즈비그니에프 보니에크
1. 개요
폴란드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2002년에 폴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1980년대 폴란드 대표팀의 에이스로 격렬한 속도와 엄청난 슈팅파워, 그리고 뛰어난 공수 밸런스로 유명했다. 뛰어난 공수 밸런스 때문에 어느 포지션에서나 뛸 수 있어 윙어, 공격형 미드필더, 공격수는 물론 은퇴하기 직전 속도가 떨어졌을 때는 스위퍼 역할까지 수행했다. 상기한 별명은 유벤투스의 회장이 붙인 것인데 그의 밤 경기에서의 활약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폴란드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꼽히며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와 더불어 해외에서 가장 성공한 폴란드 축구 선수이다. [2]
2. 선수 경력
2.1. 클럽
보니에크는 1975년 엑스트라클라사의 비제프 우치에 데뷔하여 팀을 2차례나 챔피언 자리에 올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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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982년에 유벤투스 FC로 이적하였는데, 이 당시 폴란드 선수들은 해외 진출을 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는데 폴란드 출신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보니에크의 유벤투스행을 도왔다. 보니에크는 미셸 플라티니, 파올로 로시와 함께 강력한 공격진을 구축했고, 1983-1984 시즌에 스쿠데토를 들어올렸고 UEFA 컵 위너스컵 결승전에서 보니에크는 FC 포르투를 상대로 결승골을 넣어 우승을 차지했고, UEFA 슈퍼컵에서 리버풀 FC를 상대로 보니에크는 멀티골을 넣으며 팀의 승리를 이끈다.그리고 헤이젤 참사로 유명한 1984-1985 유러피언컵에서 리버풀 FC를 쓰러트리고 우승을 맛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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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보니에크는 1985년 AS 로마로 이적하였고, 코파 이탈리아에서 한차례 우승하는 등 1988년에 성공적으로 선수 생활을 마쳤다.
2.2.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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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에 국가대표에 데뷔한 보니에크는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 참가했는데 멕시코전에서 멀티골을 터트려 3:1 승리를 이끌었으나 2라운드에서 아르헨티나,브라질에게 패하며 탈락하고 말았다. 이후 보니에크는 폴란드의 에이스로 자리잡았고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 출전하는데 페루를 5:1로 대파하는 등 맹활약을 하며 1차 조별리그를 통과했고, 2차 조별리그에서는 벨기에를 상대로 해트 트릭을 넣으며 3:0 승리를 이끌며 폴란드를 준결승으로 이끈다. 하지만 준결승전 상대는 파올로 로시가 이끄는 이탈리아였고 파올로 로시에게 멀티골을 허용하며 2:0으로 패배, 결승 진출이 좌절된다. 이후 3·4위전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3:2로 승리하며 폴란드의 3위를 이끌었고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보니에크는 1982 스페인 월드컵 베스트 일레븐과 1982년 발롱도르 3위로 선정되었다. 1986 멕시코 월드컵에도 출전했으나 16강에서 브라질에게 패해 탈락했다. 이후 1988년에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3. 플레이 스타일
보니에크는 전술적 이해도가 높았으며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는데 좌우윙어,공격수,공격형 미드필더,중앙 미드필더까지 소화가 가능하였다. 또한 강철같은 체력으로 경기장을 돌아다녔고, 패싱력과 슈팅력, 테크닉까지 겸비한 선수였다.
이 강철 체력으로 스위퍼로써 시도 때도 없이 상대 공격수한테 도전을했고 윙어로는 테크닉과 넓은 시야로 크로스를 올렸으며, 중앙 미드필더로는 강철 체력으로 공수를 오갔다. 공격형 미드필더로써는 키패스를 뿌렸으며, 공격수로써는 강력한 슛팅을 필살기로 장착했다.
4. 감독 경력
보니에크는 또한 이탈리아에서 감독을 지낸 바 있는데, 각각 1990-91 시즌에는 레체, 1991-1992 시즌에는 바리, 1992-93 시즌에는 삼베네테테세 그리고 1994-96 시즌에는 아벨리노에서 감독 생활을 했다.
그는 최근에 폴란드 축구 협회 회장을 지냈으며, 2002년 7월에는 폴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공천받아 폴란드 대표팀을 맡았었다. 하지만 그는 2002년 12월, 고작 5개월만에 성적 부진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났는데 그가 물러난 후, 폴란드 대표팀은 단 다섯 경기에서 2승 1무 2패라는 성적을 거두었고, 이 와중에 홈에서 벌어진 라트비아와의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예선 경기에선 0:1로 완패했다. 게다가 팀도 UEFA 유로 2004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5. 수상
- 유벤투스 FC (1982 ~ 1985)
- 세리에 A : 1983-84
- 코파 이탈리아 : 1982-83
- UEFA 컵 위너스컵 : 1983-84
- UEFA 챔피언스리그 : 1984-85
- UEFA 슈퍼컵 : 1984
- AS 로마 (1985 ~ 1988)
- 코파 이탈리아 : 1985-86
- 폴란드 축구 국가대표팀(1976 ~ 1988)
- 1982 FIFA 월드컵 : 3위
6. 여담
본디 유벤투스 명예의 거리에 이름을 올릴 50명의 레전드 중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칼치오폴리 사태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유벤투스 팬들에게 찍혀 팬들은 그를 제명할 것을 구단 측에 요청했다. 구단주 안드레아 아녤리에게서 관심종자 취급받은 건 덤. # 이후 팬 투표를 통해 에드가 다비즈가 명예의 거리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3] 그러자 보니엑은 자신은 유벤투스가 아닌 유벤투스의 이미지를 추락시킨 장본인인 루치아노 모지 일당들을 비판했을 뿐이라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1]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세컨드 스트라이커, 스위퍼[2] 보이치에흐 슈체스니나 그제고시 크리호비아크 등도 언급할 수 있겠으나 리그,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의 임팩트가 떨어진다. 1970년대 폴란드의 슈퍼스타들의 경우 법적 제제로 인해 해외 진출이 수월하지 않았다.[3] 또 다른 후보로는 23세의 나이에 백혈병으로 요절한 안드레아 포르투나토가 거론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