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야 전술

 

1. 개요
2. 상세
3. 결점
4. 활용 예
5. 대중문화 속의 청야전술
6. 관련 문서


1. 개요


淸野戰術, Scorched Earth[1] Tactics.
전시 방어측에서 사용하는 대표적인 전술. 견벽청야(堅壁淸野), 청야수성(淸野守城)라고도 불리운다. 초토화작전(焦土化戰術)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방어군이 후퇴하기 전에 적군의 손에 들어간다면 유용하게 쓰일 만한 모든 물자를 없애 버리면서, 적군에게 보급의 한계를 강요하는 전술. 어원 #

2. 상세


고대전장현대에 비해서 전시에 보급이 훨씬 어려웠다.[2] 이 때문에 군대의 보급에서 물자의 현지조달, 즉 약탈(혹은 현지구매)의 비중이 매우 높았다. 손자가 손자병법 작전 편에서 적에게 노획한 물자는 아군 물자의 '''20배'''에 달하는 가치가 있다고 한 것은 괜한 말이 아니다. 물자 획득 + 물자 수송비용 절감 + 적군의 물자 감소라는 삼중 효과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자군의 보급물자를 비롯한 민가의 가옥, 우물, 수확이 가능한 식량 등 적군이 아군의 영지에서 자급자족할 수 있는 물자들을 스스로 불태우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버리면 적군의 원활한 보급을 봉쇄하는 것이 가능하다. 즉, '''너 주느니 차라리 다 불살라 버린다'''는 것.
우선 군량과 무기 같은 필수 전쟁 물자는 다른 거점으로 전부 옮기고, 만약 시간이나 인력이 여의치 않아 옮길 수 없으면 개의치 말고 확실하게 불태운다. 마찬가지로 논과 밭을 뒤엎거나 불사르고, 더하여 강염기성 또는 강산성의 물질을 사용해서 토양도 철저하게 파투한다.[3] 우물에는 독을 타고 쌓아 놓은 저수지는 허물며, 강의 상류에 인분이나 가축의 분뇨나 풀과 낙엽을 썩힌 거름 같은 오염원을 투입해서 식수를 고갈시킨다. 옷가지를 비롯한 모든 생활용품도 태우고 역시 집들도 모두 허문다. 마지막으로 주민들을 보복과 약탈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방어시설이나 섬으로 대피시킨다.
특히 이런 전술은 미리 쓰는 것이 아니라 적이 며칠에서 하루 정도 거리에 있을 때, 또는 첨병이 발견하더라도 본진이 그 소식을 알 땐 이미 도착한 직후인 정도의 거리에서 실시할 때 그 위력은 최고로 막강하다. "왔더니 황폐하더라."가 바로 이 작전의 포인트. 특히 '''겨울에 이 짓을 하면 정말 미친다'''. 눈으로 인해 보급이 어렵고, 추운 겨울날 음식은 병사들의 건강 때문에 중요하다. 더군다나 기후문제까지 겹치면 춥거나 습한 경우 땔감[4] 더운 경우 식수와 염분 수급까지 신경써야 한다.
이런 걸 죄다 파괴하거나 쓸만한 게 없게 만들어버린 황야가 된 도시를 무리해서 점거해봐야 득 될 게 없다. 이 상황은 도시도, 황야도 아닌 상태의 땅을 점령한 것이기 때문에 글자 뜻 그대로 계륵이다. 강행군에 대응해 쓰면 더더욱 미친다. 강행에 병력은 소모되는데 반대로 소득은 전혀 없으니. 더구나 상대가 지도도 제대로 없고 대군을 동원한 경우 엄청나게 치명적이다.
고대부터 정주민들이 쓰는 필살기 같은 전술로 이걸 사용하면 별다른 전투도 없이 상대방의 군대가 빠르게 죽어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더 무서운 점은 더 많은 물자를 동원하는 것 외에는 이에 대항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5] 베르킨게토릭스도 청야전술로 게르고비아에서 무적을 자랑하던 카이사르를 패주시켰고,[6] 작전의 영역에서 아직까지도 일인자라 불릴 수 있는 영웅 나폴레옹마저 청야전술에 결국 졌다. 카를 5세도 보급 문제 때문에 프랑스 원정에서 참혹한 실패를 겪었다.
다만 청야전술을 펼치지 않더라도 후퇴하면서 군수물자를 수거하고 시설을 파괴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적에게 물자와 설비를 그대로 내주는 것은 당연히 해서는 안될 일이기 때문이다. 청야전술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민간물자까지 모조리 파괴하는 극단적인 형태라는 것.
현대에는 1977년 제네바 협약 제 1 의정서 54번 문서에 의해 '''어떤 목적으로든 물, 식량, 농업시설 등 민간인의 생존에 필수적인 물자를 파괴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또한 미국은 미국 헌법 선에서 수정 제3조로 청야전술을 위헌으로 규정하고 있다.

3. 결점


  • 후유증이 심각하다
청야전술이라는 전술 자체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없애버리는 것이 기본인 만큼 전후의 피해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고, 자국의 역량이 안되면 청야전술 쓰다가 같이 굶어죽는다. 땅이 넓지 않으면 아예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전술이라서 방어자가 엄청나게 불리한 경우가 아니라면 쉽게 사용할 수 없는 전술이다. 이어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어설프게 시도하다가 남한산성에서 쫄쫄 굶고 GG쳤다.[7] 그리고 이러한 청야 전술의 단점이 실제로 이루어진 게 여몽전쟁기간. 강제로 산성이나 섬으로 옮기는데 백성들이 반발했고 이로 인해 중앙에서 대장군을 직접 파견 해야 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 재물을 불태우고 옮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문제는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백성들이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되었고 그 와중에 비축해 놓은 식량까지 부족해 이동한 백성들의 8~90%가 굶어 죽었다고 한다. 상황이 악화되면서 관리를 죽이고 몽골군에 자진 항복하는 경우도 많았다.
  • 청야전술에 필요한 시간이 의외로 길다.
기본적으로 청야전술이 효과를 보는데 필요한 시간은 청야전술을 위해 물자를 수거하거나 파괴하는 시간 + 침공군의 식량과 물자가 떨어지는 시간이다. 따라서 이 전술을 사용하는 측의 경우에는 생고생하면서 자신의 물자를 수거하거나 개박살낸 후, 침공군의 물자와 식량이 없어질 때까지 적의 맹공을 견뎌야 하는 고생길이 보장된다. 만일 이 기간을 견디지 못하고 적의 공격에 성이 함락되거나 하면 그 때까지의 고생은 무용지물이 되며, 덤으로 굶주림에 시달린 적의 가혹한 보복에 시달리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청야전술에 필요한 시간은 늘어나기만 하지 줄어들기는 어렵다는 특성을 가진다. 침공한 적 병력이 충분한 물자와 식량을 가지고 있으면 당연히 방어 측이 견뎌야 할 시간이 늘어난다. 그리고 적이 증원군 파견이나 수송 등으로 현지가 아닌 곳에서 물자를 조달할 방법을 찾으면 청야전술에 필요한 시간은 더욱 늘어난다. 그리고 극단적인 사례지만, 제갈량의 북벌이나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처럼 침공군이 목표를 포위한 상태에서 둔전을 건설하는 등 아예 눌러 앉아버리면 청야전술은 실패한다.
이에 비해서 청야전술에 필요한 시간을 줄이는 방법은 힘들고 어려우며, 성공하더라도 효과가 적다. 예를 들자면 침공군의 물자저장소를 습격한다든지, 적의 보급대를 공격한다든지, 적의 신경을 혼란하게 만들기 위해 자잘한 습격을 가하는 방법 등이 있는데, 적이 진짜로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나름대로 호위와 경계병력을 늘리는 등 대응방법을 실행하기 때문에 수비측의 입장에서는 안그래도 숫자가 부족한 정예병력이 보급 부족상태에서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기동을 한 끝에 정확하고 효율적인 공격을 해야 하는 부담을 가지게 된다. 물론 질을 숫자로 메우기 위해 인해전술을 써서 민간인이나 민병대, 게릴라까지 동원할 수는 있으나, 이렇게 하면 성공적인 결과를 얻더라도 아군측에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하게 된다.
  •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청야전술을 쓴 끝에 국력이 무너지고 경제가 개발살나는 것은 앞에서 설명했으니 일단 넘어가더라도, 청야전술이 성공한 시점에서의 혼란도 만만치 않다. 특히 침공군이 붕괴하더라도 남아있는 패잔병이 큰 문제다. 일단 청야전술 초기라도 배고파서 화난 군인한테 아주 박살날 현지인은 죽기 싫으면 미리 피해야 된다. 살인, 약탈, 강간을 넘어 학살당할 수 있고, 심할 경우 적군들이 식인을 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특히나 패주중인 패잔병들이 수가 많아질 경우 막장 of 막장으로 가버릴 때가 있는데, 이때는 정말 눈에 띄면 끝장난다는 걸 역사가 보여준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또한 인권이 발달하고, 전쟁범죄라는 개념이 생긴 현대에는 전후까지 민간인의 심각한 피해를 유발하게 될 청야전술은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 상대방 군대도 머리를 쓴다.
A군대와 B군대가 싸울 때 A군대가 청야전술을 쓰는 것을 B군대가 가만히 보고 있을 확률이 없다는 것이다. 우회경로가 있다면 피하는게 정상이지만, 그런거 없는 일직선 도로라면 A군들이 청야전술을 시도하기 전에 B군은 기습을 강행해서 타격을 주거나, 유언비어를 살포하거나, 야간에 기습적으로 강행군을 해서 적진 코앞까지 가거나, 공수부대를 투입하거나, 특수부대를 잠입시키는거나, 원거리 무기를 배치해서 피하는데 급급하게 만드는 등 이로인해 A군들이 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청야전술을 펼치지 못하게할 다양한 행동을 할 수 있다. 예로 과거 러시아(표트르 대제 제위초 그가 허수아비 차르시절)에서 타타르족 정벌을 할때 1차 정벌은 실패했는데, 그 원인중 하나는 타타르족이 초원을 불태워버려 말먹일 풀이 없었던 것이 있었다. 그래서 수년 후 2차 정벌을 시도했는데, 이때는 영리하게도 미리 선발대를 보내 초원에 불을 놓아 태우게 한 후, 본진이 도착했을 즈음엔 새로운 풀들이 자라있게 한 적도 있다.[8] 하지만 2차 정벌 결과도 실패... 당시 실권자의 이러한 타타르족 정벌 실패와 더불어 갖가지 삽질로 인해 결국 표트르 대제가 권력을 찾게 되기는 한다.
그리고, 해당 지역이 진격로의 중간에 위치하고, 상대방 군대의 목표가 해당 지역을 지나서 수도 등의 중요 목적지로 향하는 것일 경우, 청야전술을 쓴다는 것이 미리 알려지면 적군이 진격로를 아예 바꿔버려서 정작 적에게는 별 피해 없이 아군 물자만 손실을 보는 사태가 종종 발생한다. 혹은 적들이 빠른 이동속도를 가진 경우 청야를 하는 도중에 적에게 공격을 당하기도 한다. 그 예로 몽골군이 러시아를 침략해오자 러시아 제후들은 기존의 방식대로 청야전술로 적의 공격을 지연시킨 다음 혹독한 겨울인 동장군이 오면 몽골군이 자동철수할 것으로 계산하고 청야전술을 사용하다. 그러나 몽골군은 유목민족의 특유 기동성으로 러시아 예측보다 빨리 러시아에 당도하였고, 러시아는 애꿎은 자국 영토만 초토화 시킨 채 정복당했다.
  • 백성(=주민)들의 반발.
사실 전근대에도 주민들 반발이 있었고 심하면 청야하러 온 관군이 적군과 싸우기도 전에 재산과 가족을 지키려는 백성들과 전투를 벌이기도 하였다. 전근대 시대에는 그나마 군대의 영향력이 강했는데도 이러했는데 현대전에서는 더더욱 옛말인 행위이다, 예를 들면 북한은 남한의 물자를 뺏어 쓰는 전술을 구상해놨기에, 이에 대응해 청야전술을 쓰면 된다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요즘은 과거가 아니다. 극단적인 청야전술은 현대에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럴 경우 일단 치워 날라야할 물자가 말도 안 되게 커지기 때문. 일반 가정집이 이사할 때도 트럭을 동원한다는 걸 생각해보자. 그리고 청야전술을 실시하면 이에 기겁한 주민이 있는가 한편 군의 통제를 벗어난 주민을 통해 이 사실이 빠르게 퍼져나갈 게 뻔하고 이에 반발할 주민들이 생길 것은 당연하다. 자신들의 재산과 터전이 불살라지는 걸 두고볼 사람도 없다.
국민 전반에 대한민국이란 헌정 질서에 대한 소속감이 확고한 한국[9]도 이런 걱정이 들 정도인데, 국가 이데올로기가 제대로 발달 못 했고, 현지 주민들에게 집권 체제의 정통성 자체가 심각한 도전을 받는 중동이나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는 더더욱 반발이 클 수 밖에 없다. 안그래도 평소에 마음에 안 들었던, '국군'이라기 보다 차라리 점령군 취급을 받는 관군이 와서 집, 재산, 삶의 터전, 고향 다 싸그리 버리고 불태운 다음 움직이라고 강제하는데 그 옆에서는 적군이 "우리가 싸우는 대상은 당신들을 억압하는 폭군, 지배 집단 누구누구지 이 나라의 인민들이 아니다. 우리가 쳐들어와도 당신들의 재산과 목숨은 일체 보장할 것이니 괴뢰군의 소개 명령을 거부하고 계속 생업에 종사하라."라고 삐라 뿌리거나 선전 방송을 하거나 SNS로 선동질을 해댄다면 주민들이 관군의 명령을 제대로 따를 리가 없다. 전쟁사에서 공격군의 지휘관들이 부하들에게 '점령지라고 해도 허가 없이 민간인을 약탈하거나 살해, 강간하는 자는 엄벌에 처한다.'라고 명령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이들이 선량해서가 아니라 효율적인 작전 수행에 꼭 필요한게 이러한 민심 확보이기 때문이다.

4. 활용 예


대표적인 청야전술의 활용 예는 다음과 같다.
  • 2차 포에니 전쟁파비우스의 전략의 1단계
  • 갈리아 전쟁베르생제토릭스가 사용.
  • 삼국시대에 동탁장안으로 천도하며 낙양성 소거. 이후 촉한공방전에서 유장의 부하 정탁이 건의하나 유장이 기각한다.
  • 고구려 명림답부좌원 전투
  • 고려의 3차 여요전쟁
  • 베트남 쩐흥다오의 대 몽골 작전
  • 블라드 가시공의 대 오스만 전쟁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러시아 원정 당시 러시아군의 청야전
  •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소련군의 초토화전술
  • 겨울전쟁 당시의 핀란드[10]
  • 중일전쟁삼광 작전[11]
  • 한국전쟁장진호 전투흥남 철수에서 미군[12]
  • 걸프 전쟁 당시 이라크군

이 외에도 청야전술은 현대전에도 남아 있는데, 걸프전에서 이라크군이 후퇴하며 쿠웨이트의 유전에 불을 지르고 간 것을 생각하면 쉽다.[13] 그러나 이 전술은 현대에 '''제네바 협약 위반이자 전쟁범죄로 넘어갈 수 있는 행위'''이다. 위에 서술한 것과 같이 민간인을 소개시키든 안하든 민간인의 생존에 필요한 물자를 대상으로 하는 청야전술은 제네바 협약 제 1 의정서에 의해 금지되었고, 미국, 이스라엘, 이란, 파키스탄과 같이 제 1 의정서를 비준하지 않은 국가라도 작전지 민간인에게 큰 타격을 입힐 수밖에 없는 청야전술을 시도하면 미국이라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국제적 비난을 받는다. 이 전술을 사용할 정도면 '''전쟁범죄 따위는 안중에도 없을 정도로''' 절박한 상황이거나, 혹은 북한 수준으로 인권을 무시하는 국가 정도밖에 없다.
대(對)레지스탕스 전술로 공격자들이 쓰기도 한다. 레지스탕스는 전적으로 민간의 보급에 의존하기 때문에, 이 경우 후방이 된 적지의 레지스탕스가 말라죽는다. 이와 관련된 유명한 비유로 마오쩌둥이 민간인을 물, 게릴라를 물고기에 각각 비유한 예시가 있다. 거기다 반대로 밀릴시엔 적군이 당하므로 아군의 보급이 빵빵하면 쓸 수 있다. 이 작전이 성공한 경우가 대한제국 말기 일본군이 호남 지방의 의병을 몰살시킨 남한 대토벌 작전청산리 대첩 이후 간도참변. 두 작전의 결과로 의병과 만주 지역의 독립군들은 커다란 피해를 입고 사실상 소멸하거나, 시베리아 등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만 했다.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의 '남부군' 소탕작전에서 국군도 대 빨치산 전술로 현지 민간인 소개 및 봉쇄 이후 지속적으로 공군과 포병을 이용한 타격 및 토벌군 투입으로 꽤나 크게 성과를 낸 적이 있다. 그리고 이 이후의 베트남 전쟁 당시에도 잘 써먹었다. 이때는 (민사작전을 포함한)대민지원 활동을 통해 그 형태를 한 단계 더 끌어올렸고, 이는 혁혁한 전과를 알게 모르게 뒤에서 지원하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이때 이후 한국군은 각지에 평화유지군 파병을 가면서 이 때에 배운 노하우들을 화려하게 사용했다.
여기에서 확대된 것이 총력전 상황에서 공격자가 방어자의 전쟁 수행 능력과 의지를 꺾기 위해 산업, 경제 시설들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것이다. RTS에서 적 진영에 들어오면 제일 중요한 것이 일꾼을 죽이고, 주요 테크 건물을 개발살내는 것과 비슷하다. 근대 이전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없지 않았지만 공식적으로 이런 전술을 처음 사용한 것은 미국 남북전쟁 당시 윌리엄 테쿰세 셔먼이 남부연맹의 주요 도시 및 산업 시설을 초토화시킨 것으로 꼽는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이는 폭격기를 이용한 전략 폭격으로도 발전한다.

5. 대중문화 속의 청야전술



5.1. SF 소설 은하영웅전설


작전 입안자는 은하제국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은하영웅전설 1권에서 이제르론 요새를 점령한 자유행성동맹군이 자신감이 올라 대규모 제국령 침공작전을 벌이자, 제국은 이에 대항해 '''우주구급 청야전술'''을 실시한다. 동맹군이 점령할 만한 변방 행성들의 식량과 같은 물자들을 모조리 긁어내어 후방으로 빼돌리고[14] 군대는 철수하여 일부러 대량의 유인행성을 넘겨준 것.
끝내 '''제국의 압제에 시달리는 민중을 해방하기 위한 전쟁'''임을 대의명분으로 삼던 동맹군은 점령지역 주민들을 먹여살리느라 '''죽어났다.''' 150년에 걸친 전쟁으로 국가 경제력이 매우 악화된 상태에서 원정나간 약 3천만 명인 아군의 보급도 미칠 노릇인데, 1억이 넘는 제국신민들의 식량까지 책임져야 했으니 얼마 못가서 각지에 분산 주둔한 모든 동맹함대의 '''정말 막대한 보급품 요청'''이 이제르론 요새로 들어왔다. 보급담당 카젤느 소장은 기겁, 동맹 본국에서는 막대한 전비소모로 분노한 반전파가 주전파들을 비난했음에도 주전파들이 뭐라 반박도 못했다.
제국 현지에 주둔한 원정 함대들이 심각한 보급품 부족을 계속 호소하자[15] 부랴부랴 막대한 보급품을 지닌 대규모 수송함대를 보내나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가 지휘하는 제국 별동함대가 모조리 격침, 물자는 다 박살난다. 끝내 이제르론 사령부는 "추가 보급이 갈 때까지 부족한 군보급품은 현지에서 징발하라."라는 막장 지시를 내린다. 굶어죽을 수는 없으니 각 함대가 주민들에게 나누어줬던 물자들을 다시 징발하는 해괴한 일이 일어나, 이 막장을 본 제국 주민들은 당연히 분노해 각지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모든 물자를 날려먹은 동맹 함대는 물자 부족에 시달리다가 제국 함대의 반격 작전에 몰살했다. 끝내 자유행성동맹은 이 작전 1번에 수억명이 몇 년을 쓸 양의 보급물자와 다시는 못 돌이킬 약 2천만명의 장병과 몇만 척에 달하는 함선을 잃었다. '''그리고 다시는 이 피해를 못 복구하고 멸망했다.'''
재밌는 점은 라인하르트는 동맹군이 점령한 행성을 탈환하자마자 그곳에 식량과 물자를 보급하도록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그런데 이때 식량과 물자를 '''자기 이름으로''' 보급하도록 해서 일석이조의 수확을 거두게 된다. 사실 청야전술을 지시한 인물은 라인하르트 본인이므로 책임을 져야 하겠지만 정작 그 사실은 숨기고 좋은 면만 부각시켜서 오히려 자신의 이름을 높이게 된 셈.
이와는 별개로 물자징발과 동맹군 점령 제국군 재탈환 시기에 있었던 거주민들의 재산권 손실이나 작중에서도 묘사되는 동맹군과의 분쟁에 따른 수많은 재산과 인명피해를 생각해보면, 도의적인 비난이나 책임까지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자마자 때마침 황제가 사망하고, 그 직후 계속해서 벌어진 권력투쟁 과정 속에서 이런 문제들이 더 이상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 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물자 보급을 재개한 것도 라인하르트 본인이므로 어느 정도는 만회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민중을 괴롭힌 건 사실이다. 물론 이 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비상시라는 점도 있고(침략자는 어찌되었든 동맹 쪽이므로) 동맹 점령 지역을 탈환하자마자 바로 물자를 보급하거나 본인이 스스로에게 변명을 하는 점을 보면 어느 정도 찝찝한 일을 했다는 것을 본인도 인지는 하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제국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고 수백년에 걸쳐 전제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자세히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동맹군이 빠져나가고 재점령된 변방 행정의 신민들에게 다시 식량과 생활필수 장비들이 제공되었을 것이라는 점은 상식적으로 당연한 일이다. 라인하르트가 제국의 대권을 잡은 후에도 이 사건이 문제가 된 일이 없었다는 점에서 무난하게 안정화가 되었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라인하르트가 전쟁 중에 범한 가장 큰 실책은 제국령 침공작전 당시의 청야작전이 아닌 립슈타트 전역 말기에 벌어진 베스터란트 학살사건이다. 물론 일차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인물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지만 라인하르트 역시 도의적인 책임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은하영웅전설의 묘사가 지나치게 구시대적인 전쟁상을 따와 미래 전쟁이라기엔 허술한 면이 있는데 이 전술도 상당히 어색하다. 현대 사회의 생산성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당장 2차 대전 중 미 해군이 전투식량 1억 명분을 과잉 공급해서 남아도는 식량을 처리하기 힘들어 난리가 났다거나, 베를린 봉쇄 당시 미 공군이 항공수송만으로 대도시에 물자수급을 해줬다는 사례를 생각해보자. 3천만 명의 대병력을 운용할 수 있는 군대가 있는데 1억 명분의 식량 정도로 골치를 썩였다는 건 굉장히 설득력이 떨어진다. 게다가 은영전의 주력병력은 군장 싸매고 다니는 보병들이 아닌 우주선들이다. 상식적으로 배에는 승무원들이 몇 달치 먹을 식량과 보급물자 정도는 간단히 싣고 다닐 수 있다.
사실 이 부분은 작중의 묘사에서 인구 숫자만 일관성이 없기 때문에 일어난 문제다. 제국령 침공작전은 상당히 큰 규모의 작전으로, 동맹군은 수십 개 행성을 점령했으니 그 인구를 먹여살릴 물자를 수송해야 하는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내용은 부자연스럽지 않다. 문제는 그 수십 개의 행성에 사는 제국인이 고작 1억명밖에 안 된다고 서술한 부분이다. 지구라는 행성 하나의 인구만 해도 2011년에 이미 70억을 돌파했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이렇다보니 "수십 개 행성의 인구"를 먹여살리는 문제가 고작 "1억명"을 먹여살리는 문제로 말도 안 되게 축소되었는데, 동맹군 병력은 작전 규모에 걸맞는 3천만명이라는 대군으로 설정되어 있으니 어색해진 것이다.

5.2. 게임 삼국지10의 전술


삼국지 10에서 이런 전술로 멍청한 인공지능을 관광보낼 수 있다. 사용이 가능한 경우는 대체로 상대 세력이 거대 세력이고 자기 세력은 약소하지만 도시 하나를 뺐을 정도의 전력은 있고 전선이 도시 하나 정도로 적은 경우. 먼저 적의 최전방 도시 하나를 공격해 뺏은 후 그 도시의 모든 금과 군량과 병력을 아군의 후방으로 수송해 텅 빈 도시로 만들어버린다. 그러면 곧 적이 도시를 공격해 오는데, 병력도 뭣도 없는 그 도시는 곧바로 함락된다. 그럼 컴퓨터는 아니 여긴 물자가 없네 하고 자신들의 후방 도시에서 그 도시로 물자를 수송해온다. 그럼 다시 그 도시를 공격해 함락시킨 후 물자를 빼돌리고 도로 비워준다. 이 과정을 무한 반복하면 결국 적의 총물자를 거의 다 빼돌리는 게 가능해진다. 현실의 청야전술과의 차이점은 아군이 점점 더 부유해진다는 점. 이런 전술은 삼국지10에서는 물자를 수송하면 그 즉시 물자가 텔레포트해버리는 삼국지10의 오버테크놀로지때문이고 물자 수송도 수송부대가 직접 옮겨야 하는 삼국지 9삼국지11에선 거의 불가능하다.

5.3. 안드로이드: 넷러너


코퍼레이션 중 웨이랜드 진영의 카드들 중에 '초토화(Scotched Earth)'라는 이벤트 카드가 있는데, 태그가 걸린 러너에게 4 육체 피해를 주는 무시무시한 효과이다. 이 문서에 나와 있는 청야 전술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름 그대로 러너가 있는 곳을 초토화시켜 죽이는 카드인 셈. 웨이랜드의 상징이자 웨이랜드의 경영 철학을 잘 알 수 있게 해 주는 카드인 동시에, 육체 피해를 줄여주는 Plascrete Carapace라는 중립 카드가 등장하기 전까지 이 카드의 존재는 러너 유저들에게 그야말로 공포나 다름없었다.

6. 관련 문서



[1] 초토화라는 뜻. 단어를 따로 풀어 해석하면 '그슬린 땅' 정도가 된다.[2] 생산력의 한계, 보관기술의 부재, 교통수단의 미비가 가장 대표적인 원인이다.[3] 실제로 제3차 포에니 전쟁이후 로마가 카르타고 토양에 소금을 뿌려 다시 못 일어나도록 멸망시킨 사례가 있다.[4] 물론 연기나 불빛으로 인한 위치노출 우려가 있지만, 얼어죽거나 병이 걸리느니 불 때고 있는 게 낫다. 더군다나 퇴각하는 측에서 산이나 초원에 불을 지르고 퇴각하면, 물론 바람이나 강우 문제를 고려해야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추적하는 쪽이 연기로 시야가 막히고 먹을 것과 땔감은 죄다 손상되버리고 발은 묶이니 절대적으로 손해다.[5] 정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청야전술을 시행하기도 전에 미친 속도로 상대방을 밟아서 단기전으로 빠르게 전쟁을 끝내는 것. 역사상 수많은 유목민족들이 유목민족 특유의 빠른 기동력과 약탈생활을 통한 경험을 바탕으로 청야전술을 펼치는 상대를 역관광시켰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몽골.[6] 단, 베르킨게토릭스는 이후 청야전술을 포기하고 야전을 걸었다가 참패했다.[7] 사실 이 경우에는 전술을 펼칠 시간도 없이 한양까지 신속하게 청군이 진격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청야 전술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 상황에서 인조가 시도해야 할 건 청야 전술 따위가 아니라 다른 왕족들과 함께 최대한 남쪽으로 도망침으로써 병자호란을 장기화시키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승리한 전쟁이 바로 제2차 고려-거란 전쟁임진왜란이었다. 임진왜란의 경우 당시 일본이 조선과 같은 농경국가였고 조선 왕만 쫓아간 게 아니라 일일이 조선의 각 지역을 점령해가며 북진했으며 조선을 멸망시키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직접 비교할 수 있는 건 제2차 고려-거란 전쟁이다. 요나라거란족은 청나라만주족과 같은 기마민족이었고, 제2차 고려-거란 전쟁 당시에도 고려를 자국의 조공국으로 삼는 게 목적이었지 고려를 병탄하려는 건 아니었으며 그에 따라 당시에 고려 각지를 일일이 점령하지 않고 고려 왕을 신속히 추격했다는 점에서 병자호란 당시의 청나라와 비슷했기 때문이다.[8] 실제로 화전이라 하는 농경의 한 방법이다.[9] 현대 정권에 대한 불만과 대한민국이란 국가 자체에 대한 부정은 차원이 다르다.[10] 그냥 태워버린 게 아니라지뢰를 설치했다고 한다(...)[11] 이에 맞선 팔로군 역시 청야전술로 맞불을 놓았는데, 일본군보급물자 따윈 약탈로 충당하는 것이 교리였던지라(...). 앞서 자신이 수행한 삼광 작전의 후폭풍까지 합쳐져서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된다.[12] 배에 싣지 못하는 모든 물자들을 폭파시켜서 없앴다.[13] 그러나 이는 방어자가 사용하는 청야전술이라기보다는 공격자인 이라크군이 후퇴하며 쿠웨이트에 보복하는 것에 더 가깝다. 어쨌든 이 유전을 불태워서 이라크가 직접적으로 입는 피해는 없기 때문.[14] 당연히 주민들은 항의했으나 군대를 앞세워 강탈해 가는 걸 막을 수도 없고, 식량을 징발해 가는 제국군은 당신들 식량은 곧 몰려올 반란군 놈들이 제공할 것이라고 말하며 설득한 후에 간다.[15] 자기들 쓸 물자를 주둔지의 주민들에게까지 나눠줘서였다. 원정군 총병력보다도 점령지 민중들이 많으니, 정작 동맹정부가 예정에도 없이 급하게 부랴부랴 보낸 보급선단이 갈 때까지도 버티기 간당간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