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소자

 


'''파울루 소자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color=#373a3c> '''톈진 취안젠 역대 감독'''
파비오 칸나바로
(2016~2017)

'''파울루 소자
(2018)
'''

박충균
(2018)

''' 포르투갈의 축구감독 '''
''' 이름 '''
'''파울루 소자'''
'''Paulo Sousa'''

''' 본명 '''
파울루 마누엘 카르발류 드소자
Paulo Manuel Carvalho de Sousa

''' 출생 '''
1970년 8월 30일 (53세) /
포르투갈 비제우
''' 국적 '''
포르투갈
''' 신체 '''
177cm
''' 직업 '''
축구선수(수비형 미드필더 / 은퇴)
축구감독
''' 소속 '''
''' 선수 '''
SL 벤피카 (1989~1993)
스포르팅 CP (1993~1994)
유벤투스 FC (1994~1996)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1996~1997)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1998~2000)
파르마 칼초 1913 (2000/임대)
파나티나이코스 FC (2000~2001)
RCD 에스파뇰 (2002)
''' 감독 '''
포르투갈 U-16 대표팀 (2005~2008)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2008~2009)
스완지 시티 AFC (2009~2010)
레스터 시티 FC (2010)
비데오톤 FC (2011~2013)
마카비 텔아비브 FC (2013~2014)
FC 바젤 (2014~2015)
ACF 피오렌티나 (2015~2017)
톈진 취안젠 (2017~2018)
FC 지롱댕 드 보르도 (2019~2020)
폴란드 대표팀 (2021~ )
''' 국가대표 '''
52경기(포르투갈 / 1991~2002)
1. 개요
2. 생애
2.1. 클럽 경력
2.2. 지도자 경력
2.2.1. 보르도 이전
2.2.2. 보르도 FC
3. 여담


1. 개요


포르투갈축구선수 출신 감독.

2. 생애



2.1. 클럽 경력


1989-91년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의 지휘 하에 U-20 월드컵을 2연패하며 모습을 드러내었던 "포르투갈 황금 세대"의 일원이다. 1989년 우승팀의 주역 소자는 주앙 핀투(2개 대회 모두 출전), 루이스 피구, 후이 코스타, 페드루 바르보사(1991년 대회 출전) 등과 함께 황금세대의 대표적 인물이다. 이 황금세대는 이후 비토르 바이아, 파울레타, 세르지우 콘세이상 등의 동세대의 훌륭한 선수들이 더해지며 UEFA 유로 2000(4강), UEFA 유로 2004(준우승)에서 꽃을 피웠다.
수비형 미드필더였던 소자는 1990년 벤피가에서 프로데뷔를 하였고, 1991년 스포르팅 리스본으로 이적했다. 이때 팀동료가 루이스 피구.
이때 활약을 하면서 1994년 유벤투스 FC로 이적했고, 이후 1997년에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뛰었다. 하지만 도르트문트에서 입은 부상으로 기량 저하가 시작되었고,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와 인터 밀란에서 뛰었으나 이미 노쇠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어 그리스에서도 뛰었고 2002년에는 에스파뇰에서 뛰기도 했으나 2000년 이후에는 거의 활약을 못했다.
포르투갈 황금세대가 2002 월드컵에 참가했고, 소자도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컨디션이 안 좋았는지 한 경기도 안 나왔다.

2.2. 지도자 경력



2.2.1. 보르도 이전


선수 생활 은퇴 후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의 코칭 스탭으로 참가하면서 지도자의 커리어를 시작하였다. 2008년 포르투갈 대표팀의 수석코치로 선임되었는데, 그가 보좌한 감독이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후 능력을 보여 2008년 풋볼 리그 챔피언쉽에 있던 퀸즈 파크 레인저스의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하지만 2009년 선수 이적에 관련된 구단 기밀을 누설했다는 이유로 해임당했다.
이후 스완지 시티에 부임하였는데, 리그를 7위로 마쳐 스완지 구단 역사 이래 27년간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지만 승격 플레이오프에 (3~6위) 진출하지는 못했다. 2010년 스완지와의 계약을 상호해지하고 레스터 시티에 부임하였다. 하지만2010/11 시즌 초반 부진하자 2010년 10월 3개월만에 해임당했다.
챔피언쉽에서 실패를 맛본 소자는 헝가리 리그의 비데톤으로 가서 3년간 보냈다. 이후 가족문제를 이유로 계약을 해지했고,이스라엘의 마카비 텔 아비브에 부임해서 2013-14 시즌 이스라엘 프리미어 리그에서 우승했다. 이 우승커리어로 다시 유럽으로 진출 스위스 리그의 FC 바젤에 가서 2014-15 시즌 다시 우승, 좀 더 큰 물인 세리에 A피오렌티나에 부임했다. 피오렌티나에서 2시즌을 보냈고, 2015-16 시즌은 5위, 16-17시즌은 8위로 마쳤다. 나름 나쁘지 않은 성적이지만 구단측과 사이가 나빠져서 재계약은 불발되었고, 몇 달 간 놀다가 2017년 11월 파비오 칸나바로가 계약 상호해지로 물러난 톈진 취안젠에 부임하게 되었다.
톈진 취안젠이 2018 AFC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 참가하게 됨으로써 소자도 국내 팬들에게 선을 보이게 되었다. 전북 현대와 같은 조에 속해 있으며, 3월 6일의 원정1차전에서는 6-3의 참패를 당했으나 3월 14일의 홈 2차전에서는 전북의 전술을 철저히 연구한 듯, 전북 수비를 뒤흔들며 4-2로 승리했다.
월드컵 이후 악셀 비첼이 이적하고 앙토니 모데스테가 구단과의 연봉 분쟁으로 팀을 이탈하면서 공백이 발생, 리그 10위권 밖으로 추락했다. 중국 웹에서는 아챔에서 탈락하면 경질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유럽 언론에서는 라파엘 베니테즈가 후임감독으로 물망에 오른다고 한다.
결국 2018년 10월 3일 성적부진으로 경질되었다. 후임 감독인 박충균의 인터뷰에 의하면, 키플레이어였던 비첼과 모데스테가 이탈하자 의욕을 잃고 거의 팀을 방치한 듯 하다.

2.2.2. 보르도 FC


2019년 3월 12일 보르도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그리고 7월 14일, 황의조 선수를 지롱댕 보르도로 영입하며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프랑스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파울루 소자 감독이 텐진 취안젠을 지휘하던 시절부터 황의조를 지켜봐왔으며 2018 팔렘방 아시안게임 경기까지 관전할 정도로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또한 현역 시절 대표팀에서 함께 뛰었던 파울루 벤투 감독과도 황의조에 대해 정보 교환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영입 이후 원톱이 아니라 2선 공격수로 기용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황의조가 일본 시절 및 한국 대표팀에서는 최전방 공격수로 주로 뛰었는데, 그는 공간 창출과 라인 사이의 움직임과 침투 패스 능력이 훌륭하여 최전방보다는 2선 공격수가 보르도에서는 더 어울린다"고 평가했다.
황의조를 그럭저럭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 리그 초반부에는 실험을 하려고 했는지, 황의조를 오른쪽 윙어로 기용하여 플레이를 제대로 분석하지 못했다고 비판을 받았지만, 왼쪽 윙어로 위치를 바꾼 뒤에는 움직임과 공격의 균형이 잡혀서 평가가 좋아졌다. 이후 로랑 코시엘니를 영입하여 수비를 보강하긴 했지만 보르도 중원의 무게감이 떨어지는 편이라 황의조를 톱으로 세우면 고립될 가능성이 크다. 이 점을 인지해서 중원과 연계할 수 있는 윙포워드로 옮겨 고립을 피하고 중거리포를 이용하는 전략이 팀 사정을 볼 때 더 낫다고 판단한 듯 하다.
게다가 황의조를 주전으로 매 경기마다 기용해서 국내에선 소자 감독의 이미지가 좋은 편이다. 시즌이 반정도 지난 2019년 12월까지는 리그 3위로 순항하고 있으며, 중상위권이 빡세서 언제라도 순위가 내려갈 수 있지만, 순위를 유지한다면 다음 시즌에 챔스에도 나갈 수 있을 듯 하다.
2020년 7월 3일 구단 운영 상의 마찰로 인해 사의를 표했으나 잔여 임금 지급 문제로 구단 운영진과의 협상이 길어지면서 8월 초까지 감독직을 유지했다. 소자 감독은 12개월분의 잔여 임금 지급을 원했고 구단은 7개월분치만이 지급 가능하다고 제안하면서 소자 감독이 결국 구단에 잔류할 것처럼 보였지만# 구단 운영진은 비싼 연봉(300만 유로)의 감독이 재정적으로 부담스러웠기에 8개월분의 급여(220만 유로)를 지급하겠다는 타협안을 제시하여 합의 하에 계약 해지에 이르게 됐다.# # 후임으로는 장루이 가세 감독이 임명됐다.
지난시즌 성적이 좋지 않았으나 이후 장루이 가세 감독이 커리어가 무색하게 엄청나게 부진하고 황의조도 톱으로 복귀한 건 좋았는데 팀 상태가 노답이라 최전방에서는 공을 받지 못해 쩔쩔매는 등 오히려 팀이 더 엉망이 되자 보르도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던 감독이라고 재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이는 가세 감독의 팀 컬러 이식 과정에서 발생한 실험에 불과했는지 12월을 기점으로 보르도는 오히려 소자 감독 시절보다 더욱 유기적인 빌드업 축구를 보여주며 과정과 결과를 모두 챙겨가고 있어 빌드업이 전무했던 소자 감독이 역으로 까이고 있다(...)
이후 야인 생활을 끝내며 폴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새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3. 여담


  • 1996년 유벤투스 소속으로, 1997년 도르트문트 소속으로 빅 이어를 들어올려 서로 다른 클럽 소속으로 UEFA 챔피언스 리그를 2연패한 선수 중 한 명이 되었다. 나머지 선수는 마르셀 드사이제라르 피케, 사무엘 에투. 이 네 선수 중 소자의 기록은 도르트문트 소속으로 다름아닌 전 소속팀 유벤투스를 결승에서 물리치며 작성된 것이라는 특이점이 있다.[1]
  • 외모가 좋아서 선수 당시에 미남으로 유명했다. 은퇴 후 감독이 되고나서도 근엄해 보인다거나 잘 생겼다는 말이 종종 나온다.
  • 스포츠 웹툰 작가 와싯의 해외파스타에서는 보르도 감독 시절 황의조와 환장의 콤비를 이루는 개그 캐릭터로 등장하여 독자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1] 이들 중 피케도 바르사 이적 직후 결승에서 맨유를 잡으며 우승했지만 맨유 시절에는 후보 선수였고 결승전에서는 벤치에도 앉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