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1. 국보 제256호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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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개요
初雕本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一. 고려 초기, 현종 재위시기인 1011년~1031년 사이에 만들어진 초조대장경의 일부. 현재 경기도 용인시의 경기도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국보 제256호로 지정되어 있다.
1.2. 내용
가로 1223.5㎝, 세로 28.5㎝.
지금으로부터 약 천년 전인 1011년~1031년 사이에 두루마리 형태로 제작된 대방광불화엄경 주본으로, 길이는 펼쳤을 때 약 12.5미터 정도 되는 대형 불경이다.
고려 현종 2년(1011년)에 거란의 대대적인 침입이 일어나자 당시 정부에서 부처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기 위해 초조대장경을 제작하였는데, 이 때 간행된 초조대장경의 일부분이다. 이 초조대장경은 고려 현종 때인 1011년에 처음 제작을 시작하여 10여 년 동안 판수제 등 개보판 대장경의 일부를 수정하여 완성한 것이다. 이 때의 초조대장경의 규모는 대략 6천 권 정도의 분량으로서 당시의 한역(漢譯) 대장경으로서는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없었던 가장 방대한 세계기록유산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초조대장경은 고려 고종 19년인 1232년에 몽골군이 침입하였을 때 모두 불타버리고 말았다. 이에 몽골 제국과의 항전이라는 호국의 의지를 담아 다시 대장경 판각을 시도한 것이 바로 현존하는 재조대장경(팔만대장경)이다.
초조대장경은 고려 초기의 불교적 역량과 목판 인쇄술의 발전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귀중한 민족적 성취라고 할 수 있다. 이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은 얼마 남지 않는 초조대장경 중에서도 유일한 권1로, 권수에 표전문과 총목이 수록되어 있고, 과거 초조대장경의 저본으로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완전히 소실되고 없는 중국 북송 대장경에 수록되어 있던 측천무후의 친필 서문이 붙어 있으며, 권말에 역경에 참여한 승려의 소속과 역할이 기록되어 있어 초조판 대장경의 원형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써, 전세계에 현존하는 근현대 대장경들의 뿌리가 된 고려 팔만대장경의 최초 원류라 할 수 있는 초조대장경의 일부분으로 그 세계사적 가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1990년 9월 20일에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되었다.
1.3. 바깥고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
- 두산백과 :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주본(권1)
- 향토문화전자대전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권1)
- 한국어 위키백과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
1.4. 국보 제256호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기본 사상으로 하고 있다. 화엄종의 근본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불교경전 가운데 하나이다.
이 책은 고려 현종 때(재위 1011∼1031) 부처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고자 만든 초조대장경 가운데 하나로, 당나라의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화엄경』주본 80권 중 권 제1이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두루마리처럼 말아서 보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전체 크기는 세로 28.5㎝, 가로 1223.5㎝이다.
초조대장경은 이후에 만들어진 해인사대장경(재조대장경 또는 고려대장경)과 비교해 볼 때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목판의 새김이 정교한 반면에 해인사대장경과 글자수가 다르고 간행연도를 적은 기록은 없으며, 군데군데 피휘(避諱:문장에 선왕의 이름자가 나타나는 경우 공경과 삼가의 뜻을 표시하기 위하여 글자의 한 획을 생략하거나 뜻이 통하는 다른 글자로 대치하는 것)와 약자(略字)가 나타난다. 또 초조대장경은 책의 장수를 표시하는데 있어서 대체로 ‘장(丈)’자나 ‘폭(幅)’자를 쓰는 데 비해 해인사대장경은 ‘장(張)’자로 통일되어 있다.
이 책에서도 ‘경(敬)’자의 한 획이 빠져있는 점, 각 장의 글자수가 23행 14자로 해인사대장경의 24행 17자와 다른 점, 책의 장수 표시로 ‘장(丈)’자를 쓰고 있는 점, 간행기록이 없는 점 등을 통해서 초조대장경의 특징을 살필 수 있다.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중 유일한 권 제1로, 11세기경에 찍어낸 초조대장경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2. 국보 제257호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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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개요
初雕本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二十九. 고려 초기, 현종 재위시기인 1011년~1031년 사이에 만들어진 초조대장경의 일부. 현재 충청북도 단양군의 구인사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국보 제257호로 지정되어 있다.
2.2. 내용
가로 891cm, 세로 28.5cm.
11세기 초에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대장경으로, 고려 현종 2년(1011년)에 거란의 대대적인 침입이 일어나자 당시 정부에서 부처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기 위해 초조대장경을 제작하였는데, 이 때 간행된 초조대장경의 일부분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써, 전세계에 현존하는 근현대 대장경들의 뿌리가 된 고려 팔만대장경의 최초 원류라 할 수 있는 초조대장경의 일부분으로 그 세계사적 가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국보 제256호와 함께 1990년 9월 20일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되었다.
2.3. 바깥고리
2.4. 국보 제257호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기본 사상으로 하고있다. 화엄종의 근본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불교경전 가운데 하나이다.
이 책은 고려 현종 때(재위 1011∼1031) 부처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고자 만든 초조대장경 가운데 하나로, 당나라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화엄경』주본 80권 중 권 제29이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종이를 길게 이어붙여 두루마리처럼 말아서 보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전체 크기는 세로 28.5㎝, 가로 891㎝이다.
초조대장경은 이후에 만들어진 해인사대장경(재조대장경 또는 고려대장경)과 비교해 볼 때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목판의 새김이 정교한 반면에 해인사대장경과 글자수가 다르고 간행연도를 적은 기록은 없으며, 군데군데 피휘(避諱:문장에 선왕의 이름자가 나타나는 경우 공경과 삼가의 뜻으로 글자의 한 획을 생략하거나 뜻이 통하는 다른 글자로 대치하는 것)와 약자(略字)가 나타난다. 또 초조대장경은 책의 장 수를 표시하는데 있어서 대체로 ‘장(丈)’자나 ‘폭(幅)’자를 쓰는 데 비해 해인사대장경은 ‘장(張)’자로 통일되어 있다.
이 책도 장수를 ‘장(丈)’자로 표시하고 있는 점, 간행기록이 없는 점, 글자수가 23행 14자인 점, ‘경(竟)’자에 한 획이 빠진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초조대장경 판본임을 알 수 있다.
국내에서 발견된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 중 유일한 권29로, 11세기경에 찍어낸 초조대장경의 원형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3. 국보 제265호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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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개요
初雕本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十三. 고려 초기, 현종 재위시기인 1011년~1031년 사이에 만들어진 초조대장경의 일부. 현재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의 삼성출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국보 제265호로 지정되어 있다.
3.2. 내용
가로 1004㎝, 28.5㎝.
지금으로부터 약 천년 전인 1011년~1031년 사이에 두루마리 형태로 제작된 대방광불화엄경 주본으로,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두루마리처럼 말아서 보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세로 28.5㎝, 가로 46.3㎝ 크기의 종이 24장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써, 전세계에 현존하는 근현대 대장경들의 뿌리가 된 고려 팔만대장경의 최초 원류라 할 수 있는 초조대장경의 일부분으로 그 세계사적 가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1991년 7월 12일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되었다.
3.3. 바깥고리
3.4. 국보 제265호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기본사상으로 하고 있다. 화엄종의 근본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불교경전 가운데 하나이다.
이 책은 당나라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화엄경』 주본 80권 중 권 제13에 해당하며, 고려 현종 때(재위 1011∼1031) 부처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고자 만든 초조대장경 가운데 하나이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두루마리처럼 말아서 보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세로 28.5㎝, 가로 46.3㎝ 크기가 24장 연결되어 있다.
초조대장경은 이후에 만들어진 해인사대장경(재조대장경 또는 고려대장경)과 비교해 볼 때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해인사대장경보다 글자수가 적고 새김이 정교한 반면에 간행연도를 적은 기록은 없으며, 군데군데 피휘(避諱:문장에 선왕의 이름자가 나타나는 경우 공경과 삼가의 뜻으로 글자의 한 획을 생략하거나 뜻이 통하는 다른 글자로 대치하는 것)와 약자(略字)가 나타난다. 또 초조대장경은 책의 장수를 표시하는데 있어서 대체로 ‘장(丈)’자나 ‘폭(幅)’자를 쓰는 데 비해 해인사대장경은 ‘장(張)’자로 통일되어 있다.
이 책의 경우에도 한 행의 글자수가 14자로 해인사대장경의 17자와 구분되고 ‘경(竟)’자의 마지막 한 획을 생략하고 있다. 인쇄상태나 종이의 질 등 전체적인 품격으로 보아『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주본 권1(국보 제256호), 권29(국보 제257호), 권74(국보 제279호), 권75(국보 제266호)와 같이 초조대장경이 만들어진 11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4. 국보 제266호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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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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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75
4.1. 개요
初雕本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二, 七十五. 고려 초기, 현종 재위시기인 1011년~1031년 사이에 만들어진 초조대장경의 일부. 총 2권 2축. 현재 서울특별시 관악구의 호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국보 제266호로 지정되어 있다.
4.2. 내용
권2 : 가로 46.5㎝, 세로 28.7㎝
권75 : 가로 46.1㎝, 세로 29.8㎝
11세기 초에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대장경으로, 고려 현종 2년(1011년)에 거란의 대대적인 침입이 일어나자 당시 정부에서 부처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기 위해 초조대장경을 제작하였는데, 이 때 간행된 초조대장경의 일부분이다.
상하단변에 상하 간 크기는 22.3㎝(권2), 22㎝(권77)이며, 장 크기는 28.7㎝×46.5㎝(권2), 29.8㎝×46.1㎝(권77)이라고 한다. 1011년~1030년 당시 지현(智賢)이란 한 한국인 각수가 목판을 판각하여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써, 전세계에 현존하는 근현대 대장경들의 뿌리가 된 고려 팔만대장경의 최초 원류라 할 수 있는 초조대장경의 일부분으로 그 세계사적 가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1991년 7월 12일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되었다.
4.3. 바깥고리
4.4. 국보 제266호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우리나라 화엄종의 근본경전으로, 부처와 중생은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기본 사상으로 하고 있다. 『보현행원품』은 화엄경 가운데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방법을 보현보살이 설법한 부분이다.
이 책은 당나라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화엄경』 주본 80권 가운데 권2, 권75에 해당한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종이를 이어붙여 두루마리처럼 만들었는데, 크기는 권2가 세로 28.7㎝, 가로 46.5㎝이고 권75가 세로 29.8㎝, 가로 46.1㎝이다.
본문의 글자가 빠진 것이 없고 내용상 다른 자는 없으나 같은 글자라도 대장도감<고종 23년(1236)에 대장경을 만들기 위해 설치한 기구>에서 찍어낸 책에 비해 약자(略字)를 많이 썼다. 본문 중 ‘경(敬)’자와 ‘경(竟)’자에 한 획이 빠져있는 점으로 보아 송나라 때 만들어진 판본을 바탕으로 새긴 것으로 보인다. ‘경(敬)’자와 ‘경(竟)’자는 송나라 태조의 할아버지 이름으로 왕의 이름을 피하기 위해 한 획을 줄여서 쓴 것이다.
간행기록이 없어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고려 초기 대장경 가운데 하나이며, 12세기경에 찍어낸 것으로 보인다.
5. 국보 제277호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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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개요
初雕本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三十六. 고려 초기, 현종 재위시기인 1011년~1031년 사이에 만들어진 초조대장경의 일부. 현재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한솔제지 산하 뮤지엄산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국보 제277호로 지정되어 있다.
5.2. 내용
가로 891㎝, 세로 28.5㎝ X 17장
지금으로부터 약 천년 전인 1011년~1031년 사이에 두루마리 형태로 제작된 대방광불화엄경 주본으로,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두루마리처럼 말아서 보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가로 891㎝, 세로 28.5㎝ 크기의 종이 17장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써, 전세계에 현존하는 근현대 대장경들의 뿌리가 된 고려 팔만대장경의 최초 원류라 할 수 있는 초조대장경의 일부분으로 그 세계사적 가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1991년 7월 12일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되었다.
5.3. 바깥고리
5.4. 국보 제277호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기본 사상으로 하고 있다. 화엄종의 근본 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크게 영향을 미친 불교경전 가운데 하나이다.
이 책은 고려 현종 때(재위 1011∼1031) 부처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고자 만든 초조대장경 가운데 하나로, 당나라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화엄경』주본 80권 중에 권 제36이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종이를 길게 이어붙여 두루마리처럼 말아서 보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세로 28.5㎝, 가로 891㎝의 종이 17장을 이어붙인 것이다.
초조대장경은 이후에 만들어진 해인사대장경(재조대장경 또는 고려대장경)과 비교해 볼 때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목판의 새김이 정교한 반면에 해인사대장경과 글자수가 다르고 간행연도를 적은 기록은 없으며, 군데군데 피휘(避諱:문장에 선왕의 이름자가 나타나는 경우 공경과 삼가의 뜻으로 글자의 한 획을 생략하거나 뜻이 통하는 다른 글자로 대치하는 것)와 약자(略字)가 나타난다. 또 초조대장경은 책의 장수를 표시하는데 있어서 대체로 ‘장(丈)’자나 ‘폭(幅)’자를 쓰는 데 비해 해인사대장경은 ‘장(張)’자로 통일되어 있다.
이 책도 장수를 ‘장(丈)’자로 표시하고 있는 점, 글자수가 23행 14자로 해인사대장경의 24행 17자 다른 점, ‘경(敬)’자에 한 획이 빠진 점 등으로 볼 때 초조대장경 판본임을 알 수 있다. 인쇄상태와 종이의 질 등을 고려해 볼 때 고려 현종 때인 11∼12세기경에 찍어낸 것으로 추정된다.
6. 국보 제279호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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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개요
初雕本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七十四. 고려 초기, 현종 재위시기인 1011년~1031년 사이에 만들어진 초조대장경의 일부. 현재 충청북도 단양군의 구인사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국보 제279호로 지정되어 있다.
6.2. 내용
가로 46㎝, 세로 28.7㎝.
11세기 초에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대장경으로, 고려 현종 2년(1011년)에 거란의 대대적인 침입이 일어나자 당시 정부에서 부처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기 위해 초조대장경을 제작하였는데, 이 때 간행된 초조대장경의 일부분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써, 전세계에 현존하는 근현대 대장경들의 뿌리가 된 고려 팔만대장경의 최초 원류라 할 수 있는 초조대장경의 일부분으로 그 세계사적 가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1993년 6월 15일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되었다.
6.3. 바깥고리
6.4. 국보 제279호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기본 사상으로 하고 있다. 화엄종의 근본 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크게 영향을 미친 불교경전 가운데 하나이다.
이 책은 당나라 실차난타가 번역한 『화엄경』 주본 80권 중 권 제74에 해당하며, 고려 현종 때(재위 1011∼1031) 부처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고자 만든 초조대장경 가운데 하나이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두루마리처럼 말아서 보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한 장의 크기는 세로 28.7㎝, 가로 46㎝이다.
초조대장경은 이후에 만들어진 해인사대장경(재조대장경 또는 고려대장경)과 비교해 볼 때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해인사대장경보다 글자수가 적고 새김이 정교한 반면에 간행연도를 적은 기록은 없으며, 군데군데 피휘(避諱:문장에 선왕의 이름자가 나타나는 경우 공경과 삼가의 뜻으로 글자의 한 획을 생략하거나 뜻이 통하는 다른 글자로 대치하는 것)와 약자(略字)가 나타난다. 또 초조대장경은 책의 장수를 표시하는데 있어서 대체로 ‘장(丈)’자나 ‘폭(幅)’자를 쓰는데 비해 해인사대장경은 ‘장(張)’자로 통일되어 있다.
이 책의 경우에도 ‘경(敬)’,‘경(竟)’,‘경(鏡)’자의 마지막 한 획이 생략되고, 본문의 글자수도 한 행에 14자로 해인사대장경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인쇄상태나 종이의 질로 보아『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주본 권1(국보 제256호), 권29(국보 제257호), 권13(국보 제265호), 권75(국보 제266호)와 같이 11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7. 보물 제1191호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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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내용
初雕本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三十. 고려 초기, 현종 재위시기인 1011년~1031년 사이에 만들어진 초조대장경의 일부. 현재 강원도 원주시의 한솔제지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보물 제1191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려 현종 2년(1011년)에 거란의 대대적인 침입이 일어나자 당시 정부에서 부처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기 위해 초조대장경을 제작하였는데, 이 때 간행된 초조대장경의 일부분이다. 이 초조대장경은 고려 현종 때인 1011년에 처음 제작을 시작하여 10여 년 동안 판수제 등 개보판 대장경의 일부를 수정하여 완성한 것이다.
1994년 1월 5일에 대한민국의 보물로 지정되었다.
7.2. 바깥고리
7.3. 보물 제1191호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기본사상으로 하고 있다. 화엄종의 근본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크게 영향을 끼친 경전이다.
당나라의 실차난타가 번역한『화엄경』주본 80권 가운데 권30의 내용을 1책으로 엮었으며, 고려 현종 때 새긴 초조대장경 가운데 하나이다. 이 책은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종이를 이어붙여 두루마리처럼 말은 형태이며, 보존상태는 양호하나 표지가 없어지고, 첫째장에 제목 등 약 20여자가 없어졌다. 책 제목아래 “新譯(신역) ”이란 표시가 있어서 이 책이 화엄경 주본 80권을 옮겨 적었음을 알 수 있다.
초조대장경은 거란의 침임을 막기 위해 판각된 우리나라 최초의 대장경으로, 해인사대장경보다 글씨가 힘이 있고, 새김이 정교한데, 매 행(行)의 글자수가 14자로 해인사본의 17자와 분명하게 구분되는 특징을 지닌다. 이 초조본은 종이질이나 인쇄상태로 보아 11세기 경에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8. 보물 제1205호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67,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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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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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77
8.1. 내용
初雕本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六十七, 七十七. 고려 초기, 현종 재위시기인 1011년~1031년 사이에 만들어진 초조대장경의 일부. 현재 인천광역시 연수구의 가천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보물 제1205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려 현종 2년(1011년)에 거란의 대대적인 침입이 일어나자 당시 정부에서 부처님의 힘으로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기 위해 초조대장경을 제작하였는데, 이 때 간행된 초조대장경의 일부분이다. 이 초조대장경은 고려 현종 때인 1011년에 처음 제작을 시작하여 10여 년 동안 판수제 등 개보판 대장경의 일부를 수정하여 완성한 것이다.
1994년 7월 29일에 대한민국의 보물로 지정되었다.
8.2. 바깥고리
8.3. 보물 제1205호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기본사상으로 하고 있다. 화엄종의 근본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크게 영향을 끼친 경전이다.
당나라의 실차난타가 번역한『화엄경』주본 80권을 고려 현종 때 목판에 새긴 초조대장경이다. 권67·77의 2권을 닥종이에 인쇄한 목판본으로 종이를 이어붙인 두루마리 형태이며, 2권 모두 표지와 첫째장·본문 등이 약간씩 없어졌다. 제목 아래 ‘신역(新譯)’이란 표시가 있어 이 책이 주본임을 알 수 있다. 책 내용은 선재동자(善財童子)가 53인의 고승을 찾아가는 구도의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초조대장경은 거란의 침입을 막기위해 판각된 우리나라 최초의 대장경으로, 해인사대장경보다 글씨가 힘이 있고, 새김이 정교한데, 매 행(行)의 글자수가 14자로 해인사본의 17자와 분명하게 구분되는 특징을 지닌다.
간행기록이 없지만 종이질이나 인쇄상태 등으로 보아 11세기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9. 보물 제1940호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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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내용
初雕本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41. 고려 초기, 현종 재위시기인 1011년~1031년 사이에 만들어진 초조대장경의 일부. 현재 경상북도 경산시의 영남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보물 제1940호로 지정되어 있다.
가로 826㎝, 세로 28.8㎝ 길이의 두루마리형 불경이다. 2017년 5월 8일에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되었다.
9.2. 바깥고리
9.3. 보물 제1940호
영남대 소장의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주본 권41은 실차난타가 39품으로 신역한 80권본 중 권41이다. 이 경전은 각 장의 행자수가 23행 14자로 재조본(팔만대장경)의 해당 경전의 24행 17자본과는 다르다. 이렇듯 이 경전은 소실된 초조본의 저본계통과 재조본과의 차별성을 밝힐 수 있는 경전이자 해당 권은 현재 유일하게 전하는 희귀한 경전이다. 국가문화재(보물)로 지정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