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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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elephone'''[1]
1. 개요
2. 역사
2.1. 최초 제작자 논란
2.2. 한국에서의 전화기
3. 방식
4. 기타
4.1. 언어별 전화 인사말
5. 관련 문서
5.2.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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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통신 수단의 한 종류. 음성을 전기신호로 바꾸어 먼 곳으로 전송하고, 이 신호를 다시 음성으로 재생함으로써 멀리 떨어진 사람 간의 통화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 또는 그러한 전자제품을 말한다.
그 원리를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유선 전화기를 가지고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송화기에 대고 말을 하면 내부의 자석이 음성을 전기 신호로 바꿔 전선을 통해 상대의 수화기에 전달한다. 상대의 수화기는 전달받은 전기 신호를 다시 음성으로 변환시켜 들려주게 된다. 이는 어릴 때 가지고 논 적이 있을 법한 '실 전화기'의 원리와 유사한데, 실 전화기가 실의 진동으로 목소리를 전달한다면 전화기는 전파를 매개체로 목소리를 전달한다는 점이 다르다.
때문에 전화기를 사용하려면 전화하려는 기기들을 미리 전선 혹은 전파로 연결해놓아야 한다. 그러므로 전화의 보급을 위해선 우선적으로 국가적 범위의 통신망을 구축해야 하며, 이 모든 통신망을 관리하는 중앙 시스템과 시스템 관리 업체 역시 요구된다. 그것이 오늘날의 통신 서비스 업체.
누군가의 집을 찾아갈 때 주소를 알아야 하듯, 전화를 걸려면 상대방의 전화번호를 알아야 한다.

2. 역사


최초의 전화기는 오늘날처럼 정교한 부품을 만들 능력이 떨어져서[2] 부품들을 큼직큼직하게 만들다보니 그 사이즈가 거대하기 그지없었다. 당시의 가정용 전화기는 현재의 공중전화기 수준으로 거대했는데, 결제 시스템 등의 자잘한 기기들이 많이 들어가서 사이즈가 큰 공중전화기와 달리 순수하게 전화 기능을 구현하는 것만으로도 그 정도의 크기가 필요했다. 이후 기술이 발달하여 아래와 같이 전화기가 발전했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특허를 낸 법적으로 인정되는 최초의 전화기. 전자석에 연결된 엷은 철판을 진동시키면, 유도전류에 의하여 수화기 끝에서 음성이 재생된다. 전화기의 핸들을 돌리면 발전기가 회전하여 신호가 송출되어 교환원에게 요청하고, 교환원에 의해 연결되었다.
종전에는 핸들을 돌려야 신호가 송출됐으나, 공전식 전화기는 전력이 항상 공급되며, 전화를 들면 바로 교환원에게 연결됐다.
  • 자동 교환기
이전에는 전화할 때 상대방에게 바로 연결하는 것도 안돼서 교환기와 교환수를 통해 연결해야 했다. 비유하자면 누군가에게 전화할 때 무조건 114#s-6를 써야 했던 셈이다. 모든 전화를 교환원이 수동으로 연결해줘야 하니 전화가 엉뚱한 상대에게 연결되는 사고가 일어남은 물론, 인건비도 많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자석을 이용한 '자동 교환기'가 발명되었는데, 미국인 알몬 B. 스트로저(Almon Brown Strowger)가 그 주인공이다. 스트로저가 자동 교환기를 발명하게 된 이유가 다소 골때리는데, 원래 장의사였던 스트로저는 어느 순간부터 일거리가 줄어들고 있음을 깨닫고 원인을 알아봤다. 그런데 그가 살던 동네의 인구나 사망률이 크게 감소했다거나 한 일은 없었고, 이내 스트로저는 원인이 수동 전화 교환소에 있음을 알게 된다. 알고보니 교환소 교환원의 남편이 스트로저와 같은 장의사였고, 그래서 장의사를 찾는 전화가 올 때 고객이 딱히 스트로저를 지목하지 않았다면 무조건 자신의 남편에게 전화를 연결해 주었던 것이다. 진상을 알게 된 스트로저는 직접 전화소에 찾아가 항의했지만 그 전화회사의 사장이 문제를 일으킨 교환원의 남동생이었다. 당연히 씨알도 먹히지 않았고 이에 열불이 터진 스트로저는 다이얼과 전자석을 이용한 자동 교환기를 발명하였다. 이를 '스트로저 스위치(Strowger switch)'라고 부른다. 결국 스트로저는 교환수가 남편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생업에 어려움을 끼친 것을, 무례를 끼친 교환수는 물론이거니와 교환수들 모두의 밥그릇을 깨버리는 것으로 대처한 셈이다.이 부분은 2017년 7월 23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뤄졌다 이후 스트로저는 친척의 도움을 받아 'Strowger Automatic Telephone Exchange Company'[3]를 설립하여 자동 교환기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벨 시스템(Bell System)[4]에 자동 교환기를 납품할 정도로 잘 나갔다. 이 때 원하는 사람에게 연결하기 위해 전화번호가 사용됐고, 전화기에 다이얼이 비로소 생겨났다.
우리가 잘 아는 집전화 사이즈의 작은 전화가 나온 것은 20세기 중반인 1931년으로, 약 반세기가 지나서야 나왔다. 그것이 바로 에릭슨 1001 모델(개요 상단의 이미지). 갈수록 전화의 수요는 증가하기만 했고 실내를 넘어 실외에서도 전화의 수요가 발생할 정도가 되자, 많은 국가들은 거리에 공중전화를 설치해 이용료를 받는 대신 바깥에서도 통화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했다. 컴퓨터 기술이 발전하자 모뎀을 통해 컴퓨터끼리 통화를 할 수도 있게 되었다.
전화기는 계속 경량화되어 오늘날의 휴대 전화로 이어진다. 1980년대 이후 개발된 휴대 전화를 통해 사람들은 전화기를 들고 다니면서 언제 어디서나 통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이때는 휴대 전화 자체가 희귀했고 가격 또한 엄청나게 비쌌던 탓에 들고다니는 사람은 극소수였고, 한국에서는 삐삐 정도나 들고다니면 그나마 최신이었다.
2000년도 이후 급속적인 휴대 전화의 발달과 보급으로 1인 1휴대전화가 기본 소양이 될 정도로 사정이 나아졌다. 그래서 공중전화는 사용할 일이 거의 없어져 점점 철거되다가 2010년 이후론 최소한의 명맥만 잇는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그나마 병사들의 휴대 전화 사용이 제한되는 군 부대에선 많이 쓰였지만 2020년 7월부로 병사들의 휴대 전화 사용이 전면 허용되면서 이제는 군대에서도 공중전화를 거의 안쓰게 됐다.
휴대 전화의 폭발적인 발달과 보급으로 집전화 또한 정말 극도의 기계치인 사람이 아닌 이상 거의 쓰지 않는다. 그리고 그 정도의 기계치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노인이라도 대다수가 휴대 전화의 최소기능은 다 활용하는지라 이제는 칠순 이상 노인들이 많은 시골에서조차도 집전화는 안 쓰는 추세다.
20세기 중반의 휴대 전화는 음성 기능이 전부였지만 1982년경 문자메시지 기능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휴대 전화의 기능은 갈수록 늘어났고 2010년대 인터넷을 비롯한 다양한 멀티미디어 기능을 포함한 스마트폰이 보급된다.[5] 스마트폰의 대중화 이후 기존의 휴대 전화를 피처폰이라고 따로 구분할 정도로 스마트폰은 만능 기기라고 불릴만한 성능을 선보였고,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크게 달라질 정도에 이른다. 불과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먼 미래에나 대중화됐을 것 같았던 기술이 사람들의 상상보다 빠르게 일상생활로 다가온 것.
한편 넓이와 두께의 한계까지 도전하던 휴대 전화의 경량화는 스마트폰 등장 이후 정체되었다. 전화만 잘되면 됐던 피처폰과는 달리 스마트폰은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기기이고, 따라서 큰 디스플레이를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나 크기를 줄이면 역효과가 나기 때문. 기술적으로도 고성능화에 따른 배터리 문제로 인해 휴대 전화의 크기를 줄이기 쉽지 않은 점도 있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사용되는 스마트폰은 오히려 후반기의 피처폰보다 커진 상태다.[6]

2.1. 최초 제작자 논란


전화기를 최초로 만든 사람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라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는 '전화를 제작한 사람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일 뿐이다. 재밌게도 전화기는 비슷한 시기에 여러 명의 발명가가 각자 제작에 성공했고 오히려 벨은 한참 늦게 발명한 편이다.
전화기를 최초로 개발했다고 말할만한 사람들은 안토니오 무치, 필립 라이스, 엘리샤 그레이 등이었고 그중 안토니오 무치는 '''돈이 없어서''' 특허를 신청하지 못하고 임시 특허만 등록했었다. 그 와중 그레이엄 벨이 먼저 선수를 쳐 버린 것이다. 무치는 벨을 상대로 법정 소송을 걸었으나 소송 기간 중에 병으로 급사하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패소한 건 덤. 그래서 법적으로 전화를 최초로 만든 사람은 벨이 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안토니오 무치 문서 참고.[7] 그리고 당시엔 이들 말고도 전화를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발명가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렇게 2002년까지는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최초로 전화기를 발명했다고 되어 있었으나, 미국 하원에서 안토니오 무치가 최초로 발명한 것으로 수정하였다. 하지만 상원에서 부결되는 바람에 도로아미타불이 되었지만... 이외에도 벨에게 밀려 빛을 보지 못한 필립 라이스와 엘리샤 그레이도 개발자로 인정되었다.

2.2. 한국에서의 전화기


동양에 서양 문물이 전래된 조선 개화기에 함께 전래되었다. 한국에 전화기가 처음 소개된 것은 1882년이지만 본격적으로 설치, 운영된 것은 1898년이며 이때는 텔레폰(Telephone)을 음차해 '''덕률풍(德律風)'''이라고 불렀다. 1896년 궁 내부에 자석식 교환기가 설치되면서 최초의 전화 통화가 이루어졌다.
당시 전화기의 사용법은 상대에 따라 달랐는데, 만일 국왕과 전화를 한다면 받는 신하 입장에서는 의관을 똑바로 갖추고 전화를 받기 전(혹은 걸기 전) 큰 절을 4번 올려야 했다. 구한말에는 전화기가 왕의 옥음(玉音)을 전해주는, 즉 왕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후 행정처리의 편의성을 위해 1902년부터 부산까지 그 개통이 확대되었다. 한편 그 와중에 전화기를 이용해 왕족임을 사칭하는 거짓 전화 사건이 일어났다고 한다. 오늘날로 치면 보이스피싱인 셈이다.
백범 김구가 사형을 당하기 직전, 고종이 직접 전화로 김구의 사형을 연기하도록 명해서 사형을 면했다는 이야기가 있다(이 이야기는 논란이 있는데 김구 문서 참고).
1910년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한반도 내 모든 전화 사업권은 일본계 기업의 손으로 넘어갔으며, 이때부터 한반도 전역으로 통신망이 확대된다. 이 과정에서 1935년 기존의 자석식, 공전식을 버리고 자동식인 ST식이 채택되었다.
1945년 광복 후 드디어 모든 통신 사업 주도권이 수복되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1950년 6.25 전쟁의 여파로 한반도 내 모든 통신망들이 대파되어서 다시 복구하기까지 10년이 걸렸고 이로 인해 전화의 보급이 늦어졌다. 대한민국은 1960년도 복구가 끝마쳐지고 한동안 정부 측에서 체신청에게 사업권을 부여, 60년대 중반에는 EMD 교환기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전화의 보급이 시작된다.
통신망 복구가 끝나고 60년대에 본격적인 경제성장 과정을 거치면서 소수의 부유층이나 관료층, 기업들의 전유물이었던 전화기의 수요가 점차 늘어났고, 가정집의 전화 수요는 넘쳐나는데 가용회선수는 적었고, 공중전화를 설치하기 시작했지만 이마저도 수요가 넘쳐흘러났다. 이쯤 되자 심지어 장관이나 청와대높으신 분들이 전화 좀 놔 달라고 체신청에 압력을 넣는다든가 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전화 회선 그 자체가 투기 대상이 되어버려서 이걸 웃돈 주고 사고팔거나 아예 월세 놓듯이 빌려주는 일까지 벌어지곤 했다. 아예 체신청에서 전화회선을 왕창 따다가 이런 일을 하는, 일명 "전화상"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1960년대 후반에 전화회선 하나 놓는데 웃돈 얹으면 수십만 원씩이나 되는 거금이 들어가고[8], 기껏 신규회선 뽑았더니 그걸 또 전화상들이 싹쓸이해다가 웃돈을 얹어 파는 등 악순환이 계속되자[9] 정부에서는 나름대로 특단의 조치를 내리는데, 1971년 7월 전기통신법을 개정하면서 전화 회선을 타인에게 양도하는 것을 금지해 버린 것. 단 여기에는 "기존에 가입한 전화에는 이를 소급적용하지 않는다"는 단서가 붙어 있었는데 이렇게 되자 법 개정 이전에 가입해서 타인에게 양도가 가능한 전화는 '백색전화', 양도 불가능한 전화는 '청색전화'라는 별명이 붙게 된다. 이런 이름이 붙은 이유는 심플하게 전화국에 비치되어 있던 가입내역 기재 원부(그러니까 지금으로 치면 가입자 DB)의 색상이 예전 것은 흰색, 법 개정 후에 나온 양도불가 전화는 파란색이어서였다.
근데 이 법이 통과되고 나서도 여전히 전화회선 공급량은 수요에 한참 못 미쳤고, 정부에서 전화회선을 못 받은 사람들은 기존 백색전화 회선 가입자들의 전화를 매입하는 방법밖에는 전화를 놓을 방법이 없으니 그쪽 수요에 프리미엄이 붙으면서 급기야는 백색전화 투기질에 나서는 사람까지 등장했는데 이게 한창 막장으로 치달았을 때에는 전화 회선 한 대 매매가격이 260만 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참고로 서울에서 50평자리 ''''''이 이 가격에 팔리던 시절이다. 이런 일은 1976년 전자교환방식의 교환기가 도입된 뒤 전화 회선 수를 수요만큼 공급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계속되었고, 1970년대 후반의 폭발적인 회선공급에 힘입어 일반 가정에서의 전화 보급이 시작되며 1980년대에는 이미 남한 전체에 천만 회선이 깔리게 되었다.
그 뒤 1982년, 체신청의 전화 사업 부분이 "한국전기통신공사"라는 이름의 공기업으로 출범하면서 사업권이 분리되고, 이 해에 아예 모든 기계식 전화기를 전자교환기로 교체해버렸다. 전전자교환기로 완전히 교체된 시점은 2004년 1월. 바꿔 말하면 2003년 12월까지는 반전자교환기도 사용한 것이다.
북한 역시 6.25 이후 통신망들이 전부 대파되었다가 역시 약 10년의 시간을 거쳐서 복구했으나, 내부용/외부용으로 구분하며 가정용 전화기는 잘 보급되지 않았다. 1990년 기주능로는 내/외부용 통신망을 전부 합치면 약 80만 회선 정도였다.[10] 그리고 이마저도 해외 통화망은 거의 구축되어 있지 않고 그나마 있는 것들은 지정된 국가와의 통화를 목적으로 회선 두세 개만을 제한적으로 개통해놓은 상태이다.

3. 방식


크게 PSTN과 VoIP가 있다. PSTN은 과거부터 존재하였던 유선전화망이고 VoIP는 인터넷 통신으로 음성을 전송하는 전화 방식이다. PSTN은 정전이 되거나 인터넷 회선에 장애가 발생하더라도 사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수익이 낮아서 요금이 비싼편이다. VoIP는 요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나, 정전이 되거나 인터넷 회선에 장애가 발생하면 전화도 사용할 수 없다.
요즘은 PSTN의 경우도 집에 설치되는 전화기만 아날로그이고 대부분은 디지털화되어 있다.

4. 기타


  • 의외로 여러 가지 이유로 먼저 전화하기를 싫어하거나 전화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콜포비아로 부르며 기사도 여러 개 나왔다.
  • 유선전화기는 대체 어디서 전기를 공급받는 것인가 하는 의문들이 많은데, 전화선을 통해 미약한 전기가 공급된다. 수화기를 놓았을 때에는 DC 48V 정도의 전압이 공급되며, 전화벨이 울릴 때는 AC 100V까지 올라간다. 송전망과는 별개로 전력을 공급하기 때문에 집이 정전되거나 차단기가 내려가도 유선 전화기는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전기의 양은 대단히 적기 때문에 전화국에서 그냥 내준다. 무선 전화기나 디스플레이가 장착된 다기능 유선 전화기는 전화선에서 끌어오는 전기만으로는 불충분하기 때문에 건전지나 별도의 전원 공급 장치를 장착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이용해 전기요금 아끼겠다고 선풍기 같은 다른 가전제품들을 전화선에 물려서 쓰는 경우도 있는데 이러면 당연히 전화국에서 정신 못차리고 치솟는 계량기를 보고 바로 조사 나온다.
  • 80년대 초반까지 한국에서 운용되던 가정용 전화기는 지금의 RJ-11 형식이 아닌 일반 110V 전원 단자와 동일한 형태의 플러그를 사용했다. 그래서 전원과 전화 단자를 구별하기 위해 벽에 준비된 소켓은 전원의 경우 수평으로, 전화의 경우는 수직으로 설치하는 것이 상례였다. 당시 나이드신 분들은 그걸 제대로 구분하지 못해 전화기를 전원 소켓에 연결했다가 전화기를 홀라당 태워먹던 일도 부지기수. 그래서 오래된 주택은 90년대 초반까지도 전화 연결을 위해 일반 110V 플러그를 구해서 RJ-11 끝을 잘라 전선을 연결하던 과정이 필수였다.
    • 당연히 이런 형태의 플러그는 문제가 되었고, 70년대 중후반부터 둥그런 형태의 단자 4개를 연결하는 형태의 전화 플러그가 도입되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실제로 사용하는 선은 2개 뿐이었다. 이 형태로 계속 사용되다가 90년대부터 서서히 RJ-11 단자로 바뀌기 시작했다.
  • 멀리 있는 사람에게 말을 전한다는 것에 착안하여 서브컬쳐에서 세뇌당한 채로 세뇌 시전자의 의사를 전달하는 캐릭터를 일컫기도 한다. 대표적으로는 로하나가 있다. 정확히는 아몬 전용 송신기. 더블오 퀀터ELS와 대화하기 위한 기체라 휴대폰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 재밌게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통화중일때 무언가를 건내주면 아무 생각없이 그 물건을 통화가 끝날때까지 들고있는다.
  • 일본에서 김정은의 별명이 '검정 전화기'이다. 왜냐하면 김정은의 헤어스타일이 '검정 전화기'와 닮았기 때문이다.
  • 옛날 송수화기의 송화부분에는 분말형태의 탄소진동판이 사용되는데 오래 사용하면 이 분말이 습기 등으로 굳어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때, 송화기를 두드려서 충격을 주거나 마이크의 가운데를 칼로 긁어주면 잡음이 없어진다.
  • 양손에 A전화기와 B전화기를 동시에 들고 A전화기 > 통화연결 > B전화기 수신한 다음, 두 전화기를 양쪽 귀에 대고 말을 하면 양쪽 전화기에서 알 수 없는 귀를 찌르는 시끄러운 굉음과 쇳소리가 난다. 이는 A전화기에서 발신된 소리가 바로 B전화기로 수신, 송출된 소리를 다시 A전화기가 받아 전달하는 무한루프 현상 때문에 그렇다.

4.1. 언어별 전화 인사말


언어

한국어
여보세요? [11]
영어
Hello?
독일어
Hallo?
일본어
もしもし?[12]
표준 중국어
喂(wéi)?[13]
러시아어
Алло?
스페인어
¿Diga?[14]
프랑스어
Allô?
이탈리아어
Si?, Pronto?



5. 관련 문서



5.1. 용어




5.2. 기타



[1] 이미지는 초창기의 다이얼식 전화기. 영어로는 'Rotary dial'이라고 한다. 참고로 지금도 이 방식(다이얼 펄스)의 전화를 사용해 통화하는 것이 가능하다.[2] 자그마치 19세기다.[3] 이후 'Automatic Electric'가 되며, 이후 GTE에 인수되고, GTE는 Bell Atlantic에서 인수한다. Bell Atlantic는 버라이즌이 되어 명성을 떨치고 있다.[4] AT&T의 전신.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세운 기업이다.[5] 스마트폰 이전에도 이런 기능을 탑재한 휴대 전화들은 꽤 존재했으나 그 성능이 매우 조악하면서 제한적이었다.[6] 사용자, 기기에 따라 한손으로 계속 들고다니기엔 은근 무거울 정도.[7] 라이스가 살았던 마을에는 '진짜 전화기의 최초 발명가는 라이스'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카더라[8] 당시에는 평균 연봉이 몇만원 정도했던 시절이었다.[9] 야인시대로 잘 알려진 동대문 정치깡패 이정재도 전화상으로 상당한 이득을 취했다고 한다. 이쪽은 곽영주와 친분까지 있었으니...[10] 참고로 같은 시기 남한의 회선 총 개수는 1,500만 회선이었다.[11] 21세기 들어서는 전통적 전화기보다 스마트폰을 쓰는 일이 많다 보니, 웬만하면 전화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기 때문에 대략 '누군가 했더니 너구나, 무슨 일로 전화했어?'라는 의미로 "왜?" "뭐?"라고 첫머리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모르는 번호로 걸려왔을 때는 여전히 "여보세요"를 쓰곤 한다.[12] 모시모시[13] 전화를 시작할 때 하는 인사만 2성으로 발음한다. "저기요..." 이런 식으로 상대방의 주의를 끄는 용법으로 쓸 때는 4성(wèi)으로 발음한다.[14] 그러나 이는 지역마다 다르다. 멕시코에서는 ¿Bueno?가 더 많이 쓰이고, 어떤 지역에서는 ¿Alo?가 더 많이 쓰이며, ¿Diga?는 회사 등지에서 다른 전화를 넘겨받을 때 많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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