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예문관
1. 개요
昌德宮 藝文館
창덕궁 궐내각사 구역에 있는 예문관 청사이다.
예문관은 임금의 말이나 명령을 문서로 적는 기관이었다. 이외에 외교문서를 쓰고 궁중의식 규율을 관장하는 역할도 했다.
고려 말의 예문춘추관이 전신이다. 조선 건국 직후에도 그대로 이어왔으나, 태종 때 예문관과 춘추관으로 나누었다. 세조 때 집현전을 없앤 후, 인재 양성 및 학술 연구 기능 일부를 예문관으로 옮겼다. 그러다 성종 때는 예전 집현전의 관직을 예문관에 두면서 완전히 집현전 시즌 2가 되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홍문관으로 집현전의 직제를 옮겼고, 이후 예문관은 본래의 기능만 수행했다.# 1894년(고종 31년) 갑오개혁 때 홍문관, 춘추관 등과 함께 경연청에 합쳐졌다.#
2. 구조
- 따로 건물이 있는 게 아니라, 인정전 서행각의 일부로 있다. 북쪽으로 향실, 남쪽으로 숭범문이 붙어있다. 순종 이어 직후 정부에서 인정전 알현실로 바꾸었다가 문화재청에서 1990년대 ~ 2000년대에 복원했다.
- 지붕은 맞배지붕, 처마는 홑처마, 공포는 초익공이다. 창방과 장여 사이에 소로를 두었다. 용마루와 내림마루, 추녀마루는 기와로 마감했다. 용두는 용마루 남쪽 끄트머리에 1개 올렸다. 단청은 모루단청으로 칠했다.
- 정면 4칸, 측면 2칸, 총 8칸이다. 실내 구조는 아랫 그림 참조.
- 서향이므로 정면은 서쪽면이다. 정면의 왼쪽 칸에는 빗살교창과 나무판문을, 나머지 칸에는 띠살 문과 빗살교창을 달았다. 측면은 붉은 나무판으로 마감한 모습이다.
- 뒷면의 모습은 정면과 다르다. 중인방을 두고 아래엔 붉은 나무판을 설치했다. 그 위에는 문선을 두고 가운데 창을 두었으며 나머지는 벽으로 마감했다. 문선을 중인방과 바로 붙이지 않고 살짝 띄어 놓았다. 다만, 북쪽 칸(보는 사람 기준 오른쪽) 모습은 또 다르다. 아래에서부터 위로 벽, 환풍을 위한 창, 벽, 빗살교창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