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위안시
太原 / 태원 / Taiyuan
1. 개요
중국의 도시. 중국 산서성(山西省)의 성도이다. 한국인들은 대만 타오위안시의 이름을 타이위안으로 오표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혀 다른 도시이다.
2. 역사
춘추전국시대 조나라를 세운 조양자가 건설한 도시로, 건설한 당시에는 진양(晉陽)이라고 불렀다.[1] 진(晉)나라 말엽 지(智)씨가 멋대로 권력을 휘두르고 땅을 요구하자 이곳에 들어가 항전하였고, 지씨의 위세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출전한 한(韓), 위(魏)씨를 배반하도록 하여 지씨를 역관광시켰다. 결국 한씨, 위씨와 함께 진의 영토를 나누어 가진 삼가분진은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 넘어가는 분기점이 된 사건으로, 태동기부터 역사적인 의미를 가진 도시라고 볼 수 있다.
이후 조나라의 초기 수도였으나, 이후 조나라는 보다 교통이 편리한 한단으로 천도하였다.
전한 대에는 태원군(太原郡)이라 하여 병주에 속하며 북방 방위의 중요 군사도시였다. 지금의 베이징이 속한 유주와 수도 낙양이 속한 사예를 잇는 교통의 요지이면서도 흉노와의 접경지대였기 때문이다. 후한 때에는 고구려가 침입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태원군의 치소(治所)는 진양현(晉陽縣)에 있었다. 즉 진양은 태원의 군청 소재지.
남북조시대에는 평안(平安)이라고도 불리웠으며 유목지대와 농경지대의 분계지로써 북위의 초기 수도 평성(平城)에 이어 고려된 천도 후보지이자 이주영, 북제의 창건자 고환의 본거지로 북조 제2의 수도로 중요 요충지였다.
당나라가 들어서서는 제1수도 장안, 제2수도 낙양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제3의 수도로까지 위치가 격상했다. 대 돌궐 전선을 총괄하는 사령부가 설치된 곳이면서도 당의 건국자인 당고조가 태원 유수로 거병한(진양기병(晉陽起兵) 왕조의 발상지였기 때문이다. 당나라는 안사의 난에서 장안과 낙양을 잃었음에도 태원만은 지켜내었고, 이는 전황이 당나라로 다시 기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오대십국시대에는 후당, 후진, 후한(북한)의 발원지로 송태종이 멸망시키기 전까지 꾸준히 중원을 위협하기도 하였다. 이후 송나라의 북방 방위에 있어 역시 중요한 축을 담당하였다. 연운 16주를 되찾지 못하는 이상 태원은 사실상 북방 경계의 최전선이었다. 송나라 때부터 보편화된 석탄과 타이위안 주위에 풍부하게 매장된 석탄이 맞물려 북중국 수공업의 중심으로 발돋움하였다.
명나라와 청나라대에는 상공업이 발전하여 경제도시로 발돋움하였다.
청나라 멸망 후에는 군벌 염석산이 근거지로 삼아 공업을 발전시켰다. 중일전쟁이 발발했을 때 일본군에게 점령되었으나 일본군이 항복한 후 염석산이 다시 장악했다. 국공내전에서 가장 끈질기게 버틴 국민당 근거지였으나 결국 중과부적으로 패배하면서 공산군에게 점령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한 뒤에는 석탄을 바탕으로 한 철강 등의 중공업이 발달하였다.
3. 교통
타이위안 지하철이 2020년 12월 26일에 1호선이 개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