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마가야 파이터즈 스타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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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2군 홈구장. 치바현 카마가야시에 있는 닛폰햄 파이터즈 타운 내에 자리한다.
2. 역사
2.1. 현재의 위치로 오기까지
도에이 플라이어즈 시절인 1961년에 가나가와현 카와사키시의 한 하천 둔치에 연습장 및 숙소를 건설해 2군 홈경기 및 연습경기를 진행했었고, 이후 닛폰햄 파이터즈가 되면서 "닛폰햄 다마가와 베이스볼 그라운드"라는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었는데 하천둔치 근처에 지어져서 강의 범람에 영향을 받았고, 바로 옆에 기찻길이 지나가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소음으로 인해 경기에 지장을 받기도 했다. 또한 지은 지 오래된 경기장이라 관람시설 미비에 심지어 화장실과 식당이 없어서 볼일도 잔디에서, 선수들의 식사도 팬들과 함께 잔디밭에서 뒹굴며 먹는 안습한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여러가지 문제가 겹치자 1992년부터 가나가와현립 야구장으로 구장을 옮겼다. 하지만 기존 훈련장 및 숙소는 닛폰햄 다마가와 베이스볼 그라운드에 자리하여 이동하는 데 불편이 있었고, 이에 2군 야구장 건설계획을 세우게 된다. 치바현 카마가야시에 야구장 건설이 확정되었고 이에 반발한 가나가와현 주민들이 반대하기도 했으나 결국 1995년 11월에 야구장 건설이 착공, 1997년 3월에 야구장이 완공되었다.
개장 후 첫 경기는 1997년 3월 8일에 열린 치바 롯데 마린즈와 닛폰햄 파이터즈 1군간의 맞대결이었으며, 이후 시범경기를 이곳에서 치르기도 한다.
2.2. 1군의 연고지 이전 이후
2004년 1군이었던 닛폰햄 파이터즈가 도쿄에서 홋카이도로 연고지 이전을 하면서 2군도 이동할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왔으나, 1군의 연고지 이전과 별개로 2군 구장은 그대로 치바에 남게 되었다.
옮기지 않은 이유로 몇가지가 있는데 우선, 이스턴리그의 6개 구단[2] 들이 모두 수도권 지역에 밀집되어 있었기 때문에 만약 2군구장이 홋카이도로 뜨게되면 이동에 엄청난 제약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날씨가 추운 홋카이도는 실내 야구장이 삿포로 돔뿐이기 때문에(야간경기 가능한 구장은 아사히카와 스타르핀 구장까지 합해 단 두곳) 야구하기에도 좋지 않은 위치였다는 점이 걸림돌이었고, 옛 연고지인 도쿄와 그 일대에 남아있는 팬덤을 유지하고자 하는 의도도 반영된 것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1군 경기장과 2군 경기장의 거리가 너무 멀어 2군 선수를 콜업해 즉시 기용하는 부분에서 불편을 겪고 있으며 이 때문에 수도권에서 경기할 때 1,2군의 교체가 진행되는 편이다.[3] 1군과 2군의 홈구장이 멀어짐으로써 낮에 2군 경기, 같은 날 저녁에 1군 경기에 출전하는 일명 '사다리 출전'이 힘들어졌다.
닛폰햄에서는 구단에 카마가야 사업부를 설치해 이 구장을 중심으로 지역밀착형 야구단으로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구단명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군이 아닌 카마가와 닛폰햄 파이터즈, 카마가와 파이터즈같은 마이너리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하려 하고 있다. 참고로 카마가와 파이터즈 스타디움으로 가는 버스의 경우 차내 안내방송에 닛폰햄 선수들의 육성이 나오기도 한다. 이러한 효과 때문인지 2008년에는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의 2군이었던 쇼난 시렉스를 꺾고 관중동원 1위를 기록했으며 2009년에는 9월 22일~23일 이틀동안 1만명의 관객이 경기장을 찾기도 했다.
3. 이모저모
- 경기장 우측 스탠드 뒷편에 켄 그리피 주니어 장외 홈런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1997년 11월 15일에 구장 개장기념으로 나이키와 손을 잡고 야구교실을 열었는데, 이 때 켄 그리피 주니어를 특별 초청했다. 이때 연습 타격을 보여주었는데 타후키 아키하로를 상대로 때린 공이 장외를 넘어가버렸다. 추정 비거리 160m짜리 장외홈런을 기념하기 위해 공이 떨어진 지역에 기념비를 세운것이다.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가 클라이맥스 시리즈 혹은 일본시리즈에 진출하게 될 경우, 인근 주차장에서 길거리 응원을 개최한다.
- 일본프로야구 2군경기장에서 최초로 전광판이 LED 디스플레이로 제작되었다.[4] 그래서인지 2군임에도 불구하고 홈 선수들의 등장곡과 등장 영상이 따로 있다. 등장 영상의 경우는 1군과 다른 독자적인 스타일의 영상인데, 매년 바뀌는 1군과 달리 같은 스타일의 영상을 계속 쓴다.
[1] 현재 이곳에는 경식 야구장이 들어서 있다. 부지 소유권을 반환받은 가와사키시에서 2011년에 착공해서 2015년 4월에 완공.[2] 이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창단되며 2군팀이 이스턴에 참가해 7개팀이 된다. 반대로 웨스턴리그는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가 해산되면서 5개 구단으로 축소.[3] 소수 인원으로 구성된 포수의 경우 특히 2군 선수의 신속한 기용이 어려워 2013년부터 2015년까지는 '''1987년 한큐 브레이브스에서 데뷔한''' 나카지마 사토시 1군 배터리 코치가 선수를 겸임하면서 포수가 소진된다거나 하는 긴급상황에 대비하기도 했다. 나카지마 사토시 코치는 사실 2007년부터 2015년까지 9년이나 플레잉 코치로 뛰었다. 그가 플레잉 코치로 처음 뛴 2007년에는 15타석에 들어섰으나, 그 이후로는 타석에 거의 서지 않고 대수비로만 들어가면서 간간히 나왔다. 플레잉코치로 9년 동안 110경기에 나왔는데, 첫 해인 2007년에 60경기에 나왔으니 8년 동안 50경기밖에 안 나온 셈. 그나마 그 50경기에서도 11타석 들어섰다. 또한 2011, 2012, 2014, 2015년에는 타석에 전혀 들어서지 않았고, 최후의 안타는 2009년에 친 것이었다. 이 플레잉 코치로의 활약 덕분에(?) 나카지마 사토시 코치는 연속 1군 등록 시즌 최고기록과 통산 1군 등록 시즌 최고기록을 모두 가지게 되었다.(연속 1군 등록은 쿠도 키미야스와, 통산 1군 등록은 쿠도 키미야스, 야마모토 마사와 공동 1위.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까지 주전급으로 활약한 쿠도와 야마모토와 다르게 나카지마는 20대 후반에 이미 노쇠화가 와서 백업으로 추락했음에도 불구하고 가늘고 길게 선수생활을 이어왔기에 더욱 값진 기록.)[4] 아직까지는 2011년에 설치된 리후시중앙공원야구장과 여기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