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인류의 가장 오래된 감정은 공포이며, 가장 강력한 공포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다.
Fear is the main source of superstition, and one of the main sources of cruelty. To conquer fear is the beginning of wisdom.
두려움은 미신의 주 근원이자, 잔혹성의 여러 근원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지혜로워지는 첫 걸음은 두려움을 정복하는 것이다."
- 버트런드 러셀
1. 개요
위협이나 위험에 대한 정서적 표현을 의미한다.
말 그대로 생물이 느낄 수 있는 감정 중 가장 역사가 깊고 가장 강력한 감정. 숨 쉬고 먹고 죽는 생물이라면 유전자 단위에 그 기원을 두는 무지막지한 개념. 뭔가를 두려워하고 꺼리며 거부하게 된다. 심지어 두려움에 미치는 경우도 있다. 공포를 일으키는 요인은 여러가지가 존재한다.
보통 '불안'에서 시작해 그 불안 요소가 점점 커지며 공포로 확대가 되는 식으로 증상이 심해지는데, 이는 매우 정상적인 것이다.[2] 다만 그 정도가 심각해 병적인 것을 공포증이라고 한다.
공포심이 생기는 것은 포유류 같은 고등 동물에게서만 나타나는 현상으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예쁜꼬마선충 같은 단순한 선형동물에게서도 이런 반응이 나타난다는 최신 연구 결과가 나왔다.
2. 공포를 일으키는 요인
유명 공포 소설 작가인 스티븐 킹은 공포를 '''gross-out''', '''horror''', '''terror''' 세가지로 크게 분류했다.
첫번째 '''gross-out'''은 질병을 유발하거나 비위생적인 대상에 대해 본능적으로 느끼는 역겨움과 연결된 감정으로, 예를 들어 평범한 사람이 바퀴벌레를 마주했을 때, 따지고 보면 독도 이빨도 침도 없는 조막만한 벌레 한마리 따위가 인간에게 이렇다 할 물리적 위협이 되지는 않음에도 소스라치게 놀라 겁을 먹고 바퀴벌레를 피하는 상황이 이것이며, 환공포증으로 흔히 알려진 현상 또한 원형 자체에 대한 공포증이라기 보단 불규칙한 원형이 밀집해 있는 곤충의 알이나 피부병으로 인한 물집 등을 연상하게 함으로써 이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에 의한 것이다.
두번째 '''horror'''는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인간이 어떻게 대처할 수 없는 거대한 사건, 즉 자연재해나 전쟁, 혹은 나를 덮치는 집채만한 호랑이 등이 해당한다.
세번째 '''terror'''는 앞선 두 공포와 성격을 달리 하는데, gross-out과 horror는 인간이 자신에게 해가 되는 대상을 피해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본능인 반면 terror는 자신이 안전한지 불안전한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느끼는, 소위 말해 소름이 끼치는 상황을 말한다. 불쾌한 골짜기가 대표적인 현상. 예컨대 가발을 쓴 마네킹 머리가 잔뜩 진열된 가발 가게 앞을 지나갈 때면 직접적으로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대상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불쾌감과 공포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매우 많은데, 그것이 바로 terror 이다.
물론 큰 카테고리로 묶었을 경우 그렇다는 것이고, 공포를 일으키는 요인들을 세세하게 적자면 아마도 끝도 없이 길어진다. 그중 하나의 예를 들자면 인간은 높았다가 낮아지는 일명 사이렌 소리에 공포심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공포 영화에서는 그러한 청각에 대한 공포 요소를 더한다. 생물이 살아오면서 겪은 경험에 의해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생선을 아무렇지 않게 손질하고 섭취하지만 누군가는 생선의 눈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겁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생선 눈 하나 보면서 기겁하는 사람은 또 의외로 고어물을 아무렇지 않게 감상하기도 한다.
짐승도 마찬가지로, 예를 들자면 다른 것은 전혀 안 무서워하는데 유독 가죽 구두만 보면 겁에 질리는 개가 있기도 하다. 이는 사실 이 개는 유기견 출신으로, 버림받기 전 원래 주인이 툭하면 가죽 구두를 신고 그 개를 걷어찼던 기억이 남아있기 때문. 그러나 이는 이 개만 그런 것이고 다른 개들은 가죽 구두를 하나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과거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공포는 일종의 거세불안 혹은 아버지에 대한 유년기의 좋지 못한 기억이 무의식 속에 억눌려 있다가 불현듯 표출된 것일 수 있다고 여겨지기도 했다. 이후 행동주의에서는 존 왓슨의 앨버트 실험에서 보듯이 이 역시 후천적으로 학습된 부분이 클 수 있다고 생각되었고, 체계적 교정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고도 보았다. 한편 진화심리학에서는 특정 공포는 인간에게 적응적이라고 말하는데,[3] 이는 매우 많은 사람들이 거미나 뱀을 공통적으로 무서워하는 것을 설명한다. 또한 신경심리학에서는 교감신경계의 각성이 공포를 유발함을 밝혔으며, 인지주의는 이러한 각성에 해석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현대 심리학적으로 공포의 근원은 러브크래프트의 말처럼 '''미지'''에 대한 반응이 당위로 여겨진다. 진화생물학적으로는 모르는 걸 회피하는 행동 기제가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데, 이게 '죽음에 대한 공포'로 연결된다. 물론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렇게 따로 구분하더라도 죽음이 본질적으로 삶에 익숙한 우리에게 미지의 것으로 다가오기 때문에[4] 두려운 것이란 게 일반적인 학계 해석이다.[5] 철학적으로 어차피 어떤 사물 현상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는 건 감각기의 한계로 인해 존재할 수 없다고 한다.
3. 특징
'''공포는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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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심에 빠진 생명체는 원래와는 다른 반응을 보이곤 한다. 그것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에서 비롯된 방어적 행동일수도 있고, 혹은 두려움에 다른 생각이나 행동을 구사할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해지는 모습일수도 있다. 어느쪽이든 공포심에 빠지면 일반적으로는 구사할 수 없는 행동을 선보인다고 볼 수 있다.'''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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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의 경우 특히 공포심의 효율이 아주 좋았는데, 공포심에 빠지면 전의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국가와 민족을 막론하고 각 지역이나 단체의 군인들은 스스로를 최대한 크고 강해보이게 꾸미는것이 일반적이었다. 기술의 발전으로 반대로 공포심 조장보다는 기능과 실용성을 우선시하는 탓에 이러한 관습이 많이 사라졌으나[7] , 원시적인 문명에서는 아직 그런 관습이 남아있다.
다만 현대 문명이건 고대 문명이건 불변하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죽음과 미지에 대한 공포심을 이용하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매복 후 기습이나 예상치못한 강습을 통해 적을 공략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유효한 전법이다. 기술과 교리가 발달해도 인간이 본능적으로 지니고 있는 공포심은 바뀔 수 없기 때문. 기술이 많이 발달하여 적이 접근도 하기 전에 벌집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가능한 현대에도 착검돌격이 성과를 내는 까닭은 이러한 공포심의 덕이 크다.
상기한 '싸움'이란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 물리적으로 총칼을 겨누며 하는 일반 싸움뿐만 아니라 정치계 싸움에서도 잘 쓰이는것이 바로 공포심이였다. 주로 독재자와 사이비 종교 교주가 잘 사용하는 방법으로, 무자비한 철권 통치를 통해 신하들과 국민 내지 신도나 회원들의 공포감을 조성하여 자신을 거스를 수 없게 만들어 국가나 단체 통제하는 식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위에 있는 북한이 바로 이런 방식으로 민중을 통제하고 있다.
테러리스트 단체인 ISIS나 멕시코 마약 카르텔도 주로 쓰는 수법인데, 인질을 매우 잔혹하게 고문하거나 죽여 그 것을 널리 비추면 사람들이 겁에 질릴테니 자신들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 할 것이라는 논리. 정규군처럼 정밀 폭격이나 거대한 군사력 따위가 없으니 인간의 공포심을 이용하는 방법이 훨씬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게 너무 심하면 도리어 적에게 더욱 심한 증오감을 부추기고[8] 이미 지겹다 못해 익숙해져버린 대중들에게도 반발심만 커지게 되어 역효과만 생긴다. 다시 말해, 익숙해진 공포는 새로운 분노를 낳는다. 체첸클리어 이후의 러시아 정부의 반응이나 하루하루 망해가는 ISIS,경찰들에게 때려잡혀 점조직화 되어버린 마약 카르텔, 북한 탈북자들이 쏟아지는 현실들이 이를 잘 반영 해주고 있다.
그리고 광고에서도 이것을 아주 잘 이용하고 있다. 바로 보험광고. 질병 혹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과도하게 조장하여 당장 보험을 들어놓지 않으면 집이 파탄날것 처럼 이야기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서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조성하는 부호, 글, 소리, 그림, 동영상''' 등을 반복적으로 보내면 현행법 위반으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그런데 사실 인간이 마냥 공포심을 무서워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공포를 즐기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경우는 둘 중 하나인데, 남의 공포를 보면서 희열을 느끼거나, 아니면 자신이 공포를 느끼면서 희열을 느끼는 경우이다. 전자의 경우는 대체적으로 그 공포 유발 원인이 자기 자신이므로 남들이 자신으로 인해 공포에 떠는 것을 보며 우월감을 느끼기에 즐거워하는 것이며[9] , 후자의 경우는 공포 자체가 아닌, 공포를 느끼고 나서 찾아오는 안도감이나, 공포로 인한 짜릿한 기분을 쾌감으로 인한 짜릿함과 혼동하는 등의 이유로 즐기게 되는 것이다. 단, 이런 쾌감이 성립하려면 공포를 유발하는 대상으로부터 자신이 안전할 것이란 일말의 확신이나 회피 수단이 우선적으로 존재해야 한다.[10] 이는 슬픈 내용의 작품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과 상통한다.
따라서 후자의 인원들을 노리고 여름철에는 집중적으로 호러나 고어, 그로테스크한 영화와 TV 프로그램들이 줄줄히 선보이게 되는 관습 아닌 관습이 세계적으로 존재하는 흥미로운 현상을 볼 수 있다. 하도 이런 경향이 오래되다보니 이제는 '공포물은 여름에 봐야 제 맛'이란 인식도 생길 정도. 롤러코스터 같은 놀이기구도 이에 해당한다. 타고있을땐 죽을 맛이었다가 내릴때 안도감과 동시에 찾아오는 쾌감에 또 다시 타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인터넷 상에서는 어처구니 없음을 넘어 두려움까지 느껴질만큼 생각없는 행동을 하는 민폐, 무개념들을 가리켜 공포의~ 라고 하는 유형의 글이 있다. 예) 공포의 쓴맛
4. 대공포(大恐怖), Great Terror
어떻게 가라앉힐 수 없는 민중 사이의 공황, 또는 공황으로 인한 소요현상을 대공포라고 말한다.
프랑스어의 '대공포(Grande Peur)가 용어의 시초로 보인다. 이는 프랑스 혁명 시기를 전후해서 농촌 지역의 농민 봉기가 잦았는데, 이렇게 쫓겨난 귀족들이 수도의 군대를 이끌고 돌아와서 농민들을 모조리 학살할 것이라는 소문이 프랑스 전역에 퍼졌다. 이를 접한 농민들은 패닉 상태에 빠져서 더욱 과격해졌는데, 이 시기의 프랑스 농촌의 분위기를 대공포라고 부른다. 프랑스 혁명 시기 중 애나 어른이나 반혁명분자로 몰리면 곧장 단두대로 직행하던 로베스피에르의 국민공회 시절을 가리킨다는 언급도 있지만 시기적 유사성과 더불어 인지도가 높기 때문에 생긴 착각일 가능성이 높다.
이 대공포는 엄청나게 확대되어서 장악한 것이라고는 파리 정도였던 프랑스 혁명정부 정도는 가볍게 날려버릴 수도 있을 정도의 대사건이 되었기 때문에, 프랑스 혁명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것이 바로 봉건제 폐지 선언이었을 정도였다. 그 이유는 당시 농민들이 빵값 상승이나 징세청부업자의 농간, 귀족들의 보복에 대한 두려움 등을 봉건제라는 단어로 표현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경제체제로서의 봉건제는 오래전에 끝났고, 프랑스 혁명정부 인사들 정도 되면 이를 상식선으로 파악할 정도로 당시 지식인들중에서도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사건 해결이 우선이기 때문에 상징적 의미에서 봉건제 폐지 선언이 등장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것이 주효해서 대공포는 약화되기 시작한다.
이오시프 스탈린이 저지른 대숙청 시기를 영어에서는 Great Terror라 부르기도 한다.
세계대전Z에서는 병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며 전 지구적인 좀비사태가 발생해 인류의 존속이 심각하게 위협받은 기간을 이르는 말. 도시들이 좀비들에게 점령되고 수억에 달하는 사상자가 발생하며 유래없는 생명의 위협에 공포에 떠는 인류와 그들을 지탱해줄 정부와 사회는 제 구실을 못하게 되었다. 대공포의 원인은 일개 개인의 위기가 아니라 인류 전체가 멸절해가는 그런 충격적인 상황에 무방비로 노출된 인간들의 광기가 아닐까.
'대공포 이후' 라는 말이 자주 나오긴 하지만 시기상의 언급은 없다. 대충 좀비가 각지에 나타나는 시기나 용커스 전투 이후부터, 인간이 좀비에게 빼앗긴(정확히는 몰려오는 좀비들을 피해 달아난) 영토를 탈환하고 정부나 단체 등이 안정을 되찾기까지의 기간이라고 보면 되겠다.
북미권에서는 대공포(Great Fear)를 1969년부터 캐나다의 고속도로변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던 여성들이 연쇄살해된 사건으로 당시에는 흔하게 이루어지던 히치하이킹을 꺼리게 되었던 시기를 말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
5. 관련 문서들
[1] 앞의 것은 남성형, 뒤의 것은 여성형 명사이다.[2] 벌이 붕붕 날아다니면 보통 무서워하는 사람들을 떠올려보자.[3] 까마득한 낭떠러지를 보며 무서워하는 부류가 그렇지 않은 부류에 비해 당연히 생존률이 높다. 성욕이 왕성한 부류가 번식률이 높고, 동족 집단의 살해를 터부시하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 물론 그렇다고 아예 미지에 대한 호기심이 존재하지 않으면 앉은 자리에서 죽어야 하니, 본능으로 설정된 부분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4] 완전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본 사람은 없기 때문에 사람이 죽은 이후에 어떻게 되는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죽음 이후를 알아낼 방법도 없다. 사후 세계를 경험했다거나 유령이나 귀신을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 역시 신뢰할 수 없으며, 종교에서 말하는 사후 세계에 대한 내용들은 해당 종교의 가르침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파하고 신앙심을 독려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창작된 이미지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예를 들자면, 인간이 살면서 지었던 죄에 대한 벌로써 죽은 뒤에 지옥으로 끌려가 오랜 세월동안 끔찍한 고통을 받게 된다는 종교적 이미지의 '지옥'은 "나쁜짓 하지 말고 착하게 살라"는 가르침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파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5] 자살자가 구태여 남은 가족을 생각한다던가, 사후세계를 상상하는 건 죽음을 보다 자신이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하게 양화하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이것 때문인지 유령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죽는 걸 그렇게 두려워하지는 않는다는 설정이 창작물에서 가끔 등장한다.[6]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이 그의 통솔력의 비결을 묻자,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한 대답으로 알려져 있다.[7] 노즈아트 등의 장식은 일부 남아있기도 하다.[8] 2차 대전 당시 유독 적 저격수나 슈츠스타펠들이 포로로 살아남기 힘들었던 사실을 생각하면 된다.[9] 범인이 반드시 범행 후 자신의 범행 장소로 돌아온다는 추리 법칙도 바로 이러한 인간의 심리를 근거로 세워진 법칙 중 하나이다.[10] 즉, 공포 영화를 본다거나 공포 게임을 할 경우 영화나 게임의 내용이 아무리 무섭더라도 실제의 자신은 안전하다는 확신이 있으며, 도저히 못 참겠다면 도중에 언제든지 중단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공포를 '즐기는' 것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