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영화
1. 개요
쿠바의 영화 산업에 대한 문서.
2. 영화 시장
쿠바는 동구권 공산주의 블록이 무너진 뒤에도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로 시작된 공산주의 시스템을 철저히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정확한 영화 시장 추산이 되지 않고 그나마도 오래된 정보가 대부분이다.
UNESCO에 올라온 쿠바 영화 시장은 2006년이 최신 정보로 당시 쿠바 페소(CUP)로 245만 페소이다. 미국 달러로 환산하면 200만 달러 정도 되는데 사실상 믿기가 힘들다. 쿠바 인구는 1,100만 명 정도이고 2011년 기준 쿠바 영화관 총 관람객은 223만 명이었다. 따라서 인구 1인당 연간 영화 관람 편수는 '''고작 0.2편''' 수준에 불과하다.
영화관 표값은 비교적 싼편이라고는 하지만 쿠바의 경제사정 상 대형영화를 만들만한 여유가 없어서인지 블록버스터급 영화는 별로 많지 않은지라, 쿠바인들이 영화를 볼때 보통은 월정액을 내고 불법(?)다운로드를 통해 미국영화를 보는 경우가 많고, 여유가 되는 가정이라면[1] 넷플릭스를 통해서[2] 합법적으로 해외영화를 접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넷플릭스가 쿠바에 직접 진출해도 쿠바 사람들은 넷플릭스를 보기가 힘든게, 쿠바는 일단 인터넷 보급률 자체가 극히 낮고, 인터넷 선도 매우 느릴 뿐더러(모뎀 쓰는 전화선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다...) 인터넷 요금이 종량제라서 상상을 초월하게 비싸다.[3] 다만 2018년부터 저가 인터넷의 보급이 시작되었기때문에 가격부담이 크게 줄어들었기는 했다.
자국 영화 비중은 2006년 총액기준 '''55.7%'''였다. 한국 영화 시장에서 자국영화 비중이 52% 정도 되니까 한국보다 높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쿠바는 미국 영화의 영화가 수입 금지되는 곳'''이다. 쿠바에서 외국영화란 러시아 영화나 중국 영화, 북한 영화 등 극소수의 영화, 그 중에서도 공산주의 혁명에 관련된 것들이다.
1991년 이전까지 쿠바는 대한민국을 승인하지 않았고, 한반도의 유일 정부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만을 승인하였다. 쿠바가 개혁개방이 진행되고있고, 인터넷과 드라마와 영화의 수출이 어느정도 진행되고있다고는 하지만 주로 TV를 통해 방영되는 식이거나 아니면 넷플렉스를 통해서 전송되는 방식이고, 쿠바 영화관에 영화를 거는 일은 좀체 없기 때문에 벌어들이는 수익이 별로 많지가 않다.
의외로 일본 영화는 가끔씩 쿠바에 개봉 허가가 날 때가 있다. 이는 일본 영화 중에서도 좌익 성향의 영화일 때만 제한적으로 검열을 통과시키는 것이다.
일반적인 일본 상업영화나 애니메이션도 넷플릭스를 통해 접하는 경우가 있긴 하다.
3. 역사
3.1. 쿠바 혁명 이전
미국 통치기 쿠바를 겪던 1896년 쿠바에 미국 영화 회사에 의해 첫 영화관이 설립되었다. 이후 쿠바 혁명 이전까지는 사실상 미국의 식민지, 미국의 앞마당 멀티 수준인지라 미국 영화에 얹혀가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가 나라를 뒤집어버린다.
3.2. 쿠바 혁명 이후
'''미국 영화의 멀티로 성장해오던 쿠바 영화 시장은 쿠바 혁명으로 인해 미국 자본이 강제로 퇴출되며 빈사상태에 빠졌다'''. 게다가 공산주의 국가가 된 쿠바는 소련에서 핵무기를 도입하려다가 미국이 쿠바를 봉쇄한 쿠바 미사일 위기를 겪고, 이후로 소련이 쿠바를 군사적 동맹관계에서 일반 교류관계로 손절하고 내다 버리면서(...) 동구권의 지원도 사실상 제대로 못 받는 시대가 된다.
하지만 혁명 세력에 속했던 토마스 구티에레즈 알레아 같은 감독은 쿠바의 현실을 직시하는 사회파 영화들을 만들면서 쿠바 영화를 국제 무대에 주목받게 만들었다. 그가 만든 저개발의 기억은 쿠바 혁명 앞에 선 쿠바 중산층 지식인들의 공허함과 정체성 문제를 날카롭게 파고들어 찬사를 받았으며 제3세계 영화 베스트를 꼽을때 빠지지 않는다. 이외 학이 난다로 유명한 소련 감독 미하일 칼라토조프는 쿠바에서 쿠바 혁명 과정을 다룬 나는 쿠바라는 걸작을 만들기도 했다.
그 상징성 때문에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크리스 마르케, 장 뤽 고다르 같은 정치적인 프랑스 영화를 보다보면 피델 카스트로와 쿠바가 자주 등판하는걸 확인할 수 있다.
3.3. 소련 해체 이후
1989년 동유럽 혁명, 1991년 소련 해체를 거치며 동구권 블록이 전면 붕괴하자 또다시 쿠바 영화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미국의 앞마당에 있는 쿠바는 소련이 해체된 이상 언제라도 미국이 쳐들어올 수 있는 것이었다.
결국 피델 카스트로도 미국과 유화적으로 접촉하고 라울 카스트로 체제가 되면서 미국과 관계 개선을 시도하지만 미국이나 쿠바나 서로 쌓인 게 많은 원수지간이 된 지라 미국 영화 쪽의 접촉도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쿠바에서도 최신 외국영화는 보기쉽지 않을지라도 영화관에서 내려진 영화들은 불법(?)적인 방식을 통해 접하기는 쉽다. 2015년 이후로는 넷플릭스가 들어오면서 미국영화도 합법적으로 볼수있어지기도 하고.
3.4. 2010년대
4. 작품
의외로 한국에 알려진 쿠바 영화가 몇 편 있다.
-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2: 아디오스
- 저개발의 기억
- 나는 쿠바 - 소련과 합작
- 딸기와 초콜릿
5. 영화 감독
6. 영화 배우
7. 영화관
쿠바 혁명으로 인해 영화관들이 죄다 국영화되면서 국영영화관만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현재도 따로 디지털화되지 않은채 통합 전산망이 없이 개별적으로 표를 파는 시스템이다. 웹사이트가 있는 경우도 있는데 없는 경우가 더 많다. 대부분의 영화관들은 쿠바 수도 아바나에 몰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