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비우스 전략
1. 개요
혹시 한니발이 자마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더라도 카르타고는 전쟁에서 패했을 것이다. 한니발이 이탈리아에서 비록 트라시메네와 칸나이에서 승리했을지라도 로마의 동맹을 깨뜨리지 못함으로써 전쟁의 승패가 일찌감치 결정되었었기 때문이다. 로마의 동맹을 깨뜨리는 것이 한니발의 전쟁 전략 가운데 최우선적인 목표이자 그가 성취하려고 했던 궁극적인 승리였던 것이다. 로마에게 승리를 안겨준 일등 공신은 자마 전투의 승자인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아니라 지연자 파비우스 막시무스였다. 그가 즐겨 사용한 지연과 고갈 전술이 한니발의 구도를 무력화시키고 로마의 막대한 전쟁 동원력이 가동될 시간을 벌어 주었던 것이다. 그는 지연함으로써 국가를 구했다.(cunctando restituit rem).
F. 하이켈하임, 『로마사(A History of the Roman People』
고대 로마의 위대한 정치가이자 장군인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Quintus Fabius Maximus)와 관련된 일화이자 시사용어. '''싸우지도 않고 승리를 거두거나, 혹은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끝끝내 이기는 것'''을 뜻한다. 한마디로 지구전, 소모전 전략의 지향점인 셈.한 사람, 오직 그만이 지연 작전을 써서
우리 공화국을 부활시켰노라.
그는 자신의 명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조국의 안전만을 중히 여겼도다.
지금 그의 명성은 찬란히 빛나고 있지만,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더 그의 명예는 고귀하게 되리니.
엔니우스, 연대기[1]
"파비우스의 전략"에 의해 결국 승리를 거두기는 하였기 때문에 피로스의 승리와 대비하여 '''파비우스의 승리'''라고 하기도 하며, 비슷하거나 같은 결과에 대한 다른 해석 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양측 모두 전쟁에서 막대한 인적, 물적 손실을 입는다는 공통점을 보이기 때문. 하지만 "파비우스 전략"은 "방어자의 입장에서 큰 피해에도 불구하고, 당초 의도했던 전략적 목적(예: 영토 수호, 적 병력의 축출, 주권 유지)을 달성했다"는 점에서 분명 차이를 나타낸다. 특히 중화민국의 중일전쟁 승리나 소련의 독소전쟁 승리 등 단순한 영토 싸움이 아니라 국가의 생존 여부와 직결되는 총력전처럼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든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경우에 그 가치가 더욱 부각된다.
2. 유래
제2차 포에니 전쟁 초기인 기원전 217년, 알프스 산맥을 넘어온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 바르카의 군대에 맞섰던 로마는 트레비아 전투와 트라시메노 호수의 전투에서 대패를 당했고, 이때 로마군을 지휘했던 집정관 가이우스 플라미누스(Gaius Flaminius)도 전사했다. 로마 원로원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독재관에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장군을 임명했다.
로마군의 통수권을 위임받은 파비우스는 한니발 군대의 뒤를 쫓아다니면서 식량징발대의 본대를 차단시키는 작전을 폈을 뿐 직접적인 싸움은 피했다. 지연작전으로 한니발 군대가 스스로 지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의 전략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 마을을 소개하고 식수와 식량을 모조리 치우며, 모든 동맹시 및 식민시의 도성 문을 꼭꼭 걸어잠근다.[2]
- 한니발의 본대와 절대 대결하지 않는다.
- 한니발이 공격하는 동맹시는 아무리 위태로워도 무시한다. 다만 한니발에게 넘어간 곳은 공성력을 총동원해서 즉시 되찾아온다.
- 한니발의 본대가 전투 중 난입하면 방어로 일관하고 절대 응전하지 않는다.
- 적 부대에 한니발이 없으면 바로 뛰쳐나가 때려잡는다.[3]
- 이렇게 계속 기다리면서 지속적인 출혈을 강요하면 결과적으로 한니발의 군대는 지휘관이 1인뿐이라는 한계, 보급 부족, 병력 손실을 겪으며 점령지가 쪼그라들고 약화된다.
결국 한니발은 이탈리아 반도의 장화에 해당하는 지방에서 파비우스 막시무스의 전술에 휘말려 상당한 곤경을 치렀다. 파비우스의 전략은 한니발 스스로 말라죽게 하는 것이 목적인 지구전이었다. 한니발만 만나면 로마군은 맥을 못추고 패배하기 일쑤였지만 그렇기에 한니발과 굳이 싸우지 않고 그의 힘을 빼는 것이 승리의 지름길이 된다는 생각이었던 것. 싸우면 지니까 안 싸운다는 간단한 전술이었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그의 전략을 나약하고 비겁한 것이라며 이해하지 못했다. 로마인들의 생각으로는 정정당당하게 맞서싸우는 것이 당연한 것이기도 했고, 한니발의 군단이 이탈리아 내부를 휘젓고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인들의 경제적 피해는 매우 컸다. 그리하여 파비우스는 해임되고 강경파가 정권을 잡았지만, 그 결과는 칸나이 전투의 대패였다.
칸나이 전투의 대패로 로마인들은 파비우스의 전략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파비우스는 다시 독재관에 임명되어 지연전을 수행했고, 다시 한니발군은 지쳐갔다. 그리고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히스파니아 및 카르타고 공세가 성공하면서 전세가 일발역전되었고, 결국 로마는 전쟁에서 승리했다. 파비우스의 전략을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이 그를 "굼뜬 사람(cunctator)"이라며 비난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비록 단기간에 결판은 나지 않았어도 그의 전략이 결국 옳았다는 것이 입증되어 "지연자", "굼뜬 사람" 등의 비난섞인 호칭은 "지구전주의자"라는 명예로운 호칭으로 바뀌었다.
자세한 사항은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참조.
3. 기타
갈리아 전쟁 당시 베르킨게토릭스가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상대로 비슷한 전략을 구사하였다. 카이사르가 갈리아 전역 정복을 시도하다 여기에 맞서 로마군이 보급할 만한 마을이나 도시를 모두 초토화하고 주민들을 전부 이주시키는 것. 이 전략은 성공을 거두어 카이사르를 패배 일보직전까지 몰아붙였으나, 카이사르가 퇴각하기 시작하자 갑자기 베르킨게토릭스 본인이 직접 대군을 이끌고 로마군을 정면공격하는 뻘짓을 저질러버렸고, 곧바로 카이사르에게 박살난 뒤 알레시아에 갇혀 끝내 포위망을 돌파하지 못하고 항복, 전쟁을 순식간에 말아먹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