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탈 풋볼
1. 개요
네덜란드의 명감독 '''리누스 미헬스'''가 1970년대 아약스, FC 바르셀로나,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면서 토탈 풋볼이라는 축구 전술 개념을 제시하였다. 이것을 전설적인 선수 '''요한 크루이프'''를 위시한 네덜란드 선수들이 필드 위에서 완벽하게 구현하면서 세계 축구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21세기 이후 전세계의 모든 축구는 토탈 풋볼을 베이스로 전술을 고안하며, 궁극적으로 토탈 풋볼이 추구하는 축구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기존 축구는 극단적으로 말해서 서있는 선수들이 공을 뺑뺑이 돌리는 것이었다. 뛰어난 선수 한둘이 죽어라 달리면 쉽게 파훼되었다. 토탈 풋볼은 팀 전원의 정교하고 조직적인 패싱을 통해, 상대팀에게 공을 쉽게 내주지 않고, 공을 골까지 배달한다는 전술적 사상을 제시했다. 이 사상을 바탕으로 현대 축구는 역변하여, 팔방미인 천재 선수에게 끌려다니지 않고, 진정한 팀 스포츠로 변모한다.
2. 토탈 풋볼의 태동
리누스 미헬스(Rinus Michels)가 AFC 아약스의 감독으로 취임해서 토탈 풋볼을 완성하였다. 그 과정에서 요한 크루이프는 토털 풋볼을 가장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천재였다. 리누스가 토탈 풋볼을 구현하기 위한 설계자라면 크루이프는 야전사령관이었던 셈.
이를 통해 보통 수비 상황에서는 잉여전력으로 간주되기 쉬운 공격수들에게 전방에서부터 상대를 압박하도록 만들고, 또 공격시에는 포지션 체인지를 통해 수비수들도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시켜 토탈 풋볼이라는 말 그대로 전원 공격 + 전원 수비의 형태를 취하는 축구 전술로 발전시켜 나갔다.
하지만 토탈 풋볼이 완전히 네덜란드의 고유한 흐름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미헬스 감독의 아약스 시절 이전에도 토탈 풋볼의 흐름이 있었기 때문. 물론 토탈 풋볼의 시작은 아이러니하게도 축구종가 잉글랜드 출신인 잭 레이놀즈 감독의 아약스였다. 무려 1910년대부터 30여년간 토탈 풋볼로 네덜란드에서 맹위를 털쳤기 때문이다. 그 외에 1950년대 헝가리는 경기 중에 유기적인 포지션 변경으로 황금색 바람을 일으켰고, 우크라이나의 빅토르 마슬로프는 압박과 4-4-2를 이용해 토탈 풋볼로 이어지는 여러 개념들을 앞서 선보였으며, 독일의 공격적인 수비수 프란츠 베켄바워뿐만 아니라 이탈리아도 카테나치오를 개량해 스위퍼를 리베로 개념으로 운용하기 시작했고, 1970년 브라질 대표팀은 오늘날도 역대 최강팀 칭호를 듣는 유기적인 미드필더진을 구축했다. 이외에 아르헨티나나 멕시코 축구에서도 토탈 혁명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이를 독자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축구의 형태가 나타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토털 풋볼를 완성시킨 리누스 미헬스나 요한 크루이프의 위대함이 빛이 바래는 것은 아니다. 저런 개념을 완성해 낸 리누스 미헬스나 전혀 새로운 개념에 완벽히 적응한 크루이프나 위대한 사제지간이다. 이 두 사람과 당시 아약스, 네덜란드 대표팀으로부터 현대축구가 태동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3. 전술의 문제
이기는 축구를 하려는 축구팀 입장에서는 당연히 한번쯤은 익히고 들어가는 전술이지만, 이에 대한 카운터 전술로 지키는 축구가 나오기도 하기 때문에 생각만큼 다득점 양상이 나타나진 않는다.
그리고 공격 시에도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패스를 계속 돌리고, 전방에 공간이 나면 그때서야 공격을 들어가는 스타일이라서 뜬끔포나 예상치 못한 멋진 골이 터지기 어려운 점이 있다. FC 바르셀로나와 스페인국가 대표팀 그리고 펩 과르디올라 체제 하의 FC 바이에른 뮌헨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패스를 보자면 피구왕 통키에서 나오는 오복성 패스[1] 보일정도 버금가는 실력이다.
그래서 보는 관객 입장에서는 지루한 전술으로 최근엔 토탈 풋볼의 수비형 마개조 버전인 안티 풋볼이라는 새로운 흐름도 생겼다. 이 분야의 대표인물은 주제 무리뉴 감독으로 비판도 많이 받지만 본인은 쿨하게 비판들을 받아넘긴다.[2]
그리고 선수 입장에서도 전원 공격, 전원 수비의 전술이기때문에 전방압박을 위해 그라운드 플레이어들의 높은 체력과 전술적 이해도를 요구하며, 크루이프 처럼 선수들을 지휘할 사령관같은 키 플레이어가 없으면 제대로 돌아가기 힘든 단점이 있다. 토탈 풋볼이 동네축구와 자주 비교되지만 아마추어 수준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나 다름없다. 경기 내내 상대팀을 압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만 크루이프는 그렇게 높은 수준의 체력이 필요하지 않다고 보는 입장이다. 적절한 움직임과 높은 수준의 기술이면 체력을 세이브해 가며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것. 크루이프의 토탈 풋볼은 사실상 리누스 미헬스 당대의 것과는 당연하게도 완전히 다르다.
1970년대 공격작업은 다소 정적이였고 포지션도 다소 분업화된채로 고정적인 위치에 자리잡은채 삼각패스 등을 넓게 주고 받았을 때로 컴팩트한 축구 같은 것이 거의 없었다. 이러니 리누스 미헬스는 후방에 오프사이드 트랩을 매우 능수능란하게 사용하여 롱패스에만 대비하고 나머지는 거의 개떼처럼 공을 가진 상대선수에게 5-6명이 달려드는 말 그대로 토탈 압박이였다. 물론 50년대의 포지션 체인지나 60년대 이후 지역방어가 대세가 된 것, 에레라의 인테르 역시 공격시 포지션의 가끔씩 스위칭을 사용하며 발전해온 것을 기억하자..그들은 빠르게 수비로 돌아왔고 정적인 축구도 나름대로의 발전이 있어왔다. 그렇게 미헬스의 공격작업도 전원이 패스를 받을 최적의 위치와 공간으로 침투하여 전진하는 축구임은 다름없지만 80년대 남미와 유럽에서의 독자적 발전 하에 80년대 남미는 밀란 같은 강팀을 씹어먹으며 발전했었고 빠른 템포의 유기적 전환과 1:1, 수비 등이 갖추어졌다.
유럽도 아리고 사키의 압박축구와 함께 나타나 대변되는 효율적인 포지셔닝 사용이 등장했고 여기서 크루이프는 보다 세분화된 공격시 포지션과 공간의 활용과 수비시 발전해온 축구의 모습처럼 벌떼처럼 달려드는 비효율적 체력소모 대신 수비시 포지션에 보다 신경쓴 편이다.리누스 미헬스 역시 현대적인 패스 포지셔닝이나 수비과정에서의 포지셔닝을 훈련하고(4v2 등의 훈련이나,나름의 수비라인을 맞추고 론도 등을 했고..)역사적 패러다임을 제시했으나 이후 축구의 발전과 함께 포지셔닝의 사용에 맞춰 크루이프는 그러한 시스템에 집중했고 90년대 중후반 아약스의 반할 등의 현대적인 전술적 시스템도 등장한다.
크루이프의 시대는 미헬스의 획기적인 아이디어 제시 이후와 그 이전부터 자행되어왔던 많은 발전을 거쳤고 포지셔닝과 공간, 기술에 있어서 그냥 축구자체가 훨씬 발전해있는 때다. 물론 크루이프의 시스템은 전술적 유연성은 제로에 가까웠고 분석도 크게 신경쓰진 않은듯..그의 바르셀로나는 드림팀이라고 불리며 역대급 멤버들을 지녔다는 것에서 키 플레이어들이 시스템을 활용하며 공격에 활기를 불어다줄 선수가 아주 많았다.크루이프도 자극을 주면서까지 선수들의 능력을 최대화하려고 했고..(호마리우 등..)
최근에는 19-20시즌 1부 리그로 승격된 셰필드 유나이티드에서 3명의 수비수 중 2명을 오버래핑 시키는 원백 전술로 다시 등장했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이 전술이 EPL에서 통용되기 어려울것이라고 얘기했지만 현재 순위는 10위 안에 안착해 있어 이 전술이 EPL에서도 통용됨을 증명했다.
4. 참고 항목
[1]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패스가 빠르고 정확하게 이뤄지면서 (마치 레이저 처럼)허둥대는 상대편이 보이면 그때야 샷을 날리는 기술[2] 정작 무리뉴 역시 토탈 풋볼의 영향을 많이 받은 감독이라는 점이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