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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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serschmitt Me 262 '''Schwalbe'''
'''제원(A-1a기준)'''
Bf 109 애호가였던 아돌프 갈란트 중장도 "난 Bf 109 5대보다 이 녀석 하나를 고르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참고로 갈란트 중장은 Fw 190이 실전배치되는 중에도 Bf 109를 선호한 사람이다.
일반적으로는 세계 최초의 제트 엔진 전투기로 알려져 있지만 1938년에 이미 융커스 사에서 EF009 제트 전투기를 개발했으며 하인켈사가 1939년에 먼저 He 178 제트기의 시험 비행에 성공했고 그 뒤를 잇는 제트 전투기인 He 280의 개발에 성공했기 때문에(Fw 190와의 경쟁 당시의 독일군 관계자들의 제트 엔진에 관한 무관심 덕분에 Fw 190에 밀려 채택되지 못하였다.) Me 262는 세계 최초로 실전배치된 제트 전투기만 해당된다.
하지만 He 280과 함께 공기 비슷한 신세가 되어버렸고 시제기 3대만 만들라는 지시만 내려왔음에도 1942년에 피스톤 엔진을 사용한 시제기가 시험비행에 성공했으며 BMW의 003 터보제트 엔진을 사용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이 엔진이 자꾸만 말썽을 부렸다. 한번은 시험비행 도중 엔진 트러블이 일어나서 예비로 장착했던 융커스 피스톤 엔진을 쓸 수밖에 없었고 결국 메서슈미트 사는 더 크고 무겁지만 쓸 수 있는 엔진을 달기로 했는데 그것이 바로 융커스 유모 004 터보제트였다. 그리고 이로써 Me262는 드디어 제트 전투기가 되었다. 이 때가 1942년이다. 그러나 히틀러의 명령 하나로 이 전투기는 1944년에야 생산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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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이 무거운 엔진 덕분에 Me 262는 또 하나의 특징을 가지게 되는데, 바로 후퇴익이다. 왜 엔진 덕분인가 하면 고속 성능을 위해 채용한 것이 아니라 무거운 엔진 때문에 기체의 무게 중심을 잡기 힘들어서 날개에 엔진을 달고 뒤로 젖히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만들어놓고 보니 속도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염두에 두고 후퇴각을 조절하기는 했다고 한다. 그리고 시제기에서 머물기는 했으나 미국도 XP-55 등의 기종에서 후퇴익을 적용하기도 했다.[7]
실전배치되었을 당시의 전황이 급박하다보니 주로 폭격기 요격에 많이 투입됐는데, 대전 말기에는 기수에 50mm 기관포를 장비하여 장거리에서 강한 화력으로 폭격기를 격추한다든지 심지어는 R4M 공대공 로켓을 사용하기도 했다. 로켓의 경우 위력도 위력이지만 여러 발이 꼬리를 물고 사방으로 퍼져나오는 모습 때문에 폭격기 편대를 흐트러놓기 좋았다. 그리고 이런 무장과 속력을(10,000m 상공에서는 속력이 많이 줄어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프로펠러기들보다 훨씬 빠르다.) 바탕으로 호위기와의 교전을 회피하고 폭격기만 공격하고 돌아오는 전술을 사용했다. 물론 호위기들이 그냥 보내줄 리가 없으니 다른 전투기들이 호위기와 교전하는 동안 대열 사이로 침투해 폭격기만 공격하고 오는 방법이었다. 물론 워낙 빠르다보니 폭격기의 방어기총으로 맞추기 어려웠다고한다.
그러나 Me262는 여러가지 문제를 안고 있었다.
부족한 생산량인데도 파생형은 늘려버리는 독일군의 습관과 함께 정치적 부침이 심한 결과 파생형이 꽤 나왔는데[23]
전후에도 체코슬로바키아에 의해 아비아 S-92(A-1a), 아비아 CS-92(B-1a : 복좌형)이라는 이름으로 생산되어 1957년까지 체코슬로바키아 공군에서 운용되었다.
일본에도 수출될 뻔했다. 원래 선박 엔진 기술을 주는 조건으로 004 엔진과 그 기술을 모두 받는다는 조건이었는데 004 엔진과 설계도들을 실었던 잠수함이 돌아오다가 기뢰를 건드리는 바람에 침몰해 버렸다. 종전 직전에도 10형 유보트 U-234가 일본으로 Me262 완제품 2기, 004 엔진 10기를 싣고 가던 중 1945년 5월 14일에 미국 해군 측에 항복하는 바람에 일본은 맨땅에 헤딩까지는 아니지만 단편적인 자료만 가지고 제트기를 직접 개발해야 했다. 비슷하게 생긴 J9Y 깃카라는 전투기를 어영부영 만들었고 원본과 완전히 똑같은 외형인 Ki-201 카류의 일부 부품도 생산했지만 당시 일본의 전황과 공업력 때문에 실전에 투입되지 못하고 현재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물론 전후에 미국이 킷카를 가져가 설계도를 뜯어보고 실험해 봤을 때 Me262보다 익면하중도 더 낮았고 더 가벼운 소재로 제작되었기에 엔진이 제 성능을 낼 수 있었다면 우수한 비행성능을 기대할 수 있었다는 결과가 나왔고 타국의 사례를 생각해보면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그나마 쓸만한 성능이 나왔을 가능성도 있으나[24] 당시 일본의 전황을 생각하면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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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부터 미국에서 레플리카를 만드는 작업이 이루어져 2006년에 완료되었다. 한국 군사잡지에도 제작과정과 완성 후 비행모습이 소개되기도 하였다. 위 사진은 2006년 베를린 에어쇼에서 공개된 레플리카이며, 본 문서 서두의 2006년 비행 동영상도 바로 이 재현품의 비행 동영상이다. 미국의 항공애호가 단체의 독일계 미국인[25] 이 모든 부품을 당시 방식으로 일일이 제작했다고 한다. 다만 엔진은 제너럴 일렉트릭 CJ610[26] 으로 교체되었는데, 이는 원판 엔진의 불안정함에다 미국 항공법의 규정 때문이다. CJ610은 유모 엔진에 비해 엔진 크기와 중량이 훨씬 작으면서도 추력은 더 강했기에 무게중심 등을 맞추고자 겉에 원 엔진 모양의 커버를 추가했으며, 스프링 장치를 이용한 간단한 스토틀 제한장치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착륙시엔 간단하게 해제하여 안전한 이착륙에 필요한 출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한다. 항공전자장비 역시 항공법 규정 때문에 현대제품을 사용했다.[27] 이외에도 원판에서 문제가 되었던 랜딩기어도 강화되었다고 한다. 이 레플리카는 메서슈미트사의 후신격[28] 인 당시EADS(현 에어버스 그룹)로 부터 정식 복각판으로 인정받아서 Me262 A-1c(단좌형), B-1c(복좌형), A/B-1c(단/복좌 전환 가능형)라는 형식명도 받았다.
참고로 "인류 최초로 음속을 넘었을지도 모르는 전투기"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1945년 4월 9일에 전투 도중 한스 뮛케(Hans Guido Mutke)가 전투중 고도 12,000m에서 시속 1,100km/h 을 기록했다고 보고했기 때문이다.(해당 고도에서 음속은 1,062km/h)[29] 그러나 이 기록은 40도로 강하하고 있던 당시의 속도기 때문에 공식 기록이 될 수 없다. 이보다는 뒤의 이야기지만 F-86도 도중 음속을 돌파했었으나 역시 강하중에 이루어진 돌파이기에 인정되지 않는다. 최초로 음속을 돌파한 유인 항공기는 X-1로 척 예거가 돌파했다.
Me 262의 개발이 실패로 돌아갔다면 Bf 109의 제트 엔진 장착형인 Me 109 TL을 백업으로 개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개발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서 Me 109 TL은 설계도 단계에서 중단되었다.
스타워즈로 유명한 조지 루카스가 제작한 영화, 레드 테일에 적기로 등장한다. 마지막 전투 장면에 4대 편대가 폭격기 요격에 나서서 붐 앤 줌 기동을 보여주지만, 연출을 위해 P-51 머스탱과의 헤드온에도 격추를 당한다. 단, 격추 전과 자체는 허구가 아니다. 터스키기 에어맨 항목 참조.
스트라이크 위치스 2기 4화에서 Me 262 V-1이라는 이름의 시제 제트 스트라이커로 등장했다. 50mm 기관포와 4연장 30mm 기관포가 한 세트로 등장하는데, 이는 A-1/U4와 기본형을 구현한듯. 하지만 현실과는 다르게 둘 다 한 번에 들고 날아갈 수 있다. 작중에서 음속돌파 관련 묘사도 있었던 P-51D보다도 빠른 속도와 상승력을 과시하나[30] , 사용자의 마력을 쪽쪽 빨아먹는 괴악한 연비를 가진 결함기로 묘사되었다.
워 썬더의 독일 메서슈미트사 항공기 트리 5티어 중후반에 등장한다. 중후반인 이유는 해당 티어 첫 항공기가 제트기가 아닌 로켓기라서. 기본 모델인 A-1a 슈발베 그리고 동체 내부에 로켓 추진기를 탑재한 C-1a 모델 , 양쪽 주익 내부에 로켓 추진기 각각 1기 씩을 탑재한 C-2b 모델이 전투기 트리에 있으며, 한편으로는 공격기 트리에 요격기로서 50mm Mk. 214 대전차 기관포를 탑재한 A-1/U4 모델도 있다. A-1/U4 모델은 중폭격기에 한두발 박아주면 불이 붙어서 떨어지는 대단한 단발 화력을, A-1a는 가속이 조금 아쉬운 것을 제외하면 적당한 비행 성능에 탄속이 무지막지하게 느린 30mm 4문의 절륜한 지속 화력 투사 능력을, 로켓 장착 모델들은 로켓 때문에 A-1a에 비해 추중비에서 약간 손해를 보는 대신 로켓엔진 점화로 모자랐던 가속성능을 보완해 Me 163과도 잠깐 붙어볼 만한 강력한 단기추력을 지녔다.
월드 오브 워플레인의 독일 중전투기 트리에서 Me 262 슈발베가 8티어 중전투기로 등장한다. 초기에는 워 썬더처럼 50mm 기관포를 장착한 사양이 있었으나 50mm가 삭제되고 30mm MK-108 4문만 있으며, 최종 사양은 미익에 로켓 엔진이 장착된 C-1a 모델이다. 상위 티어에는 페이퍼플랜인 개량형들이 있는데, 9티어는 35도 후퇴익이 적용된 Me 262 HG II고[31] 10티어는 45도 후퇴익이 적용된 Me 262 HG III다.
히어로즈 인 더 스카이에는 Me 262 초기형과 Me 262 무장강화형, Me 262 HG II 형 3종류가 모두 구현되어 있다. 특히 HG형은 인게임 내에서 '''관제기''' 라인으로 출시되었기에 스킬쿨타임 단축스킬 같은 유용한 스킬을 사용가능하여 레이드 모드에서 한때 많이 사용했다.
IL-2(게임)에는 원판인 A-1a와 50mm 기관포를 장착한 A-1a/U-4 가 구현되어있으며, 페이퍼 플랜 후속형인 HG II 도 구현되어있다. 일단 속도가 붙었다 하면 프로펠러 전투기로 격추하는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멀티 서버에선 맵 내에서 1명~2명 까지만 탑승을 허용했었다. 하지만, 운영이 마냥 쉽지는 않은것이, 스로틀을 조금이라도 급격히 조작할 경우 엔진에 화재가 발생하도록 구현되어 있으며, 350km/h의 저속에선 냉각도 잘 되지않아 이륙 직후부터 속도가 어느정도 붙기 전까진, overheat 경고를 달고다녀야 하며, 역시 지속될 경우 엔진에 불이 붙는다. 문제는 엔진에 한번 불이 붙으면 운 좋게 꺼지더라도 십중팔구 다시 되살아나서 폭발 엔딩을 맞는다는 것... 불붙는 즉시 탈출하는 게 이로우며, 단연, 전투에서도 엔진이 폭격기의 방어기총에 상당히 취약하다. 기동성은 전반적으로 둔하기 때문에 전투기를 잡는것이 다소 힘이 들기도 하며, 혹여나 전투 중 속도를 300km/h 대로 까먹어 버리면 그야말로 날아다니는 폭탄이 되어버린다.. 물론 당연히 이와같은 특성을 잘 숙지한 베테랑 들이 탑승하면 연합군 전투기들은 아군기들이 4정의 MK108로 하나씩 찢겨져 나가는 걸 손까락이나 빨면서 지켜봐야했다.
정식 후속작인 IL-2 BOS의 확장팩 IL-2 Battle of Bodenplatte 에도, A-1a모델과 폭탄이 장착되는 A-1a/U2가 구현될 예정이다.
1974년에 발표된 미국 밴드 Blue Öyster Cult의 앨범 'Secret Treaties'에 Me 262에 대한 헌정곡이 있다. 제목도 'ME 262'며, 앨범 아트까지 Me 262다. 노래 가사는 1945년 4월에 Me 262 편대가 영국 공군 폭격기 편대를 요격하러 날아오른다는 내용이다.
BeamNG.drive에서 플레이할수있는 항공기로 등장한다.
도미네이션즈에서 글로벌 시대의 두 번째 전투기로 등장한다.
강철의 왈츠에서는 2020년 11월 12일 통합 클라이언트가 배포될때 추가되었다.
모바일 전투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인 Gunship Sequel WW2에 독일군 8티어 전투기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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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serschmitt Me 262 '''Schwalbe'''
'''제원(A-1a기준)'''
1. 개요
세계 최초로 실전배치 된 제트전투기.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공군이 운용한 제트전투기/전폭기이다.[4] 일명 '슈발베(Schwalbe, 제비)', 융커스 유모004 터보젯 엔진을 2기 장비한 Me262의 성능은 우수한 편이어서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모든 전투기보다도 빨랐다. P-51 머스탱이나 Yak-9, '''La-7'''[5] 에게 격추당한 적이 있어서 프로펠러 전투기에게 격추된 최초의 제트 전투기이기도 하다.'''"저거 뭐야? X발 방금 그거 뭐야?(What was that? What the hell was that?)"''' - 미군 조종사[3]
Bf 109 애호가였던 아돌프 갈란트 중장도 "난 Bf 109 5대보다 이 녀석 하나를 고르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참고로 갈란트 중장은 Fw 190이 실전배치되는 중에도 Bf 109를 선호한 사람이다.
(탑승해 본) 아돌프 갈란트 : "뒤에서 누가 밀어주는 느낌이었다."[6]
전후 Me 262와 미군의 신예 제트 전투기인 슈팅스타의 테스트 파일럿을 맡았던 척 예거는 "기술자들에게 P-80과 Me 262의 성능이 거의 동등하다고 말했더니 그들이 기겁했다."고 회상할 정도였다.공학자도 숙련공도 모자랐던 데다가 중요한 광물자원마저 부족해 개발 마지막 단계에서 난항을 겪었다. 또한, 시험비행에 쓸 연료마저 모자랐고, 폭격으로 공장까지 파손되었다. 결국 Me 262는 초라한 공장에서 조잡한 재료에 미숙한 직공의 손을 거쳐 만들어질 수 밖에 없었다. 울퉁불퉁한 겉면을 매끈하게 만드느라 접착제와 테이프도 많이 사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e 262는 당대 최고의 전투기였다. - 영국 크롬웰 프로덕션, '2차 대전사' <독일 제트 전투기> 편
일반적으로는 세계 최초의 제트 엔진 전투기로 알려져 있지만 1938년에 이미 융커스 사에서 EF009 제트 전투기를 개발했으며 하인켈사가 1939년에 먼저 He 178 제트기의 시험 비행에 성공했고 그 뒤를 잇는 제트 전투기인 He 280의 개발에 성공했기 때문에(Fw 190와의 경쟁 당시의 독일군 관계자들의 제트 엔진에 관한 무관심 덕분에 Fw 190에 밀려 채택되지 못하였다.) Me 262는 세계 최초로 실전배치된 제트 전투기만 해당된다.
하지만 He 280과 함께 공기 비슷한 신세가 되어버렸고 시제기 3대만 만들라는 지시만 내려왔음에도 1942년에 피스톤 엔진을 사용한 시제기가 시험비행에 성공했으며 BMW의 003 터보제트 엔진을 사용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이 엔진이 자꾸만 말썽을 부렸다. 한번은 시험비행 도중 엔진 트러블이 일어나서 예비로 장착했던 융커스 피스톤 엔진을 쓸 수밖에 없었고 결국 메서슈미트 사는 더 크고 무겁지만 쓸 수 있는 엔진을 달기로 했는데 그것이 바로 융커스 유모 004 터보제트였다. 그리고 이로써 Me262는 드디어 제트 전투기가 되었다. 이 때가 1942년이다. 그러나 히틀러의 명령 하나로 이 전투기는 1944년에야 생산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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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이 무거운 엔진 덕분에 Me 262는 또 하나의 특징을 가지게 되는데, 바로 후퇴익이다. 왜 엔진 덕분인가 하면 고속 성능을 위해 채용한 것이 아니라 무거운 엔진 때문에 기체의 무게 중심을 잡기 힘들어서 날개에 엔진을 달고 뒤로 젖히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만들어놓고 보니 속도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염두에 두고 후퇴각을 조절하기는 했다고 한다. 그리고 시제기에서 머물기는 했으나 미국도 XP-55 등의 기종에서 후퇴익을 적용하기도 했다.[7]
실전배치되었을 당시의 전황이 급박하다보니 주로 폭격기 요격에 많이 투입됐는데, 대전 말기에는 기수에 50mm 기관포를 장비하여 장거리에서 강한 화력으로 폭격기를 격추한다든지 심지어는 R4M 공대공 로켓을 사용하기도 했다. 로켓의 경우 위력도 위력이지만 여러 발이 꼬리를 물고 사방으로 퍼져나오는 모습 때문에 폭격기 편대를 흐트러놓기 좋았다. 그리고 이런 무장과 속력을(10,000m 상공에서는 속력이 많이 줄어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프로펠러기들보다 훨씬 빠르다.) 바탕으로 호위기와의 교전을 회피하고 폭격기만 공격하고 돌아오는 전술을 사용했다. 물론 호위기들이 그냥 보내줄 리가 없으니 다른 전투기들이 호위기와 교전하는 동안 대열 사이로 침투해 폭격기만 공격하고 오는 방법이었다. 물론 워낙 빠르다보니 폭격기의 방어기총으로 맞추기 어려웠다고한다.
2. 문제점
그러나 Me262는 여러가지 문제를 안고 있었다.
- 엔진
크게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엔진의 수명이고 다른 하나는 신뢰성이다. 이 중 수명은 Me 262만의 문제가 아니라서 연합군의 J33 엔진도 2차 대전 당시만 해도 엔진 수명이 100시간을 넘기지 못한 정도였다.[8][9] 거기다 대전 말에 독일 사정상 레어메탈의 수급이 어려워졌고, 폭격으로 인해 엔진 공급망 자체가 박살나고 이리저리 흩어지는 바람에 레어메탈을 써야 고온과 고압에 견딜수 있는 엔진을 강철로 만들고 비숙련 노동자들도 만들수 있게 제작 난이도도 낮춰야 하는 문제까지 겹쳤으니 엔진의 수명이 길면 그게 신기한 일이다.[10][11] 그리고 당시 축류식 엔진들은 급격하게 러더를 차서 사이드 턴을 걸었을 때 엔진으로 공기가 제대로 흡입되지 못해 엔진이 정지되는 현상이 발생하는 문제가 있었는데 영국군이 원심식 엔진을 사용한 반면 Me262는 축류식 엔진을 사용했기에 이런 문제가 있었던 것.[12][13] 이 문제는 이후 J79 엔진에 가변 터빈을 채용해서 해결됐다. 뿐만 아니라 강철로 만들고 QC 그런거 없이 급하게 만든 댓가로 엔진의 스로틀을 급하게 조정하거나 수명이 다하면 불이 붙거나 폭발하는 문제까지 있었다. 이 때문에 급격한 턴을 도는 상황과 이/착륙 도중에는 사실상 정지표적이나 다름없는 무방비 상태가 될 수밖에 없었는데, 격추기록을 가지고 있는 연합군 전투기들 이런 상황을 놓치지 않고 득달같이 달려들어 격추를 했다. Me262를 채용한 '코만도 노보트니' 비행단의 단장이자 독일의 에이스인 발터 노보트니 중령도 엔진 고장으로 귀환, 착륙하는 중에 P-51 머스탱의 습격을 받고 그 자리에서 전사했다. 여담이지만 이 때 아돌프 갈란트 중장이 비행단을 방문하고 있었던 관계로 노보트니 중령의 추락을 직접 목격했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한편 독일은 제트 엔진 폭격기 Ar 234도 배치했는데, 이 폭격기도 역시 유모004엔진을 사용했기 때문에 Me 262에 들어갈 엔진이 Ar 234로 가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나...
- 낮은 연비
제트 전투기는 프로펠러기보다 연료 소모가 훨씬 빠르다. Me 262가 배치되는 1944년 4월에는 독일이 대량으로 석유를 공급받을수 있었던 플로이에슈티(Ploieşti) 유전이 B-24에 의해서 유전 설비들이 박살났고, 8달 뒤에는 소련군에 의해 루마니아를 상실함으로써 수지가 안맞는 석탄 액화기술 외엔 석유 수급이 안돼서 연료 부족에 골머리를 앓던 독일 상황에서는 Me262 한대 운용할 연료로 Bf109나 Fw190을 3대 운용하는게 나은 입장이었다, 그러나 옥탄가가 낮은 제트엔진용 연료를 피스톤 엔진에 넣게 된다면 노킹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왕복 엔진이 고장이 나서 대체도 불가능 했다.[16][17]
그러나 같은 연료로 프롭기 3대를 굴린다는 것도 사실 어폐가 있는 주장인게 262에 들어가는 연료는 무려 65옥탄가여도 엔진이 무리 없이 작동한다. 그러나 프롭기에 들어가려면 최소한 87옥탄가, 프롭기가 제대로 성능을 내려면 95 옥탄가(당시 나치 독일에서는 C연료라 불린다)가 필요하다. 이러지 않으면 피스톤 엔진 특성상 노킹이 일어나기 때문. 이렇게 저질 연료를 먹고 날아오는 프롭기들은 150(혹은 145)옥탄가를 먹고 다니는 연합군 기체들에게 처참하게 관광당한다.[14] 게다가 당시에는 요즘 자동차들처럼 컴퓨터로 조종되는 엔진 분사 시스템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노킹을 방지하려면 고옥탄가 연료가 필수였다. 그러나 262는 정제 과정을 훨씬 줄여버려도 되는 연료를 사용해도 엄청난 성능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제트기는 프롭기와 반대로 기본적으로 속도가 빨라질수록 엔진 파워마저 강력해지니 금상첨화.[15]
- 일선부대의 기피현상과 부족한 훈련시간
시제기의 비행성능을 보고 큰 인상을 받은 히틀러는 Me262를 폭격기로 사용하기를 원했다. 물론 이 사건은 개발이 다 끝난 뒤에, 양산에 들어가기 직전에 벌어진 일이라서 히틀러 탓에 Me262의 개발이 늦어진 것은 아니다. 어차피 전투기 버전과 폭격기 버전의 차이라고 해봐야 기관포 2문이 더 추가되고 폭장에 사용할 파일런이 없다는 점이라서 야전부대에서는 폭격기형에서 폭탄창을 철거하고 기관포를 2문을 추가로 장착해서 전투기로 개조한 다음 요격임무에 내보내버렸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히틀러는 처음에는 열받아서[18] 유모 엔진의 생산량까지 일일이 확인하는 등, 사사건건 간섭하면서 조종사들을 폭격기 조종사로 훈련시키도록 했는데 전선에서는 Me262를 폭격기로 운용할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다. 결국 선회하다 제풀에 추락하는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이런 폭격기 파일럿들이었다.[19] 결국 어쩔 수 없지 하면서 전투기 버전을 소량[20] 생산하기로 했을때는 이미 1944년 9월인데 그것도 쌍발 제트 폭격기 Ar 234가 양산이 되기 시작해서 허가해줬다고 한다. 또한, 대부분의 베테랑 전투기 조종사들은 믿음이 안가는 '최신예' 전투기보다는 손에 익은 기존의 Bf109나 Fw190을 더욱 선호했기 때문에 기종변경을 거부했으므로 Me262 조종사의 질은 당연히 낮아졌다. 그리고 갈란트가 주력 기종을 Me262로 변경하자고 건의했지만 괴링은 그 의견을 묵살했다고 한다. 여기에 2인승 훈련기인 B-1a의 수도 모자라서 갓 배치된 조종사가 관숙비행[21] 없이 짦은 지상교육과 8시간의 기초교육만 받고 그대로 출격하는 막장 상황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 부족한 생산량에 비해 많은 파생형
- 연합군에게 빼앗긴 제공권.
전쟁 말기쯤 되면 연합군의 전략폭격 덕분에 사방으로 흩어진 메서슈미트 사의 생산라인에서는 전문공도 기술자도 자원도 연료도 부족했다. 그러니까 대충 구색만 갖춘 허접한 공장에서 질이 떨어지는 재료로 풋내기 기술자들에 의해서 조립될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일설에 따르면 표면을 매끄럽게 만들기 위해서 접착제와 테이프도 많이 쓰였다고 한다. 필요한 만큼의 수량을 채우기에는 턱도 없는 숫자만이 생산되었지만 저 상황에서 그 정도라도 생산해낸 게 어디냐는 말도 있다.[22] 양이 적으니 당연히 한 번에 투입되는 수도 턱없이 적을 수 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Me262는 연합군에게 꽤 위협적인 존재로 자리잡았고 이 때문에 연합군 사령부에서는 "Me262가 있다는 소문이라도 나는 비행장은 몽땅 쑥대밭으로 만들어라!"는 명령을 내리기에 이른다. 폭격에서 살아남은 비행장이라고 해도 그 근처에는 냄새를 맡고 달려온 P-51 머스탱 같은 연합군 전투기들이 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코 안전하지 못했다. 여기에 위에 언급된 엔진 문제와 겹쳐서 Me262는 자기 집에서 이착륙도 마음대로 못하게 되었다. 발터 노보트니의 전사도 이 때문에 벌어진 것이다. 그래서 JV-44에서는 Me262를 엄호하기 위해 별도의 Fw 190 부대를 두었는데 이 부대가 바로 '파파가이 슈타펠'이다.
3. 파생형
부족한 생산량인데도 파생형은 늘려버리는 독일군의 습관과 함께 정치적 부침이 심한 결과 파생형이 꽤 나왔는데[23]
A-2a/U2 : 정찰폭격기
B-1a : 2인승 훈련기
C-3a : 고속요격기(동체 밑에 Me163이 장착한 로켓엔진을 장착)
이 외에도 야간 전투기 버전 '나흐트야거'(Nachtjager)도 있다. 추가적인 파생형은 더 많다.
이 외에도 야간 전투기 버전 '나흐트야거'(Nachtjager)도 있다. 추가적인 파생형은 더 많다.
4. 기타
전후에도 체코슬로바키아에 의해 아비아 S-92(A-1a), 아비아 CS-92(B-1a : 복좌형)이라는 이름으로 생산되어 1957년까지 체코슬로바키아 공군에서 운용되었다.
일본에도 수출될 뻔했다. 원래 선박 엔진 기술을 주는 조건으로 004 엔진과 그 기술을 모두 받는다는 조건이었는데 004 엔진과 설계도들을 실었던 잠수함이 돌아오다가 기뢰를 건드리는 바람에 침몰해 버렸다. 종전 직전에도 10형 유보트 U-234가 일본으로 Me262 완제품 2기, 004 엔진 10기를 싣고 가던 중 1945년 5월 14일에 미국 해군 측에 항복하는 바람에 일본은 맨땅에 헤딩까지는 아니지만 단편적인 자료만 가지고 제트기를 직접 개발해야 했다. 비슷하게 생긴 J9Y 깃카라는 전투기를 어영부영 만들었고 원본과 완전히 똑같은 외형인 Ki-201 카류의 일부 부품도 생산했지만 당시 일본의 전황과 공업력 때문에 실전에 투입되지 못하고 현재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물론 전후에 미국이 킷카를 가져가 설계도를 뜯어보고 실험해 봤을 때 Me262보다 익면하중도 더 낮았고 더 가벼운 소재로 제작되었기에 엔진이 제 성능을 낼 수 있었다면 우수한 비행성능을 기대할 수 있었다는 결과가 나왔고 타국의 사례를 생각해보면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그나마 쓸만한 성능이 나왔을 가능성도 있으나[24] 당시 일본의 전황을 생각하면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image]
2003년부터 미국에서 레플리카를 만드는 작업이 이루어져 2006년에 완료되었다. 한국 군사잡지에도 제작과정과 완성 후 비행모습이 소개되기도 하였다. 위 사진은 2006년 베를린 에어쇼에서 공개된 레플리카이며, 본 문서 서두의 2006년 비행 동영상도 바로 이 재현품의 비행 동영상이다. 미국의 항공애호가 단체의 독일계 미국인[25] 이 모든 부품을 당시 방식으로 일일이 제작했다고 한다. 다만 엔진은 제너럴 일렉트릭 CJ610[26] 으로 교체되었는데, 이는 원판 엔진의 불안정함에다 미국 항공법의 규정 때문이다. CJ610은 유모 엔진에 비해 엔진 크기와 중량이 훨씬 작으면서도 추력은 더 강했기에 무게중심 등을 맞추고자 겉에 원 엔진 모양의 커버를 추가했으며, 스프링 장치를 이용한 간단한 스토틀 제한장치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착륙시엔 간단하게 해제하여 안전한 이착륙에 필요한 출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한다. 항공전자장비 역시 항공법 규정 때문에 현대제품을 사용했다.[27] 이외에도 원판에서 문제가 되었던 랜딩기어도 강화되었다고 한다. 이 레플리카는 메서슈미트사의 후신격[28] 인 당시EADS(현 에어버스 그룹)로 부터 정식 복각판으로 인정받아서 Me262 A-1c(단좌형), B-1c(복좌형), A/B-1c(단/복좌 전환 가능형)라는 형식명도 받았다.
참고로 "인류 최초로 음속을 넘었을지도 모르는 전투기"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1945년 4월 9일에 전투 도중 한스 뮛케(Hans Guido Mutke)가 전투중 고도 12,000m에서 시속 1,100km/h 을 기록했다고 보고했기 때문이다.(해당 고도에서 음속은 1,062km/h)[29] 그러나 이 기록은 40도로 강하하고 있던 당시의 속도기 때문에 공식 기록이 될 수 없다. 이보다는 뒤의 이야기지만 F-86도 도중 음속을 돌파했었으나 역시 강하중에 이루어진 돌파이기에 인정되지 않는다. 최초로 음속을 돌파한 유인 항공기는 X-1로 척 예거가 돌파했다.
Me 262의 개발이 실패로 돌아갔다면 Bf 109의 제트 엔진 장착형인 Me 109 TL을 백업으로 개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개발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서 Me 109 TL은 설계도 단계에서 중단되었다.
5. 대중매체 속 Me 262
스타워즈로 유명한 조지 루카스가 제작한 영화, 레드 테일에 적기로 등장한다. 마지막 전투 장면에 4대 편대가 폭격기 요격에 나서서 붐 앤 줌 기동을 보여주지만, 연출을 위해 P-51 머스탱과의 헤드온에도 격추를 당한다. 단, 격추 전과 자체는 허구가 아니다. 터스키기 에어맨 항목 참조.
스트라이크 위치스 2기 4화에서 Me 262 V-1이라는 이름의 시제 제트 스트라이커로 등장했다. 50mm 기관포와 4연장 30mm 기관포가 한 세트로 등장하는데, 이는 A-1/U4와 기본형을 구현한듯. 하지만 현실과는 다르게 둘 다 한 번에 들고 날아갈 수 있다. 작중에서 음속돌파 관련 묘사도 있었던 P-51D보다도 빠른 속도와 상승력을 과시하나[30] , 사용자의 마력을 쪽쪽 빨아먹는 괴악한 연비를 가진 결함기로 묘사되었다.
워 썬더의 독일 메서슈미트사 항공기 트리 5티어 중후반에 등장한다. 중후반인 이유는 해당 티어 첫 항공기가 제트기가 아닌 로켓기라서. 기본 모델인 A-1a 슈발베 그리고 동체 내부에 로켓 추진기를 탑재한 C-1a 모델 , 양쪽 주익 내부에 로켓 추진기 각각 1기 씩을 탑재한 C-2b 모델이 전투기 트리에 있으며, 한편으로는 공격기 트리에 요격기로서 50mm Mk. 214 대전차 기관포를 탑재한 A-1/U4 모델도 있다. A-1/U4 모델은 중폭격기에 한두발 박아주면 불이 붙어서 떨어지는 대단한 단발 화력을, A-1a는 가속이 조금 아쉬운 것을 제외하면 적당한 비행 성능에 탄속이 무지막지하게 느린 30mm 4문의 절륜한 지속 화력 투사 능력을, 로켓 장착 모델들은 로켓 때문에 A-1a에 비해 추중비에서 약간 손해를 보는 대신 로켓엔진 점화로 모자랐던 가속성능을 보완해 Me 163과도 잠깐 붙어볼 만한 강력한 단기추력을 지녔다.
월드 오브 워플레인의 독일 중전투기 트리에서 Me 262 슈발베가 8티어 중전투기로 등장한다. 초기에는 워 썬더처럼 50mm 기관포를 장착한 사양이 있었으나 50mm가 삭제되고 30mm MK-108 4문만 있으며, 최종 사양은 미익에 로켓 엔진이 장착된 C-1a 모델이다. 상위 티어에는 페이퍼플랜인 개량형들이 있는데, 9티어는 35도 후퇴익이 적용된 Me 262 HG II고[31] 10티어는 45도 후퇴익이 적용된 Me 262 HG III다.
히어로즈 인 더 스카이에는 Me 262 초기형과 Me 262 무장강화형, Me 262 HG II 형 3종류가 모두 구현되어 있다. 특히 HG형은 인게임 내에서 '''관제기''' 라인으로 출시되었기에 스킬쿨타임 단축스킬 같은 유용한 스킬을 사용가능하여 레이드 모드에서 한때 많이 사용했다.
IL-2(게임)에는 원판인 A-1a와 50mm 기관포를 장착한 A-1a/U-4 가 구현되어있으며, 페이퍼 플랜 후속형인 HG II 도 구현되어있다. 일단 속도가 붙었다 하면 프로펠러 전투기로 격추하는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멀티 서버에선 맵 내에서 1명~2명 까지만 탑승을 허용했었다. 하지만, 운영이 마냥 쉽지는 않은것이, 스로틀을 조금이라도 급격히 조작할 경우 엔진에 화재가 발생하도록 구현되어 있으며, 350km/h의 저속에선 냉각도 잘 되지않아 이륙 직후부터 속도가 어느정도 붙기 전까진, overheat 경고를 달고다녀야 하며, 역시 지속될 경우 엔진에 불이 붙는다. 문제는 엔진에 한번 불이 붙으면 운 좋게 꺼지더라도 십중팔구 다시 되살아나서 폭발 엔딩을 맞는다는 것... 불붙는 즉시 탈출하는 게 이로우며, 단연, 전투에서도 엔진이 폭격기의 방어기총에 상당히 취약하다. 기동성은 전반적으로 둔하기 때문에 전투기를 잡는것이 다소 힘이 들기도 하며, 혹여나 전투 중 속도를 300km/h 대로 까먹어 버리면 그야말로 날아다니는 폭탄이 되어버린다.. 물론 당연히 이와같은 특성을 잘 숙지한 베테랑 들이 탑승하면 연합군 전투기들은 아군기들이 4정의 MK108로 하나씩 찢겨져 나가는 걸 손까락이나 빨면서 지켜봐야했다.
정식 후속작인 IL-2 BOS의 확장팩 IL-2 Battle of Bodenplatte 에도, A-1a모델과 폭탄이 장착되는 A-1a/U2가 구현될 예정이다.
1974년에 발표된 미국 밴드 Blue Öyster Cult의 앨범 'Secret Treaties'에 Me 262에 대한 헌정곡이 있다. 제목도 'ME 262'며, 앨범 아트까지 Me 262다. 노래 가사는 1945년 4월에 Me 262 편대가 영국 공군 폭격기 편대를 요격하러 날아오른다는 내용이다.
전함소녀에서는 고속 폭격기 사양인 ME.P1099이 등장한다. 대잠+5 폭격+13으로 상당히 좋은 능력치다.
여담으로, 아키네이터에서 55개월 만에 발견된 전투기이기도 하다.BeamNG.drive에서 플레이할수있는 항공기로 등장한다.
도미네이션즈에서 글로벌 시대의 두 번째 전투기로 등장한다.
강철의 왈츠에서는 2020년 11월 12일 통합 클라이언트가 배포될때 추가되었다.
모바일 전투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인 Gunship Sequel WW2에 독일군 8티어 전투기로 등장한다.
[image]
6. 관련 문서
- 항공 병기
- 외부문서: 위키피디아 Me 262 항목
7. 둘러보기
[1] 전비중량 기준 328.11kg/m². 보통 익면하중을 따질때는 전비중량을 기준으로 삼는다.[2] [image] 50mm Mk214a 기관포(A-1a/U4형) 장착도 가능했지만 실전 투입은 안됐다.[3] 위 영상 45초부터. 포탑 돌리기 전에 날아가는 스피드로 미군에게는 충격과 공포였다.[4] 히틀러의 희망사항인데 이 희망사항은 연합국인 미국이 달성했다.[5] 이반 코제두프가 격추.[6] 또는 '마치 천사가 밀어주는 느낌이었다 (... als wenn ein Engel schiebt.)'라고 했다고 한다.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7] 날개 앞에 후퇴각을 준 프로펠러 항공기는 의외로 여럿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DC-2/3이다.[8] 이러한 제트 엔진들의 수명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2차 대전 종전 후에 기술의 급격한 발달로 인해 엔진이 안정화되기 시작할 때부터이다.[9] 연합군의 J47 엔진도 오버홀을 15시간 단위로 하도록 추천되고 있었으니 사실 유모 004 엔진이 그리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10] 영국과 소련 모두 전후 유모004 엔진을 쉽게 카피했는데. 이는 내열성이 필요한 터빈 블레이드와 연소실에서 레어메탈의 비율이 형편없이 낮았고, 제작난이도와 제작에 사용된 공구와 공작기계도 낮은 기술력을 요구한다.#[11] 그런데 이는 제트 엔진의 전반적인 특성에 기인한다. 유모 004 엔진의 생산시간 및 생산비용이 당시 독일의 최신형 수냉식 전투기들의 피스톤 엔진보다 1/3밖에 안 되었다!!![12] 하지만 축류식 엔진 자체 설계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원심식 엔진보다 효율 및 추력이 우수해 현대에도 주로 쓰이는 엔진이며 기술경쟁에서 승리한 방식이다. 문제는 당시 축류식 엔진은 기술적으로 완성되었다고 보기 어려웠는데 독일은 이런 문제를 뭉개고 어거지로 실전에 내보낸것. 당장 미국은 43년도에 독자적인 축류식 엔진인 J30 엔진을 만들어 냈으나 독일과 마찬가지로 갖은 문제를 일으켜 45년 1월에 FH 팬텀에 겨우 달았고. 영국은 축류식이 만만치 않다는걸 인지를 해서, 일단 원심식으로 버티되 기술이 성숙했다고 판단되는 43년도부터 롤스로이스와 메트로폴리탄-빅커스를 주축으로 측류식 엔진 프로젝트가 시작했고, 46년도 초에 롤스로이스 에이본 엔진과 48년도에 메트로폴리탄-빅커스의 프로젝트를 인수해서 만든 암스트롱-시들리 사파이어 엔진이 나온다. 특히 에이본 엔진은 유모 004 엔진이나 J30 엔진과 다르게 안정적인 성능 덕분에 사브 드라켄과 호커 헌터, 잉글리시 일렉트릭 캔버라, BAC 라이트닝에 들어갔고. 사파이어 엔진은 미국 라이트사에 J65 엔진으로 라이센스 생산이 되어 A-4와 F-84 썬더제트에 채용이 되었지만 회사와 함께 롤스로이스로 넘어가버렸다. 그래도 성능은 에이본보다 뛰어났고 에이본 엔진 후기 개량형은 사파이어 엔진의 압축기를 그대로 박아넣었을 정도였다.[13] 당시 영국식은 원심을 하나만 써서 속도를 빠르게 하려면 크게 만들어야 하는데, 엔진이 차지하는 공간을 고려하면 공기역학에 어긋나기 때문에 제한이 있다. 그에 반해 독일식은 원심을 추가하면 추가할 수록 속도를 빠르게 해서 영국식 보다 유리했다. 문제는 당시 재료공학 기술로는 영국식의 최대속도가 적당했고 독일식은 순식간에 엔진이 마모되어 귀중한 희귀금속을 대량 소모하는 데다가 어차피 영국식 보다 속도를 높여도 불안정해져 못써먹을 물건이 된단 점이다.#[14] 비행 시뮬에서는(공개된 자료만 보고 만들기 때문) 109가 저고도에서 머스탱보다 빠르지만 실제로는 훨씬 느렸다. 이 연료 보급 문제 때문이다.[15] 당시 항공부대 장군 위치였던 아돌프 갈란트가 109를 5대 배치하느니 262한 대 배치하겠다는 말이 허투로 나온 게 아닌 것이다.[16] 재미있는 점은 일본이 제트기를 만들려고 한 이유가 기름이 없어서라는 이야기가 있다. 레시프로 엔진은 제대로 된 항공용 가솔린을 넣어야 하는데 제트 엔진은 송근유 같은 잡다한 기름으로도 돌릴 수 있어서였다고 한다.[17] 사실 이게 모든 국가들이 제트엔진으로 넘어가는 원인 중 하나이다. 앞에 언급되었듯이 생산성 좋고, 연료도 싸고, 속도도 잘 붙는다. 프롭기를 쓸 필요가 없어지는 거다.[18] 당시 전투기총감인 에르하르트 밀히가 이 때문에 실각당했다는 말도 있으나 사실 밀히의 실각은 Me262 생산이 본격화되기 전인 1944년 8월의 일이었기 때문에 Me262의 생산문제보다는 독일 공군의 전투기 조달 효율이 낮고 본토 방공전 전략에서 히틀러 및 괴링과의 의견 충돌이 심했던 탓이 더 크다.[19] 물론 태평양 전선의 미 해군도 폭격기 및 뇌격기 조종사들을 전투기 조종사로 기종전환시키는 일은 자주 있었지만 당시 독일의 상황은 그렇게 할 여유가 없었다. 후술하듯 훈련기의 숫자도 부족해서 관숙비행도 없이 출격하는게 당시 독일의 현실이었다.[20] "20대 중에 한 대 정도는 전투기로 만들어도 된다"고 했다고 한다.[21] 본인이 탑승하는 전투기의 조종에 익숙해지기 위한 훈련비행이다.[22] 그나마 엔진 생산 속도가 프롭기보다 3배 빠르기에 저만한 생산량이라도 채운 것으로 보인다.[23] 참고로 아래 사진들은 워썬더에서 가져온 사진들이다.[24] 미국과 영국도 최초로 만든 제트기는 프로펠러기보다 못한 성능이 나왔었지만 지속적인 투자로 한국전쟁이 발발할 때쯤엔 제트기다운 성능이 나올 수 있었다.[25] 2차 대전당시 독일 항공기술 관련 계통에서 밑바탕을 다진 사람이다.[26] F-5에 쌍발로 사용되어 유명해진 J85 엔진에서 애프터버너를 제거한 민수용 파생형이다.[27] 참고로 현재 미국 내에서 실제 비행가능한 구형 비행기들은 제작 당시에 비해 강화된 미국 항공법에 따라 이전에는 없었던 각종 안전장치와 항법장비들이 설치되어 있다. 이들 기체들의 계기판을 잘 보면 현행 규정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원판의 계기를 현행 계기로 교체한 것을 볼 수 있다. 계기판에 설치가 어려운 경우엔 아예 별도로 달아 버리기도 하는데 이와 관련하여 흔히 눈에 띄는 건 GPS 디스플레이 패널이다.[28] 메서슈미트 사는 전후 MBB로 이어지고, 이 회사는 90년대에 DASA로 이어지며, 이 DASA는 EADS로 이어진다. 참으로 길고도 긴 후계과정이다.(...)[29] http://en.wikipedia.org/wiki/Hans_Guido_Mutke[30] 카탈로그 스펙상으로 시속 950km라는 언급이 있으며, 고도 12,000m에서 엔진의 한계로 더 이상 못올라가는 P-51과는 달리 '''계속 상승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Me262도 상승한도가 거기서 거기인게 함정(사실 P-51D형과 Me262 A-1a를 비교하면 P-51D의 상승한도가 1,300m쯤 더 높다.)[31] 스톡 동체는 Me 262 HG I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