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음악
1. 개요
중세의 도시에서는 교회를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중세인들의 생활에 신앙이 깊게 들어가 있었다. 처음 종교 지도자들은 이러한 음악이 이교도적이라는 이유로 배격하였다. 이러한 교회가 늘어나면서 평신도들은 자신의 신앙생활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으나 또 다른 부류들은 속세를 떠나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즉 수도자의 길을 택하기도 하였다. 이중 주목할 만한 인물은 성 베네딕토로 그가 남긴 회칙에 의해 성무일도의 음악이 비교적 확립되었다.
또한 세속적인 환경에 있는 사제들은 중세 시대의 중요한 음악가들이었으며, 그들은 음악을 담당하고, 필사본을 만들고 성가대를 지휘하였다. 11세기부터는 가장 강력한 왕국이었던 프랑크 왕국이 분열되었고 이로 인해 교황청이 직접 십자군 전쟁을 주도하는 등 영향력과 권위가 강화되며 이에 따라 기독교의 문화도 절정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십자군 전쟁의 패배로 교황청의 권위가 다시 쇠퇴하는 결과가 되며, 농민의 세금부담, 봉건 제후들의 경제력 약화, 각국 군주들의 중앙집권 정책을 펼치는 등 본격적으로 교황청의 힘이 약해진다.
2. 중세 음악의 특징
=그레고리오 성가=
-남자만 부름
-무반주
-단성음악
-라틴어 가사
=계이름의 탄생
2.1. 교회음악
중세의 음악 뿐 아니라 역사 자체도 기독교와 때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연결되어있다. 기보법이나 음계, 다성음악 등은 교회음악으로부터 발전된 것이고 뛰어난 음악 이론가들이나 작곡가들은 대부분 사제였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중세음악 중 교회음악은 가장 잘 보존되있으며 또 음악의 초기 역사를 같이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2.2. 교회 선법
그레고리오 성가 이후 성가의 종류가 엄청나게 많아지면서 이 많은 성가를 통제키 위해 선율 분류방법을 만들었는데 그 방법이 바로 이 교회 선법이라는 8개의 음계의 체제였다. 이러한 교회 선법이라는 음체계가 조성이 없었던 중세 시대는 물론이거니와 르네상스 시대까지 음악을 지배하였으며 이후 바로크 시대 에 장단조에 그 자리를 내주게 된다.
2.3. 기보법의 발달
중세시대 초기에는 마땅한 기보법이 없었고, 성가를 구두로 전달하는 식이었으나 그레고리오 성가의 등장으로 레파토리가 방대해지자 암기의 어려움으로 9세기 초에 '''네우마(neuma)'''라는 기보법이 등장하였다. 초기 네우마는 선율의 윤곽만 제시하는 형식이어서 오늘날 당시의 음정이나 높낮이를 알기에는 어렵다. 9세기 말부터 단어의 앞글자를 딴 다양한 기호를 제시하였다. 예를 들어 느려짐은 t(tenere)나 -, 빠르게는 c(cito), 악센트 a(altus) 등으로 다양한 표현을 하였다. 하지만 네우마는 종류가 다양하며 체계적이지 않았고 어디까지나 사람의 기억을 보조해주는 장치에 불과했다. 여러가지 네우마 보는법.
9세기에 씌여진 작자 미상의 이론서 <음악 안내서(Musica Enchiriadis)> 점차 여러 선을 그려놓고 그 사이에 특정 음을 지정해 선 안에 가사를 넣은 데지아(daseia) 기보법을 제시하나 너무 크고 비효율적이어서 사용하지는 않았다.. 10세기부터는 보표선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는데 처음에는 수평선 하나만 그어놓고 그 선을 기준으로 네우마를 사용했으나 점차 선이 많아졌다.
11세기에 F를 나타내는 적색 선이, 후이 C를 나타내는 황색이나 녹색 선이 첨가되었다.[1] 후에 또다시 A와 E를 나타내는 선 2줄이 첨가되었으나 점차 이 내선을 통일된 색으로 긋게 되었다. 대신에 C와 F를 음정에 해당하는 보표 앞에 적어놓았고 이게 음자리표의 기원이다. 이외에도 가사 위에 음높이를 나타내는 알파벳이 써있는 문자 기보법도 사용되었다. 이러한 기보법은 헤르만누스 콘트락투스(Hermannus Contractus)가 더욱 발전시켰는데 가사 위에 음정 관계를 써넣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기보법의 문제는 음 하나를 잘못 읽으면 뒤부터 다 틀리게 된다는 것이었다.
12세기에 이러한 음자리표가 딸린 사선악보가 널리 퍼지게 된다. 13세기에 오면서 음표의 사각형 모양이 갖추어지게 되고 리가투레(ligature)라 부르는 여러 개의 음표묶음이 생겨난다. 흔히 볼 수 있는 그레고리오 성가의 악보가 이 방식이다. 이후 중세 음악에는 이러한 사선 기보법이 통용되게 된다. 이러한 악보는 굉장히 오랜 세월 동안 사용되었고, 현재에도 가끔씩 가톨릭에서 사용하며 읽는 법은 여기를 참고하자.
계이름은 이탈리아의 음악 이론가이자 교육자이자 수도자인 귀도 다레초가 창안하였다.[2] 세례자 요한의 찬미가에서 귀도는 첫 여섯 구절이 각기 다른 음으로 시작하며 6음음계를 이룬다는 것을 발견하고 각 가사의 첫 번째 음절을 음 이름으로 정하였다.[3] 17세기나 돼서야 '''Ut'''가 주님을 뜻하는 Dominus의 Do로 바뀠으며 Si가 라 위에 첨가되었다. 한편 귀도는 계이름 창안뿐 아니라 4선보표를 널리 전파하기도 하였다.
3. 역사
- 중세 음악/역사 문서 참조.
4. 악기
[1] 굳이 이 두 선을 사용하는 이유는 이 두 음이 밑의 음과 반음관계라 반음을 정확히 표기할수 있었다는 설이 있다.[2] 귀도는 1030년대 초 폼포사의 수도자였던 미카엘에게 보낸 편지 중에 소년들에게 가르친 자신만의 방법을 적고 있는데, 이게 바로 계이름이었다.[3] 우연이긴 하지만 이 6개의 단어들이 각기 다른 자음과 모음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