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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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트 종류
위키위키
위키엔진
미디어위키
개설일
2001년 5월 20일
사용언어
일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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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여부
비영리
제작자
지미 웨일스
현재상태
운영 중
https://ja.wikipedia.org

フリー百科事典『ウィキペディア(Wikipedia)』

1. 개요
2. 설명
3. 편향성
3.1. 원인
3.2. 한국 관련 서술
3.2.1. 우익사관에 근거한 한반도 역사 서술
3.2.2. 부여계 국가(백제, 고구려, 발해)에 대한 왜곡
3.2.5. 독립유공자(独立有功者)
3.2.6. 권지고려국사
3.2.13. 일제 강점기
3.2.14. 기타 한국 관련 서술
3.4. 중국어 위키백과와의 끊임없는 마찰
3.5. 내용의 부실함
4. 시스템상의 문제점
4.1. 반달리즘으로 차단된 유저 조리돌림
4.2. 토론 이름공간
5. 기타 사건·사고
5.1. 관리자 신상 정보 유출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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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위키페디아 일본어판(ウィキペディア日本語版)은 일본어위키백과2001년 5월 20일에 시작되었다.

2. 설명


언어의 특성상, 한국어 위키백과한국어 쓰는 사람이 대부분인 한국인들이 편집하듯이, 마찬가지로 일본인들이 주로 편집하고 있다. 언어별 문서 순위에서 13위를 유지할 정도로 문서양이 방대하며 아시아 언어권 위키로는 2위의 문서량을 보여준다(1위는 베트남어 위키백과). 잠재적인 많은 인구수를 베이스로 중국인터넷 인구 사용 증가에 힘입은 중국어 위키백과가 아시아 언어권으로는 3위이다.[2] 아래에 서술된 문제점이 있지만 일본어 위키백과는 일본어만 안다면 일본에 관한 정보를 얻고 싶을 때 방문하기에 좋은 사이트다.
다른 언어판과 달리 오타쿠 계열 문화 문서의 기여도가 높으며, 일례로 다른 언어판에서는 간략하게 개요만 기재하거나 하나의 페이지 정도로 그치는 2chAA 관련 문서는, 일본어판을 기준으로 삼아 보면 야루오, 모나같은 AA 캐릭터들까지 문서로 만들어질 정도다. 이러한 서브컬처 정보집합의 특성 때문에 서브컬처 관련 정보를 얻는 일에는 매우 요긴하다. 일본어를 못 하더라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일본어->한국어의 경우는 언어 특성상 번역기로만으로도 75~90% 이상 이해할 수 있다. 특히 학술적인 문서일수록 90%에 가까워진다. 다만 고유명사가 많은 서브컬처 관련 문서같은 경우는 번역기로는 오역이 발생되기 쉬운 관계로 이해도(?)가 떨어질 수도 있다. 근년부터 서브컬처에 중점을 둔 일본어권의 위키위키로서 니코니코 대백과가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오고는 편이기는 하나, 위키백과의 미디어위키 엔진에 비해 니코니코 대백과는 기능 면에서 너무나 떨어지므로 여전히 위키백과가 우위에 위치한다.
미디어 믹스 작품 문서는 타 언어판에 비해 매체나 시리즈별로 문서를 나누지 않고 통합 문서 안에 전부 몰아넣는 경향이 있는 것도 특징. 예를 들어 어떤 소설을 원작으로 드라마나 영화가 만들어졌다면, 영어 위키백과에서는 웬만하면 드라마판, 영화판 문서를 따로 만드는 데 반해 일본어판에서는 그냥 소설 문서 안에 드라마나 영화 내용도 통합해서 쓰는 식이다. 시리즈물도 시리즈가 몇 개가 나오건간에 그냥 'OO 시리즈'라는 큰 문서 안에 다 때려박아 버린다. 문제는 이런 점 때문에 분류가 짬뽕되거나 다른 언어 위키백과와 호환이 잘 안 된다는 것. 일본 게임인데 정작 일본어판에는 문서가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한국에서는 극우 빅텐트중 반/반진보의 기치 아래 일본 극우와 연대하자고 직접적으로 주장하는 미디어워치에서 일본어 위키백과의 정치역사적으로 민감한 주제들에 대해 다룬 문서를 번역하는 카테고리가 존재한다. 편집부 명의로 올라오지만, 실제로는 전문 번역 블로거의 외부기고 형태로 올라오는 것으로 추정된다.[3]
야구 관련 정보도 굉장히 자세하다. 일본이 프로야구1930년대부터 시작한 국가인 덕분인 듯. 거의 대부분의 선수 항목에서 NPB,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KBO, CPBL 1군 기록은 거의 다 올려놨고, 한국에서 정보가 거의 없는 중국 야구 리그중남미 야구리그, 해외 독립 리그에 관해서도 한국어 위키백과나무위키 등의 한국어 위키보다 정보가 많다. 이건 어디서 구한 거지 싶은 해외 자료도 다 있다.
심지어 1992년 대한민국 남해고속도로의 '''3차 확장 이전의 평면교차로 목록'''까지도 세세히 적혀있는 편.

3. 편향성


우선 일러둘 것은, 특정 성향의 이용자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 내용에 대한 문서에서는 아래와 같은 문제점이 별로 나타나지 않으며 오히려 한국어 위키백과보다 내용이 풍부한 경우가 많다. 당장 아래 잔뜩 쓰여 있는 비판들도 전부 역사와 외교에 관한 분야 뿐이다. 일본어 위키백과의 문제점들은 주로 5ch 같이 넷 우익이 많은 사이트나 일부 오타쿠 계열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비롯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문서들은 객관성이나 출처의 명확성 면만 따지고 봤을 때는 한국어 위키백과[4]영어 위키백과의 발끝에도 못 미치며, 주관적인 서술이 많아서 비판을 받기도 하는 나무위키를 비롯한 재미 위주 위키위키들보다 못한 수준이다. 편집 경향을 보면 위키백과라기보다는, 차라리 Metapedia[5]에 더 가깝다고 볼 수준이다. 친정부적 성향과 내셔널리즘적 성향이 두드러진다는 점 혹은 실질적인 검열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은 상기한 대로 중국의 바이두 백과와도 가까우며, 정치적으로 보수주의/우파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Conservapedia와도 비교되곤 한다.
때문에 최근 일본어 위키백과의 문서들 중 역사와 관련된 문서들에는 '이 문서의 내용은 출처가 명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라는 면책조항이 달려있는 문서들이 수두룩하다(...).
일반적으로 위키백과에서 매우 중요시하는 각주도 제대로 표기되어 있지 않은 문서가 많고[6] 비하비난적인 요소가 만재해 있는 비뚤어진 애국심으로 무장한 인터넷 훌리건들의 침입에 따라 NPOV를 위반한 문서들이 많아 중립성이 바닥을 친다. 특히 정치, 역사 관련 문서에서 그런 성향이 드러난다. 특히 민주당이나 사회당 관련 문서나 소속 인물, 유관시민단체[7]의 경우, 수시로 넷 우익들의 침공이나 반달에 따라 몸살을 앓는 경우가 많고, 오키나와부라쿠민 문서 등에도 중립적 시각이 망각된 악의적인 서술이 다수 들어가 있다. 자신들과 사상이 비슷한 극우 NGO 단체는 우호적으로 기술하는 것도 특징. 제대로 된 내용으로 고치면 엄청난 속도로 복원하고 편집 분쟁이 자꾸 발생하면 편집을 제한한다.
규정이 잘 이용된 합법적 문서 사유화가 만연해 있다. 즉, 오타쿠 특유의 집요함과 고집으로 자신이 작성한 문서 또는 자신이 수정에 참여한 문서에 상주하면서 자신의 의도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타인의 기술은 가차없이 반달을 일삼는 유저들이 많다. 기존 내용을 바꾸면 반달, 새로운 내용을 서술하면 출처 필요, 다른 곳에서 정보를 도용하면 저작권법 위반 3단에 해당되므로 출처를 명백하게 밝히는 것이 매우 중요한 위키백과의 특징과 저작권법 적용이 엄정한 일본의 법체계가 만나서 정공법으로는 이를 타파할 수 없다.
위키백과로서는 이례적으로 친정부적 성향과 내셔널리즘적 성향이 두드러지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곤 한다. 일본어 위키백과에서는 일본 정부자민당의 입맛에 맞는 정보를 위주로 기재되기 때문에 일본 근현대사에 관한 자료는 대부분 일본 정부 및 자민당의 입장과 동일하게 작성되어 있으며, 설령 일본 정부 및 자민당의 입장과는 동떨어지게 서술되어 있다 하더라도 대체적으로는 일본의 보수주의우파 세력, 그 중에서도 특히 극우 세력의 입맛에 맞추어 서술되는 경향이 강한 편이다. 이는 중국 공산당검열에 통과한 정보만 기재되기에 중국 근현대사에 관한 자료는 대부분 중국 정부의 입장과 동일하게 되어 있는 중국의 바이두 백과를 연상시키는 부분이다. 기재되는 정보에 대한 실질적인 검열이 행해지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반대극의 중국 바이두 백과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혐한 성향도 심한 곳이다. 한국이 못한 것들은 못한 것대로 비판하고 잘한 것은 저평가하거나 일본의 지원이 있었다는 식으로 넘기는 경우도 많다. 한국을 대놓고 공격하는 서술도 간혹 보인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은근히 한국을 경멸하는 투로 작성된 글이다. 가끔 한국을 칭찬하는 내용도 올라오기는 하나 "그래봤자 일본 밑"이라는 느낌이 들게 칭찬의 격이 한 단계 낮은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주로 다루는 주제는 한국의 반일감정. 대한민국 문서의 첫 문단부터 한국의 반일감정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첫 문단 밑의 문서에는 한국의 핵 개발 의혹, 한국의 사법 능력에 대한 비판, 베트남 전쟁과 같은 세부 문서에 넣어야 할 내용[8]들을 대한민국 본 문서에 떡하니 박아놓았다. 사회 면은 더 심각하여, 한국어 위키백과의 일본 사회 란에는 언어, 종교, 방송과 언론, 교육, 의료, 인권에 대한 서술을 하고 있지만 일본어 위키백과의 한국 사회 란에는 지역 대립과 불평등, 노인 자살률, 노인 빈곤, 퇴직 후 치킨집 창업, 캥거루족, 최악의 실업률, 헬조선, 부동산 투기, 소득 불평등, 반일감정, 사회 갈등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일본어 위키백과의 한국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해당 사이트보다는 그나마 고토방크[9] 사전#이나 일본 세계사의 창# 등의 사이트가 객관적이며 일본 사학계의 정설에 가까운 편이다.

3.1. 원인


일차적으로는 객관성이 아니라 자기 취향이 편집의 최우선인 오타쿠[10]가 위키를 장악한 것이 주된 이유로 꼽힌다. 이 둘의 차이는 역사 '교과서'와 환단고기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오타쿠들이 편집한다 해도 역지사지의 심정을 갖고 최대한 중립적으로 서술하려 노력했다면 나쁜 평가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어 위키백과에서는 상당수 이용자들이 사실을 취사선택하여 각종 편견과 차별을 합리화하며, 다른 언어의 위키백과와 비교해도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이니치, 부라쿠민, 오키나와인 등)에 대한 편견을 공개적으로 배설하는 통로로 악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즉 위키백과가 혐오발언을 공개적으로 할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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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위 그래프(2008년도 위키스탯 통계)를 보면 일본어 위키백과는 다른 언어판에 비해 현저히 익명 기여자가 2배나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디어 비평가 이케다 노부오(池田信夫)는 일본어 위키백과에서 개인의 악의적 의견을 피력하는 이용자들이 많으며, 이는 2ch에서 잘 드러나듯이 사회에서 억압받은 악의적 감정을 인터넷 속 익명성 뒤에 숨어 마구 발산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위키백과를 자신의 고나리질 무대로 삼는 일부 오타쿠들의 삐뚤어진 독점욕도 문제이다. 물론 대부분의 위키러나 오덕들은 이런 문제점과는 무관하지만, 넷 우익, 혐한, 일부 일본 역덕 등이 자신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사로운 견해를 자신이 발굴한 몇몇 자료로 합리화하려는 것이 문제다. 위키백과 규정에는 분명히 독자 연구가 금지되어 있음에도, 편향된 2차자료를 내세우거나 혹은 이런 자료를 자기 입맛에 맞게 가공하여 이런 규정을 회피하고 있는데, 그 수가 너무 많아 관리자들이 이를 막을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
특히 디시인사이드의 영향력이 나무위키에 상당한 것처럼, 극우혐한이 판치는 5ch의 영향력이 일본어 위키백과에 상당하다. 즉, 비슷한 성향의 위키러들이 외부에서 친목질하면서 막장화의 극치를 걷는다는 이야기이다. 예를 들면 5ch에서는 일본 위키백과 내의 문제 항목에 대한 화력지원을 요청하는 스레드들이 계속 올라온다. 또한 일본 학계의 엄숙주의 때문에 영어 위키에서 활발한 전문가 그룹의 참여도 저조하다. 이러다 보니 위키러들 중에 전문가는 드물고 오타쿠와 좆문가들만 득실대는 이상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왜곡된 열정만 넘치는 평범한 오타쿠들이 어떻게 문헌을 인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수 있는데, 일본은 한국과 달리 누구나 공짜로 문헌을 볼 수 있는 '''오픈 액세스''' 문화가 활성화되어 있다. 구글 스칼라로 한국어 논문과 일본어 논문 검색을 비교해보면 한국 논문은 대부분 DB피아 등 유료 구매 사이트로 연결되지만,[11] 일본어 논문은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는 경우가 훨씬 많다. 물론 오픈 액세스로 보는 논문들은 시원찮은 경우가 많지만, 그렇기 때문에 편향된 자료를 선호하는 오타쿠들에게는 궁합이 맞을 수밖에 없다.
사실 이런 문제점은 다른 웹백과를 표방하는 사이트들도 어느정도 가지고 있지만[12], 일본어 위키백과는 모태가 되는 위키페디아 규정조차 대놓고 생까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3.2. 한국 관련 서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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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위키백과의 막장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고 젠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해당 항목 참조
대한민국을 '''인간 지옥 말세 국가'''로 표현하였다.
기본적으로 '''반한혐한 이용자들의 입맛에 맞는 내용'''이라면 타 언어판에서는, 심지어 한국어판에서도 저명성 문제로 다루지조차 않을 자잘한 한국의 사건사고까지도 일본어 위키백과에는 버젓이 올라 있는 모습을 보인다. 어느 나라건 뉴스 한 꼭지 실리고 말 자잘한 사건사고 및 작은 사회문제 보도자료도 한국 관련이라면 귀신같이 찾아내서 출처랍시고 위키에 대서특필된다거나, 심지어는 대한민국과 전혀 관련이 없는 일반 상식 문서에서도 종종 서술 사이에 대한민국에서 십수 년 전에 발생한 악습이나 자잘한 사건사고(='한국인이 이렇게 열등하다')를 은근히 섞어 넣다 보니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진저리가 날 지경이다.
대한민국에 관련된 문건만 봐도 극우 유튜버가 보이스웨어를 동원하여 유튜브에 조잡하게 올리는 것처럼 대한민국의 경제는 곧 망할 것임을 주장하는 내용이 장황하게 서술되어 있고, 국민 대다수가 정신병과 화병을 가지고 있고 비닐하우스에서 살아가며 민생이 파탄나기 직전이라는 등 압도적으로 길게 서술되어 있다. 하지만 이것도 약과다. 일본에서도 유명한 삼계탕, 냉면 등의 문화, 한식 등에 대한 문건마저도 꼭 한 켠에는 한식에는 대장균이 많다거나 재료를 재사용하는 것이 빈번하다는 기사를 발췌하여 사실관계 확인 없이 무분별하게 올리는 등 긍정적이지 않은 사례만 올려져 있는 악의적인 편집이 자주 일어난다.
대한민국이 좋은 성적을 거둔 2002 월드컵의 이탈리아전에 대하여 서양 언론처럼 마치 오심 때문에 4강까지 올라갔다는 식으로 서술되어있다. 참고로 월드컵 오심 떡밥이 같은 해에 있었던 김정일납북 일본인 고백과 더불어 넷 반한 혐한의 기폭제였으며 반한 혐한들에게는 좋은 시비거리이기도 하다.
또한 '대한민국' 문서의 '치안' 문단이 매우 길게 쓰여 있는데, 여기에는 '치안이 좋다고는 하나 일본보다 살인 강간 등 강력범죄가 매우 많이 일어난다'며 -여성에 대한 성범죄가 일상다반사'라고 표현하며 제대로 된 출처도 없는 글을 길게 서술하고 있다. 또 성매매나 성범죄에 관한 잘못된 정보를 장황하게 서술하는 의도도 마찬가지.
예술품, 불교미술, 건축같은 고대 문화 관련 서술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의 한국 영향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대륙의 영향'이라고 얼버무리거나 '일본만의 독자적인 문화'였다고 서술되어 있고[13] 심지어 일본이 영향을 줬다고 서술되어 있으며, 한국은 일본 병합 전까지 중국을 베끼는 속국 문화이며 비문명적인 국가처럼 서술하는 등 매우 편파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칭찬할 만한 정책, 문화조차도 기득권의 전유물이니 아주 조금 퍼졌다느니라며 깎아내리는 서술은 꼭 빠지지 않으며, 한국기원설을 반드시 강조하고는 한다. 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란의 설명 부분만 보더라도 각종 분야에 온갖 범죄기사를 열거한다거나 음습한 뒷세계의 부분만 잔뜩 강조한다거나 한국인이 기술을 훔친다던가 하는 서술로 도배되어 있으며 마지막에 부정적인 글은 꼭 들어간다. 예를 들어 한국의 생명공학 분야는 제대로 된 서술도 없이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 하나로 끝내고[14] 건축 기술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중심으로 나머지를 설명하는 식으로 중립성이 심하게 훼손되었다. 역사 관련에서도 임진왜란 문서의 경우 이순신의 단점을 한 꼭지씩 찾아내어 형편없는 장수라며 근거 없는 비난을 하는 서술이 있고, 마치 일본이 조선에게 승전한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글이 쓰여 있다. 한국 관련은 아니지만 난징 대학살의 경우 그 강도가 심하여 넷 우익들과 중국어 위키백과의 유저들과의 반달 헬게이트가 열려서 문서 편집까지 관리자가 차단까지 해 놓았다.
당장 반한, 혐한 문서를 보면 반한 및 혐한 행위가 매우 정당한 행위인 것처럼 서술되어 있고, 대한민국은 북한쯤 되는 국제 왕따국이라고 비방하거나 반한이나 혐한이 되는 이유가 열거되어 있는데, 앞서 서술된 말도 안 되는 이유들이 모두 들어가 있다. 역시 한국기원설은 빠지지 않는다.
심지어 반한이나 혐한에 대한 비판은 서술되지 않았다. 반한과 혐한들이 중립을 표방하며 중립적 서술에 큰 주의를 요하는 위키백과에서 저런 말도 안 되는 서술을 한 것이다.
참고로 대한민국의 한국어 위키백과나무위키를 비롯한 한국 위키 사이트에선 그 어디에서도 어떤 주제에 관해 한국과 세계 각국의 정보와 더불어 일본의 정보를 병기하는데 있어서 굉장히 자유로운 반면, 일본어 위키백과에선 한국 연예인, 캐릭터, 성우 등을 문서에 작성할 경우 높은 확률로 악의적인 롤백을 당하거나 인민재판에 의해 차단을 당한다. 물론 인민재판의 주체는 안 봐도 뻔한 이야기.
조선의 문화 문서를 보면, 전체적인 문서 내용이 짧은 것은 둘째치고 그나마 있는 내용도 대부분이 부정적인 내용이다. 대놓고 조선의 문화는 천하다는 서술을 해놨고, 이에 2012년에 제정신 박힌 한 일본인이 이의를 제기하자 조선의 문화가 천하다는 것은 저명한 조선 연구가 일본 교수의 주장이며, 위키피디아에는 천하다는 기술을 해선 안 된다는 조항이 없으니 문제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4년이 지난 2016년에도 이 문서에는 조선의 문화는 천하다는 서술이 버젓이 쓰여있다. 조선인들은 소수 특권 계층 제외하고는 흰옷만 입고 다녔고 일제의 권장으로 색옷을 입기 시작했으며 현대에도 그 덕택에 색옷을 입고 다닌다고 서술해놨고, 조선의 문화라고 해놓고는 한국에서 몇 년 전 문제가 된 알몸 졸업식을 대놓고 서술해놓고 있다. 조선의 문화인데 현대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잠깐의 추태를 서술해놓고 있는 꼴, 화병이라던가, 결혼식 날 신랑 괴롭히기 등등 자기들이 보기에 웃겨 보이는 건 조선의 문화라고 죄다 가져다 놓고 이런 걸 제외하면 문서 내용이 빈약하기 짝이 없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익명편집자가 많으며 5ch처럼 혐한이 대세인 곳에서 온 넷우익들이 문서 편집에 알게 모르게 대거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5ch 같은 데서만 통용되는 반한 떡밥(ex. 똥술)들을 존재하지도 않는 참고문헌을 덧붙여 사실인 것처럼 기사로 만들거나, 혐한, 친일적 기사, 한국인 친일논객, 혹은 책에서 나오는 중립적이지 못한 출처를 바탕으로 문서를 편집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출처부터가 편향적이며 이를 근거랍시고 떡하니 걸어놓고, 소스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문서 수정을 거부하는 작태를 보이는 등 뻔뻔한 태도가 끝이 없다. 뿐만 아니라 정작 한국에서는 누구도 주목한 바 없는 인터넷 신문이나 타블로이드, 지방지의 한 컷 사건기사(보통 성폭행 같은 불미스러운 일)까지 찾아내어 기사로 만드는 등, 집요하고 악의적인 왜곡으로 언론플레이를 유도한다. 최근 들어서는 아예 정식 언론인 산케이 신문이 이런 떡밥들의 마토메가 되어버린 상황이다 보니까 대부분의 출처들이 그쪽으로 옮겨가는 중이다.
심지어 출처랍시고 걸어둔 링크의 이러한 기사들 절대 다수가 '''2000년도 초반''' 기사들이다. 심지어 1998년에 나온 딴지일보 기사도 인용한다. 그렇게 혐한들이 만들어낸 것들이 姦国한국기원설(아예 위키에 문서가 따로 만들어졌다). 만약 한국어 위키에 일본 인터넷 신문의 성범죄 뉴스를 누가 일일이 기사로 만들어 올리고 있다면 누가 봐도 정상적으로 편집하는 건 아닐 것이다. 일본 위키백과 편집 순위를 보면 1위가 재일이고 2위가 한국기원설이니 말 다 했다. 반한, 혐한 반달리즘에 더이상 버틸 수가 없는 모양이다.
서술 자체부터 너무나도 편향적이기에 문서 보호를 하거나 되돌리기를 하더라도 다시 되돌아가 있는 경우가 많으며, 설령 이를 정정하더라도 온갖 핑계를 들어 지워지거나 시간이 지난 뒤 다른 누군가가 크게 편집하면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버리고는 한다. 일본인이라도 편향성을 지적한 사람을 가리켜 한국인이나 재일로 몰아가면서 급기야는 차단을 요청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일본어 위키백과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미리 알고 편향된 내용에 휩쓸리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자. 그리고 위키백과의 의견을 일본인 전체의 의견으로 생각하는 행동 또한 금하도록 하자. 일본어 위키백과에서 정보를 얻으려는 평범한 일본인들이 이런 문서들을 보고 왜곡된 시각을 가질 수도 있긴 하지만, 모든 사람이 위키에 적혀있는 정보를 절대적으로 신뢰한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국내 혐한 여론 확산에 위키의 역할이 적다고는 할 수 없다. 당장 일본어 위키백과의 내용을 신뢰하냐는 설문에서도 '위키를 신뢰한다.'라고 응답한 사람이 40%에 달하고, '의심스럽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라고 응답한 사람이 55%, '기본적으로 믿지 않는다.'라고 응답한 사람은 5%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 애초에 의심조차 안 해본 사람이 40%에 달하고, 의심스럽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혐한 편집자들의 집단적 편집 조작과 수많은 문서에 집단적 활동을 눈치채기 힘들 정도로 스며있는 혐한 아젠다를 인지하고 이를 걸러냈을 확률은 극히 미미하다. 오히려 위키의 신뢰성에 의문을 던질만한 사람들은 일반적인 일본인보다는 인터넷과 위키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소위 인터넷 주민들 쪽이다.
2010년대 중반 들어서는 일본 국내에서 혐한 여론이 널리 퍼져버린 탓인지 멀쩡하던 편집자들도 갑자기 혐한성 편집을 하거나, 이를 옹호하는 모습이 부쩍 늘었다. 몇 년째 중립적 시각을 고수하던 올드비 편집자들이나, 애초에 그런 쪽 문서 편집에 손을 안 대던 서브컬쳐나 교통 문서 편집자들도 그런 경우가 보인다.
최근 들어서는 혐한들이 자기 영역을 벗어나서 영문판이나 한국어 위키백과까지 마구잡이로 일본에 유리하게 수정을 벌이는 것도 포착되고 있다. 심지어는 리그베다 위키 당시 이 문서도 일본 아이피에 의한 반달시도가 있었다. 링크 물론 일본 아이피라고 다 일본인은 아니고 그냥 국까 일본 유학생이나 일본 거주 한국인일 가능성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반달러라는 사실은 변함 없다.
한국의 문제점을 절대로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본어 위키백과는 명백히 악의를 띈 수많은 혐한넷 우익들의 대중을 향한 선전 창구로 변질되어 온갖 선동과 날조가 판을 치는 곳이란 점에서 비판받는 것이다.
일베저장소를 검색하면 디시인사이드의 모든 알맹이들이 일베에서 기원했다는 듯한 내용이 적혀 있다.
역사문제에 대해서는 일본 우익사관으로 서술된 내용이 많이 있다. 혐한 성향도 강하게 나타난다. 2ch 내부부터 위키페디아 반달리즘을 종용하는 선동 레스가 올라오고 있으며 사실상 혐한들이 능청스럽게 자신들의 주장을 퍼트리는 선전매체나 다름없이 되어가고 있다. 혐한초딩 전가의 보도재일 한국인판정으로 우기기와 숫적 열세와 언어의 한계 때문에 외부에서 간섭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부분의 문서들은 비슷한 역사 왜곡 수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점을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 극도로 편향되었거나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게 된 지 오래인 참고문헌의 악의적 인용 - 한국사에 대한 서술을 할 때 일본 위키백과의 편집자들은 고의적으로 일본 제국(일제강점기) 시절의 국뽕과 식민사관을 마구 들이켜서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참고문헌들을 인용한다. 당시의 문헌들은 대부분 학술적으로는 의미를 상실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비전문적인 넷우익들로 이루어진 역사 관련 문서 편집자들은 이런 학계의 최신 학설을 대부분 부정하거나 관심을 두지 않고, 전문적 참고문헌도 집단으로 다구리를 놓아서 부정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정확성이나 한국사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낮은데다가 제국주의, 국수주의 사관에 기초해서 쓰인 삼류 참고문헌들만 남게 된다.
  • 사료의 왜곡 - 1차사료나 신빙성이 높은 참고문헌들의 경우 자신들의 혐한 논리에 불리한 부분은 생략하고 유리한 부분만 취사선택해서 쓴다. 가령 임진왜란 당시에 일본 수군이 이순신 함대에게 늘 그랬듯이 마구 털리는 도중 한 배에 불을 붙였다가 금방 진화된 적이 있는데, 적의 배를 불태우려다가 실패했다는 팩트에서 "실패했다"는 부분을 생략하고 "적 함대의 배를 한 척 불태웠다"라고 써 놓은 문서도 있다. 아Q식 정신승리법에 근거해 있는 셈. 또 원간섭기와 달리 멀쩡한 주권국가였던 조선을 중국의 복속국쯤으로 폄하하기 위해서 명과 사이가 좋지 않던 시절 책봉 관련 트러블이 있던 시기의 왕을 조선 왕이 아니라 고려권지국사로 표기해 놓았다. 역시 '주권국가였지만 사대 외교의 형식 때문에 책봉 트러블이 생겼다'는 팩트에서 주권국가였다는 핵심 포인트를 악의적으로 생략한다.

3.2.1. 우익사관에 근거한 한반도 역사 서술


근대 사료들에서 한반도를 중국의 식민지 또는 중국의 일부로 보는 서술들을 전부 긁어모아 문서로 만들어놨다. 일본 식민사관에서 말하는 '조선은 원래 자주성이라고는 없는 중국의 식민지'라는 논리를 설명하기 위한 것.
한국의 역사 부분에서 전체적으로 한국은 자주성이 없는 나라이며 주권의식이 없고 남에게 지배 당하기만했다라는 부분을 특히 강조해 서술해놨으며 한반도 북부의 고대사 지역은 전부 한민족과는 그다지 상관없다는 식의 소수설을 잔뜩 적어놓았고(예를 들면 고구려와 발해를 '''퉁구스 민족'''의 국가라고 서술해놨다.) [15] 일본과 역사적 접점이 있는 한반도 남부 국가들과 가야 같은 고대사 부분도 한국의 연구결과나 자료는 무시한채 일방적인 일본 우익사관에 근거해 적어놓은것이 많다. 특히 사료의 왜곡 해석,과장 해석이 매우 심하다. 출처도 일제시대의 자료를 걸어놓는다거나 북한이나 일부 재야사학자들이 과장하게 떠든 한반도 역사 기사를 걸어놓고 한국인이 이런 황당한 주장을 한다고 비웃는데 쓴다거나 일본 우익의 입맛에 맞게 떠든 소수의 설이나 기사를 걸어놓는다거나 아니면 제대로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더구나 일제강점기 시대나 위안부 관련해서 자기들에게 유리해보이는 사진자료를 걸어놓거나, 이승만 라인 등으로 인해 독도가 점거당하고 있다거나, 1983년 제작으로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고 역사적 가치가 없어 이미 폐기된 병자호란 때 항복한 모습을 묘사한 인조의 동판을 걸어놓는 등 악의적이고 황당무계한 반달성 설명이 너무 많다.
전체적으로 중립적 관점을 무시한 서술이 너무 많으며 객관적인 설명을 달아놓기 보다는 자기들이 '원하는' 조선의 역사관을 퍼뜨리려는 움직임이 강하다.
게다가 "다케시마(독도) 를 되찾아야 한다, 한국을 압박해서 다케시마를 받아내야 한다, 한국은 남의 영토와 바다를 탈취한 도둑놈들" 이런 식으로 서술을 하며 날조를 서슴지 않는다.

3.2.2. 부여계 국가(백제, 고구려, 발해)에 대한 왜곡


부여계 국가인 백제와 고구려, 발해를 한민족과 아무 상관 없는 퉁구스계 국가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는 식민사관 중 하나인 만선사관과도 관련이 있는데 일본 제국은 고구려와 백제를 퉁구스계이자 북방계 이민족, 신라를 남방계 삼한족이라고 잘못 구분하고, 고구려와 백제의 한반도 영토는 만주족 왕조이며 현재의 열등한 한민족을 지배한 국가라고 주장한다.이에 따르면 신라의 삼국통일은 부여계의 명맥이 끊어진 것이며[16] 오로지 신라만이 현재의 한민족이라는 것이다.[17] 참고로 고구려를 배반하고 당의 고관이 된 연남생이 사망하자, 당나라 정부가 쓴 졸기에 남생은 '변한' 출신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이렇듯 맥족이 주체가 되어 예족 한족을 정복해 융화된것이 한민족의 정체성인데, 단지 한국을 까겠다는 일념 하나로 고대사 부분을 환단고기마냥 편집하는 유치함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
이를 외국사와 비교할 시, 영국으로 치면 앵글로와 섹슨과 노르만을 분리시키고 셋을 지배 피지배 관계로 엮어보겠다는 수준의 추함이며 일본으로 치면 죠몬인들이 다수였던 동일본 지역이 과거 에조(오랑캐)로 취급당한 걸[18] 가지고 동일본을 러시아 역사로 종속시키는 것과 다름이 없다.
때문에 고구려를 퉁구스계 만주족 역사라는 의견 [19]을 엄청나게 써놨다.

정작 여진족, 만주족은 고구려나 발해를 계승한 적이 '''한번도 없다.''' 이는 여진족, 만주족의 기록물이 증명한다. 만주족의 민족주의 고취를 위해 써놓은 만주원류고에서도 자신들의 원류에 발해, 신라를 끼어놓았을 지언정 고구려는 자신과 다른 민족이라고 보았다. 심지어 고려의 고구려 계승 의식을 폄훼하면서 고구려에 대한 계승의식은 발해와 여진족들도 있었으며 이들은 고려를 신라로 보았다고 했다는 근거없는 소리를 하기도 했다. 금사에도 말갈이 고(구)려에게 신속되었다고 하지, 말갈이 고구려를 세웠다고는 안 한다. 이외에도 고려가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를 보고 '''과거 고구려의 속민''' 운운하기도 했다. 반면, 한민족은 끊임없이 스스로는 물론이고 중국, 일본, 몽골 등에 고구려 계승의식을 보였으며 이들은 고구려가 한민족의 역사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발해가 만주족으로 발전되었다는 헛소리를 하기도 했다. 도리어 발해인들은 만주족이 자신들의 조상으로 여기던 금나라의 여진족에 의해 강제 이주되어 금나라 초기에 소멸하게 되었다.
또한, 부여계 국가들이 퉁구스계 민족들과 언어도 다르고 자신과 다른 민족으로 구분하는데도[20] 부여어족을 퉁구스로 구분한다. [21]
물론 고구려의 인구수의 상당수가 말갈[22]이고,[23] 이 말갈족들이 여진족의 전신이라 보긴 하지만 여진족들의 주 류 조상들은 말갈족들 중에서도 고구려의 영향력이 말갈 부족 중 적은 흑수말갈이고,[24] 이들은 발해 때가 되어야 무력으로 발해의 속민이 되었다가 9세기 말 쯤 독립했다.
즉 부여, 고구려는 숙신-말갈-여진-만주로 대표되는 퉁구스족을 타 민족이라고 여기고 무력을 통해 복속시켰다.(다만 지배의 정도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다) 이 사실을 왜곡되게 해석해서 고구려를 만주족이 세운 국가로 귀속시키는 것은 일본제국을 한국인이 세운 제국이자 한국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3.2.3. 삼한정벌


일본 우익사관의 정석인 진구황후와 삼한정벌이 모두 진실이라는 식으로 써놨고 그 근거로 일본서기에 기록된 신빙성 없는 기록이거나 다른 사료 기록을 들었다. 게다가 진실이 아니라는 반대의 설은 아예 쓰여있지도 않다. <일본서기>자체가 사실왜곡, 후대의 사실 부회, 천황가 숭배를 위한 윤색이 너무 심각해서 사료로 볼 때는 아주 면밀한 사료비판과 교차검증이 필요한 사료인데 이들은 100% 인정해버리는 식의 국수주의적인 해석을 하고 있는 셈. 그리고 그 중에서도 특히 진구황후(신공황후) 시기의 기록은 현대의 전문 역사가들에게는 사실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사회 일반과 동떨어진 넷우익들의 주장이 으레 그렇듯이, 수십년 전에 이미 학계에서는 부정된 삼류 국뽕 학설을 아직까지도 다분히 악의적, 고의적으로 들고 나와 우겨대는 것이다.[25]

3.2.4. 임나일본부설


임나일본부설 문서에서는 임나일본부설에 반박하는 근거를 전혀 서술하지 않았고 임나일본부설이 변해간 과정을 적고있다 또 해외 역사 교과서(그나라의 견해)를 근거인양 서술해놨다. 그리고 한일 역사 공동연구회 에서 임나일본부설을 폐기하도록 합의를 본 내용 같은게 있긴 있는데 폐기 되었다는 글은 없고 '''일본 측 근거만 있을 뿐'''이었다. 또 한국측의 주장은 "민족주의 성향이 강했다"라고만 적어놓고 근거는 '''전혀''' 서술하지 않았다.

3.2.5. 독립유공자(独立有功者)


독립유공자
독립유공자를 "독립유공자(독립유공자)는 대한민국의 신분제도(独立有功者は、大韓民国における身分制度。)"라고 표기한 적도 있었으며, 문서의 밑에는 친일파를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의 국가 귀속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본인 및 그 자손의 재산 의 일부가 국가에 의해 박탈되는 신분"(親日派 - 「親日反民族行為者財産の国家帰属に関する特別法」に基づき、本人及びその子孫の財産権の一部が国家により剥奪される身分。)"이라고 표기된 적도 있다.
이렇게 독립유공자는 특권신분, 친일파는 피차별신분이라는 인상 조작을 벌였는데, 중립적인 표현으로 고쳐놓으면 다시 신분이라는 말을 추가하는 등 반달성 편집이 횡행한 적이 있다. 2014년 4월을 마지막으로 신분이라는 표현을 전부 삭제한 중립적표현으로 바뀌었으며 2016년까지 유지되고 있는 중.

3.2.6. 권지고려국사


'조선의 국왕과 왕후의 목록' 틀에서 조선 태조, 정종, 태종을 조선국왕과는 별개로 권지고려국사로 분류했'''었'''다. 권지고려국사는 명나라가 이성계를 조선국왕으로 책봉하지 않고 국사, 즉 고려왕의 대리로 봉하는 것이 태종 대 까지 내려온 칭호였다.[26] 명나라 입장에선 맞는 분류이지만 굳이 이렇게 분류하여 조선과 명나라의 상하관계를 강조하려는 의도가 보인다.[27] 심지어 중국어판도 저렇게 분류되어 있지 않다. 비록 현재는 수정됐지만 일본 제국의 예처럼 다시 원래 적어놓은 대로 복구될 수도 있다.

3.2.7. 칠지도, 백제


동진하사설은 정설인 양 써놨고 중국과의 관계를 잘 알 수 있는 자료라고 서술하였다. 그리고 백제가 조공한 물건이라 써놨다.
백제문서에서는 일본에게 조공하는 관계였다고 쓰고 자극히 백제 왕족이 일본한테 자신의 왕족을 인질로 내밀었다고 서술한다. 또한 백제가 일본에게 영향을 주고 전래한 것들에 대해서는 서술하지 않았다.

3.2.8. VANK


일본어 위키백과에 나오는 내용만 보면 반크는 "한국정부가 밀어주는 프리메이슨 뺨치는 사이버테러 국수주의 편향 반일 단체"이다.# 다만 영어판에도 비판란에 반크가 한국과 일본간의 역사를 한국쪽으로 편향되게 왜곡한다는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다.
넷 우익 문서에도 보기에 따라 반크는 한국판 넷 우익으로 볼 수 있다는 말이 적혀있다.
다만 VANK의 경우 한국 국내에서도 비판이 있다. 지나친 국뽕이나 특정 종교 선교 성향에 대한 지적이다. 이 때문에 한때 반기독교 운동 웹에서 기독교 관련 단체 목록이라고 떠도는 글에서 이 단체가 기재된 케이스도 있다. 한국의 국수주의자 중에서도 반기독교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반크 역시 좋아하지 않는 경우가 제법 있다. 그래도 여기서처럼 정당한 비판의 선을 넘어선 비난까지는 안 간다.
여담으로 경인대첩 문서에서 VANK가 이 사건의 배후이며 이 때문에 FBI가 현재 이 사건을 조사중이라는 서술도 있다. #
또한 넷 우익들은 반크가 반일을 위해 만들어진 중국공산당의 뒷돈으로 움직이는 사이트라는 주장도 했지만, 반크는 일본과의 문화 갈등 뿐 아니라, 중국과의 문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많이 기울이기에 헛소리에 불과하다. 실제 최근에는 중공의 김치역사 날조에 대한 대응도 격렬하게 진행중이다(빨간색이라고 다 중국것이 아닙니다!).

3.2.9. 국가브랜드위원회


마찬가지로 반크와 맞먹는 프리메이슨일루미나티급의 직속기관으로 묘사했다.

3.2.10. 2002 FIFA 월드컵


오심 문제
북한이 저지른 납북 일본인과 더불어 반한 혐한이 폭증하는 계기가 된 2002 FIFA 월드컵에도 당연히 왜곡된 문서들이 있다. 요약하자면, 마치 한국은 실력보다는 오심 덕분에 4강까지 진출한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이 문서에서는 모든 게 다 오심인 듯 써 놨다. 그리고 한국이 이탈리아를 이긴 것에 일본에서 축구리그 중 최고로 치는 곳이 이탈리아의 세리에A다 보니, 자국이 최고로 치는 국가를 한국이 이겼다는 걸 믿을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3.2.11. 베트남 전쟁 관련


한국에서도 (주로 리버럴 진영을 중심으로) 이슈가 되었던 '퐁니·퐁넛 마을 학살 사건' 문서에는 다음 문장이 있다.

한국군에 의해 야기된 수많은 학살로 최소한 9000명의 민간이 살해되었으며, 희생자가 30만명이 넘는다고도 한다.


참고로 저 '9000명'의 출처는 아사히 신문이 인터뷰한 베트남인 피해자의 "자신이 듣기로는 최소 9000명이 된다."라는 발언이며.[28] 30만명에 대한 출처는 '''유명 친일파 김완섭의 저서이다'''. 또한 국방부 대변인이 한국군의 학살을 부정한 사건은 들어가있지만 한국 시민단체들이 성금을 모아 위령비를 세워줬다는 것은 적어놓지도 않았다.
라이따이한 문서의 경우 가관 그 자체. 직접적 관련없는 학살사건을 서술하는 것은 물론 백과사전을 자처하는 사이트가 맞나 싶을 정도로 감정적으로 쓰여있으며, 여기서 한국군은 전부 인간의 탈을 쓴 요괴들이고 2차대전 당시 일본군에 버금가는 전쟁범죄를 저질렀다고 서술되었다. "베트남인 중에는 미인이 많으니까 여자는 전부 강제로 위안부가 되었다"는 문장에선 정신이 아득해진다. 게다가 출처가 전후 일본에서 금기를 깨고 대동아전쟁이라는 표기를 처음으로 쓴 학자의 저서다.

3.2.12. 임진왜란


임진왜란
전체적으로 일본의 입장에서 매우 유리하게 왜곡해서 설명하고 있는 문서가 많다. 좋은 예시는 각 전투 문서들의 결과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승전은 과장어리게 선전하고 패전은 어떻게든 폄하한다. 예컨대 행주대첩의 결과를 권율이 행주산성을 포기 이런식으로 적어놓았다. 마치 결과만 보면 일본이 이긴 전투 같다. 심지어 부산포 해전은 일본의 승전이라고 적어놨다. 그 근거가 심히 가관인데 '이순신이 부산을 공격했으나 장수 하나 죽고 점령하지 못한채 퇴각함 → 고로 방어한 일본의 승리' 심지어 출처는 일제강점기 시절 출판된 서적이다. 그 외에도 참가군의 규모를 안적어 놓는다거나 하는 황당무개한 곡필이 너무 많다. 지금은 아예 임진왜란 개관의 조선군 피해 수준을 불명이라고 얼버무렸지만 과거 문서에는 십수만명 수준으로 서술해 놓았었는데 웃긴 건 각 개별 전투에 서술된 조선군의 피해 숫자를 합하면 십수만명을 아득히 넘는다. 조선군의 승전도 항상 꼬투리에 안좋은 말을 써놔서 의의를 흐리게 하는 기술이 흔하다.
추함의 극치는 '이순신은 보급을 차단한 적이 없다' 부분인데, 사실 이순신은 보급을 효과적으로 차단하지 못했고, '''일본군이 전란내내 굶주렸던건 조선의 농촌이 너무 가난해서 약탈할 것이 남아있지 않아서''' 라는 서술이다. 200년동안 태평기의 관료시스템으로 잘 돌아가던 조선의 농작물이 양에 안찰 정도라면, 150년의 전란기 동안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일본의 농촌들에서 전국 다이묘들은 호화판 주지육림을 때려먹으며 싸웠다는 것이 가능한지 생각해보면 신뢰성을 알 수 있다.

3.2.12.1. 명량해전

일본어 위키백과에 나온 명량해전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朝鮮水軍:先鋒隊に戦術的勝利を得て即時退却

日本水軍:右水営を占領し鳴梁海峡を突破

조선수군: 선봉이 전술적 승리를 거두어 즉시 퇴각

일본수군: (전라) 우수영을 점령하고 명량해협을 돌파

즉, 전술적으로 한번 패배했지만 전략적으로 승리하여 해로를 확보했다는 개소리.
실제 명량해전에서 조선 수군은 이순신의 지휘로 일본 수군을 대파하고, 명량해전 이후에는 전선을 뒤로 미뤄 전술적으로 싸울 수 있는 위치에서만 싸우는 전법을 사용하였다. 그럼으로써 경상도-전라도-한양으로 이어지는 바닷길을 도중 차단한 것이며, 이것은 전략적으로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다. 일본 육군의 타겟이었던 선조가 일본 육군이 한양에 도착하기도 전에 북쪽으로 탈주한 이후, 어이가 털린 채로 한양에서 머물던 일본 육군에게 해군이 보급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했기 때문이다. 결국 일본 수군은 명량해전에서 전술적인 참패를 겪었으며 그 이후의 전략에서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 외 이순신 관련 왜곡은 이순신/평가 참고.

3.2.13. 일제 강점기


일제강점기 용어가 북한과 관련이 있다는 유언비어부터 서술하고 있으며[29] 조선 총독부 측 통계를 맹신하면서[30] 인구 증가[31] 명목상 GDP 증가[32]등 식민지 조선이 발전해 보인 듯한 부분만 서술하고 있다. 심지어 식민지 조선 시기의 암울함을 알려주는 문맹률[33]이나 조선인의 신장[34]들도 과거에 비해 발전한 것이라는 자기가 모르니까 막 내뱉는 식으로 근거 없는 억지 해석을 하고 있다. 또한 위키 내의 한글 문서와 같이 일제 말 민족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시행된 한글 탄압에 대해서는 쏙 빼놓고 조선어학회가 조선총독부와 협력해서 한글을 연구하고 이를 배포하여 일본이 한글 보급에 도움을 주었다고 적어놓았다.[35] 그리고 구한말 조선이 개혁이나 발전 의지나 논의가 전혀 없었으며[36] 이 주장의 일환으로 조선의 광무개혁에 대해서 양반들의 반대로 실패했다고만 서술하며[37] 일본이 이를 개혁시켜줬다는 주장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노비제의 경우 조선 말 노비들의 수가 급감하고 현종때부터 노비제 폐지가 논의되어 오면서 고종 때 법적으로 폐지됬으나 사람들의 의식이 완전히 바뀌지 못해서 일제 강점기를 넘어 경제가 현대로 발전할 때까지 사회적으로 존재했는데, 이러한 자세한 설명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제대로 된 근거 없이 일제 강점기 때 노비제가 실질적으로 폐지되었고 서술한다.
또 2차대전 당시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에게 피해를 당했다는 증언만 실어놓고서 피해자 행세를 자행한다. 하지만 2차대전 때 일본정부의 수탈로 인해 조선인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는 것, 당시 치안을 일본군이 맡았다는 것, 해방 직후까지도 일본인의 귀족 행세와 조선인에 대한 차별은 일절 다루지 않는다. 비록 해당 증언들이 사실이라고 봐도 일본의 전쟁범죄라는 배경을 생각하면 일본이 피해자라는 주장을 할 수는 없다.[38]

3.2.14. 기타 한국 관련 서술


고려장에 대한 내용은 한국어 위키백과에서는 여러 고문서를 증거로 갖고 와 명백한 거짓이며 일본의 날조로 인해 생겨난 가짜 풍습이라고 정의내리지만, 일본어 위키백과의 高麗葬 문서에서는 고문서를 갖고 오긴 하는데[39] 반일(反日) 문단까지 있으며 신비한 TV 서프라이즈까지 끌고오면서 이 풍습은 원래 고려시대 때 부터 나온 것이 맞지만 한국이 일본을 공격하기 위해 한국인들에게 일본이 고려장을 지어냈다고 선동하고 있다고 주장한다.[40] 게다가 조선 농민은 가난했기 때문에 그런 풍습이 있었을 거라고 비하성 추측을 적어놓았다.
한국이 외부에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부분은 심하게 과장하는데, 한사군 영역을 한반도 남부까지 확대하고, 고려 말에 여진족과 거란족이 수만-100만 명씩 유입되었다고 서술하고,[41] 도래인 항목에서는 여진족, 거란족, 한족의 유입을 일본열도의 도래인과 동일시하는 내용이 있다.[42] 위만의 출신 논쟁에 집착하면서 한국인들은 위만의 출신이 중국인이라는 걸 부정하지만 세계에서는 전부 위만을 중국인이라고 주장한다며 필요없는 수준으로 강조한다.[43] 그리고 왕건과 이성계 등을 만주족이나 한족으로 바꾸는 등 왜곡이 많다.[44][45]
신라구 항목에서는 신라에게 당한게 수치스러웠는지(...) 신라는 원래부터 일본의 속국이었다는 선전부터 적어놓고 피해를 서술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선전들은 전부 신라구에게 당한 시점에는 기록에 없었다는 것이다.[46]

3.3. 일본 제국 미화


일본제국
일본 제국과 관련된 모든 사건, 사고와 서술에서 철저히 미화하거나 전쟁범죄나 패전과 같은 굴욕, 수치를 은폐축소할려는 경향이 보인다. 게다가 일본의 피해자 행세에 입각한 서술도 자주보인다. 일본의 패전을 덴노의 옥음방송으로 인한 종전이라고 하거나 패퇴를 전략적 후퇴라고 하는 등 어중간한 표현으로 어물쩍 넘어가는 경우도 있으며, 업적은 과장어리게 찬양하는것도 흔하게 보인다. 대일본제국이라는 제목은 정식명칭이었으니 그렇다고 쳐도, 일본제국의 성립일도 기원전 660년에서 '''현재'''까지로 표기해놨다.[47] '''일본제국이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는 것'''.
일본이 야마토 이후로 일본 국호가 변하지 않았고 일본의 덴노가 자칭 기원전부터 현대까지 보위를 계승한다지만, 초대 덴노인 진무 덴노을 비롯하여 기원전에 기록된 덴노들의 실체 역시 불분명하다. 더구나 만세일계의 실체도 부정확하다. 덴노가 일본을 스스로 통치한 기간은 정말로 일본사를 통틀어 얼마 안 되고 덴노의 의미는 일본 열도의 국가원수/통치자라기보다 정신적 지주에 가깝다. 일본 역사에서 일본은 대부분 막부가 통치했는데, 역사적으로는 막부정부가 실질적인 정부로 보고 막부의 쇼군을 사실상의 일본의 국가원수로 친다. 더군다나 정식국명은 국가의 존속기간을 따지는 필수요소이며, 뿐만 아니라 일본 헌법의 변화로 일본 스스로 덴노를 국체로 두지 않고 정식 국명도 '대일본제국'에서 '일본국'으로 바꿨다. 즉 일본국은 일본제국과 구별되며 일본제국의 존속기간은 에도막부의 멸망부터 연합군 통치시대까지로 보는게 통설이다.
그러나 이들조차 흑역사로 여기는 예외가 있다.

3.4. 중국어 위키백과와의 끊임없는 마찰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일본의 과거 왜곡도 있어 중국 및 중화권에서의 입지는 매우 나쁘다.
한국과의 마찰이야 대부분 임나일본부같은 전근대사나, 일제의 한반도 수혜론같은 역사왜곡 정도인 것에 비하면, 중화권과의 경우 중일전쟁 과정에 저질러진 극심한 전쟁범죄들에 대해 부정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중화권과의 마찰은 한일간의 마찰이 귀여워보일 정도로 살벌한 수준이다.'''
중국어 위키백과에서도 대립하는 일은 빈번하다. 일본 극우들이 해외의 위키백과(특히 영어 위키백과) 등지에서 역사 왜곡을 하며 일본에 유리하게 서술하면, 가장 민감하게 나서는 이들이 바로 중국인 및 화교, 각종 중화권 유저들이다. 이들은 이러한 반달 행위를 하면 해당 해외 위키백과의 운영진들에게 세심하게 준비한 증거 자료들을 제출하여 반달 일본인들을 영구 차단시키는 조치조차 하기 때문에 일본어 위키백과처럼 분탕을 칠 엄두를 못 낸다.

3.4.1. 난징 대학살


난징 대학살
제목부터 南京大虐殺(난징 대학살)가 아닌 南京事件(난징사건)으로 축소하고 있다.[48] 사진도 일본군의 살인 장면이나 학살과는 무관한 일본군의 민간인 지원이나 중국군 포로 치료 사진만 있고 앞부분부터 중국군이 청야 전술이라는 이름 아래에 민가를 약탈하고 방화하고 강간했다는 내용이 있다. 중국군이 병사들을 도망치지 못하게 토치카에다가 쇠사슬로 묶어놓고, 도망병을 사살하기 위한 이른바 '''독전대'''를 배치시켜 적 아군 할것없이 모조리 쐈다는, 출처조차도 일본 넷우익들이 자신들 입맛에 맞게 작성된 자료들이다. 하위 문서로 난징 대학살 논쟁이라는 것을 만들어 난징대학살이 단순한 주장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난징대학살의 규모를 그나마 줄인 욘 라베 문서도 라베가 중국 국민당과 연계되어 있었다고 서술하고 있어 라베의 업적을 왜곡한다. 그리고 난징 대학살을 대표하는 "100명 참수 경쟁"도 사실여부가 논쟁 중이라고 서문에 적어서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당연하지만 중국인들을 포함한 외국에서는 이러한 왜곡을 절대로 믿지 않는다. 실제 중국에서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난징 대학살 당시 일본의 만행들을 전부 공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어 위키백과와 엄청난 대립을 겪고 있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중국어 위키백과의 운영진들은 일본어 위키백과의 운영진들에게 하루 빨리 난징 대학살이라는 명칭을 쓸 것을 동시에 일본군이 학살을 저지른 사진들을 즉시 올리라고 압력을 넣고 있고, 일본어 위키백과에서는 이를 강하게 거절하면서 서로 치열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오죽하면 위키백과의 설립자인 지미 웨일스가 직접 개입을 했을 정도로 매우 심각한 상태로 진전된 적도 있다. 굳이 난징 대학살이 아니더라도 중일전쟁, 만주사변같은 문서에 대해서도 서로 치열하게 싸우기도 한다.

3.5. 내용의 부실함


위키백과의 설립자 지미 웨일스는 일본어 위키백과가 다른 언어 위키백과와 비교했을 때 대중문화 관련 내용이 많다고 언급했다. 지미 웨일스는 일본어 위키백과의 문서 중 20%만이 대중문화에 관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즉 '전문성이 결여되었다'는 것이다. TV, 인터넷, 비전문가의 서적들, 신문의 기사내용, 라디오, 연예인 혈액형 등 방송매체의 정보들을 입맛에 맞는 것만 취사선택해서 복붙해놓았다는 것이다.

4. 시스템상의 문제점


아래의 문제점은 미디어위키를 사용하는 다른 일본어 위키들도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문제점들이다.

4.1. 반달리즘으로 차단된 유저 조리돌림


일본어 위키백과에는 LTA라는 제도가 있는데, 반달리즘으로 차단된 유저를 공개적으로 조리돌림하는 페이지이다. 예시 반달리즘의 자세한 패턴을 적어놓는 것을 모자라, IP를 모두 공개하고 '''IP를 이용해 신상까지 캐낸다.''' 그리고 그 캐낸 신상을 LTA 페이지에 적어놓는다.
해당 행위는 조리돌림인 것도 문제지만, 반달리즘들은 대부분 트롤링이 사유인 것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반달리즘을 증폭시킬 수 있는 행위이다.

4.2. 토론 이름공간


토론 이름공간을 거의 쓰지 않는다. 아예 이름을 '''노트'''로 바꾸고 문서에 대한 메모를 하는 곳으로 용도를 바꿨을 정도.

5. 기타 사건·사고


일본어 위키백과에서 한 에로게의 문서를 편집한 IP 내역 중에 후생노동성 IP가 있던 것으로 드러나 2ch 잉여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5.1. 관리자 신상 정보 유출 사태


2ch의 뭐든지 실황 J 게시판에서 변호사 카라사와 타카히로 문서를 반달하려다가 관리자인 Muyo로부터 제지를 받기 시작했다. 이에 반발한 뭐든지 실황 J 주민들은 관리자인 Muyo로 공격 대상을 바꿔[49] 관리자의 신상 정보를 트위터 등의 SNS를 통해 퍼트리고 있다. 카라사와 타카히로 위키의 Muyo 문서에는 관리자 Muyo의 신상 정보가 상세히 적혀 있었다. 현재는 위키 자체가 통째로 날아간 상태.

[1] 일부 준보호가 걸려있는 문서를 편집할 때 회원가입이 필요하다.[2] 중국 본토에서는 '황금방패'로 불리는 인터넷 검열로 인해 모든 언어의 위키백과를 차단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어 사용자가 많지만 중국어 위키백과는 그다지 양이 많지 않다. 이를 넘어 좀 더 심도있는 중국에 관련된 자료를 얻으려면 중국 자체의 바이두 백과사전을 보면 된다. 다만 바이두 백과사전은 중국 공산당검열에 통과된 정보만 기재되기 때문에 중국 근현대사에 관한 자료는 대부분 중국 정부의 입장과 동일하다.[3] 미디어워치에서는 황철수 씨와 박아름 씨의 번역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이들이 전문 번역 블로거와 동일인물인지 확인되지 않았다.[4] 자료량으로 보면 한국이 발끝에도 못 미친다.[5] 스웨덴서버를 둔 대안 우파 취향 위키.[6] 출처를 표시하는 각주의 부재는 출처가 불분명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개인의 주관에 따른 내용이거나 어디서 주워 들은 것일 확률이 매우 높다는 뜻이다.[7] 일본극우단체에서는 이들을 'プロ市民(프로시민)'이라고 폄하한다. 이 프로시민이라는 표현은 한국에서 사용되는 깨시민이나 강남 좌파 등의 표현과 비슷한 맥락의 표현이며, 특히 깨시민과는 의미가 상당히 일치하는 편이다.[8] 당연히 이런 세부적인 내용을 다루는 글들은 각각 한국군, 대한민국 법원, 베트남 전쟁과 같은 문서에 넣어야 할 내용이다.[9] 言葉+バンク[10] 여기서 오타쿠라는 말의 의미는 애니메이션, 서브컬쳐 팬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문화의 맥락에서 특유의 아집과 집착으로 상징되는 부정적이고 넓은 의미의 오타쿠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오타쿠에는 애니메이션 팬이 겹칠 수도 있으나 그것과 전혀 관계없을 수도 있다.[11] 웹상에 유출되는 것 제외.[12] 나무위키도 일종의 문서 사유화나 독자연구성 문서는 여럿 존재한다. 따라서 이 위키에서도 기술을 교차검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13] 다만 모든 항목에서 지우지는 못했는지 야요이인 항목에서는 야요이인들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일본에서 건너왔다고 서술되어 있으며, 고대 일본의 철기 기술이 한반도로 전래되어 있다는 서술도 존재한다.[14] 이는 마치 한국에서 일본의 고고학 분야를 후지무라 신이치로, 일본의 생명공학 분야를 오보카타 하루코로 설명하는 것과 같다. [15] 그 근거가 SAPIO같은 극우 시사지라던가 코분유같은 각종 혐한 극우언론,인물들이다. 가관이 따로 없다. 또 일제시대 연구자료,1970년대 연구자료들을 근거로 끌어오고 개중에는 사학자도 아닌 일개 변호사나 극우단체 인물들이 지껄인 헛소리도 근거랍시고 적어놓았다. 유목민+중국인이 한민족을 지배하기만 했다는 그들의 설을 주장하기 위해서이다.[16] 고구려인 스스로도 자신을 삼한인이라고 말하고, 중국과 일본 사서에서도 고구려 백제 신라를 삼한이라 통칭하는 등, 삼한이라는 단어는 이미 고구려, 백제, 신라로 계승되었다는 것은 고구려인이 세운 묘비에서도 발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한이 고구려를 포함한다는 주장을 소설로 취급하는 의견을 당당히 써놓았다.[17] 사실 이런 주장대로라면 고구려가 위치했던 한사군도 한민족을 지배했던 것이 아니라 퉁구스인들을 지배했던 것이라고 주장해야 한다. 신라는 한사군에 속한 적이 없다. 하지만 "한사군은 한민족을 지배했던 중국의 식민지"라는 것은 적극 인정한다. 역시 앞뒤가 안 맞는 궤변과 모순이다.[18] 심지어 이런 오랑캐 취급은 고려가 한반도를 통일한 이후의 일이다.[19] 사실 동북공정 또한 일본 제국과 관련이 있는데, 일본 제국이 만주사변을 발생시켜 중국과 만주를 분열시키려는 모습을 보였고, 한국을 만주세력에 종속된 열등 민족(만선사관)이라 비하하기 위해 만주에 위치했던 국가를 한국과도 분리시켰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이러한 일본제국의 영향으로 인해 시작되었다.[20] 부여는 읍루인들을 경제적으로 착취했고, 고구려는 말갈을 공격해서 속민으로 삼았다.[21] 만주어의 경우, '''다른 퉁구스어족과는 달리''' 몇몇 부분에서 고구려어의 흔적이 보인다고는 한다. 다만 이 고구려어 흔적들마저도 '한국어와 연관되는 부분'으로써 연구된다.[22] 다만 말갈이 정말 고구려의 상당수인지는 불명이다. 30%이하의 소수민족급이라는 의견도 있다.[23] 그마저도 무력으로 복속시키고 동화정책을 쓴 것.[24] 같은 말갈족이라고 해도 발해는 고구려에게 동화되어 고구려 정체성을 가진 말갈족을 중심으로 세운 국가이고, 여진족은 고구려 정체성이 옅거나 없는 말갈족을 중심으로 세운 국가라 이질성이 존재했다. 이 때문에 금나라에서는 발해인들과 갈등이 잦았다.[25] 신공황후의 삼한정벌 기사는 실제로는 연대가 120년 정도 당겨진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고, 더 중요한 것은 '''삼한(=마한 잔여세력)을 정벌한 주체는 일본이 아니라 백제의 근초고왕으로 보인다는 것.''' 학계에서는 백제가 영산강 유역을 정벌한 것을 기록한 백제계 도래인들의 사료를 토대로 야마토 조정이 《일본서기》를 편찬하면서 '''주어를 바꾼''' 것으로 보고 있다. 애초에 일본서기에 쓰여진 시기대로라면 진구황후히미코의 활동연대가 상당수 겹치는데 둘이 동일인물인지, 둘중 하나가 거짓된 인물인지, 실제로 동시대에 활동했던 인물인지조차 완전히 결정하지 못하고 가설만 있는 실정이다.[26] 고려왕도 광종대까지 이 칭호였다. 조선은 국호가 결정된 후 권지조선국사로 변경.[27] 한국어 위키백과에 일왕 항목 제목을 "한위노국왕"으로 적는다고 생각해보자.[28] 사실 한국의 진상규명론자들도 대강 적어도 이 정도일 거라고 환산 중이다.[29] 일제강점기라는 용어는 반공주의를 내세우던 군사정권에도 사용되었다.[30] 해당 통계의 신빙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31] 인구의 증가가 반드시 부유함을 말해주진 않는다. 당장 선진국보다 개발도상국의 인구 증가률이 높으며, 북한 또한 일제강점기보다 인구가 증가했다.[32] 일본 제국이 해방시키겠다고 공언했던 서구의 식민지들도 GDP등 경제 성장은 존재한다. 중국 공산당 치하 티베트마저도 마찬가지다.[33] 일본이 귀축영미 운운한 서구 식민지의 아프리카보다도 못한 상황이었다.[34] 임진왜란 당시 한국인 남성의 신장은 일본인 남성보다 6cm 높았으나, 일제시대 이후에는 그 차이가 3cm이다.[35] 실제로는 어디까지나 중국 공산당이 소수민족 달래는 수준으로 온건책을 쓴 것이다.[36] 다만 조선이 자발적으로 근대화했을지는 학자마다 논란이 있긴 하다. 문제라면 자발적인 근대화의 가능성을 보기 전에 일본의 식민통치가 있었다는 것.[37] 광무개혁에 대한 가능성은 둘째치고 눈에 띌 만한 변화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며 제대로 완성하기도 전에 합병되었다.[38] 당시 치안은 일본군이 점유하고 있었으며, 일본 군부의 지휘 아래 일어난 일본의 집단적 전쟁범죄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한국인의 개인적 증오범죄는 천지차이다.[39] 출처는 윌리엄 그리피스의 "은자의 나라 조선". 책의 내용에서는 일본에는 17세기까지 존재했고 조선에서는 19세기까지 이 풍습이 있었다고 적혀있다고 한다. 그리고 현대 한국 소설과 영화도 끄집어왔는데, 전상국의 소설〈고려장〉을 들어 명백한 한국의 역사였다고 주장한다.[40] 일단 고려장은 그리피스의 기록 이후 한국인들도 그런 전설이 있었다고 믿었으나, 그러한 착각이 조선시대에 고려장 풍습이 존재했다는 근거가 되지 않다.[41] 당장 거란족 8만명이 유입된 것만으로 고려에서 난리가 터진 적 있었다. 애초부터 그 정도의 유입이 있었다면 문화적 정체성에 있어 눈에 띄는 변화가 보여야 한다.[42] 한국에 망명 온 집단은 결국 한국의 정체성에 이렇다 할 흔적을 남기지 못하고 동화되었던 것에 비해, 도래인의 유입은 일본 역사와 정체성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43] 현재에는 위만이 고조선 혈통인가 중국 혈통인가보다인 출신 논쟁보다 그가 고조선의 정체성을 계승했다는 것이 더 중요하게 다뤄진다. 세계사를 보면 다른 나라 혈통이 한 국가의 지도자가 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 다른 나라 혈통이 해당 국가의 정체성을 계승한다면 그 나라의 지도자로 여겨진다.[44] 왕건의 경우 자신의 증조할아버지를 당 황실이라는 속설이 있었지만 당시에도 믿기 어렵다며 신빙성을 의심받았고, 중국을 계승하자고 한 적이 한 번도 없다.[45] 이성계는 여진족을 지휘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고려인으로서 무력을 통해 여진족을 복속시킨 것이지 이성계 자체가 여진족인 것이 아니다. 사실 이러한 왜곡은 고구려와도 비슷하다.[46] 이는 해당 선전들의 신빙성을 반박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당장 조선도 여진족에게 침략당할 때는 과거 여진족들이 조선을 상국으로 대우했던 과거부터 상기시켰는데, 신라구에게 침략당할 당시 일본인들은 그런 과거를 상기시키지 않았다는 것.[47] 언젠가 수정되었던 모양인데 귀신같이 되돌아갔다.[48] 명칭에 대해서는 현재 일본내의 각종 출판물에서는 南京事件(난징사건), 南京大虐殺(난징대학살), 南京大虐殺事件(난징대학살사건), 南京虐殺事件(난징학살사건) 등이 혼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일본정부에서 가장 최근에 공식적으로 사용한 명칭은 외무성이 2010년에 중일공동역사연구에서 발표한 논문의 '南京虐殺事件(난징학살사건)'이라는 명칭이고, 일반적인 일본인들에게는 '南京大虐殺(난징대학살)'라는 명칭이 가장 널리 알려져있으며, 심지어 반중데모를 벌이는 우익단체들도 '南京大虐殺'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따라서 사용빈도 면에서도 떨어지고,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한 명칭도 아닌 '南京事件(난징사건)'을 문서명으로 채용했다는 것 자체가 의도적인 축소로 볼 수 있다.[49] 뭐든지 실황 J의 뒷게시판의 Wikipedia 공략노선 2 스레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