종길
趙憲泳
1901년 1월 8일 ~ 1988년 5월 23일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보건의료인, 정치인이다. 자는 응문(應文), 호는 해산(海山)이다. 본관은 한양(漢陽)[1]이며, 시인 조지훈의 아버지이다.

2. 생애


1901년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주실마을[2]#에서 태어났다. 영양보통학교, 대구고등보통학교(현 경북고등학교), 일본 와세다대학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였다. 와세다대학 재학 중 재일조선인학우회 대표, 신간회 동경지회장 등을 지냈다.
1945년 8.15 광복 후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하여 한국민주당 조직부장을 지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민주당 후보로 경상북도 영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는데 이때 한의사 제도를 폐지하려는 법안이 통과되자 이를 막고 한의사도 의료인에 포함씨킴으로써 한의사들의 지위상승을 이끌었다는 평을 들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영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지만 6.25 전쟁 당시 모시기 정책의 일환으로 납북되었고, 아버지인 조인석도 전쟁 도중에 자살하였으며, 아들인 조지훈과도 죽을때까지 영영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도 북한에서도 한의학으로 이름을 크게 날렸고 최초의 동의사 자격증을 따냈으며 동의보감의 번역을 마무리 짓고 후학을 양성했다. 특히 조헌영이 우익계열의 한민당에 몸을 담았다는 점이나 김일성의 라이벌이 될만한 주요정치인들이나 최승희같은 여러 저명인사들이 숙청되거나 한직으로 쫓겨났던것에 비하면 대접을 꽤 후하게 받은 편으로 여러 고위직책을 맡았다. 사후 재북인사릉에 6.25전쟁 중 납북되었던 동료 의원들과 함께 묻혔다.

[1] 양렬공파 중 경상북도에 세거한 지파는 항렬을 별도로 썼다. 26세손 '''영(泳)''' 수(洙) 해(海) 항렬이다.[2] 인근의 도계리, 가곡리와 함께 한양 조씨 집성촌이다. 시인 조지훈, 역사학자 조동걸, 조근해 전 공군참모총장, 조운해 전 강북삼성병원장, 조태열 외교부 차관도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