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트 벨터
'''쿠르트 벨터(Kurt Welter: 1916년 2월 25일~1949년 3월 7일)'''
1. 전반기
쿠르트 벨터는 독일 제국 시대인 1916년에 쾰른의 린덴탈에서 태어나 1934년 10월 1일에 독일 공군에 입대해 조종사 훈련을 받았다. 교육을 받는 동안 다른 생도보다 뛰어난 비행 적성을 보인 생도 벨터는 비행교관으로 선발되어 자대로 배치받는 대신 별도의 추가 교육을 받게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0년 8월 1일에 중사로 승진한 그는 제63훈련비행연대가 있는 비행학교로 보내졌다가 그 후로는 쿠벨트린부르크의 비행학교에서 교관 직무를 수행하게 된다.
2. 야간 요격
이때문에 실전에 참가하는 것이 계속 늦춰지던 쿠르트 벨터는 1943년 9월 2일에야 하요 헤르만 중령이 창설한 야간전투기 부대인 제301전투항공단(JG 301) 예하의 제5비행중대로 보내져 처음으로 전투에 참가하게 된다. '''빌데자우'''라고 불린 이 부대는 대다수가 간단한 넵튠 레이더만을 탑재하거나 혹은 아예 레이더조차 없는 Fw 190A-5와 Fw 190A-6를 야간에 운용하는 실험 부대였다. 벨터는 9월 22일 달빛이 어스름하게 비치는 밤에 첫 출격에 나섰고, 초진임에도 불구하고 2대의 4발 중폭격기를 격추시키면서 오랜 교관 생활로 다져진 비행 솜씨를 선보였다.
1944년 봄까지 15회의 출격에서 적기 17기를 격추시켜 1944년 5월 10일에 독일 황금십자장을 받은 벨터는 곧 소위로 진급하게 된다. 장교가 된 벨터는 7월 7일에 제300전투항공단(JG 300) 예하 제5비행중대로 소속이 변경되었다. 벨터 소위는 7월에 하늘의 요새라 불리던 보잉 B-17 폭격기 2대와 독일 전투기 조종사들이 난적으로 평가하던 P-51 전투기 3대를 하루만에 격추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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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야간 에이스
1944년 7월 24일에 제10야간전투항공단 제1비행중대로 이적한 벨터는 8월 29일에 영국 공군의 아브로 랭커스터 폭격기를 4대나 격추했다. 9월 4일에 다시 제300전투항공단으로 돌아온 그는 제10비행중대를 지휘하면서 9월 동안 다른 에이스들도 거의 건드릴 수 없다고 말하던 드 해빌랜드 모스키토 전폭기를 7대나 격추시켜 주변을 놀라게 했다. 10월 18일, 쿠르트 벨터는 40회 출격으로 33대를 격추한 공로로 기사철십자장을 수여받았다.
같은 해 11월 2일에 벨터는 제11야간전투항공단 제2비행대로 이동하여 마그데부르크 상공에서 야간에 영국 공군기를 막는 방공 임무를 수행했다. 이듬해인 1945년 1월 28일에는 제11전투항공단 제10비행중대로 이동하여 신형 제트 전투기인 Me 262에 올라타 또다시 격추 행진에 불을 당겼다. 1945년 3월 11일에 48기 격추 공로로 곡엽검 기사철십자장을 받았다.
쿠르트 벨터는 공식적으로 93회 출격만으로 63기 격추라는 기록을 세웠는데, 그 중 56기가 야간 전투에 의한 것이었다. 게다가 그중에서 33대는 루프트바페의 전투기 조종사와 폭격기 조종사들이 가장 어려워하던 상대였던 모스키토였다. 하지만 Me 262에 탑승시 격추 기록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어서 슈발베 탑건이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3대라는 설까지도 제기되고 있다.
4. 종전 후 사고사
전쟁이 끝나고 민간인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 설탕 공장에 근무하게 된 쿠르트 벨터는 회사에서 트럭 기사가 되었다. 1949년 3월 7일에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의 레크(Leck) 부근의 철도 건널목에서 기차가 통과하기를 기다리던 있었다. 차를 세우고 열차가 모두 통과하기를 기다리고 있던 벨터의 트럭 위에 갑자기 화물 열차에서 거대한 통나무가 떨어져 운전석을 덮쳐버렸고, 이 산전수전을 다 겪은 전쟁 영웅은 그대로 압사당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