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영화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 映畵 / Cinema of Nor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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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평양직할시의 영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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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보급중인 4D 영화관. 기사 중국 쪽 4D 기술을 가져온 것으로 보이지만 자세한 정보는 알려져 있지 않다.
1. 개요
북한의 영화에 대한 문서.
북한을 방문한 재미교포 신은미의 기사. 학교에서 영화 타이타닉을 영어교재로 쓰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2014년 몽골 영화 시장에 IMAX 영화관이 도입되면서, 동아시아 영화판에서 유일하게 북한에만 IMAX 상영관이 없다.
2. 영화 시장
북한 자체가 워낙 폐쇄적인 국가라 북한 영화 시장 규모에 대해 추산한 자료가 없다. 경제가 빈국인데다가 제작편수가 많지가 않아서 시장 자체는 별로 크지는 않다. 다만 시장만 크지 않을뿐이지 여가시간을 영화로 때우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영화를 즐겨보는 사람은 많으며, 여유가 있으면 음지의 장마당에서 외국영화나 남한영화를 몰래 구입해서 보기도 한다. 다만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동정에 대해 다루는 영화는 내용이 뻔하고 레퍼토리도 반복되는지라 그냥 별수없이 보는것에 가깝기는 하다. 참고로 197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는 일주일에 한번씩 영화를 볼수있도록 당국에서 지정했는데, 그 시절에도 김일성과 김정일 우상화 영화는 따분해서 틀면 보든 말든 하는 사람들이 한가득이었다고(...) 물론 신상옥 감독이 제작한 영화나 남한에서 활동하는 공작원들을 소재로 한 첩보영화같은 것은 인기가 엄청나게 많아서 영화관이 꽉 찼다고 한다. 참고로 경제가 어느정도 돌아가던 시절에는 연간 관람횟수가 연 18회에 달할 정도로 매우 높았다고 하는데 한국이 1960년대에도 연간 관람횟수가 6회 정도였으니 얼마나 많은 수치임을 알수가 있다. 외국영화가 아예 상영되지 않는것은 아닌데 미국영화는 당연히 아니고 주로 중국 영화, 러시아 영화, 인도영화 등을 상영한다.
3. 역사
3.1. 김일성 시대
생각보다 중국이나 소련과 합작 영화를 만든 사례가 많다. 특히 소련과 합작한 경우 단순히 체제선전 말고도 역사물이나 다양한 소재를 다룬 작품이 꽤 있었다. 위의 영화는 15세기 키예프 공국의 전설속의 영웅 일리야 무로메츠를 다룬 동명의 영화. 이 영화에는 당시 모스크바에서 유학중이던 최승희의 딸 안성희가 잠시 출연했다.
1957년 북한과 소련 합작으로 제작된 영화 "형제들". 이 작품에서 안성희가 주연이자 무용감독을 맡았다. 이 영화에는 서울의 고급 술집 풍경을 굉장히 사실적으로 묘사해 놨다(15분 30초부터). [1][2]
북한의 조선중앙텔레비죤에서는 소련 영화나 중국 영화를 더빙해서 방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80년대에는 동독에서 제작된 칼 마르크스의 생애를 다룬 연작 영화를 방영한 적도 있고, 다양한 소재의 동구권 영화를 방영한 적이 있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러한 영화 방영 스케줄로 종종 중국과 소련 사이의 북한의 외교 스탠스를 분석할 수도 있다고 한다. 중국과 사이가 안 좋으면 소련 영화를 줄창 방송하고, 소련과 사이가 안 좋아지면 중국 영화를 줄창 방송하는 식(...).#
3.1.1. 남북분단 ~ 6.25 전쟁
3.1.2. 6.25 전쟁 ~ 8월 종파사건
3.1.3. 8월 종파사건 ~ 김정일 집권
3.2. 김정일 시대
3.3. 김정은 시대
4. 작품
북한 영화라고 하면 매우 조악할 것으로 많이 생각하는데 의외로 상당한 수준이다. 일례로 북한의 첫 선전영화인 내 고향을 본 어느 남한 영화 감독은 생각보다 괜찮아서 놀랐다고 밝힐 정도였다. 실제로 북한은 소련과 동구권의 영화 촬영기법을 많이 받아들여 [3] 체제 초기엔 후기완 다른 꽤 창의적인 선전 영화들을 내놓았고 80년대 이후에 나온 영화들도 꽤 은유적으로 체제의 슬로건을 그리고 '선한 외국인'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체제 정당성을 설파하는 경우도 많은데 김정일화의 탄생 과정을 다룬 영화에선 '김일성의 도덕적, 능력적으로 완벽한 모습과 주체사상'에 감명받은 일본인이 '자본주의자들의 훼방'에도 불구하고 직접 김정일화를 만들어 진상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또한 김치의 우수성을 찬양하는 영화에선 깨알같이 미국인들까지 등장시켜 김치를 찬양한다.(...)
북한에서 인기있는 영화는 시리즈물로 제작되곤 하는데, 이름없는 영웅들 시리즈는 남한에서 활동하는 공작원을 소재로 한 영화인데, 무려 20부까지 제작되었다.[4] 민족과 운명은 무려 60부까지 제작되었다. 물론 대부분 체제 선전이나 남한 비방을 목적으로 한 내용이 많아서 남한에서는 게시판이나 위키에 함부로 올렸다간 코렁탕을 먹을 수도 있다. 아니 그 이전에 영화 자체가 너무 뻔해서 재미가 없다(...).
북한 영화에서 가장 독특한 작품은 "우리집 문제" 시리즈인데, 한국으로 말하자면 시트콤 같은 구성을 가진 코믹 가족영화다.# 북한 배우들의 액티브하고 유쾌한 연기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북한에서 코믹 영화의 대명사로 통하는 시리즈일 정도다. 다만 이 영화도 체제 선전에는 예외가 없어서, 대부분의 내용이 구습 타파나 사회주의 미풍양속을 권장하는 쪽으로 맞춰져 있다. 즉, 계몽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것.[5] 다만 한국의 반공 영화처럼, 북한도 체제 선전을 위한 목적이라면 어느정도의 일탈 행위를 묘사하는 것은 허용해 주는듯 하다. 우리집 문제 시리즈의 8번째 작품인 "우리 사돈집 문제"에는 청소년의 음주와 흡연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6] .
이와 별개로 북한 영화는 1년에 몇 편 정도 밖에 안 만든다(..)[7] 또, 개봉할 때에는 평양에서 시작해 지방으로 퍼지는 형식으로 하고 있다. 한국에서 멀티플렉스 체제가 갖추워지기 이전에는 전국적으로 동시 상영하는방식이 아닌 개봉관->재개봉관.>재재개봉관을 걸쳐서 순차적으로 상영하는 방식이었는데 북한에서는 아직도 이런 시스템이 남아있다.
그런데 북한을 배경으로 한 영화라면 모를까 일본, 남한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남한 사람들 눈으로 보기엔 조악하기 그지 없어서 질이 많이 떨어진다.[8] 자본주의 체제의 열악함을 증명하겠답시고 '''한국 자체를 데몬 월드 급의 헬게이트 지옥을 묘사해놓았다.''' 그냥 실소도 아까울 정도다. 근데 북한 배우들 중에선 남한이나 일본 배경의 영화를 찍을 때 너무 신나했다(...)는 후문도 전해진다. 정해진 것만 연기하다가 색다른 걸 연기하느라 속된 말로 좋아 죽으려는 배우들도 보인다.(...) 남한 자본주의 사회의 퇴폐성을 보여주겠답시고 만든 영화 금희와 은희의 운명에선 당시 인기배우 정춘란이 금희와 은희의 1인 2역으로 나오는데, 북한에서 철저히 금지된 퇴폐 무용을 하면서 신이 나는 것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체제 때문에 억눌린 인간 본연의 욕망을 체제 선전 영화 촬영을 핑계로 촬영하는 동안 마음껏 분출한다는 것이 아이러니....''' 그리고 전체적으로 흑백논리적인 작위적이고 조악한 배경이나 설정이 매우 많은 것은 사실이다. 특히 북한 건국 이전의 일제강점기와 조선왕조를 다룬 부분은 가히 북한 건국신화의 반영이라고 봐도 될 정도의 헬게이트만 만들고 김일성 등장 이후로 순식간에 지상락원으로 변모시키며 외국인의 멘탈을 안드로메다로 날린다. 해방 이후 묘사도 '저 지옥같은 남조선과 이밥에 고깃국을 먹는 배부른 공화국의 비교'만 줄창 나온다.
북한 영화의 특징은 '''우수한 조선 민족에 장애 분자 따윈 없다'''는 정신승리법을 적극 반영하여, 나쁜 사람들은 모두 서구 자본주의의 영향을 받은 가엾고 딱한 자들이며 교화의 여지가 있다는 식으로 나온다. 동구권에서 구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을 적극 묘사한 것에 비해 북한은 이미 '위대한 지도자 동지의 교화에 감화된 인민'들이 모두 일사불란하게 개혁에 참여하며 방해하는 것들은 뭐 당연하지만 '''미국인, 일본인, 친일반민족행위자, 한국의 반동, 지주 등은 전형적인 악당으로 나온다.''' 멋있는 악역 따윈 없다고 봐도 된다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일본인, 미국인을 비롯한 악당들은 우스울 정도로 사악하고 희화화되어 등장한다. 그리고 애정신은 전혀 없다. 심지어 미군들의 '전쟁범죄'를 다룬 선전영화에서도 미군들이 조선 처녀에게 달려들어 조선 처녀의 패물만 빼앗고 얌전히 간다.(...) 사랑싸움, 애정신의 묘사는 소련의 영향을 깊게 받아 꽤 서구적인 소재나 방식을 보여준 50년대 영화보다도 오히려 후퇴한 상황이다. 특정 배우가 숙청될 경우 그 사람이 나온 작품은 목록에서 지워지거나 아예 새로 만드는데, 대표적인 예로 1980년 김정일에 의해 공개처형당한 미녀배우 우인희가 있다. 탈북기자 주성하의 말에 따르면 우인희의 북한 쪽 작품은 사라졌지만 중국으로 흘러들어간 거는 남아있다고 한다.
참고로, 김정일은 영화 및 사진에 대단히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이론에 대한 책을 직접 쓰는가 하면, 영화 및 사진 기술 등에 대한 상당히 전문적인 비평을 하거나 취미로 사진을 찍기도 하였다. 물론 당연히 김정일이 쓴 영화 이론 책은 북한 영화계의 바이블(…)이 되었다. 그래서 김정일의 영화 컬렉션은 일본의 아베 요시시게 컬렉션처럼 한국 영화계의 떡밥 중 하나다. 원본 필름을 구할 수 없어서 '환상의 에피소드'가 된 고전 한국 영화 중 일부를 김정일이 소장하고 있다는 소문은 오래전부터 나왔다.
그리고 평양국제영화축전 같은 영화제도 열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제는 평양 시민들에게만 보여주기 때문에 지방은 그냥 상관없는 이야기이다.
남한에서 북한 영화가 본격적으로 널리 알려진 건 1988년 NL운동권이 주도한 '북한 바로알기 운동' 때부터였다. 1990년대까지 대학가에선 NL 총학생회 등의 주도 하에 음성적으로 북한영화가 녹화된 비디오테이프 등을 유럽 등지에서 구해다 상영회를 열었는데, 상영 중 경찰이 들이닥쳐 테이프나 기자재 등을 압수수색하고 관련 학생들을 체포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1996년에는 한 여성이 독일 유학 시절인 1990년부터 2년간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북한 영화 비디오테이프를 구했다는 이유로 국보법상 국가기밀 유출혐의로 구속기소됐으나, 1999년에는 북한 영화 20개 작품 중 <꽃파는 처녀> 등 7개 작품만 무죄를 선고받았다.
합법적 루트로는 1990년대 중후반까지 <남북의 창> 등 북한 관련 프로그램에 짧게 나오는 게 전부였다가 1998년 SBS가 최초로 <안중근, 리등박문을 쏘다>를 방영했고, 2000년 신상옥 감독 납북시절 작품 <불가사리>가 분단 이래 처음으로 합법 상영되었다.
5. 영화 감독
6. 전/현직 배우
7. 영화관
영화상영시설은 1000여개 정도 있는것으로 파악되고있다. 북한은 멀티플렉스 개념이 도입되어 있지 않아 1990년대 이전의 남한처럼 대부분 단관극장 형태이며, 지방에서는 예술회관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인민극장'''(...). 다만 가격은 싸서 북한주민들에게 있어서 여가시간을 값싸게 때우는 수단이기는 하며 연인들이 데이트 할때 데이트 장소로 인기가 높은것은 남한과 마찬가지이다. 인기가 높은 영화는 따로 암표를 팔기까지 할 정도다. 하지만 북한의 영화제작편수가 많지는 않다보니까 같은 영화를 장기간 반복해서 트는 경우도 많다고 하며, 이런 경우에는 '''비싼돈 주면서 외국영화나 남한영화를 몰래 보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다만 2010년대 이후에 개장하는 극장들은 시설이 남한기준으로도 괜찮은 편이기는 하다.
8. 관련 자료
[1] 사실 예술 분야는 남한보다 북한이 인재풀이 더 풍부했다. 해방 전에 피압박 민족이자 차별받는 '딴따라'로 취급당하던 예술가들은 사회주의에 호감을 가진 경우가 많았고, 그로 인해 해방공간에서 월북을 하거나 한국전쟁 중에 북한군을 따라간 경우도 있었다.[2] 해방 전에는 대부분의 음악가들이 재즈를 듣고 연습했기 때문에 이 장면에서 더 생생한 묘사가 가능했던것 같다. [3] 간과하기 쉽지만 러시아 영화와 동유럽 영화는 상당히 완성도가 높은 동네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같은 현대 영화의 화법을 발명한 몽타주 이론가들도 전부 소련 출신.[4] 이 영화에 월북 미군들이 대거 출연하여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5] 사실 남한도 1980년대까지는 이런식으로 계몽적인 주제의 드라마가 나오거나 코미디 콩트를 계몽적인 방향으로 진행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이런 프로그램들의 경우에는 당연히 방송사 간부들이 미리 검열을 하고 그랬다. 예를 들면 5공화국 시절에는 순자라는 배역이 비천하거나 웃기는 역을 하면 안되고 대머리나 주걱턱도 개그소재삼는것도 안된다는 식. 여하튼 이러한 드라마나 코미디극 가운데서 이름을 날리던것이 팔도강산 시리즈 등이 있었다.[6] "우리 사돈집 문제" 자체가 북한의 비행 청소년 문제를 계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된 영화다.[7] 인구 때문에 시장이 작은 아이슬란드는 1년에 10편밖에 안 만드는 것을 생각하면 대략 알수 있는 부분이다.[8] 북한에서 제작한 3부작 사극 영화 임진왜란(1991년)에서 등장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나 일본인들의 복식이나 소품 고증은 생각보다 의외로 볼 만하다. 대사가 문화어로 되어 있는 것만 제외한다면. # 해당 영화는 2002년에 SBS에서 광복절 특집으로 방영되기도 했는데,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간의 2분법적 역사관에 입각해 다소 역사적 사실을 왜곡(평양성 탈환시 명나라 군대의 역할에 대한 언급이 없고 평민, 노비 등의 공을 지나치게 부각한 점 등)이 액션신이 많이 미흡하다는 것이 지적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