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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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
'''탱크맨(坦克人, Tank Man)'''
'''이름'''
왕웨이린(王維林) 또는 장웨이민(張爲民)
'''국적'''
중국
'''관련 사건'''
천안문 6.4 항쟁
'''생몰년도'''
? ~ ?
'''생존 여부'''
2017년 기준 생존.
1. 개요
2. 상세
3. 생존 여부
3.1. 장쩌민의 발언
3.2. 2017년 보도
4. 용기에서 비롯된 행위
5. 기타
6.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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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9년 천안문 항쟁 당시 인민해방군 전차를 막아선 시위대 측 남성을 가리키는 말. 일명 '탱크맨'. 이 사람은 왕웨이린(王維林)이라는 가명으로 알려져 있으며, 천안문 6.4 항쟁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오늘날도 회자되고 있다.
1998년,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TIME)이 선정한 20세기의 인물 20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등재되었다. #

2. 상세


악몽의 6월 3일 밤부터 6월 4일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유혈 진압이 마무리되고, 탱크가 천안문 광장으로 본격적으로 전개를 하는 상황이었다. 시민들은 당연히 겁에 질려 도망쳤으나, 수십 미터 밖에서 진격해오는 59식 전차들을 흰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고 양 손에는 검은 비닐봉투와 옷가지를 든 어떤 사람이 단신으로 막아냈다. 영상을 보면 저 사람이 막은 전차가 한두 대가 아니었고, 가만히 서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전차 조종수들이 차마 저 사람을 깔아뭉개고 갈 수 없었는지 옆으로 지나가려 하자, 이번에는 그 방향으로 달려가 그야말로 몸을 던져 막았다.
그런가 하면 전차 위로 올라가서 조종사석에다 대고 무언가 말을 하려 했으나, 몇몇 시민들이 달려와 데려가면서 위험한 상황이 끝난다. 이 상황에 대해서는 주변에 포진해있던 사복 공안들이 위험한 상황을 막기 위해 달려와서 떼어놨다는 설도 있지만, 최근 공개된 6.4 항쟁 관련 사진 중에 동료로 보이는 자신과 똑같은 흰색 셔츠를 입고 있는 사람과 함께 몸을 피하고 있는 모습이 찍혀있었다.
한편 중국 CCTV에서는 당연히 탱크맨을 맹비난하면서도, '그대로 짓밟고 갈 수도 있었지만 정부의 자비심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보도했다.

3. 생존 여부


이른바 탱크맨으로 불리는 왕웨이린은 대만으로 건너가 살아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다만 이는 중화권 언론을 인용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 여부는 100% 밝혀진 바 없고, 오히려 진압 직후 중국 당국에 체포되어 복역 중이라거나 이미 처형당했다는 설도 제기되었다.

3.1. 장쩌민의 발언



위 영상은 1990년 미국 ABC 방송의 유명 베테랑 앵커인 바바라 월터스(Barbara Walters)가 장쩌민과 단독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다. 월터스가 대놓고 당시의 사진을 제시하며 왕웨이린을 언급하자 장쩌민은 너털웃음을 짓는 등의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며, 그 남자가 어떻게 되었느냐는 월터스의 질문에 중국어영어를 번갈아 쓰며 답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중국어로 사진 속 장면 자체에 대해서만 얘기하면서 말을 돌리다가, 갑자기 영어로 '''"그 사진이 증명해준다. 그는 탱크에 깔려죽지 않았다."'''는 답변을 한다.
그러자 월터스는 좀 더 직설적으로 체포 혹은 처형에 대한 질문을 하고, 이에 표정이 굳어진 장쩌민은 중국어로 '''"그 사람이 체포되었는지 여부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답한다. 재차 질문을 받은 장쩌민은 마침내 '''"하지만 내 생각에는... "확실히" 죽지 않았다.(But I think never... never killed.)"'''라고 영어로 답변하고, 그것을 확인하는 월터스를 향해 다소 신경질적인 어조로 다시 한 번 똑같은 답변을 한다.
'''즉, 왕웨이린에 대한 서방측의 의구심을 분명하게 부정한 셈이다.''' 무엇보다도 '''중국 정부의 수반'''이 구태여 사망설을 부정했다는 것은 결국 '''해당 인물이 중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났음'''을 암시하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never'라는 표현을 쓴 것을 눈여겨봐야 한다. never는 일반적인 부정문에도 쓰이지만, ''''결코'''' 혹은 ''''절대로'''' 등의 강조형으로도 쓰이는 표현이기 때문. 장쩌민이 영어에 매우 능통한 인물이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다분히 의도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3.2. 2017년 보도


결국 장쩌민이 단언한 대로, 2017년 6월 탱크맨이 중국에서 안전하게(?) 살아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 홍콩에 있는 중국 인권민주화운동정보센터 창립자인 '프랭크 루(盧四淸)'의 인터뷰에 따르면, 탱크맨은 망명하거나 감옥에 가지 않고 중국에 '''그냥''' 평범하게 살고 있으며 왕웨이린이 본명도 아니고 굳이 해외에서 유명해지고 싶지도 않고 중국이 민주국가가 되기 전까지는 조용히 살고 싶다고 밝혔다. 그가 정말 중국에 있다면 신변의 안전 때문에 자신이 진짜 탱크맨이라고 밝히기는 어려울 것이며, 공산당 1당독재가 끝나야 비로소 탱크맨의 정체를 알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한 편에서는 그가 감옥에서 복역 중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 뉴시스의 보도와 달리 복역 중인 장웨이민이 탱크맨이 아니라는 주장도 존재한다.[1]#

4. 용기에서 비롯된 행위


6.4 항쟁 당시 인민해방군의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들이 속출했다. 고로 군인들이 별 생각 없이 탱크맨을 진짜로 밟고 지나가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2]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제적 위상이 바닥으로 추락하고 국내에서는 반발이 더욱 거세져 시위 진압에 실패했을 것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전차 부대가 본인을 밀고 지나가게 하는 것이 탱크맨 본인의 의도였을 수도 있다. 게다가 컬러 사진으로 보면 길이 로 물들어 있음을 볼 수 있는데, 그가 서있던 바로 그 길은 몇 시간 전만 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했던 곳이었다. 같은 위치를 몇 시간 전에 같은 구도로 찍은 사진을 보면 미처 수습되지 못한 수많은 시신들과 부서진 자전거들이 널려있다.
시민들이 학살된 바로 그 자리에서 탱크맨 자신도 '''"날 죽여 봐라"'''는 마음을 가지고 죽을 각오를 하고 선 것이다. 군인들도 차마 시민을 눈앞에서 전차로 짓밟지 못할 양심이 있었겠지만, 단순히 전차 앞에 서는 데만에도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하며, 죽음을 무릅쓴 자세가 가히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당장 땅이 울리도록 자신을 압도하며 서있는 몇십 톤짜리 살상무기를 상상해보자.
살벌했던 당시의 상황과 거대한 폭력 앞에 단신으로 서서 막아내는 그의 용기가 인상깊게 표현되어 위 사진은 퓰리처상 후보작으로 선정된 것이다.

5. 기타


천안문 6.4 항쟁 30주년을 앞둔 시점에서 독일의 라이카 카메라가 자사 홍보 영상도(한글자막영상) 올렸는데, 이 장면 중 탱크맨을 묘사한 장면이 있어 중국에서 반발하기도 했다. #
천안문 6.4 항쟁 당시 탱크맨을 촬영했던 찰리 콜 CNN 기자는 2019년 별세하였다. 향년 64세. 기사.

6.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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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화각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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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가 다가오기 전 근거리에서 찍은 것. 페이로더 왼쪽에 있다.
위 사진은 AP통신의 사진기사 제프 와이드너가 찍은 사진이다. 그는 3일에서 4일을 기점으로 무력 진압이 거세지자 기록을 남기려 창안제가 내려다 보이는 베이징 호텔로 향했다. 호텔은 경비가 삼엄했고, 가까스로 6층 호텔방에 투숙 중이던 미국 대학생 커크 마첸을 설득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사진 촬영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한다. 원래 사용하던 니콘 F3 카메라는 2일 전 장안대로에서 취재 중 날아온 돌에 맞아 부서져서 니콘 FM2로 촬영을 진행해야 했고, 와이드너 본인도 뇌진탕에 걸려서 당일에도 두통에 시달리던 중이었다고 한다. 필름도 촬영 중 떨어져서 호주인 여행객에게서 간신히 한 롤을 빌려 촬영했고, 그래도 화각이 나오지 않자 사용하던 400mm 렌즈에 2X 컨버터를 급히 끼워 찍었다고 한다. 필름 자체도 사진 촬영용 고감도 필름이 아닌 ASA100짜리 필름이라 1/60~1/30까지 셔터 속도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간신히 세 장을 찍었다고. 손떨림 보정 기능이 있는 현대적 DSLR로도 핸드헬드 상태에서 저 정도 셔터 속도를 유지하면서 800mm 장망원 렌즈로 흔들리지 않게 촬영하는 것이 매우 힘든 것을 감안하면 정말 기적적으로 나온 사진이었다.

사건 당시 CNN 스탭이 촬영한 영상. 주변 기자와 시민들의 반응을 들을 수 있는데, 전혀 예상 못한 상황에 놀라고 난 뒤에는 박수와 환호를 보낸다.
[1] CP/IFC has no professional ability to assess the media’s report about the Tank Man, nor can we confirm if Zhang Weimin is indeed real. But the purpose of our Finding Tank Man campaign is to seek truth, which we believe is the critical basis to clear the name for the 1989 pro-democracy protests and to achieve transitional justice. To resolve the mystery of the Tank Man once and for all, CP/IFC calls all our friends to provide Mr. Zhang Weimin's information or give any clues that may help reveal the truth of the Tank Man.[2] 훗날 자칭 이슬람 국가 ISIL은 실제로 포로를 탱크로 뭉개서 처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