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우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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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원나라 말기의 군웅. 원래 성씨는 사씨(謝氏)였는데, 이는 진우량의 할아버지가 데릴사위로 들어가서 진씨가 되었다. 다른 이야기로는 진우량은 원나라의 베트남 원정시기 원나라에 항복하고 황실을 배신한 쩐 왕조 태종의 5남 진익직(陳益稷)의 아들이란 말도 있다.
주원장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다.
2. 생애
원나라 말인 1351년, 홍건적의 난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진우량은 서계홍건군(西系紅巾軍)을 이끌던 서수휘의 천완 정권 휘하에서 활동하였다.[1]
1359년, 천완 정권의 장수인 조보승을 죽이고, 서수휘를 협박하여 강주로 천도하며, 한왕으로 자칭하였다. 이듬해, 진우량은 예문준과 서수휘를 제거하고 국호를 대한(漢), 연호를 대의로 하고 칭제 건원을 하였다.
3. 파양호 대전
이후 진우량은 강서, 호남, 호북 등지에서 주원장과 전투하였다. 장사성과 함께 주원장을 공략하고자 하였으나 장사성이 협조하지 않아 좌절되었다. 1363년, 60만 대군을 이끌고 주원장과 파양호에서 싸웠으나, 크게 패하고 포위를 뚫던 중, 화살을 맞고 전사하였다.
자녀로는 장남 진선아와 둘째 진리 등이 있었는데 모두 파양호 전투 후 주원장에게 포로로 잡혔다. 주원장은 의외로 이들을 후하게 대했고, 특히 진리는 더 이상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아예 명옥진의 아들 명승처럼 고려로 보내서 조용히 살게 했다. 그래서 진리와 후손들은 고려-조선에 정착해서 양산 진씨 일가를 이루게 되었다.
4. 평가
진우량은 원말명초 당시 천하통일의 남쪽에 위치한 4대 유력자 중 하나였으며[4] 군사력이 제일 강해 당시 중국에선 장사성, 진우량 중 한명이 천하통일을 할거라고 예상했지 다른 이가 천하통일을 하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장사성은 재정이 풍부하고 '''진우량'''은 병력이 강했다. 내게는 특별히 내세울 장점이 없었다.
주원장, 천하통일 후 남긴 말.
세기의 전투인 파양호 전투에서 주원장과 달리 전함들의 질 차이가 압도적이었기에 전투 초기에는 오왕 주원장을 압도했으나 주원장이 화약을 이용해 배들을 불바다로 만들고 화살을 쏘아대자 진우량은 그 화살을 맞고 전사한다. 이후에도 장사성이 남아있었으나 오왕이 진우량을 이긴 시점에선 상대가 될 리 없었다. 그래서 진우량은 주원장의 천하 통일의 과정에서 맞닥뜨린 마지막 적으로 보는 시선(인지도)이 많다.
5. 문학에서
김용의 소설 의천도룡기 후반부에 성곤의 제자이자 개방의 장로로서 등장한다. 간계에 능하여 여러 장소와 조직들을 동분서주하는데, 특히 송청서의 타락에 깊이 개입했다. 결국 도사영웅대회에서 성곤의 음모가 분쇄되면서 함께 붙잡힌다. 역사상 진우량의 행적을 고려하면 이후 석방되거나 탈출한 모양인듯. 그 후 명교 의병장 중 하나인 서수휘의 휘하로 들어가 그의 신임을 얻어 활약하다 본색을 드러내 서수휘를 죽이고 그 군세를 탈취, 왕에 등극하지만 파양호 전투에서 눈먼 화살에 눈을 맞고 죽는다.
한국 만화 비천무에서는 꽤 비중높은 인물로, 타루가 가문에게 복수를 꿈꾸는 유진하를 부하로 받아 들인 장본인이다. 겉으로는 유진하를 신뢰하는듯 하지만, 속으론 유진하의 공적을 시기, 동시에 그가 지닌 비천신기를 노리고 있다. 결국 유진하의 뒤통수를 쳐 그의 목숨을 위협하고 그의 군대, 비기도 뺏고자 하지만, 이 사실을 눈치챈 유진하 직속부대인 철기십조가 반란을 일으킨 후 주원장 쪽으로 붙어 버리고 비천신기도 놓쳐 버리는 등, 뒷통수를 친 보람은 없었다. 이후 파양호 전투에서 패배, 불길에 휩싸인 기함에서 허둥대다가 복수 겸 주원장의 의뢰로 쳐들어 온 유진하에게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