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식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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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식 전차 최고의 날[8]
1. 개요
59式 坦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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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모델은 수출용으로 59식에 120mm 활강포를 장착한 사양.
인민해방군의 MBT. 형식번호는 WZ-120이다. 중국의 WZ형식번호는 양산후에도 계속 사용되는 병기명이기 때문에 WZ넘버링만 보고 소련의 기갑설계안들 마냥 WZ는 개발안 번호아닌가? 하는 착각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중국 기갑부대의 모태이자 근간이며, 21세기에서도 아직도 사용되고 있다. 자그마치 50년동안 인민해방군 기갑부대와 함께 한 역사 그 자체.
용산 전쟁기념관은 한대의 59식 전차를 63식 전차와 함께 전시하고 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남베트남군이 노획한 것을 파월 한국군에게 기증한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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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의 종결을 상징하는 이 유명한 사진에 나오는 전차가 바로 59식 전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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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베트남 대통령궁에 최초로 난입한 843호 T-54B와 390호 59식 전차의 모습. 현재 호치민시 통일궁(구 남베트남 대통령궁) 앞뜰에 보존 전시되어 있다.[9][image]
참고로 천안문 6.4 항쟁 당시 탱크맨이라 불리는 사나이가 막아선 전차도 이 59식 전차이다.
2. 도입
중일전쟁 당시 프랑스제 르노 FT-17[10] 와 T-26의 기반인 빅커스 마크 E B형을 사용한 중화민국군(국민당군)이나, 국공내전 당시 일본군에게 노획한 치하 전차를[11] 주력으로 써야했던 공산당군이나 제대로 된 전차는 가져본 적이 없었다.[12] 그러나 현대전에서 언제까지 보병만으로 싸워야 할 수 없는 노릇이었기에, 중국 역시 신형 전차의 도입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리고 당시 중국의 우방국 중 전차를 제공할 수 있는 나라는 소련 뿐이었다.
1950년 중소우호조약 체결 및 6.25 전쟁 참전에 대한 지원으로 소련은 중국에 자국에서 개발한 당시로선 최신형 전차인 T-54/55에 대한 기술지원 및 라이센스 허가를 내주었다. T-55도 아니고 T-54였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감지덕지. 그리하여 중국에서 라이센스 생산한 것이 바로 이 59식 전차인 것이다.[13]
3. 성능과 문제점
전반적인 성능과 문제점은 T-54 문서를 참조할 것. 그런 물건이 '''다운그레이드'''되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520마력 수냉식 디젤엔진과 100mm 주포 등 대부분의 부분에서 본판인 T-54/55와 동일했으나 예나 지금이나 자국의 최신형 병기를 그대로 라이센스시켜줄 소련이 아니었다. 59식 전차는 58년부터 양산된 신형 T-55가 아닌 구형인 T-54A의 복제품으로 본판인 T-54/55에 달려있는 야간작전용 적외선 투시장치와 주포 안정장치가 '''통채로 빠져 있었다.'''[14]
하지만 59식 전차의 원판인 T-54는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그리고 냉전의 초창기에 나온 소련의 첫 MBT라는 데 의의가 있었다.[15] 소련군도 1947년부터 T-62가 등장하는 61년까지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T-54/T-55를 최신 전차로 사용했지만 어쨌거나 이후엔 T-62, T-64, T-72 등을 차례차례 개발하여 꾸준히 기존 전차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성능을 향상시켜 기갑부대의 전투력을 강화하였다.
중국 역시 59식 전차를 꾸준히 업그레이드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전차를 만들거나 도입할 수 있었다. 그랬으면 59식 전차도 인민해방군 기갑부대의 시조격으로서 박물관이나 제 3세계의 전장에서 구경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그러지 못했으니 우선 중소결렬로 소련의 기술지원이 완전히 끊겨버렸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1966년,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었다.'''
안 그래도 기술력이 부족하고 고급기술자가 없던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은 크리티컬. 대부분의 과학자와 기술자가 홍위병들에게 끌려가고 죽고 불구가 되었고 이러한 일이 거의 15년동안 지속되었던 것이다. 전차의 성능 개선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되었다.[16]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소련 국경분쟁으로 중국과 소련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소련의 새로운 전차들을 들여올 여건이 되지 않았다. 결국 중국 기갑부대는 2차대전 중에 개발하여 47년에 채용된 T-54를 '''1980년대까지''' 주력 전차로 운용해야 했다. 그 숫자는 무려 1만여 대.
3.1. 베트남 전쟁 이후
1979년, 중국-베트남 전쟁에서의 졸전으로 인민해방군, 나아가 중국 정부는 커다란 충격을 입었다. 중국-소련 국경분쟁에서의 패배야 '''원래 소련군은 강하니까'''로 납득했지만, 주력이 캄보디아를 침공하여 2선급 부대로 맞서싸운 베트남에게 졸전한 모습에 중국은 큰 충격을 입고 새로운 전차의 개발에 나섰으나….
전차라는 게 개발하겠다고 마음먹으면 2~3년만에 뚝딱 나오는 물건도 아닐 뿐더러 중국의 과학력 및 기술력은 문화대혁명덕에 발전도 느렸지만, 당시 미사일과 핵무기에 치중하고 있었다. 그 이유중의 하나는 재래식 전력을 확충할 돈이 없을때 핵무기와 미사일에 땜방하면 적은 비용으로도 전쟁억지력을 갖출수 있기 때문이다.[17] 1970년대에 중국 상황은 암울했고, 세계에서 최빈국의 하나로 전락했지만, 소련의 위협은 점점 가중되었기 때문에 중국은 핵미사일에 몰빵할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전차는 우선순위에 처지게 되고, 1980년대말이 되어야 신형전차 개발이 시작되게 된다.
결국, 새로운 전차를 개발할 때까지는 59식 전차를 어떻게든 업글해서 쓰기로 의견이 모아졌고, 서방 세계로부터 받은 기술지원과 중국-소련 국경분쟁 당시 노획한 소련군의 T-62 전차의 기술을 이용하여 다양한 바리에이션을 내놓았다.
이에 69/79식 전차가 개발되었고 이후, 중국은 59식 전차의 계열에서 벗어나는 88식 전차를 개발했고, 드디어 59식 전차와 오래 된 인연에 종지부를 찍었...으면 좋겠지만 그러기에 80식 이후의 전차들은 중국 기준에서 너무 비쌌거나 생산량이 부족해서 거대한 인민해방군의 기갑부대를 모두 대체할 수 없었다.
결국 이러한 현실적인 이유로 중국은 '''오늘날까지도''' 59식 전차를 일선 부대에서 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도 선양이나 베이징, 란저우같은 최우선 군구에는 99식 전차 중심으로 교체를 완료했지만 우선순위가 밀리는 지역에서는 아직도 59식 전차가 돌아다니고 있다.
전구제 개편이 이뤄진 2017년 이후 중형(미디움)제병협동여단의 화력지원차량. 즉 04식이나 브래들리MGS, 16식 기동전투차 등의 포지션에 투입되고 있다.
4. 바리에이션
- 59-1식: 드디어 레이저 거리 측정기가 달리고 기타 부수적인 업그레이드.
- 59-2식: WZ-120B 마침내 주포를 영국제 L7 105mm 강선포[18] 로 업그레이드 했으며 주포 안정장치와 FCS(사격통제장치) 시스템을 달아서 그나마 쓸만해 졌다.
- 59-3식: 59-2식에 포 방열 장치 및 복합장갑을 추가하여 공격력과 방호력을 높였다.
- 59-D식: WZ-120C 580마력 엔진으로 교체되고, 폭발형 반응장갑과 신형 사격통제장비, 야간투시경 등이 추가되었다.
- 59-G식: 신형 반응장갑을 무지막지하게 떡칠하고 각종 개량을 가해서 준 3세대 급으로 마개조한 모델. 탄자니아군에서 사용한다.
- 59-203식: 기존의 59식 전차 차체에 한국전쟁 당시 노획한 미국산 8인치 곡사포를 장착한 형태. 하지만 설계도 단계에서 계획이 중지되었다.
- 62식 전차: 문서 참조.
- 69/79식 전차: 문서 참조.
- 곡산자주포: 주체포 문서 참조.
- 59식 재규어: 미국과 합작하여 개량 및 양산하려 했으나 천안문 사태이후 중단되어 시제형만 남았다.
5. 매체에서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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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오브 탱크 중국 8단계 프리미엄 중형전차로 등장. 원본은 T-54의 복제 형태로 게임 내에서도 T-54의 장점과 단점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전차이다. 북미서버에서 처음 이 전차의 출시 당시에 7,500골드[19] 라는 저렴한 가격에 굉장한 고성능의 프리미엄 전차였는데 이것 때문에 엄청난 수의 유저들이 이 전차를 구매하여 한 때 공방의 밸런스가 엄청나게 깨져버리는 문제를 발생 시켰다. 결국엔 이 전차를 절판시켜버리고 MM값을 수정했다. 2012년 8월 이후에 이벤트 추첨을 제외한 그 어느 방법으로도 이 전차를 공개 판매하지 않는다. 자세한건 월드 오브 탱크/중국 테크 트리/프리미엄 전차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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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중국 트리가 정식으로 생기면서 9단계 중형전차로 따로 나왔다. 이쪽은 WZ-120. 월드 오브 탱크/중국 테크 트리/중형전차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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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식 전차에 황금도색을 하고 암시장에 등장한 전차이다. 본래 중국서버 한정용 전차였지만, 암시장을 통해 전서버에 풀렸다. 다만 쓸데없이 비싸고 MM제한이 아니라서 살 가치는 없다는 평이 압도적이다.
아머드 워페어에 3티어 프리미엄 전차로 Type 59 Legend가 나왔다. 2015년 연말 이벤트로 접속하는 모든 유저에게 지급했다. 벨런스 2.0 이후 더 강력한 T-55가 2티어로 변경되었는데 약해빠진 59식이 3티어를 차지하는 것은 벨런스가 맞지 않았기에 Type 59-IIA가 되면서 105mm L7 주포를 달게 되었다. 69식과 79식은 각각 2, 3티어 MBT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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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왈츠에서는 2016년 9월달에 WZ-120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섭 전용 전차로 등장했다. 이후 2017년 8월 31일 업데이트때 국내서버에 등장했다.
그리고 첸 웬란이라는 이름의 59식이 등장하는데 WZ-120과 달리 아직 사용할 수 없고 105mm L7계열을 장착한 버전이다.
워게임: 레드 드래곤에서 중국 측의 스팸 전차 트리로 등장한다. 성능은 모든 대전차 화기(무반동포 포함)을 얻어 맞으면 춘절 폭죽 마냥 뻥뻥 터지면서 산화되는 점이 포인트.
그냥 한번 뽑을 때 고기방패로 밀어넣고 아래 하이엔드 전차들이 딜링을 하든, 차량 탭에 있는 PTZ-89가 열심히 뒤에서 AP 21짜리 주포를 쓸때 동안 열심히 적군의 대전차 화기, 대전차 미사일,대기갑 집속탄을 대신 얻어 맞아 주면서 포인트로 산화하면 제 할일은 다한 셈.(...) 한 팩에 20~30대가 들어가 양적 주력으로 밀어 붙일려면 정말로 적들은 '''아까 열심히 잡았는데 또 왔어?''' 할 정도로 경악한다.
워 썬더에서 초기형인 59식과 개량형인 59식D1이 등장.
C&C 제너럴스에서 중국군 기본 전차인 배틀마스터의 모티브가 되었다.
아머 블리츠에서는 중전차로 등장하며 전차명은Type 59, 탱크소녀명은 메이링이다.
6. 둘러보기
[1] 중국 기준. 그 외 국가에서도 현재도 운용중(단, 이라크, 알바니아는 제외)[2] 소련군의 T-62 전차에 일방적으로 패퇴당했다. 전차 성능의 차이도 있지만 운용 노하우나 교리 등의 차이가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3] [image] 수도 베이징에 진입, 시위대 진압에 투입되었다.[4] 이라크 내전에서 ISIL이 노획하여 사용중이다.[5] 69-2식 전차가 이라크에 대거 수출, 집중운용되어 이란군을 상대로 큰 전과를 올렸다[6] 미군의 M1 에이브람스 전차를 만나 양민학살당했다. 전차의 세대가 다른 것이 문제라는 점, 구식화 되어있다는 점에서, 인민해방군 지도부는 자국산 전차가 힘 한 번 못쓰고 무력화 되는 걸 보고 공포에 질렸다고 한다.[7] 2008년 10월 콩고민주공화국의 정부군이 투치족 반군과의 전투에 59식 전차를 투입했다. 콩고군은 약 20대 가량의 59식을 운용중인 것으로 파악된다.[8] 1975년 4월 30일 남베트남 사이공에 위치한 남베트남 대통령 관저(현 독립궁)의 정문을 부수는 북베트남군 소속 59식 전차. 베트남 전쟁의 마지막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이미지로 남아있다. 이 때 대통령 관저에는 59식 전차 390호와 소련제 T-54B 전차 843호가 들어왔는데, 두 대 모두 독립궁에 보존되어 있다. # 이때 사이공의 대통령궁으로 진입한 북베트남군 병사는 두옹반민으로 부터 공식적인 항복을 받아냄으로써 베트남 전쟁을 종결시키고 통일을 이룩한다.[9] 원래는 843호가 먼저 들어오려 했는데 입구 바로 앞에 퍼져버리면서 결국 390호에게 선두를 내어줘야 했다고 한다.[10] 원본 FT 외에도 NC-31이라는 고무 트랙 개량형을 사왔다.[11] 노획했다기 보다는 패전후 일본이 놔두고 간것을 주웠썼다고 할 수 있다. 중일전쟁 당시에도 중국군 상대로는 일본의 치하 전차도 무시무시한 화력을 발휘해 노획할 수 있을 상황이 거의 없었다.[12] 버마전선의 국민당군은 M5 스튜어트를 가지고 있었고 이후에도 소수이긴 하나 셔먼 등의 전차를 도입하였다. [13] 제식장비로 채택된 것이 1959년이라 59식이다.[14] 어떤 자료에서는 당시 중국의 사정(기술적/경제적)으로는 그런 '''복잡한 고급품'''까지 넣어서 생산할 수 없었다고도 한다.[15] 물론 개발 자체는 44년에 시작되어 2차대전 중에 프로토타입이 나와서 테스트도 했었다. 대전중에 프로토타입이 나오고 전후인 47년에 제식 선정되는 것은 센츄리온과 동일하다.[16] 인재들이 숙청을 피해 이공계로 몰려들어 오히려 신규 기술자가 늘긴 했지만, 기존 기술자와 학자 등 이공계 전체가 문혁의 광기를 피할 순 없었다. 참고로 인문계는 거의 말살 수준.[17] 이는 1990년대 이후 북한의 대남 전략과 일맥 상통한다.[18] 오스트리아의 라이센스 생산형[19] 정확히는 기프트샵에서 먼저 팔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