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게 노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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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센게 노리코 (千家 典子)
출생
1988년 7월 22일(36세)
일본 도쿄도 미나토구
가족
아버지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1954~2002)
어머니 히사코 비(1953년생)
언니 쓰구코 공주(1986년생)
여동생 모리야 아야코(1990년생)
남편 센게 쿠니마로(1973년생)
제부 모리야 케이(1985년생)
학력
가쿠슈인 초등과(1995년 4월~2001년 3월)
가쿠슈인 여자 중등과(2001년 4월~2004년 3월)
가쿠슈인 여자 고등과(2004년 4월~2007년 3월)
가쿠슈인 대학 심리학과(2007년 4월~2011년 3월)
1. 개요
2.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3. 결혼
4. 여동생의 결혼
5. 별거설
6. 관련 문서


1. 개요


일본의 前 황족. 결혼 전의 이름은 다카마도노미야 노리코 여왕(高円宮典子女王).
일본 아키히토 상황의 5촌 당질녀. 아키히토 상황의 사촌동생 부부인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친왕과 히사코 비의 3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현 나루히토 덴노에게는 6촌 여동생이 된다.
공주 시절의 오시루시(お印)[1]난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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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아버지 노리히토 친왕과 함께. 노리히토 친왕은 노리코 공주가 중학생이던 2002년 갑작스레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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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어머니 히사코 비, 고등학생이던 언니 쓰구코 공주, 초등학생이던 여동생 아야코 공주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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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히사코 비와 함께.
할아버지는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 증조할아버지는 다이쇼 덴노이다. 1947년에 개정된 황실전범에 따르면, 천황의 딸과 손녀까지는 내친왕(內親王), 증손녀부터는 여왕#s-1.1.3이라 부른다. 따라서 노리코 공주와 언니 쓰구코 공주, 여동생 아야코 공주, 두 사촌언니 아키코 공주요코 공주여왕#s-1.1.3의 지위를 얻었다.

2.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쇼토(松濤) 유치원[2], 가쿠슈인 초등과, 가쿠슈인 여자 중등과, 가쿠슈인 여자 고등과를 거쳐, 가쿠슈인 대학 문학부 심리학과를 졸업했다.[3] 학창 시절 노리코 공주는 발레연극 등에 취미가 있었으며, 대학에서는 임상심리학 및 정신의료 분야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대학 1학년이던 2007년에는, 여름방학을 이용해 한국을 잠시 방문하기도 했다. 성심수녀회에서 운영하는 가톨릭계 여학교인 서울 성심여자중학교성심여자고등학교 수녀원에 머물렀는데, 특별대우는 없었으며 자원봉사 등도 했다고 한다. 노리코 공주의 어머니 히사코 비, 큰어머니 노부코 비, 당숙모 미치코 상황후도 성심수녀회가 운영하는 일본 도쿄 세이신 여학원(聖心女學院) 졸업생이기에, 인연이라면 인연.[4]
만 20세가 되는 2008년 7월 22일부터 성년 황족이 되어 본격적으로 공무를 하게 되었다. 어머니 히사코 비, 언니 쓰구코 공주, 여동생 아야코 공주와 함께 공무를 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에는 재해지역 등을 방문하기도 했다.

3.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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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혼 발표 기자회견에서, 예비 신랑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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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날. 노리코 공주의 뒤에 있는 쿠로토메소데 차림의 부인은 어머니 히사코 비, 그 뒤의 후리소데 차림의 두 젊은 여성은 언니 쓰구코 공주와 여동생 아야코 공주.
2014년 5월 27일, '''15살 연상인 센게 구니마로(千家國麿)와의 약혼을 발표'''했다. 구니마로는 이즈모타이샤 신사신관(神官)으로, 고쿠가쿠인(國學院)[5] 대학 신도학과를 졸업하고 쭉 신관으로 일해 왔다. 구니마로의 아버지 센게 다카마사(千家尊祐)도 이즈모타이샤의 신관으로[6] 센게 가문은 구 화족(남작) 집안이다. 노리코 공주는 아버지 노리히토 친왕이 사망한 2002년 무렵, 어머니 히사코 비와 함께 이즈모타이샤를 방문했다가 구니마로를 처음 만났다고 한다.
2014년 10월 5일, 이즈모타이샤 신사에서 구니마로와 노리코 공주의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일본 황실의 결혼식은, 2005년 아키히토 덴노의 딸 노리노미야 사야코 공주가 시집간 이래로 9년 만의 일이었다.
평민에게 시집간 노리코 공주는 황실전범에 따라 '''황족의 지위를 잃고 평민 센게 노리코(千家典子)'''가 되었으며, 일본 정부로부터 약 1억 675만 엔(약 10억 4,000만원)의 지참금을 받았다. 시마네현에 신접살림을 차린다고 한다.
결혼 후에는 '세계 난(欄) 전시회'의 명예총재를 역임하고 있는데, 공주 시절 노리코의 오시루시가 난초였던 인연 때문이다. 2020년 초에 열린 전시회에는 어머니 히사코 비, 나루히토 천황, 마사코 황후도 참가하였다.

4. 여동생의 결혼


2018년 10월 29일, 여동생 아야코 공주가 모리야 케이(守谷慧)와 결혼했다. 케이의 아버지 모리야 오사무(守谷治)는 고위 관료 출신이고, 케이는 일본 최대 해운업체인 닛폰유센(日本郵船)에서 근무하고 있다. 케이의 어머니 모리야 키미에(守谷季美枝)도 생전에 국제 NGO 활동을 했다. 노리코의 시가인 센게 가문 못지않게, 모리야 가문도 명망 높은 집안인 것이다.
어쨌거나 모리야 일가도 신분은 '평민'이기에, 결혼 이후 아야코 공주는 황적을 이탈하여 평민 모리야 아야코가 되었다. 이로써 친정 다카마도노미야 가문에는 히사코 비와 장녀 쓰구코 공주만이 남게 되었다.
2019년 여름에 아야코가 임신했다는 소식이 발표되었고, 아야코는 11월 17일 오전 6시 59분 아이쿠 병원에서 무사히 첫 아들 모리야 죠(守谷穣)를 출산했다. 이로써 노리코는 이모가 되었다.

5. 별거설


노리코는 남편 쿠니마로보다 15년이나 연하고, 결혼 당시 고작 26세였다.[7] 게다가 센게 가문은 신관 가문이라는 직업적 특성상, 자식이 꼭 있어야 한다. 자식이 없으면 가업을 잇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혼한 지 꽤 지나서도 아이 소식이 없다 보니, 부부관계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결혼 약 3년 만인 2017년 12월 7일, 잡지 <슈칸신초(週刊新潮)>에 '''"노리코와 쿠니마로의 부부관계가 이미 파탄났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그 내용 가운데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쿠니마로가 신관 직책도 수행하지 못하고 1년 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으며[8], 평민이 된 노리코는 지금도 친정도쿄의 다카마도노미야 궁저에 주로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해당 보도 이후에 별 다른 후속 보도가 아직 없다.

6. 관련 문서



[1] 일본 황족에게 주어지는 개인 표식. 주로 식물이며, 사용하는 물건 등에 붙는다.[2] 도쿄 시부야의 고급 주택가에 있던 유치원으로, 일본에서 원비가 제일 비싸기로 손꼽히는 유치원이었으며, 정재계 및 부유층 자녀들이 많이 다니고, 명문 사립초등학교에 많이 진학시키기로도 유명했다. 노리코의 큰어머니 노부코 비가 결혼 전 영어교사로 쇼토 유치원에 근무했으며, 노부코 비의 두 딸 아키코 공주요코 공주가쿠슈인 유치원 입학 전 쇼토 유치원에 다녔다. 또한 노리코의 언니 쓰구코 공주와 여동생 아야코 공주도 쇼토 유치원에 다녔다. 쇼토 유치원은 2008년부터 원아 모집을 중단했고, 2010년 폐원되었다.[3] 아키히토 상황의 작은며느리 키코 비도 가쿠슈인 대학 심리학과를 졸업했다.[4] 성심수녀회는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전세계 41개국에서 성심학교를 운영하고 있다.[5] 토모히토 친왕의 큰딸이며 센게 노리코에게는 사촌 언니가 되는 아키코 공주가, 2016년 이 대학 특별초빙교수로 임용되었다.[6] 천황 가문이 스스로를 아마테라스 여신의 후예라고 칭하듯이, 센게 가문은 스스로를 아메노호히(天穂日命) 신의 후손이라고 칭한다. 고사기일본서기에 의하면, 아마테라스 여신은 이즈모 지역을 복속시키라고 아메노호히 신을 파견했으나, 아메노호히 신은 오히려 오오쿠니누시 신에게 붙었다가 화살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왜 하필 반역한 신의 자손이 이즈모타이샤의 신관직을 맡는지 의문이 생길 수 있는데, 센게 가문의 전승에서는 "아메노호히는 반역한 적이 없고, 오히려 오오쿠니누시를 잘 설득하여 이즈모를 복속케 했다."고 주장한다. 센게 가문은 일본의 옛 역사기록에서 이즈모노쿠니노미야츠코(出雲国造)라고 기록된, 이즈모 지방의 오래된 호족 집안의 종가이다. 센게 가문이 멸문 같은 해를 입지 않고 지금까지 신관위를 맡으며 내려온 것으로 볼 때, 아메노호히의 반역 기록은 고사기 등을 기록할 당시 야마토 조정의 권문세가였던 나카토미(中臣) 씨가 자기네 조상신인 타케미카즈치가 이즈모 복속 당시 활약했다고 서술하려다 보니 발생한 조작일 가능성이 높다.[7] 2005년 당시 36세에 결혼했던 구로다 사야코와 달리, 오늘날 여성치고는 이른 나이의 결혼이다.[8] 두문불출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병에 걸린 게 아니냐는 의견이 지배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