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란실바니아 공국

 



'''트란실바니아 공국'''
'''Erdélyi Fejedelemség''' (헝가리어)
'''Principatul Transilvaniei''' (루마니아어)
[image]
[image]
국기
국장
[image]
1570년 ~ 1765년[1]
위치
동유럽
수도
줄러페헤르바르(알바 이울리아)
→ 너지세벤(시비우)
→ 콜로즈바르(클루지나포카)
정치체제
봉건군주제
언어
헝가리어, 루마니아어
종교
가톨릭, 개신교, 정교회
민족
헝가리인, 루마니아인
성립 이전
동헝가리 왕국
멸망 이후
트란실바니아 대공국
오스트리아 제국
1. 개요
2. 성립 이전
3. 동헝가리 왕국 시기
4. 트란실바니아 공국으로
5. 참고 문헌
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1570년부터 1711년까지 트란실바니아에 존속했던 공국이다.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자치권을 인정받는 신하국이었다가 1711년 합스부르크 제국의 일부가 되어 1867년까지 오스트리아 관료들의 지배를 받았다.

2. 성립 이전


트란실바니아 지역은 고대에 다키아라는 독립국가를 형성했었다. 이후 로마와의 전쟁에서 패해 속주가 되었고, 로마가 철수한 이후에는 서고트족, 훈족, 게피드족의 지배를 받았다. 10세기에는 서서히 세력을 뻗치고 있던 헝가리인들이 이곳에 진출하기 시작했고, 11세기에 헝가리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13세기 중반부터 헝가리로부터 상당 수준의 자치권을 인정받았고, 오스만 제국이 동유럽 깊숙이 진출하는 16세기까지 그 상태가 유지되었다.
15세기 전반, 오스만 제국과 합스부르크 가문은 헝가리의 지배권을 놓고 충돌하기 시작했다. 1526년 8월 29일 헝가리군과 오스만군 사이에 벌어진 모하치 전투에서 국왕 러요시 2세가 전사하는 등 헝가리가 대패하면서 통합된 독립 왕국으로서의 명운을 사실상 다하게 된다.

3. 동헝가리 왕국 시기


모하치 전투 직후 헝가리의 귀족 가운데 하나였던 자포여 야노시(Szapolyai János)가 귀족들 대다수의 지지를 얻어 국왕으로 즉위했다. 하지만 생전에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고 있던 러요시는 자신이 후계를 남기지 못한다면 합스부르크 가문의 페르디난트에게 왕위를 넘긴다는 조약에 서명한 바가 있었다. 따라서 이 두 사람은 서로 옥좌에 앉을 권리를 주장하며 전쟁을 벌였는데, 그 와중에 자포여 야노시가 오스만 제국에 도움을 요청하며 신하국이 되겠다고 요청했으며 당시의 황제였던 쉴레이만 1세는 이를 즉시 받아들였다.
이로써 헝가리는 일단 양분되었는데, 1541년에 야노시가 죽고 갓난아이인 야노시 2세가 즉위하자 '얘를 지금 그대로 헝가리 왕에 앉혔다간 합스부르크한테 다 뺏기겠다' 라고 판단한 쉴레이만이 헝가리 중부를 오스만의 영토에 직접 편입하고 트란실바니아를 비롯한 동부만 야노시 2세에게 맡기기로 결정하게 된다. 이로써 헝가리는 서쪽의 합스부르크령, 중부의 오스만령, 동부의 동헝가리 왕국으로 삼분된다.

4. 트란실바니아 공국으로


1570년, 야노시 2세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막시밀리안 2세와 조약을 맺어 트란실바니아 공작 직위를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대신 헝가리 왕위를 정식으로 양도했다. 이로써 야노시는 '트란실바니아 공작이자 헝가리 왕국 영토 일부의 지배자' 라는 명칭을 쓰게 되었고, 이로써 트란실바니아 공국이 탄생하게 된다. 이후 트란실바니아는 오스만과 합스부르크라는 두 패권국 사이에서 정치, 외교적 술수를 발휘하며 2세기 동안 자치 공국으로 남았다. 종교적으로는 가톨릭, 루터파, 칼뱅파가 허용되었지만 루마니아인 대부분이 믿던 동방 정교는 박해되었으며, 1605~1606년 동안 공국을 통치한 보츠커이 이슈트반 치세에 문화, 예술적인 부흥을 맞이한다. 그러나 폴란드의 왕위를 노리던 라코치 지외르지 2세 치세(1648~1660)에는 종주국인 오스만의 허락 없이 스웨덴과 연합해 폴란드를 침공하기도 했는데, 이 전쟁에서 대패한데다 오스만의 공격까지 받게 된다.
1683년의 2차 빈 공방전과 그에 뒤이은 대 튀르크 전쟁(1683~1699)에서 오스만 제국의 대패는 트란실바니아 공국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향력이 확실히 강해지기 시작한 것인데, 이에 트란실바니아 공국은 오스만 제국과 힘을 합쳐 맞섰지만 1687년에 합스부르크군과의 전투에서 대패한 것을 계기로 오스만 제국 대신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향력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1691년에는 합스부르크 제국 내 독립 공국의 지위를 부여받았지만 가톨릭, 루터회, 칼뱅파 등이 모두 인정되었다. 하지만 1699년 카를로비츠 조약이 체결되면서 대투르크 전쟁이 끝나고 트란실바니아 공국을 비롯한 헝가리 전역(바나트 제외)이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토로 인정되면서 막대한 세금이 부과되기 시작하고 가톨릭 이외의 종교들은 박해받게 되었는데, 이에 불만을 품은 헝가리인들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주력군이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으로 빠져나간 틈을 타 라코치 페렌츠 2세를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에 충성하는 헝가리 귀족들과 세르비아 민병대의 활약으로 1711년의 사투마레 조약(Treaty of Satu Mare)이 체결되며 반란은 일단락되었고, 합스부르크 왕가는 트란실바니아 지배를 더욱 공고히 다지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트란실바니아 군주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가 파견한 관료들로 대체되기 시작했으며, 자치 공국으로서의 명운은 사실상 다하게 된다.

5. 참고 문헌


  • 김정환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부코비나에 대한 역사적 일고찰", 2009, pp. 235-273
  • 네이버 지식백과 "헝가리의 역사"

6. 관련 문서


[1] 1711년까지는 오스만 제국, 그 뒤로는 합스부르크 제국의 신하국이었으며, 1765년에 대공국으로 승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