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트 길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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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켄트 S. 길버트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선교사, 변호사이자 일본에서 활동하는 작가, 언론인, 배우이다.
일명 '텍사스 아버지'라 불리는 토니 마라노와 함께 유명한 혐한 논객이다. 상당한 와패니즈로, 일본에 거주하며 일본 내 극우 성향 토크쇼, TV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소위 '''일본(우익)을 지지하는 백인 엘리트'''[1] 라는 이미지를 내세우며 주목받았다. 그의 트위터 계정은 팔로워 수만 32만명에 달하며(#), 학교법인가케학원 소속의 오카야마이과대학 교수로 초빙될 정도로 일본 내에서 인기가 높다.
모르몬교 선교사로 일본에 온 계기, 배우 활동과 TV쇼등에 출연하며 커리어를 쌓아 왔다는 점에서 로버트 할리(하일)와 유사하다. 몇년 전까지는 로버트 할리의 인기와는 비교할 수가 없었지만[2] 이후 여러 우익, 혐한 저서를 내며 넷우익등을 중심으로 이전보다 더 큰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에 '''혐한 활동으로 일본판 로버트 할리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3] 뉴스위크 재팬에서 '''켄트 길버트 현상'''이라는 제목으로 집중적으로 그를 다루기도 했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 등 일본 전쟁 범죄를 부정하고 평화 헌법의 개헌과 관련된 저서를 집필했으며, 한국과 중국에 대한 증오발언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일본 국내에서는 혐한 서적이 '''50만 부'''나 팔리는 등 두터운 팬층을 형성하고 있는 반면 위안부와 관련된 여성운동과 차별금지법 등 소송의 우려가 있기 때문인지 미국 국내에서는 활동이 뜸하다. 속지주의인 영미법에 따라, 미국 밖에서는 뭘 하든 미국 내에서 소송을 제기할 수 없기 때문.
혐한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고 한국 언론에도 켄트 길버트 관련 기사가 여러 차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비슷한 부류인 토니 마라노나 고젠카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인지도가 낮다. 하지만 일본 내 영향력은 그럴싸한 경력을 가진데다가 47만 부 팔린 베스트셀러 1위 혐한 서적을 내는 켄트 길버트가 토니 마라노나 고젠카보다 훨씬 높다.
2. 생애
1952년 5월 25일, 미국 아이다호 주에서 태어나 유타 주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유타 주 문서에도 나와있듯, 미국의 대표적인 공화당 텃밭이자 몰몬교 근본주의적 성향이 강했던 당시 사회환경이 그의 보수적인 성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일본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와 삼촌은 한국전쟁 참전용사라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들이자 조카인 본인은 열심히 혐한 활동을 하고 있다.
1970년 주내 사립대이자 몰몬교 미션스쿨인 브리검 영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이 대학은 그 자체로는 종교적이지만 나쁜 대학은 아니다. 로버트 할리도 이 대학을 나왔고, 선교사 활동으로 한국에 왔다. 재밌는 것은 선교사 훈련원에서 일본으로 가는 미국인 선교사와 한국으로 가는 미국인 선교사들이 전통적으로 경쟁심리가 있다고 한다. 한국인과 일본인 선교사들은 반대로 이상하게도 사이가 아주 좋다. 단순 썰이니 진지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재학생은 선교 활동을 해야 한다는 학칙에 따라 1971년 일본에 선교사로 파견되어 활동을 시작했다. 이 때 일본의 문화에 큰 감명을 받았는지, 캘리포니아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다음 일본계 법률 사무소를 통해 일본을 재방문하여 아예 눌러 앉아 버렸다.
80년대 후반부터 일본의 연예계에 발을 내딛었고, 배우와 탤런트 활동을 시작했다. 미국에서 변호사라는 직업은 한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인식이 상당히 낮은 탓에 일본에서 식당이나 영어학원 일도 겸직했다.[4]
당시 버블 경제와 백인, 미국인이라는 점으로 굉장한 수익을 얻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잃어버린 10년 시기 이후로는 언론인, 작가로 전향하여 일본의 우경화를 지지하는 고정 패널로 활동했으며, 현재까지 그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극우 혐한 기업 DHC가 운영하는 방송에도 자주 출몰한다.
3. 주요 저서
- <켄트의 재미있는 나라 일본!(Kentの面白大国ニッポン!)> - 1984년 4월
- <앳 홈 일본 조금 이상한 일본의 아빠 엄마(あっとhomeニッポン ちょっと不思議な日本のパパ・ママ)> - 1986년 9월
- <내가 본 일본국헌법(ボクが見た日本国憲法)> - 1988년 5월
- <일본인은 좀 화내면 좋을 텐데―불만을 숨기지 말고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자!(ニホン人はもっと怒ったら―不満をかくさず、言いたいことを言おう!)> - 1989년 12월
- <켄트 길버트의 연애 매너ー좋아하는 만큼 여자는 아름다워진다(ケント・ギルバートの恋愛マナー 好きになった数だけ、女はきれいになる)> - 1989년 12월
- <켄트 길버트의 영어표현 547(ケント・ギルバートの英語表現547)> - 1990년 12월
- <멋진 워킹걸의 자신을 갈고닦는 1주간(素敵なワーキングガールの自分を磨く1週間)> - 1991년 11월
- <켄트 길버트의 소박한 의문 이상한 나라 일본(ケント・ギルバートの素朴な疑問 不思議な国ニッポン)> - 1998년 3월
- <국제화도상국 일본(国際化途上国ニッポン)> - 1998년 11월
- <불사조의 나라 일본(不死鳥の国・ニッポン)> - 2013년 11월
- <멋진 나라, 일본에 고한다!(素晴らしい国・日本に告ぐ!)> - 2015년 5월[5]
- <아직 GHQ에게 세뇌당한 채인 일본인(まだGHQの洗脳に縛られている日本人)> - 2015년 6월
- <유교에 지배당한 중국인과 한국인의 비극(儒教に支配された中国人と韓国人の悲劇)> - 2017년 2월
- <일본 각성(日本覚醒)> - 2017년 5월
- <미국인 변호사라서 꿰뚫은 일본국헌법의 정체(米国人弁護士だから見抜けた日本国憲法の正体)> - 2017년 6월
- <드디어 '애국심 금지'로부터 해방된 일본인(ついに「愛国心」のタブーから解き放たれる日本人)> - 2017년 8월
- <긴자의 미인 마마와 댄디 변호사의 멋지고 멋진 일본론(銀座の美人ママとダンディ弁護士の粋で鯔背なニッポン論)> - 2020년
- <트럼프는 재선한다! 일본과 미국의 미래(トランプは再選する! 日本とアメリカの未来)> - 2020년 9월
4. 기타
무조건적으로 일본을 찬양하지만은 않고 일본과 일본인의 단점도 여러 번 거론하며 나름대로 애정어린 충고를 같이 하기도 한다. 언젠가 일본은 외국인 차별이 심하다고 말해 넷 우익들이 분개한적이 있다.[6] 그래서 일본의 골수 극우 세력들중 일부는 진짜 친일이 맞냐며 켄트 길버트를 의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켄트 길버트가 이전부터 이런 발언을 하거나 글을 쓸때도 일본에 대한 애정과 애틋함이 듬뿍 담긴걸 볼 수있는데 이를보면 켄트 길버트의 혐한과 극우 성향은 일각에서 말하는 것처럼 금전적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일본을 좋아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걸로 추정된다. '''단지 그 '진심으로 일본을 좋아하는 마음'이 단단히 잘못된 방향인 게 문제일 뿐'''.
1991년 5월에 방영된 기묘한 이야기 할복도시 에피소드에 주연으로 출연한 바 있다.
5. 참조 항목
6. 관련 문서
[1] 일본에서는 '백인 패널의 옹호 = 세계에서 지지받는 일본'이라는 구도를 그리는 데 자주 이용되는, 말하자면 나팔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2] 일본에 환상을 가진 친일 서양인이 많아 1980년대부터 서양인들이 일본 방송계로 진출했기 때문이다. 한국 방송계보다 서양인들의 출연 빈도와 수가 훨씬 컸다.[3] 다만 로버트 할리는 마약 및 불륜 논란이 있긴 하나 적어도 역사 왜곡, 타국가에 대한 혐오나 차별 행위는 일절 하지 않았다.[4] 미국은 소송 대국답게 변호사가 많아서 창 밖에 돌을 던지면 변호사가 맞는다(If you throw a stone in America, then you are likely to hit a lawyer.)는 말이 있을 정도다.[5] 토니 마라노와 함께 썼다.[6] 물론 이 '외국인'에서 한국인은 제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