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야 아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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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리야 아야코 (守谷 絢子)
출생
1990년 9월 15일(33세)
일본 도쿄도 미나토구
아버지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1954~2002
어머니
히사코 비1953~
큰언니
쓰구코 공주1986~
작은언니
센게 노리코1988~
작은형부
센게 쿠니마로1973~
남편
모리야 케이1986~
장남
모리야 죠2019~
학력
가쿠슈인 초등과1997~2003
가쿠슈인 여자 중등과2003~2006
가쿠슈인 여자 고등과2006~2009
조사이 국제대학교 사회복지학과2009~2013
1. 개요
2. 어린 시절
3. 탈 가쿠슈인 및 사회복지 공부
4. 결혼
5. 자녀
6. 기타


1. 개요


일본의 前 황족. 결혼 전에는 다카마도노미야 아야코 여왕(高円宮絢子女王)이었다.
아키히토 상황의 사촌동생인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친왕과 히사코 비의 3녀 중 막내로[1], 1990년 9월 15일 아이쿠(愛育) 병원에서 태어났다.[2] 형제로는 1986년생인 큰언니 쓰구코 공주와 1988년생인 작은언니 센게 노리코가 있다.
할아버지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 증조할아버지는 다이쇼 덴노이다. 1947년 개정된 일본 황실전범에 따르면, 천황의 손주까지는 친왕/내친왕, 증손부터는 왕/여왕이라 한다.[3] 따라서 다이쇼 덴노의 증손녀인 아야코 공주는 여왕 지위를 받았고, 아야코 공주의 언니 쓰구코 공주노리코 공주, 사촌 언니 아키코 공주요코 공주도 여왕 지위를 받았다.[4] 노리코 공주는 2014년 결혼하면서 황족 지위를 잃고 평민이 되었다.
2018년 10월 29일, 평민 모리야 케이(守谷慧)와 결혼하여 황족 지위를 잃고 평민 '모리야 아야코'가 되었다.

2. 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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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아야코 공주. 큰언니 쓰구코 공주, 작은언니 노리코 공주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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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의 아야코 공주(2세). 아버지 노리히토 친왕(38세), 어머니 히사코 비(39세), 큰언니 쓰구코 공주(6세), 작은언니 노리코 공주(4세)와 함께.
아야코 공주를 비롯한 다카마도노미야 일가의 3자매는 가쿠슈인 유치원이 아닌 쇼토(松濤) 유치원[5]에 다녔다. 도쿄 시부야의 고급 주택가에 있었던 이 유치원은 일본에서 비싼 학비로 순위를 다투는 유치원이었고, 정재계 및 부유층 자녀들이 많이 다녔으며, 원생들을 명문 사립초등학교에 많이 진학시키기로 이름이 높았다. 큰어머니 노부코 비가 결혼 전 쇼토 유치원에서 영어교사로 근무했고, 노부코 비의 두 딸 아키코 공주요코 공주도 쇼토 유치원에 다니다가 가쿠슈인 유치원으로 옮겼다.
쇼토 유치원을 졸업한 후, 아야코 공주는 가쿠슈인 초등과에 입학했다. 초등과 6학년이던 2002년 11월에는, 아버지 노리히토 친왕이 주일캐나다대사관에서 스쿼시 경기를 하다가 갑작스레 쓰러져 사망했다. 노리히토 친왕은 평소 건강하고 활동적인 인물이었다.[6] 그렇기에 그의 죽음은 대단히 놀라운 일이었고, 아내와 어린 딸들에게 대단히 충격적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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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코 공주는 어머니 히사코 비, 고등학생이던 큰언니 쓰구코 공주, 중학생이던 작은언니 노리코 공주와 함께 가쿠슈인 교복을 입고서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이때 쓰구코 공주는 염색한 머리카락을 하고서 장례식장에 나타나 물의를 빚기도 했는데, 이는 "평소의 모습 그대로 아버지를 보내드리게 하고 싶다"는 어머니 히사코 비의 의견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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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노리히토 친왕의 흉상 앞에서, 어머니와 언니들과 함께.

3. 탈 가쿠슈인 및 사회복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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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대학 입학식에서. 일본에서는 대학 입학식 때 검은 정장을 입는다고 한다.
아야코 공주는 가쿠슈인 여자 중등과, 가쿠슈인 여자 고등과를 거쳐, 2009년 4월 치바현의 조사이(城西) 국제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했다. 큰언니 쓰구코 공주에 이어 일본 황실의 탈 가쿠슈인 흐름에 동참한 셈이다.[7] 쓰구코 공주는 가쿠슈인 여대를 중퇴하고 영국 에든버러 대학교유학을 떠났다가, 그 역시 그만두고[8] 일본으로 귀국하여 2008년 9월 와세다대학 국제교양학부에 입학했다.
아야코 공주의 탈 가쿠슈인 이유는, 가쿠슈인 대학과 가쿠슈인 여대에 사회복지학과가 없었다는 것도 들 수 있을 것이다. 가쿠슈인과 달리 조사이 국제대학은 다카마도노미야 저택과 멀었던 탓에, 아야코 공주는 학교 근처에서 친구들과 자취를 했다. 그녀는 특히 아동복지 분야에 관심을 보였다고 하며, 재학 중에도 어린이 관련 행사에 참가했다. 방학 때는 캐나다로 연수를 떠나 현지의 노인 시설 및 어린이 시설을 견학하기도 했다. 학과 공부 외에, 축구부 매니저로 활약하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보육교사 자격과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했다.
2013년 3월에 조사이 국제대학을 졸업, 4월부터 동 대학 대학원에 진학하여 사회복지학 공부를 계속했다. 2014년에는 작은언니 노리코 공주이즈모타이샤 신사신관인 15살 연상의 센게 구니마로(千家国麿)와 결혼, 평민 센게 노리코가 되어 황족 신분을 이탈했다. 이로서 다카마도노미야 가문의 구성원은 3명(히사코 비, 쓰구코 공주, 아야코 공주)으로 줄었다.
2016년 3월, 조사이 국제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17년 6월 1일부터 조사이 국제대학 사회복지 연구원이 되었다.

4.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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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29일, 아야코 공주와 모리야 케이의 결혼식
2018년 6월 26일, 약혼을 발표했다. 결혼식은 10월 29일 메이지 신궁에서 거행하기로 했다. 예비 신랑인 모리야 케이는 당시 32세[9]로, 경제산업성 무역통상 고위 관료를 지낸 모리야 오사무(守谷治)[10]의 장남이자 게이오기주쿠대학 졸업 후 일본 최대 해운업체인 닛폰유센(日本郵船)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원이라고 한다.
2018년 7월 2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모리야 케이의 어머니인 모리야 키미에(守谷季美枝)[11]와 알고 지내던 히사코 비[12]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첫 만남임에도 불구하고 대화가 잘 이어져서 오랫동안 즐겁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2018년 초의 식사 자리에서 청혼을 받았으나, 아야코 공주는 주저하다가 4월에서야 승락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2018년 8월 12일, 일본 황실의 혼약 절차 중 하나인 노사이(納采) 의식을 치렀다. 모리야 케이의 친척 어른인 콘도 다츠야(近藤達也)[13]가 신랑 측 사자(使者)로서 다카마도노미야 궁저를 방문하여, 작고한 가장 노리히토 친왕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접견실에서 히사코 비와 아야코 공주에게 예물인 청주(淸酒)·도미·옷감을 전달했다. 이로서 아야코 공주와 모리야 케이의 약혼 관계가 공식적으로 확정되었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마코 공주코무로 케이와의 약혼을 발표하고 2018년 11월에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으나, 코무로 케이의 여러가지 문제들이 드러나면서 결혼식이 기약 없이 미루어졌다. 게다가 마침 (한자는 다르지만) 모리야 케이와 이름도 같아서, 일본인들은 "어떤 케이(코무로 케이)와 달리 이쪽 케이(모리야 케이)는 번듯한 대기업에 다니는 것으로 모자라, 친척들 중에도 명망 높은 사람이 있다!!"는 식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2018년 10월 29일, 아야코 공주는 예정대로 메이지신궁에서 모리야 케이와 결혼식을 올렸다. 이로써 아야코 공주는 황족 신분을 잃고 평민이 되었고, 이름도 '다카마도노미야 아야코'에서 '모리야 아야코'로 바뀌었다. 다카마도노미야 가문 및 황실 행사 참여를 이유로 도쿄의 임대아파트에서 신혼살림을 했으나, 이후 월세 30만 엔 정도의 100평짜리 2층 단독주택으로 옮겼다. 결혼 후에는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고 있으며, 다카마도노미야 가의 가풍에 따라[14] 직접 장을 보거나 인터넷 쇼핑을 하는 등 근검절약을 하고 있다.

5. 자녀


2019년 7월 31일, 한 여성지에 의해 아야코의 임신 소식이 보도되었다. 아야코는 3월 스키여행 이후로 임신했음을 알게 되어 컨디션 관리에 힘쓰고 있으며, 2019년 겨울에 출산할 예정이다. 친정어머니 히사코 비, 시가인 모리야 집안, 다카마도노미야 집안과 오랜기간 동안 친하게 지내온 나루히토 덴노와 마사코 황후 등도 기뻐하고 있다.
2019년 11월 17일 오전 6시 59분, 아야코는 할머니가 과거 명예회장직을 맡아왔으며 본인이 태어난 곳이기도 한 아이쿠 병원에서 아들을 출산했다. 하가(下嫁)[15]한 공주가 출산한 것은, 아야코의 작은고모인 센 마사코가 차남(셋째) 센 다카부미(1990년생)를 낳은 이후 29년 만의 일이다.
11월 22일 오후, 친정어머니 히사코 비와 작은언니 센게 노리코와 함께 퇴원했다. 병원에서 간호사에게 수유기저귀 갈기 등을 배웠고, 모리야 케이는 퇴근 후 병원을 방문해 아내와 아들을 돌보았다고 한다. 아들의 코와 입이 아야코를 닮았다고 한다.
12월 2일, 장남의 이름이 '모리야 죠(守谷穣)'로 결정되었다고 궁내청이 발표했다. 궁내청이 하가한 공주의 출산을 발표하고 아기의 이름까지 공개한 것은 이례적인 조치라서, 이것을 두고 잠깐 말이 나온 바 있다.

6. 기타


가수 EXILE의 팬이라고 한다. 결성 초부터 좋아한, 꽤 오래 된 팬이라고.

[1] 현 천황 나루히토의 육촌동생이 된다. 그것도 30살 차이. 해서 나루히토의 무남독녀 도시노미야 아이코 공주와는 7촌이지만(아야코가 7촌 고모), 나이차는 11살로 적은 편.[2] 아이쿠 병원은 아야코의 할머니 유리코 비가 총재를 맡고 있는 사회복지법인 소속의 산부인과&소아과 병원이다. 다카마도노미야 일가의 3자매뿐 아니라, 41년 만에 태어난 남자 황손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히사히토 친왕도 2006년 9월 6일 이 병원에서 태어났다. 2010년부터는 히사히토의 어머니인 키코 비가 총재를 맡고 있다.[3] 1947년 이전에는 4대손까지를 친왕/내친왕, 5대손부터를 왕/여왕이라 했다.[4] 반면 아키히토 덴노의 손녀로 태어난 마코 공주, 카코 공주, 아이코 공주는 내친왕 지위를 받았다.[5] 2010년 폐원되었다.[6] 경직된 일본 황실에서 그나마 개방적이고 열린 사고방식의 소유자였으며, 2002 한일 월드컵 때는 아내 히사코 비와 함께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한국 방문 중에 찍었던 사진 및 기행문을 책으로 엮는 작업 중이었는데, 노리히토 친왕이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마무리는 히사코 비가 했다. <다카마도노미야 전하가 본 한국>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었다.[7] 작은언니 노리코 공주가쿠슈인 대학 심리학과에 진학했다.[8] 일본 황실궁내청이 밝힌 공식적인 이유는 "아버지 노리히토 친왕이 돌아가신 후 다카마도노미야 일가에 주어지는 생활비가 줄어들어, 경제적 문제로 외국 유학을 감당할 수 없어서"라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쓰구코 공주의 태만과 문란한 생활이 진짜 이유라고 한다.[9] 아야코 공주보다 5살 연상.[10] 경제산업성 정년퇴임 후, 현재는 한 주식회사의 상근 집행위원으로 근무 중.[11] 와세다대학 졸업. NGO 국경없는 아이들 이사 역임, 2015년 NGO 활동차 캄보디아를 방문하다가 풍토병으로 추정되는 병으로 인하여 태국 병원에서 작고.[12] 히사코 비는 평소에도 복지사업과 국제구호활동 등에 관심이 상당했고, 그 과정에서 모리야 일가를 알게 된 것으로 보인다.[13] 의사. 의료 관련 연구를 하면서도 동시에 진료를 볼 수 있는 독립행정법인인 국립국제의료연구센터의 원장을 지냈다. 병원장에서 퇴임한 현재는 후생노동성 산하의 의약품 의료기기 종합기구 이사장을 맡고 있다.#[14] 노리히토 친왕과 히사코 비 내외는 딸들이 시집가서 평민 주부가 될 것을 대비하여 교육했다고 한다.[15] 여자가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남자에게 시집가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