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벤투/선수 경력
1. 개요
파울루 벤투의 선수 경력에 대해 다루는 문서.
2. 클럽
리스본 출신의 벤투는 선수 시절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다. 하부리그 팀인 CF 벤피카[1] 에서 성인무대에 데뷔한 벤투는 이 팀에서의 활약을 통해 아마도라로 이적해 서서히 출전시간을 확보했다. 이 시기에 국내 컵 대회 우승에 기여하는 등 본격적으로 커리어도 향상되었다.
그 뒤 1991년부터 94년까지 뛴 비토리아 SC에서 본격적인 선수 인생의 꽃을 피웠다. 비토리아에서 보낸 세 시즌동안 벤투는 리그 95경기에 출전해 13골을 기록하는 등 우수한 기량을 보여주었고, 대표팀에도 처음으로 발탁되었다.
1996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벤투는 SL 벤피카로 이적했다. 비토리아 시절만큼 부동의 주전까지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시즌 당 30~40경기를 뛸 정도의 기량을 유지하고 있었고, 두 시즌 간 리그 49경기에 나와 2골을 기록했다.
두 시즌을 보낸 후 벤투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레알 오비에도로 이적했다. 벤투는 네 시즌 동안 오비에도의 핵심 미드필더로 기용되었다. 매 시즌 30경기 이상을 리그에서 소화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총 리그 136경기 4골이라는 성적을 거두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우루과이 출신의 명장 오스카르 타바레스 감독 밑에서 뛰기도 했다.
어느덧 선수 생활의 말년으로 접어든 벤투는 2000년 고향팀인 리스본의 스포르팅 CP로 이적했다. 스포르팅 합류 이후에도 벤투는 기량을 한동안 유지했다. 이전까지는 국내 컵 대회에서의 두 차례 우승을 제외하면 우승과 인연이 적었던 벤투지만, 스포르팅에서는 2001-02 시즌 포르투갈 프리메이라 리가 우승과 컵 대회 우승의 더블을 이룩하는 데 핵심 선수로 활약하면서 마침내 리그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하지만 점차 노쇠화가 되는 건 막을 수 없었고, 2003-04 시즌에 기회가 확연히 줄어들면서 이 시즌이 종료된 후 현역에서 은퇴했다.
3. 국가대표
포르투갈 대표팀에는 1992년 1월 15일,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A매치에 데뷔하여 총 35경기에 출전했다. 루이스 피구, 파울루 소자, 후이 코스타, 주앙 핀투 등과 같은 포르투갈 골든 제네레이션의 일원이긴 하지만, 피구 및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선수생활 초기에는 그다지 주목받지는 못했다. 골든제네레이션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국제대회가 1989, 91 피파 유스 챔피언쉽인데 [2] 이때 벤투는 선발되지 못했다. 포르투갈 골든제네레이션이 처음 성인팀으로 등장한 유로 1996에도 참가하지 못했는데, 아마도 벤투가 20대 후반에야 실력이 만개한 대기만성형이라서 그런 측면도 있다. 하지만 포르투갈 황금세대의 정점이었던 유로 2000에 당당히 국대로 선발되었다. 이때가 사실상 선수로서 벤투의 최전성기.
유로 2000에서 포르투갈은 죽음의 조인 A조 (독일, 루마니아, 잉글랜드) 에 3번포트로 속해 있었지만, 강호들을 모조리 격파하고 조1위로 올라가서 8강에서 터키까지 꺾고 4강에 올라갔다. 이 당시 유로에 거의 무관심했던 한국에서도 새벽에 중계되는 포르투갈 경기를 챙겨본 축구팬들이 많았을 정도로 압도적인 실력을 자랑했다. 벤투도 매경기 주전으로 풀타임 출장했다.
포르투갈은 4강에서 마찬가지로 당시 최정점의 전력 [3] 을 가졌던 프랑스를 만났는데, 1-1의 팽팽한 승부에서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지네딘 지단의 페널티킥 골든골을 허용하면서 아쉽게 탈락했다. 벤투는 이 경기에서 61분경 교체출장했으나, 포르투갈의 아벨 사비에르가 핸들링 반칙을 해서 문제의 페널티킥을 먹었고, 벤투는 누누 고메스와 함께 이에 거칠게 항의해 심판을 모욕했다가 5개월 출장 정지 처분을 받은 바 있다.[4]
이렇게 포르투갈의 붙박이 주전이었기 때문에, 33세의 노장이었음에도 2002년 한일 월드컵에도 참가했으며,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한국전에서 후반 이영표가 골에이리어로 넘겨주는 크로스를 막지 못하고 보고만 있다가 박지성이 이걸 받아 골로 연결, 포르투갈이 1-0으로 패해 조 3위로 탈락한 흑역사가 있다. 이 경기를 끝으로 포르투갈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그리고 16년 뒤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그 인연을 이어갔다.
[1] 우리가 아는 벤피카와는 전혀 다른 팀이다.[2] 1991년대회에서는 남북단일팀이 골든제네레이션이 유스시절이던 포르투갈과 대결해서 조별리그에서 1-0로 패한적이 있다. [3] 유로 2000의 프랑스팀은 많은 축구전문가들에 의해 축구역사상 최강의 전력을 가졌던 팀의 하나로 꼽힌다. 1998년의 월드컵 우승멤버가 고스란히 스쿼드에 들어간데다가 1998년 당시에는 유망주였던 앙리가 아스날에서 1999/00 시즌에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떠올랐기 때문이다.[4] 참고로 이 당시 심판이 바로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의 한국 - 멕시코 전에서 멕시코 선수에게 백태클을 가했던 하석주에게 다이렉트 레드카드를 명령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귄터 벤쾨 주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