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Cavalleria rustic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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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트로 마스카니의 오페라로 그의 최초의 오페라이자 대표작이다. 이탈리아의 소설가 죠반니 베르가가 1880년에 발표한 동명의 소설을 1884년에 본인이 직접 희곡으로 개편했고 이를 다시 마스카니가 오페라화 했다.
인기와 별도로 이 작품은 음악사적으로도 꽤 중요한 작품인데, 19세기 후반기부터 20세기 전반기까지 이탈리아에서 크게 유행했던 베리스모 오페라의 효시가 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성공 이후 조르다노의 안드레아 세니에, 폰키엘리의 라 지오콘다, 푸치니의 외투,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 칠레아의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 등의 베리스모 계열의 명작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오페라의 성공 이후 마스카니는 14개의 오페라와 1개의 오페레타를 더 작곡했으나 현재는 모두 묻혀버렸다.[1] 결국 마스카니의 원 히트 원더가 되어 버린 오페라.
베리스모(Verismo)는 이탈리아어로 대략 "사실주의" 정도의 뜻으로 풀이된다. 원래는 19세기 후반에 이탈리아에서 형성된 문학운동이었다.[2] 하지만 이 사조에 속한 문학작품 가운데 높은 예술적 성취를 이룬 작품이 많지 않은 관계로 문학쪽에서는 자주 언급되지 않으며, 현재는 이 문학 작품들을 바탕으로 한 오페라들이 훨씬 유명한 탓에 주로 오페라 장르를 분류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기존의 오페라가 신화에 나온 이야기나 영웅의 일대기, 귀족들의 삶, 종교적인 내용 등을 다루었던 반면 이 베리스모 오페라는 그 말 뜻대로 주로 서민이나 힘없는 하층민의 현실적인 삶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특히 이 작품처럼 치정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다.
이 베리스모 오페라 이전에도 모차르트의 코지 판 투테나 비제의 카르멘처럼 서민이나 하층민의 삶을 주제로 한 오페라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작품들은 주로 코믹 스타일이거나 낭만적으로 각색되어 있는 반면 베리스모 오페라는 꿈도 희망도 전혀 없는 각박하고 처절한 현실세계를 가감없이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오페라와는 확실하게 구별된다.
1887년 7월, 밀라노의 음악출판사였던 손조뇨사가 창작 오페라 공모전을 열었다. 조건은 단막구성의 오페라로, 최우수작으로 선정된 세편의 오페라는 손조뇨사에서 모든 제작비용을 대서 무대에 올리는 특전이 주어졌다.
마스카니는 이미 이때 4막짜리 오페라를 완성중이었지만 오페라 공모전의 조건에 따라 새로운 단막 오페라를 써서 공모전에 응모하려 했다. 어떤 소재를 오페라로 만들까 궁리하던 중, 마스카니의 친구이기도 했던 죠반니 베르가가 자신의 소설과 희곡을 오페라화 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고 옳다쿠나 한 마스카니는 베르가에게 대본을 부탁했다. 베르가는 자신의 친구인 귀도 메사니와 함께 대본 작업을 시작했고 조금씩 완성될 때마다 마스카니에게 보냈다. 심지어는 몇줄의 대사를 전보로 부칠 때도 있었다고 한다. 결국 대본이 이렇게 오는 바람에 아슬아슬하게 마감시간에 제출하였다고 한다.
1890년 5월에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최종적으로 선정된 세 작품은 니콜라 스피넬리의 "라빌리아", 빈첸초 페로니의 "루돌로", 그리고 피에트로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였다. 이 세 작품 중에서 오늘날까지 인기를 모으는 작품은 피에트로의 것이 유일하다.
제목인 Cavarellia rusticana는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촌뜨기의(Rusticana) 기사도(Cavarellia) 정도로 번역할수 있겠다. 작중에서 두 시골 남자가 한 여자를 두고 결투를 벌이는 내용이기 때문에 이런 제목을 붙였다고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향토예비군'''이라는 충공깽스런 제목을 붙이기도 했었다(...) 이후 이 제목이 오페라의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난 뒤로는 그냥 원어를 그대로 한글로 적어서 무대에 올리곤 한다.
intermezzo(간주곡)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곡이라 볼 수 있다. 시네마에서는 물론, 다른 작곡가들에 의해 편곡도 자주되는 편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이 음악이 쓰인 영화로는 로버트 드 니로가 주연을 맡고 마틴 스콜세지가 감독한 분노의 주먹 오프닝 장면일것이다. 로버트 드 니로가 링 위에서 섀도우 복싱을 할때 흘러나오는 간주곡은 영상과 잘 매치되어서 이곡으로 인해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알게되는 사람들도 많았다는듯. 대부 3부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사용되었다. 왓치맨 감독판에서 1대 나이트아울 홀리스 메이슨의 아름다운 사망장면에도 사용되었다.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로 유명한 음악감독 우에마츠 노부오도 이 곡을 편곡한 적이 있는데, 구인사가 엔딩 싱글에 들어있는 "カノン : Where'er you go~Cavarellia Rusticana~"가 바로 그것. 편곡치고는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는다. 직접 들어보시는 것을 추천.
이외 유명한 곡으로는 O Lola, ch'ai di latti la cammisa가 있다. 이 곡은 제임스 그레이의 투 러버스에 삽입되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서 열린 부활절이 배경이다. 군에서 제대해 고향으로 돌아온 투리두는 애인이던 롤라가 마부 알피오와 결혼한것을 알고 절망한다. 투리두는 같은 마을 처녀 산투짜와 사귀면서 같이 살게 되지만 마음은 여전히 롤라에게 가 있다.
카발레리아의 서곡. 중간에 노래 부르는 테너는 플라시도 도밍고.
산툿자가 루치아의 술집으로 찾아와 투릿두의 행방을 묻는다. 루치아는 대답을 회피하다가 술을 사러 갔다고 둘러댄다. 산툿자는 울면서 투릿두가 어제 저녁부터 안보인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알피오가 루치아의 술집에 들어선다. 알피오는 산툿자에게 투릿두를 자신의 집앞에서 봤다고 말한다. 놀란 루치아가 알피오에게 자세한것을 물으려 하자 산툿자가 말리고 알피오가 사라진뒤 산툿자가 사실을 털어놓는다. 알피오와 결혼한 롤라가 투릿두와 산툿자의 사이를 알고서는 '''대놓고 투릿두를 유혹했다'''라는것. 놀란 루치아는 성당으로 기도하러 달려간다.
그런 가운데 투릿두는 광장으로 가다가 산툿자를 만나고 산툿자는 롤라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투릿두를 비난하지만 투릿두는 그사실을 부인한다. 이어서 롤라가 나타나서 알피오를 보지 못했냐면서 투릿두에게 같이 성당에 가자고 한다. 산툿자가 화가 나서 둘에게 따지자 투릿두는 산툿자를 밀쳐버리고 성당으로 가버린다. 이어 나타난 알피오에게 화가 난 산툿자가 둘이 같이 성당 갔다더라라고 하자 알피오는 눈이 뒤집혀서 복수를 다짐하고 산툿자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다.
간주곡 이후 성당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합창으로 표현된다. 롤라와 투릿두는 루치아의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알피오가 나타난다. 투릿두는 알피오에게 술을 권하지만 알피오는 거부하고 결투를 신청한다. 투릿두는 취한척 하며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눈후 알피오와 결투하러 떠난다. 루치아는 아들의 신변에 위험을 느끼고 만류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고... 결국 마지막에 고함소리와 함께 투릿두가 살해되었다라는 외침이 들리며 막이 내린다.
오페라의 내용이 워낙 짧아서 단독으로 올려지기 보다는 같은 단막 오페라인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와 함께 세트로 무대에 올려지는 경우가 많다. 워낙 세트로 공연되는 경우가 많아서 두 오페라의 동시 공연을 카브-파그(Cav-Pag)라고 불리기도 한다.[7] 두 작품이 묘하게 닮은 구석이 많기도 하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가 한 여자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던 두 시골남자의 결투를 그렸다면, 팔리아치는 바람난 아내때문에 고통받다가 비극적 결말로 치닫는 삐에로의 이야기라는 점이, 또한 시골의 평범한 사람들과 유랑극단의 삐에로처럼 서민이나 하류 인생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점도 비슷하다.
유명한 오페답게 음반과 영상물이 꽤 많은데 명연과 졸연이 확연하게 구분되는 것이 상당수다...
특히 팔리아치와 세트로 연주되었을 때, 전자가 잘 된 연주가 나오는 반면 후자는 졸연이 나오는 것이 존재하고[8] , 그 반대가 되는 것도 있으며, 더 최악인 경우 두 오페라의 연주를 엉망으로 처리한 음반도 존재한다.(...)[9] 여기서는 가장 좋은 평을 받은 것으로 작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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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훌륭한 연주를 데카는 현재까지도 계속 찬밥 취급하고 있다. 재발매해도 마땅한 연주이거늘 여전히 절판처리 하고 있으니....'''
음반중에서 먼저 언급해야 할 것은 1960년 데카에서 녹음된 전곡반이다. 툴리오 세라핀이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프란체스코 몰리나리-프라델리가 팔리아치를 지휘한 이 음반은 현재까지도 두 오페라를 세트로 연주한 것 중에서 가장 뛰어난 연주로 꼽힌다. 카발레리아의 성악진은 당대 오텔로로 유명했던 마리오 델 모나코가 투리두, 이태리의 순도 높은 메조 소프라노라 불렸던 줄리에타 시미오나토가 산투짜, 코넬 맥닐이 알피오, 안나 디 스타시오가 맘마 루치아, 아나 라켈 사트레가 롤라를 맡았다. 우선, 세라핀의 지휘는 다른 오페라 전곡반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태리 오페라의 맛을 살린 연주를 들려준것은 물론이고, 서곡부터 시칠리아 시골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10] 특히, 간주곡(intermezzo)은 정말 감미가 느껴질 정도다. 시미오나토의 산투짜는 질투를 느끼는 시골처녀에 적절한 목소리다. 카라얀반의 피오렌차 코소토 보다 투리두의 대한 절망과 사랑, 그리고 롤라에 대한 질투를 잘 드러낸다고 볼 수있다.[11] 맥닐의 알피오와 디 스타시오, 라켈 사트레 역시 각 배역에 걸맞는 노래를 들려준다. 세트로 녹음된 팔리아치 역시 명연이다.
국내에서는 보통 줄여서 '''카발레리아'''라고 부른다. 2009년 여름, 서울시청 앞 광장에 야외 무대가 세워지고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공연한 적이 있다. 광장 잔디밭에 시민들이 옹기종기 앉아서 오페라를 관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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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피에트로 마스카니의 오페라로 그의 최초의 오페라이자 대표작이다. 이탈리아의 소설가 죠반니 베르가가 1880년에 발표한 동명의 소설을 1884년에 본인이 직접 희곡으로 개편했고 이를 다시 마스카니가 오페라화 했다.
인기와 별도로 이 작품은 음악사적으로도 꽤 중요한 작품인데, 19세기 후반기부터 20세기 전반기까지 이탈리아에서 크게 유행했던 베리스모 오페라의 효시가 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성공 이후 조르다노의 안드레아 세니에, 폰키엘리의 라 지오콘다, 푸치니의 외투,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 칠레아의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 등의 베리스모 계열의 명작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오페라의 성공 이후 마스카니는 14개의 오페라와 1개의 오페레타를 더 작곡했으나 현재는 모두 묻혀버렸다.[1] 결국 마스카니의 원 히트 원더가 되어 버린 오페라.
1.1. 베리스모 오페라
베리스모(Verismo)는 이탈리아어로 대략 "사실주의" 정도의 뜻으로 풀이된다. 원래는 19세기 후반에 이탈리아에서 형성된 문학운동이었다.[2] 하지만 이 사조에 속한 문학작품 가운데 높은 예술적 성취를 이룬 작품이 많지 않은 관계로 문학쪽에서는 자주 언급되지 않으며, 현재는 이 문학 작품들을 바탕으로 한 오페라들이 훨씬 유명한 탓에 주로 오페라 장르를 분류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기존의 오페라가 신화에 나온 이야기나 영웅의 일대기, 귀족들의 삶, 종교적인 내용 등을 다루었던 반면 이 베리스모 오페라는 그 말 뜻대로 주로 서민이나 힘없는 하층민의 현실적인 삶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특히 이 작품처럼 치정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다.
이 베리스모 오페라 이전에도 모차르트의 코지 판 투테나 비제의 카르멘처럼 서민이나 하층민의 삶을 주제로 한 오페라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작품들은 주로 코믹 스타일이거나 낭만적으로 각색되어 있는 반면 베리스모 오페라는 꿈도 희망도 전혀 없는 각박하고 처절한 현실세계를 가감없이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오페라와는 확실하게 구별된다.
2. 창작과정
1887년 7월, 밀라노의 음악출판사였던 손조뇨사가 창작 오페라 공모전을 열었다. 조건은 단막구성의 오페라로, 최우수작으로 선정된 세편의 오페라는 손조뇨사에서 모든 제작비용을 대서 무대에 올리는 특전이 주어졌다.
마스카니는 이미 이때 4막짜리 오페라를 완성중이었지만 오페라 공모전의 조건에 따라 새로운 단막 오페라를 써서 공모전에 응모하려 했다. 어떤 소재를 오페라로 만들까 궁리하던 중, 마스카니의 친구이기도 했던 죠반니 베르가가 자신의 소설과 희곡을 오페라화 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고 옳다쿠나 한 마스카니는 베르가에게 대본을 부탁했다. 베르가는 자신의 친구인 귀도 메사니와 함께 대본 작업을 시작했고 조금씩 완성될 때마다 마스카니에게 보냈다. 심지어는 몇줄의 대사를 전보로 부칠 때도 있었다고 한다. 결국 대본이 이렇게 오는 바람에 아슬아슬하게 마감시간에 제출하였다고 한다.
1890년 5월에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최종적으로 선정된 세 작품은 니콜라 스피넬리의 "라빌리아", 빈첸초 페로니의 "루돌로", 그리고 피에트로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였다. 이 세 작품 중에서 오늘날까지 인기를 모으는 작품은 피에트로의 것이 유일하다.
제목인 Cavarellia rusticana는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촌뜨기의(Rusticana) 기사도(Cavarellia) 정도로 번역할수 있겠다. 작중에서 두 시골 남자가 한 여자를 두고 결투를 벌이는 내용이기 때문에 이런 제목을 붙였다고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향토예비군'''이라는 충공깽스런 제목을 붙이기도 했었다(...) 이후 이 제목이 오페라의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난 뒤로는 그냥 원어를 그대로 한글로 적어서 무대에 올리곤 한다.
3. 간주곡
intermezzo(간주곡)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곡이라 볼 수 있다. 시네마에서는 물론, 다른 작곡가들에 의해 편곡도 자주되는 편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이 음악이 쓰인 영화로는 로버트 드 니로가 주연을 맡고 마틴 스콜세지가 감독한 분노의 주먹 오프닝 장면일것이다. 로버트 드 니로가 링 위에서 섀도우 복싱을 할때 흘러나오는 간주곡은 영상과 잘 매치되어서 이곡으로 인해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알게되는 사람들도 많았다는듯. 대부 3부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사용되었다. 왓치맨 감독판에서 1대 나이트아울 홀리스 메이슨의 아름다운 사망장면에도 사용되었다.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로 유명한 음악감독 우에마츠 노부오도 이 곡을 편곡한 적이 있는데, 구인사가 엔딩 싱글에 들어있는 "カノン : Where'er you go~Cavarellia Rusticana~"가 바로 그것. 편곡치고는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는다. 직접 들어보시는 것을 추천.
이외 유명한 곡으로는 O Lola, ch'ai di latti la cammisa가 있다. 이 곡은 제임스 그레이의 투 러버스에 삽입되었다.
4. 등장인물
- 알피오 : 마부이자 투리두의 옛 애인인 롤라와 결혼한 남자. 롤라에게 기웃거리는 투리두를 더이상 참지 못하고... (바리톤)
- 롤라 : 이 오페라 궁극의 악의 축(...) 더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한지? (메조 소프라노)
5. 줄거리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서 열린 부활절이 배경이다. 군에서 제대해 고향으로 돌아온 투리두는 애인이던 롤라가 마부 알피오와 결혼한것을 알고 절망한다. 투리두는 같은 마을 처녀 산투짜와 사귀면서 같이 살게 되지만 마음은 여전히 롤라에게 가 있다.
카발레리아의 서곡. 중간에 노래 부르는 테너는 플라시도 도밍고.
5.1. 전반부
산툿자가 루치아의 술집으로 찾아와 투릿두의 행방을 묻는다. 루치아는 대답을 회피하다가 술을 사러 갔다고 둘러댄다. 산툿자는 울면서 투릿두가 어제 저녁부터 안보인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알피오가 루치아의 술집에 들어선다. 알피오는 산툿자에게 투릿두를 자신의 집앞에서 봤다고 말한다. 놀란 루치아가 알피오에게 자세한것을 물으려 하자 산툿자가 말리고 알피오가 사라진뒤 산툿자가 사실을 털어놓는다. 알피오와 결혼한 롤라가 투릿두와 산툿자의 사이를 알고서는 '''대놓고 투릿두를 유혹했다'''라는것. 놀란 루치아는 성당으로 기도하러 달려간다.
그런 가운데 투릿두는 광장으로 가다가 산툿자를 만나고 산툿자는 롤라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투릿두를 비난하지만 투릿두는 그사실을 부인한다. 이어서 롤라가 나타나서 알피오를 보지 못했냐면서 투릿두에게 같이 성당에 가자고 한다. 산툿자가 화가 나서 둘에게 따지자 투릿두는 산툿자를 밀쳐버리고 성당으로 가버린다. 이어 나타난 알피오에게 화가 난 산툿자가 둘이 같이 성당 갔다더라라고 하자 알피오는 눈이 뒤집혀서 복수를 다짐하고 산툿자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다.
5.2. 후반부
간주곡 이후 성당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합창으로 표현된다. 롤라와 투릿두는 루치아의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알피오가 나타난다. 투릿두는 알피오에게 술을 권하지만 알피오는 거부하고 결투를 신청한다. 투릿두는 취한척 하며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눈후 알피오와 결투하러 떠난다. 루치아는 아들의 신변에 위험을 느끼고 만류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고... 결국 마지막에 고함소리와 함께 투릿두가 살해되었다라는 외침이 들리며 막이 내린다.
6. 공연
6.1. 팔리아치와 세트로 공연되는 오페라
오페라의 내용이 워낙 짧아서 단독으로 올려지기 보다는 같은 단막 오페라인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와 함께 세트로 무대에 올려지는 경우가 많다. 워낙 세트로 공연되는 경우가 많아서 두 오페라의 동시 공연을 카브-파그(Cav-Pag)라고 불리기도 한다.[7] 두 작품이 묘하게 닮은 구석이 많기도 하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가 한 여자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던 두 시골남자의 결투를 그렸다면, 팔리아치는 바람난 아내때문에 고통받다가 비극적 결말로 치닫는 삐에로의 이야기라는 점이, 또한 시골의 평범한 사람들과 유랑극단의 삐에로처럼 서민이나 하류 인생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점도 비슷하다.
7. 음반과 영상물
유명한 오페답게 음반과 영상물이 꽤 많은데 명연과 졸연이 확연하게 구분되는 것이 상당수다...
특히 팔리아치와 세트로 연주되었을 때, 전자가 잘 된 연주가 나오는 반면 후자는 졸연이 나오는 것이 존재하고[8] , 그 반대가 되는 것도 있으며, 더 최악인 경우 두 오페라의 연주를 엉망으로 처리한 음반도 존재한다.(...)[9] 여기서는 가장 좋은 평을 받은 것으로 작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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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훌륭한 연주를 데카는 현재까지도 계속 찬밥 취급하고 있다. 재발매해도 마땅한 연주이거늘 여전히 절판처리 하고 있으니....'''
음반중에서 먼저 언급해야 할 것은 1960년 데카에서 녹음된 전곡반이다. 툴리오 세라핀이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프란체스코 몰리나리-프라델리가 팔리아치를 지휘한 이 음반은 현재까지도 두 오페라를 세트로 연주한 것 중에서 가장 뛰어난 연주로 꼽힌다. 카발레리아의 성악진은 당대 오텔로로 유명했던 마리오 델 모나코가 투리두, 이태리의 순도 높은 메조 소프라노라 불렸던 줄리에타 시미오나토가 산투짜, 코넬 맥닐이 알피오, 안나 디 스타시오가 맘마 루치아, 아나 라켈 사트레가 롤라를 맡았다. 우선, 세라핀의 지휘는 다른 오페라 전곡반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태리 오페라의 맛을 살린 연주를 들려준것은 물론이고, 서곡부터 시칠리아 시골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10] 특히, 간주곡(intermezzo)은 정말 감미가 느껴질 정도다. 시미오나토의 산투짜는 질투를 느끼는 시골처녀에 적절한 목소리다. 카라얀반의 피오렌차 코소토 보다 투리두의 대한 절망과 사랑, 그리고 롤라에 대한 질투를 잘 드러낸다고 볼 수있다.[11] 맥닐의 알피오와 디 스타시오, 라켈 사트레 역시 각 배역에 걸맞는 노래를 들려준다. 세트로 녹음된 팔리아치 역시 명연이다.
8. 여담
국내에서는 보통 줄여서 '''카발레리아'''라고 부른다. 2009년 여름, 서울시청 앞 광장에 야외 무대가 세워지고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공연한 적이 있다. 광장 잔디밭에 시민들이 옹기종기 앉아서 오페라를 관람했다.
[1] 그나마(...) 마스카니의 다른 오페라 중에서 카발렐리나 루스티카나와 대조적인 엔딩을 가진 친구 프리츠를 찾는 사람도 많다. 다만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 비하면 임펙트가 약해다는게 문제.[2] 마스카니가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작곡할 때 인용한 죠반니 베르가의 원작도 베리스모 계열의 소설이다.[3] 정확히는 드라마티코나 스핀토 테너들이 많이 맡는 배역이다.[4] 옛날에는 메조 소프라노도 산투짜역을 많이 맡았었다. 줄리에타 시미오나토, 피오렌차 코소토, 아그네스 발차가 대표적인 메조 소프라노 산투짜였다.[5]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와 구분하기위해 오페라 팬들은 보통 맘마 루치아라고 부른다.[6] 콘트랄토가 희귀한 음역이라 보통 메조 소프라노가 맡는 경우가 많다. 프랑코 제피렐리 영화판에선 왕년에 유명한 메조 소프라노였던 페도라 바르비에리가 맘마 루치아역으로 나왔다.[7] 물론, 예외도 있다. 1994년 메트로폴리탄 극장에선 푸치니의 외투와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가 세트로 올라왔었다. 특이한 점은 외투에서 플라시도 도밍고가 나오고, 팔리아치에선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카니오를 맡았다는 것. [8] DG에서 나온 카라얀 지휘반이 그랬다. 카발레리아는 괜찮은데, 팔리아치는 영 거시기 했단 말이지...[9] EMI에서 프랑코 코렐리가 투리두와 카니오를 맡은 음반이 있는데, 이 음반은 두 오페라를 한 세트로 연주한 중에서 가장 최악의 졸연으로 평가받는다. 코렐리는 괜찮지만, 나머지 배역진들이 취약하다는 점과 지휘자가 너무 처지게 연주한다는 혹평이 많은 음반이다. [10] 참고로, 데카 전곡반은 세라핀의 두 번째 카발레리아 녹음이기도 하다. 마리아 칼라스와 함께 EMI에서 녹음한것은 세라핀의 첫 번째 카발레리아인데, EMI 녹음판에선 세라핀이 카발레리아랑 팔리아치 둘 다 지휘했다.[11] 덧붙이자면 산투짜는 시미오나토가 마스네의 미뇽 타이틀롤과 더불어 많이 맡은 배역 중에 하나였다. 무대에서 많이 맡았으니 스튜디오 녹음에서 산투짜의 이미지를 잘 잡은것은 당연한 일이다. 참고로, 시미오나토는 1961년 도쿄 문회회관에서 열린 카발레리아 공연에서도 산투짜를 맡아 명불허전의 가창을 들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