퉁구스
- 퉁구스 (한국어)
- Tungus / Tungusic peoples (영어)
- 通古斯(중국어)
- Тунгус/ Тунгусо-маньчжурские народы (러시아어)
- ツングース系民族 (일본어)
- Tunguz/Tunguzlar(터키어)
- Манж-Тунгусын ард түмэн(몽골어)
- Evenki(Ewenki), Orochen(Orochon), Solon(에벤키어, 오로첸어 등 퉁구스 제어에 해당되는 언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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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시베리아 동부와 연해주, 만주를 중심으로 주로 분포해 있는 퉁구스어족의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 또는 그들의 조상으로, 퉁구스라는 단어는 사하 공화국에 사는 튀르크 철륵인들의 "아홉 부족"이라는 뜻의 "도쿠즈"[1] 에서 유래했다.[2] 뭉뚱그려서 퉁구스계 제민족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튀르크계 제민족과 마찬가지로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유전학적 연관성을 제외하곤 언어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상당히 단절되었다.
수많은 퉁구스계 제민족 중 가장 유명한 여진족은 농업과 수렵을 주 생업으로 삼았으며, 다른 퉁구스계 제민족도 유목보단 반농반렵 위주의 생업을 유지해왔다. 이것이 순수 유목인이었던 튀르크 및 몽골계 제민족과의 대표적 차이점이다. 만주족의 경우는 과수 재배를 한 사례도 있어서 영농 기반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물론 유목을 아주 안 한 것은 아니며, 주로 혹한지에서 농사를 짓기 힘들 경우 순록을 유목, 방목을 했었다. 그리고 과거에도 절반 정도는 유목을 하거나 이목 수준이었으며 굳이 유목민으로 본다면 반(半)유목이나 준(準)유목으로 분류된다. 반농반목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튀르크 및 몽골계 제민족과의 또다른 차이점으로는 이슬람교가 주류 종교인 민족이 존재하지 않는 점이 있다.[3] 튀르크계 제민족은 추바시인, 야쿠트인, 투바인, 유고족 등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이슬람교를 믿으며, 몽골계 제민족은 대부분 샤머니즘이나 티베트 불교를 믿지만 중국의 보안족과 둥샹족, 아프가니스탄의 모골인, 러시아의 일부 칼미크인들은 이슬람교를 믿는다.
또한 터키인을 비롯한 튀르크권, 외몽골의 할하인을 비롯한 몽골계 제족[4] 들과는 달리 전원이 나라 없는 민족들이다.[5]
넓은 의미의 퉁구스는 퉁구스계와 몽골계의 혼혈 민족인 다우르족, 거란족과 오환족, 선비족이나 투르크 제족과 혼혈된 야쿠트인들까지 포함시킨다. 그러나 다우르족과 산융-동호의 후예들은 대부분 몽골계로 분류되며, 야쿠트는 튀르크계로 분류된다. 다만 이들의 문화나 생활, 사회 등 일부는 퉁구스 제족들의 영향도 받았으며 퉁구스어족에 해당되는 언어들의 방언도 사용한다.
2. 분류와 분포
언어학적인 분류와 이에 따른 민족 자치 구역 설정 등으로 확인된 분포지역으로는 러시아[6] 와 중국 내 여러 민족 자치 구역에 살고있으며 주 거주 지역은 연해주, 아무르 강 유역, 사할린 동북부에도 살며, 쿠릴 열도에도 극소수의 퉁구스족들이 산다고 한다. 과거에는 만주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했으나 청나라 대에 다수의 통구스족이 중국 대륙으로 이주하면서 만주지역의 인구가 희박해지고 그틈을 한족이 메우면서 퉁구스족 인구는 소수로 전락했으나, 만주족 자치 행정 구역이 아직 일부 남아있다.
이들의 기마 유목 문화는 오르도스 고원에 진출했던 스키타이계 유목민들에게 영향을 받았다.[7] 다만 이들은 퉁구스계 민족들 중 완전한 기마 유목민은 드물었고 대개 삼림 지대에서 반농반렵 경제를 유지했다.
만주족, 어웡키족, 나나이족, 오르촌족등이 만주 지역에 거주하며, 민족 자치 행정 구역이 지정되어 있다. 소수민족 자치를 일절 인정하지 않는 일본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청나라 때 만주족에 동화된 시버족들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 내 일리 카자흐 자치주[8] 에 거주한다. 그 외에 일본 홋카이도의 윌타인(오로크족), 오로치인들도 거주하며 몽골 동쪽에도 에벤키족들이 살고 있다.
퉁구스족들은 아시아 대륙에 많이 거주하나 일부 퉁구스계 소수민족들은 유럽 지역의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에도 거주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도 나나이족, 우데게족 등의 연해주 지역의 퉁구스족들이 살기도 하는데 이는 스탈린의 강제 이주정책으로 우크라이나에까지 가게 된 것 같다. 다만 이것은 2001년 때와 2010년에 조사된 것으로 현재는 거의 우크라이나 사회에 동화되어 숫자가 더 적거나 지금은 없을 수도 있다.
3. 문화
퉁구스인들은 가축들을 방목했고, 수렵과 어로를 하기도 해서 동물들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살았었다. 말갈의 경우 일부 부족에 따라 돼지기름을 발라서 추위를 이겨냈다고 전해진다. 지역에 따라 몽골계 민족들에 부분적으로 동화된 부족들은 옷도 몽골족과 비슷해지기도 했다. 만주족처럼 중국의 영향을 받은 곳에서는 비단으로 옷을 입기도 했으며, 이는 치파오로 발전돠었다.
식문화는 순록을 키웠던만큼, 순록을 잡아먹었으며, 주로 솔론족, 에벤키족이 순록을 먹으며, 나나이족, 우데게족. 오로치족처럼 어로중심사회도 있었던 민족들은 사냥했던 짐승들과 더불어 생선을 많이 먹기도 했다. 만주족은 몽골과 중국의 영향을 받기도 해서 중화요리에서는 만한전석으로 발전되기도 했다. 반대로 중화요리에도 영향을 주기도 하여 둥베이 지방의 동북 요리에도 영향을 준다.
시베리아 및 연해주, 하바롭스크, 아무르 강 유역, 사할린 북부 등 러시아령 만주(외만주) 지역에서도 이곳의 퉁구스 제족인들은 러시아 문화의 영향을 받았으며, 반대로 외만주 지역의 요리에도 영향을 주기도 했다.
그 외 퉁구스족들의 요리에 대해 더 알고 싶으면 만주 요리 항목을 참조하는 것도 괜찮다.
분포 국가들이 과거에 모두 공산주의 국가였다보니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의 영향으로 세속적인 문화도 생겨났으나, 동시에 샤머니즘 등 신앙 관련 문화가 약해졌고 수렵채집생활, 어로생활 및 반유목 생활 등은 극히 제한적이다보니 이들의 전통 생활이 무너진 문제점들도 있다.[9]
언어는 퉁구스어족을 참고.
4. 역사, 대외 관계
4.1. 고대사
고대에는 만주와 시베리아 동남부(러시아령 외만주 및 그 인근 지역들)에 거주했고 세력을 유지했다.일부 퉁구스는 한반도의 함경도, 평안도, 강원도 일부까지 내려갔다.[10] 만주 및 한반도에 있던 일부 퉁구스족들은 말갈이라고 불렸다. 이후, 한반도 중부로 이주한 말갈은 삼국시대에 신라가 당나라와 동맹을 맺고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자 일부는 동화되고 일부는 발해의 중요 구성원이 되었으며 발해가 멸망한 뒤엔 흑수말갈이 중심이 되어 여진족이 된다. 여진족은 한반도의 북부 지역과 만주 동부 및 연해주에 퍼지게 되고 이후 거란의 요나라의 통치 하에 들어갔으며 여진해적들이 해적질을 하는 한편(일본에서도 도이의 입구라는 사건이 있었음) 점차 세력을 불려 동북 9성을 둘러싸고 고려랑 싸우기도 하였으며[11] 한편 요나라 후기에 들어서 여진족에 대한 강압적으로 탄압했고, 갈수록 심해지고 대우가 나빠지자 거란과의 관계는 더욱 나빠졌고, 결국 반란을 일으켜 요를 멸망시키고 금나라를 세웠다.
한편 북퉁구스인들은 4-9세기 경에 이미 바이칼 호 부근에서 살았는데, 몽골계가 주류였던 실위의 일부이기도 했다. 이들은 실위가 몽골인으로 발전하자 시베리아로 북진하여 어웡키족과 에벤족이 된다.
4.2. 금나라 및 여진족
금은 한동안 남송 및 고려를 위협하며 잘 나갔으나 지배층인 여진인들은 빠르게 한화되었다. 변발을 그만두고 한족의 옷을 입고 한자 이름을 따로 가졌을 정도로 한족화가 심해졌고, 결국 유목 정체성을 잃고 몽골 고원을 확보하는 데 실패한다. 한편 반대로 여진에게 지배된 거란의 경우 일부 거란인들이 여진에 동화되기도 했는데, 이 때부터 여진족들은 부분적으로 문화, 언어 등이 거란과도 조금씩 비슷해지기 시작했다(거란 문자도 참고해서 여진 문자를 창조하거나 의상에 영향을 받는 등). 칭기즈 칸의 몽골 제국은 이 틈을 타 몽골 고원을 통일하여 튀르크 부족들을 대거 서쪽으로 내쫓고 중국까지 공격하여 결국 금은 몽골에 의해 멸망한다. 그리고 몽골 제국은 중원을 정복하여 사상 최초의 이민족으로써 중원을 모두 정복한 왕조인 원나라를 세운다.
원 치하의 여진인들은 피지배인이였고 jurchen(여진)이라는 이름은 노비라는 뜻으로 불렸다. 하지만 한족보다는 나은 취급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여진인들은 같은 피지배인 처지가 된 거란족들과 함께 만주 서부의 랴오닝성에서 주로 살았고, 원의 원정에 동로군으로 참여해 여진-거란-몽골 혼성부대의 일원이 되기도 했으며, 그 과정에서 여진인과 거란인은 본격적으로 혼혈하기도 했다.[12] 거란인으로부터 유래한 여진부족이 바로 해서여진이다.
원의 90년 통치가 끝난 뒤 여진은 건주여진, 해서여진, 야인여진의 3부로 나뉘어 명나라의 치하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한반도 북부의 여진족들은 고려-조선의 북진으로 평정되어 동화되었다. 하지만 조선에서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명조가 북방에 신경을 못 쓰게 된 사이에 아이신기오로 누르하치라는 인물이 나타나 각 여진 부족들을 통일함은 물론, 몽골계 부족인 우랑카이족까지 포섭하고 요동을 정복해 한족까지 지배층에 넣어 후금이라는 나라를 세운다. 그의 아들 홍타이지는 내몽골을 정벌해 북원의 황실 계보를 잇던 차하르 부족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내고 원의 옥새를 얻은 후, 쿠릴타이에 의해 청나라의 황제(청태종)로 추대된다.
4.3. 청나라 및 만주족
이 무렵 만주족으로 여진 민족의 이름 또한 개칭한다. 원 황실의 후계자를 자처한 것은 유목세계의 칸은 물론이고 중국의 천자의 위치 또한 함께 주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숭덕제는 이후 조선에게 자신들을 황제국으로 인정할 것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고 이는 병자호란으로 이어져 조선을 공격했다. 청나라는 이자성의 난으로 명이 멸망한 후 입관, 중국을 정복하는데 성공하였고 남명 정권 및 잔존 세력인 정성공 일가를 대만 원정으로 박살내 대만을 최초로 중국의 실효지배 하에 두었으며, 나아가 건륭제 때는 외몽골, 위구르, 티베트까지 확보하고 준가르를 멸망시킨다.
이후 이들의 근황은 만주족을 참고. 현재 만주족 대부분은 한족에 동화되었다. 청나라 멸망 후 열하로 도망친 일부는 몽골족에 동화되었으며 일제강점기 조선으로 도망친 또다른 일부는 한민족에 동화되었다. 세 부류 중 특히 중원에 남아 한족에 동화된 만주족과 조선으로 망명 후 한민족에 동화된 만주족이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왔는데, 이는 한족 및 한민족과의 역사적 악연으로 인해 이들에게 엄청난 핍박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족들은 청나라 황실의 무능함으로 인해 청나라가 쇠퇴한 것에 대한 실망 및 조상들을 가혹하게 탄압하여 한족 문화를 단절시킨 만주족에 대한 복수심으로, 조선인들은 조선 중기 때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으로 조상들을 엄청난 굴욕과 고통에 빠뜨리고 조선 말기 때 자신들을 기존의 제후국 개념을 넘어 아예 식민지로 취급한 청나라에 대한 악감정으로 청나라 유민인 만주족을 불구대천의 원수로 취급하며 핍박했다. 이런 상황에서 각 만주족들이 핍박을 피해 살아남는 방법은 만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각각 한족과 조선인에 동화되는 것이었다.
그나마 중국의 경우 청나라의 중원 입관 이래로 만주족이 많이 살았을 뿐더러 청나라 황실 수장이라는 구심점이 있기 때문에 겉으로만 평범한 한족처럼 살아가면서 마음 속으로는 만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도 많았으며, 그 덕분에 오늘날에는 자신이 만주족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한반도는 만주족의 입장에선 애초에 여진족 시절이나 정묘호란 때나 병자호란 때나 모두 정복이 아니라 그저 약탈의 대상일 뿐이었고 한반도가 청나라에 합병되어 만주족이 한반도로 대거 이주해오는 일은 청나라가 멸망하는 순간까지 끝내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청나라 멸망 후 한반도로 이주해온 만주족은 신해혁명 때 한족들에 의한 학살로부터 살아남은 만주족 중 극히 일부였으며(당연한 일이지만 이 때 살아남은 만주족 대부분은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 영토에서 계속 대대로 살아오고 있음) 인구 면에서 현지의 조선인들은커녕 일본 본토에서 이주한 일본인들이나 한족계 화교들에게도 한참 밀렸기 때문에, 이들은 결국 자신들이 만주족이라는 사실을 당당히 밝힐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하기도 전에 꼼짝없이 한민족에 동화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한편 신장으로 도망친 만주족도 있는데 이들 중 일부는 위구르족이나 회족 같은 무슬림 민족에 동화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대체로 거의 소련이나 중화인민공화국에 속하게 되었고 지금은 나라가 없는 민족이 되었지만 러시아, 중국 등의 도움을 받으면서 순박하게 살고 있다. 현재는 만주족을 포함하여, 나나이족, 우데게족, 시버족, 우랑카이, 오로치, 울치, 에벤키족, 어룬춘족, 에벤족, 오로크족, 네기달족 등으로 나뉘어 살고 있다.
4.4. 외세의 탄압
만주/연해주를 포함한 외만주(외동북) 등의 퉁구스 제족은 한편으로는 강대국들에게 시달린 적도 적지 않았다. 러시아 내전(적백내전) 때는 일본의 침공을 받기도 했고, 소련 시기에 공산주의 정권의 강압을 많이 받기도 했으며,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들이 만주를 침공하여 만주국을 세우고 만주국이 전 통구스인의 종주권 국가임을 주장하며 통치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일본의 괴뢰국이었던데다가 731부대 등 일본군과 잔혹한 부대들의 생체실험, 고문, 마약흡입을 당한 원주민들이 많았다. 만주국 전후에도 일부 만주족들이 만주에서 만주족 국가를 세우려 하였지만 결국 실패하게 된다.
4.5. 시베리아의 퉁구스인
시베리아의 퉁구스 종족인 에벤키족이나 나나이족, 우데게족 등은 전통을 지키고 있으며 현재 러시아와 중국에 걸쳐 분포해 있다. 나나이족은 허저족이라는 이름으로 헤이룽장 성의 소수 민족으로 남아있다. 전 슈퍼주니어 멤버 한경이 나나이족이다. 나나이족과 우데게족 모두 금나라를 세우는 데 도와준 흑수말갈의 후예이다. 나나이족은 대조영을 숭배한다는데, 아마 나나이족 중에서 일부는 발해 유민계였을 것이고 우데게인들도 나나이처럼 우데게족 일부는 발해에 가담하여 동화 또는 흡수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13]
에벤키족은 일부가 외몽골에 잔존해 있으며 주로 동부 러시아 접경지에 거주한다.
러시아 시베리아의 퉁구스 민족들의 경우 만주의 퉁구스와는 달리 국가를 세우지 못했는데 이는 부족 전통이 유지된 것도 있었고 기후가 춥고 땅이 척박해서 만주의 퉁구스와는 다르게 농경사회가 생성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은 몽골/튀르크족들보다 세력이 약했고, 평화로움을 더 원했다고 한다. 주로 스타노보이 산맥과 그 인근 및 바이칼 호수 동북부, 예니세이 강 상류와 오호츠크 해 연안 일부에 거주하던 에벤키족이나 에벤(라무트)족들은 러시아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러시아에 대항하기도 했으나 다른 시베리아의 민족들처럼 러시아에 제압을 당했고, 이들은 러시아에 순순히 복종하며 살게 되었다.
물론 복종이나 지배만 당할 생각은 하지 않았는지 나라 자체를 안 세웠다는 것은 아니고 1924년에서 1925년까지 딱 한 번 1년 동안 오늘날의 하바로프스크 크라이에서 퉁구스 원주민들의 봉기가 일어난 적이 있었는데 러시아 혁명 및 내전을 틈타 오호츠크 해 연안을 중심으로 퉁구스 공화국을 세워 독립을 시도하긴 했으나 러시아 적군(훗날 소련군)에 의해서 제압당하였고 항복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마저도 퉁구스인들만의 국가라고 하기엔 뭣한게 사실 다민족 국가인데다 사하인이나 러시아인이 주축이었고 퉁구스의 국민국가라기 보다는 러시아 반공세력의 마지막 보루가 마침 퉁구스 땅에 있어서 이름만 따왔다는 것에 더 가깝다. 국가(國歌)마저 "행복의 땅 사하"라는 곡이었다. 망한 이후에는 소련 땅이 되고 지금까지 러시아의 땅이 된다. 그리고 시베리아 크라스노야르스크 크라이에는 1934년에 설치된 에벤키 자치구도 있었지만 2007년 이후부터 다시 크라스노야르스크로 합병된다.
4.6. 종교
종교는 샤머니즘, 티베트 불교 등을 주로 믿어 왔으며, 중국과 대만의 한화된 만주인들 일부는 기독교로 개종했다. 티베트 불교를 종교 아이덴티티로 삼아 유목세계를 주도했던 청 황실의 후예들이 이를 버리고 기독교를 믿게 된 건 역사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홍콩과 마카오에도 동화된 만주족들이 꽤 있으며 이들의 조상은 광둥 성에 주둔한 팔기군들이다. 관즈린(관지림)이 만주족 출신, 그것도 귀족인 버일러 (Beile) 출신이다. 이 곳의 만주족들도 대거 기독교로 개종했는데 영국과 포르투갈 영향이다. 시베리아의 퉁구스인들은 러시아의 영향으로 동방 정교회 소속이다.
4.7. 한국과의 관계
'''북한에는 불과 얼마전까지 재가승이라는 "여진족"이 거주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현재는 북한의 동화정책으로 한민족에 동화된 걸로 추정된다. 아직 정확한 조사는 없었지만 여진족이 옛 함경도에 거주하거나 과거 강원도까지 내려와 살았던 것을 감안하면 동북 지역 사람들은 충분히 여진인 조상이 있을 수 있다. 다만 이에 관해서는 논란이 다소 있으며, 설령 여진족의 피가 약간 섞였을지라도 재가승은 기본적으로 토종 한국인이며 단순한 지역적 풍습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있다.
단 강원도의 말갈은 동예(예)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 강원도의 말갈은 숙신계(혹은 퉁구스계)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까지 여진족들은 해적이 되어서 바다를 건너 울릉도 및 강원도 해안까지 침략한 적이 많았고 해적이 아니어도 남쪽에 있던 고려로 귀순하면서 벼슬을 받거나 귀순한 여진족들은 고려정부 혹은 조선정부에서 거주지를 받아 농경을 하면서 정착을 하기도 했다. 어쩌면 이들 중에서 강원도에 정착하게 된 여진족도 있을 수는 있는 셈. 사실 강원도 지역도 여진족이 살던 함경도 지방과 가까이 접해있기에 여진족들이 상대적으로 고려/조선으로 망명했던 여진족들이 많이 이주했을 것이다. 하지만 증거는 없고 하나의 추측이다.
4.8. 튀르크인과의 관계
투르크 제족들과도 역사적으로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데, 돌궐, 위구르 칸국 때 만주로도 진출하여 북만주의 일부 말갈부족들을 복속하기도 했었고, 돌궐이 패망하거나 위구르 칸국이 망했을 때 만주로 간 일부 투르크계 유민들은 말갈 등 퉁구스 원주민들에 동화되기도 했다. 요나라와 금나라 때도 일부 투르크계 유목민들과의 접촉이 있었다. 금나라 멸망 후 여진족들은 만주족으로 부흥할 무렵에 몽골계 민족과 일부 투르크계 민족들과 혼혈이 되기도 했다. 시베리아의 퉁구스 제족들은 몽골의 침략을 피해 북쪽으로 달아난 투르크계 야쿠트족과 분쟁도 일어났지만 동시에 같이 지냈는데, 이들과 서서히 혼혈되어 야쿠트족에 동화돠었다. 러시아 내전 시기에 퉁구스 원주민들은 야쿠트족과 손잡고 동맹을 맺어 러시아에 저항하기도 했었다. 참고로 완전한 퉁구스는 아니지만 일부-반쯤 퉁구스와 혼혈된 산융-동호도 투르크와 관련이 있다. 동호 문서 참고.
5. 분류
5.1. 북퉁구스족
5.2. 남퉁구스족
6. 관련 문서
[1] 철륵의 정식 명칭이 토쿠즈 오구즈, 즉 9성 철륵이다.[2] 혹은 야쿠트어로 타타르를 뜻하는 이야기도 있으며, 몽골어 및 타타르어로 "돼지를 기르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혹은 동호(東湖)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3] 물론 신장(위구르) 지역의 만주족이나 시버족 중 극소수는 무슬림이 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많은 것이 아닌 것은 물론, 일부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매우 적다.[4] 단, 할하 몽골인을 제외한 다른 몽골계 민족들은 나라가 없음.[5] 그나마 혈통이 어느 정도 비슷한 몽골 동부에 어웡키족을 비롯한 소수 퉁구스 제족들이 거주하기는 한다. 물론 몽골계와 퉁구스계는 엄연히 다르지만. 정식 국가는 아니지만 러시아의 자치공화국인 사하 공화국에도 일부 에벤키족(어웡키족)들이 거주하는데, 사하 공화국의 투르크계 야쿠트인들도 에벤키족들을 비롯한 퉁구스족들과 혼혈되어 투르크의 지파에 동화된 민족들이다.[6] 특히 시베리아 및 오호츠크 해 연안[7] 선비족 모친을 둔 진명제의 경우 수염이 노란색 혹은 갈색이었다 한다.[8] 찹찰 시버족 자치현에 주로 거주한다.[9] 다만 미국과 캐나다, 대만, 홍콩, 마카오 등으로 이민간 퉁구스계 출신들도 있었지만 이들의 문화만 간직하면서 살기는 당연히 힘들었다.[10] 어떤 퉁구스족들은 몽골족과 몽골계 민족들과 동화되었고 훗날 이들은 선비족이나 거란족이 되기도 했다. 거란족은 몽골에 동화되었다.[11] 소위 여진정벌.[12] 언급했듯이 그 이전에도 혼혈되긴 했지만 몽골의 지배 이후에 본격적으로 더욱 이런 현상들이 많이 나타났다.[13] 단 나나이, 우데게는 발해를 연해주 및 그 근처에 살았던 원주민들인 말갈의 역사로 생각하며, 발해의 시조인 대조영과 발해 왕족들 역시 말갈계로 여긴다고 봐야 한다.[14] 아이보호족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어원은 에벤키를 가리키는 비슷한 단어이자 또다른 표현인 "아이원치 또는 아이원지" 및 에벤족의 또 다른 이름인 "아이원"으로 추정되며, 실제로 나나이족과 우데게족은 에벤족에서 갈라졌고, 나나이어의 지류인 키리-kili-어는 에벤키계로 보기도 한다. 원래는 에벤키를 가리키겠지만 키리어와 같이 과거에는 나나이의 방언으로 보다가 지금으로서는 에벤키어로도 분류하거나 나나이계 에벤키인 또는 에벤키계 나나이인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쓰이는 듯하다). 스스로를 "用日貝"라고도 부른다. 여담으로 아이들을 보호하는 신을 숭배하기도 한다. 또 다른 용어는 허저족(일부는 우데게인들도 포함되어 있다), 커칭(ketching)이라고도 부른다.[15] 우더허/우더거라고도 부른다.[16] 기릉, 치렁이라고도 부르며, 나나이족의 한 지류이다. 단 이들의 방언인 키리어는 에벤키어계 방언으로 볼 때도 있다.[17] 나나이와 가장 관계가 깊으며 나나이족 또는 만주족의 일파로 보고 있다.[18] 우데게족과 만주족과 관련이 깊고, 우데게의 일부로 보고 있다.[19] 정확히는 시베리아 중동부(동중부) 일부에 걸쳐 산다. 주로 예니세이 강 상류와 중류, 오호츠크 해 연안이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