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맨(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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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비화
3. 이식판
3.1. 어레인지판
4. 기타


1. 개요


Puck-Man/Pac-Man
남코에서 제작하여 1980년 5월 22일에 출시한 게임. 국제판 발매는 모탈 컴뱃으로 유명한 미드웨이.(훗날 미즈 팩맨의 제작사로 승격한다.) 갤럭시안과 함께 남코 황금기를 연 게임이다.
처음에는 아이들을 위한 목마를 만드는 작은 사업체로 출발한 남코는 팩맨의 전세계적인 성공으로 세계 굴지의 게임 제작사로 발돋음했다.
게임의 룰은 팩맨을 조종하여 유령들을 피해서 화면에 있는 점들을 다 먹는 것이다. 파워 펠렛(커다란 점)를 먹으면 일정 시간 동안 파워업하여 주눅든 유령을 역으로 잡아먹을 수도 있다. 자신을 매수하려 한 상대 기업을 오히려 매수하려는 방어 전략을 '팩맨 방어'라고 하는 것도 여기서 나왔다.
게임의 제목은 'ぱくぱく(파쿠파쿠, 뻐끔뻐끔이라는 뜻)'에서 지었다고 한다. 주인공의 모양 때문에 '큰입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한다.

2. 비화


얼핏 보면 캐주얼하고 인기 많은 게임 중 하나이지만, 사실 팩맨의 아이디어는 '''여성을 위하는 비디오 게임을 만들려던 도중에 나온 것이다.'''
팩맨의 출시 전인 1979년의 일본은 스페이스 인베이더 열풍으로 슈팅 게임이 전성기였고, 남코 역시 갤럭시안을 내면서 게임 센터에 쏴서 부수는 게임 류가 대세를 타게 되었다. 남코의 이와타니 토오루는 ''''게임 센터의 분위기가 여자들이 들어가기가 힘들게 됐다. 이래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여성들 혹은 커플이 즐길 수 있는 컨셉의 게임을 만들자는 기획을 하게 되고 그것이 팩맨의 출발이었다.
이 때문에 다른 게임과 달리 팩맨은 여성들을 매료시킬 수 있을 요소들을 고안했는데 그것들은 아래와 같다.
  • 귀여운 캐릭터가 적을 공격하지 않고 피해 다닌다.
  • 모든 등장 인물에 귀여움과 디자인의 다양성을 부여했다. 시제품을 플레이 해 본 남코 사장이 적 졸개가 이렇게 복잡하면 안 된다며 몬스터는 한 종류로 통일하라고 지시했지만 이와타니는 이런 이유로 반박하며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켰다.[1]
  •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먹는다'라는 콘셉트를 적극 이용했다. 게임 콘셉트는 먹기, 아이템도 디저트 먹기로 만들었다.
  • 게임 중간에 긴장을 풀 수 있는 휴식 시간을 도입했다. 이것이 비디오 게임 역사상 최초의 중간 컷신이다. 이후 미즈 팩맨부터는 여기에 연애 요소를 집어 넣었고 평가가 좋았다.
이 게임 특유의 입을 벙긋거리는 캐릭터 디자인에 대해서는 게임을 제작하려고 아이디어 짜다가 제작자가 배고파서 피자를 시켰는데 피자 한 조각을 잘라내고 보니까 아이디어가 딱 떠올라서 그 모습에서 이 캐릭터를 생각해냈다는 소문이 퍼졌지만[2] 이는 완전한 사실은 아니고, 1974년부터 이 게임보다 먼저 '팩맨'이라는 이름의 장난감 게임을 발매한 토미에서 남코에 이의 제기를 했을 때 남코 측에서 변명으로 내놓은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는 그냥 입 모양을 단순히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모습이라고 한다.

3. 이식판


팩맨이 가정용 게임기로 최초로 이식된 것은 아타리 2600으로 1982년 3월 16일에 출시되었다.


아타리 2600용 팩맨 플레이 영상
TV 광고
아타리 2600이 남코가 팩맨용으로 개발한 아케이드 기판에 비하면 성능이 너무 뒤떨어진 관계로 그래픽이 원본의 모양만 겨우 흉내낼 수 있을 정도로 조악하다. 또한 아타리 2600이 최대 표현 가능 스프라이트 수가 5개뿐이라 유령 4마리를 전부 표현하지를 못해 번갈아가며 깜박거리면서 표현시키는 꼼수를 썼다.[3] 문제는 깜박거리는 유령 때문에 눈에 피로감이 큰 것이다. 게다가 배경음마저 조악하다. 하드웨어의 문제이므로 개조 롬도 이 깜박이는 유령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했다. 발매 당시에 사람들의 기대에 한참 못 미친 망작이다.
이렇게 만들어졌어도 팩맨이라는 이름 값이 있기 때문에 7백만 부나 팔리게 되었다. 이 7백만 부라는 판매량은 모든 아타리 2600 게임들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이다. 그럼에도 이 게임으로 아타리의 이미지가 잔뜩 깎인 점과 아타리에서 이 게임을 '''1천 2백만 부나 찍어냈기 때문에 그렇게 팔고도 재고가 엄청나게 남은 문제점'''이 발생했다. 이후에 아타리는 아타리 2600 게임기를 사는 사람에게 팩맨 게임팩을 번들로 주는 식으로 팩맨 재고 문제를 해결했다.[4] 비판을 수용한 아타리에서 미즈 팩맨과 주니어 팩맨을 이식한 때에는 롬 카트리지 용량을 2배로 늘리고 2인용 모드를 제거하면서 이식 상태가 괜찮아졌고, 이 덕에 어느 정도 만회했다.
뒷날에 이 아타리 이식작 팩맨의 도트는 팩맨 챔피언쉽 에디션 DX의 테마 중에 하나로 '''재활용'''되었다.
이후에 애플 II, 코모도어 64, MSX, IBM PC 호환기종 같은 가정용 컴퓨터는 물론, 패미컴 같은 다른 가정용 게임기로도 이식되었으며, 게임보이 같은 휴대용 게임기에도 이식되었다. IBM PC 호환기종판 팩맨들은 비공식 이식작들이 여럿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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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식으로 이식된 IBM PC 호환기종판 팩맨들 가운데 하나
IBM PC 호환기종 공식 이식 팩맨(아타리 게임즈)
닌텐도 DS에서는 팩큰볼이라는 팩맨 외전 게임에서 원판 그대로 숨겨진 컨텐츠로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2018년에 Myarcade에서 갤러그, 갤럭시안과 함께 전용 게임기를 내놓았다.

3.1. 어레인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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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에 나온 남코 클래식 컬렉션 Vol.2에 수록된 팩맨의 어레인지판. 초대 팩맨같은 한 화면 내에서 움직이는 방식으로 회귀했지만 스테이지의 모양이나 배경이 라운드마다 계속 바뀌고 대시/점프 패널같은 새로운 요소도 들어있다. 2인 동시 플레이가 되고, 2P는 녹색 팩맨을 조종한다. 마지막엔 보스전도 존재.
PSP로 나온 남코 배틀 컬렉션에서는 조금 다른 어레인지판이 수록되었다. 필드 기믹 같은 건 그대로 보존하였지만 클래식 컬렉션에 수록된 원래 어레인지판에 비하면 여러모로 열화되었다. 팩맨 뮤지엄에 수록된 것도 PSP버전이다.

4. 기타


쿠바에서 만들어진 DOS컴퓨터 바이러스 중 진단명이 DOS.espacio인 바이러스는 컴퓨터를 팩맨 게임기로 만드는 바이러스이다. 바이러스에 걸린 컴퓨터가 부팅되면 25분의 대기시간을 가진 후, 강제로 팩맨게임을 화면에 띄운다. 팩맨게임을 플레이하다가 라이프가 전부 소모되면 게임 프로그램이 꺼지고, 25분이었던 대기시간은 절반으로 줄어든다. Ctrl+Alt+Delete를 사용해서 게임을 빠져나와도 소용없다. '''한 번 바이러스 프로그램이 종료될 때마다''' 대기시간이 줄어드는 것이기 때문. 결국 팩맨게임은 더 자주 실행될 것이고, 대기시간이 더 줄어들면 게임이 꺼지자마자 다시 켜져버린다. 그렇게 해서 강제로 게임을 실행시키다가 타이머 연산에 인터럽트 오버플로우를 일으키는 방식으로 컴퓨터를 망가뜨린다. 시연 영상에서는 리뷰어도 처음에는 '이게 바이러스?'하고 의심했다가 주기가 빨라지면서 계속 실행되자 당황했고 테스트 PC가 오버플로되면서 시스템이 뻗어버리는 것을 보고 바이러스 맞구나 했다.
게임 표절 역사에 매우 중요한 판례를 만든 게임이기도 하다. 본래 시에라 온라인에서 PC용 팩맨을 만들어 놓고 판매하기 위해 남코와 접촉했으나, 결국 남코는 라이선스 계약을 아타리와 맺었다. 이에 만들어둔 PC용 팩맨을 그래픽과 사운드를 모두 고치고, 게임 규칙의 일부는 바꿔 '스페이스 조'라는 게임으로 출시했다. 그러나 당시 팩맨의 북미 라이선스를 가진 아타리에서 저작권 침해 소송을 걸었고, 장기간의 재판이 진행되었다. 결과적으로 판결은 그래픽과 사운드는 표절 요건을 성립하지 않고, 코드 역시 팩맨 코드의 특허 침해 요소가 없어 원고 패소 판결했다. 게임 시스템의 유사성의 경우 '''플레이하는 사람에 따라 주관적으로 다르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라 표절이라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결국 이 판례로 인해 이후 수많은 아류작들이 표절 시비가 붙게 되면 제작자들이 '''시스템의 유사성은 주관적인 부분이라 표절이라 보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는 주요 근거가 되었다. 아이러니한건 사실 이 표절 재판 당시 시에라 온라인의 사장이었던 켄 윌리엄스는 이 재판에서 '''자신들이 패소하길 바랐다'''고 한다. 시스템 유사성을 저작권으로 보호 가능하다면 이후 시에라 온라인에서 만드는 게임들도 그런 혜택을 누릴 수 있어 스페이스 조를 희생양 삼아 판례를 만들어둘 생각이었는데, 예상과 달리 승소했음에도 실망했다고 한다.
원래 일본 원판 제목은 'PuckMan(에어하키의 그 '퍽'이다.)'인데[5] 이는 영어의 비속어인 'F*ck'과 발음이 비슷해서 그 이름 그대로 수출하기는 민망해서 수출판 제목을 'Pac-Man'으로 지은 것이고(일본식으로 발음하면 'パックマン'으로 같음. 헵번식 로마자 표기법으로도 'pakkuman'으로 앞에 'pa'가 들어간다.) 나중에는 일본에서도 그대로 'Pac-Man'으로 굳었다. 1980년 첫 출시 당시 홍보 자료
하지만 정작 이와타니 토오루는 팩맨을 그렇게 재밌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팩맨 발매 초기에 일본에서는 반응이 갤럭시안보다는 못해 그냥 그랬으나, 미국과 유럽에선 그야말로 초대박을 쳤다.
2005년은 남코의 창사 30주년인데, 팩맨이 기네스 북에 오른 해이기도 하다. 팩맨이 기네스북에 오른 사유는 "동전 넣고 하는 게임 가운데 가장 성공한 게임"으로, 80년부터 87년까지 팩맨 아케이드 게임기를 29만 3822대 팔았다고 공식 집계되었다.
아케이드 판의 클리어 가능한 마지막 스테이지는 255. 256 스테이지에 돌입하면 엔딩 아닌 엔딩을 볼 수 있다.[6] # 팩맨 256도 이것을 소재로 한 것. 여기서 더 나아가면 255 스테이지까지 한 목숨도 잃지 않으면서 모든 도트, 파워 펠렛, 과일, 적[7] 1UP을 먹어 사실상 게임 내에서 구현할 수 있는 최고 점수인 '''3,333,360점'''을 찍는 '퍼펙트 플레이'를 이룰 수도 있다. 말은 쉬워보이지만 이 스코어가 처음으로 구현된 날은 게임이 처음 발매된 지 '''19년'''이 지난 1999년 7월 4일, 미국의 게이머 빌리 미첼(Billy Mitchell)의 손으로 말미암아서이다. 이를 달성하는 데 6시간 가까이 걸렸다고. 그는 이를 통해 기네스북에도 올랐고, 세기의 가장 위대한 아케이드 게이머로 평가되기도 했다. 그러나 2018년 현재 그의 동키콩 하이스코어 세계기록이 조작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그의 다른 모든 기록들의 신뢰도가 매우 떨어졌으며, 비디오 게임 기록 아카이브 사이트인 Twin Galaxy와 기네스북에서 해당 기록이 말소되었었으나, 여럿 잡음에도 불구하고 기네스북에서는 해당 기록 말소가 다시 번복되어 재 등록 되었다. 현재 빌리 미첼은 공격적으로 해당 의혹을 처음 제기한 사람부터 각종 단체, 그리고 이의를 제기하는 유튜버들까지 마구잡이로 고소하고 있다.
2010년 5월 22일, 구글에서는 메인 페이지에서 팩맨을 플레이할 수 있게 해놓았다. 그것도 공식적으로 "이것 때문에 오늘 하루 동안 전 세계의 생산량이 줄어들 게 확실하지만, ''그냥 하세요''. '''하고 싶은거 알아요.'''" 라고 적어놓았다. 한국어 구글에서는 되지 않았다. 하는 방법은 I'm feeling lucky가 INSERT COIN으로 바뀐 때에 누르면 되고, 두 번 누르면 '''2인용'''이 된다. 더구나 스테이지 몇 개를 클리어할 때마다 나오는 중간데모가 여기서도 철저하게 재현되어 있다. #
여담으로, 이 게임을 말 그대로 '''똑같이 베낀''' 택스맨(TAXMAN)이란 게임도 있다. 애플 II 전용 게임으로 당시에 '''숱하게 나온 ''' 비공식 팩맨 클론들 중의 하나인데, 플레이 영상 AVGN이 2화[8]에서 살짝 언급한 적이 있어 살짝 유명세를 탔다. 근데 정작 본인이 113화[9]에서 말하길 그 게임이 뭔지도 몰랐고 월스트리트 키드(WALLSTREET KID)라는 주식 게임을 언급하려고 했는데[10] 그때 술을 너무 마셔서 취해(..)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다고 했는데, 왠 우연의 일치인지 진짜 있었다고 말했다. 여담으로 제임스 롤프가 가지고 있던 TAXMAN 디스켓에 제작사 이름이 H.A.L LAB으로 되어있는데, 우리가 아는 그 HAL 연구소과는 다르다는 점에 유의하자. 다만 HAL 연구소에서도 초창기에 코모도어 VIC-20용으로 젤리 몬스터즈라는 팩맨 클론을 만든 적은 있다.
2015년 7월에 개봉 된 영화 픽셀에서 주요 악역(?) 중 하나로 등장하고, 팩맨의 아버지인 이와타니 토오루도 깜짝 출연한다.[11] 귀여운 이미지와는 달리 예고편에서 도로 위 자동차들을 분쇄하고 자신의 개발자의 손마저 먹는 등 흉포한(?) 모습을 보인다.
2016년 12월 10일, 가면라이더 시리즈와 콜라보하여 가면라이더 헤이세이 제네레이션즈 Dr. 팩맨 대 에그제이드&고스트 with 레전드 라이더라는 작품에서 Dr. 팩맨이라는 메인빌런으로 등장한다.
2017년 1월 22일, 남코의 창업주이자 팩맨 제작 당시의 사장이던 나카무라 마사야(中村雅哉)가 별세했다. 향년 91세. 그런데 뉴스에는 '팩맨의 아버지'로 나와 개발자가 사망한 것처럼 오해하게 제목을 뽑았고#, 정작 본문에는 이와타니 토오루가 개발자로 언급되어 있다. 팩맨을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인 것은 사실이므로 아주 틀린 이야기까지는 아니겠지만... 정황상 위의 개발비화에서 몬스터를 한 종류로 통일하라고 지시했다는 사장은 이 분인 것으로 생각된다.
팩맨을 조종하는게 아닌 게임 판을 조종하는 《Not Pacman》이라는 인디 게임이 있다. 팩맨과 유령들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고 돌아가는 게임 판의 영향에 따라서만 움직여진다.
인터랙티브 무비 블랙 미러:밴더스내치에서는 중간에 팩맨을 소재로한 일종의 음모론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는 나중에 엔딩에 큰 영향을 끼친다.
하드스타일 DJ The Prophet의 "Pac-Man"도 이 게임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 곡은 2019년 2월 21일 유튜브에 공개되었다.

[1] 팩맨의 성공으로 다양한 적 캐릭터 디자인의 중요성을 깨닫고, 좀더 꽉 짜인 세계관을 만들어서 내보낸 것이 제비우스이다. 이 게임으로 남코를 그야말로 세계적인 게임 회사로 끌어올렸다.[2] 네이버캐스트에서도 이런 식으로 설명했다. 링크. 게임센터 CX 남코편에서 제작자 이와타니 토오루와 인터뷰를 한 때에도 '~라고 사람들이 얘기했다.'는 식으로 설명했다.[3] 사실 깜빡이는 꼼수 자체는 그런 상황을 최소화하도록 몹을 배치해놔서 그렇지 그 유명한 슈퍼 마리오브라더스에서도 쓰이기는 했다.[4] 팩맨이 나오기 전까진 'Combat'이라는 2인용 탱크 대전 게임을 번들로 주고 있었다. 어떤 건지 궁금하면 AVGN 마계촌편 참조. 이 게임은 제임스 롤프가 NES를 처음 접한 때에 이게 아타리 2600과는 다른 게임기임을 말하는 선례 화면으로 나온다.[5] 실제로 한국의 일부 오락실에서는 \''''퍼크맨''''으로도 표기한 이력이 있다.[6] 엔딩은 아니고, 버그이다. 스테이지 번호가 1바이트로 표시 되는 정수(0~255, 28)를 넘어서 오버플로우가 일어난 것. 스테이지 번호가 오버플로우되어 1부터 0(실질적인 256)까지의 총 256개의 스테이지 표기를 하게 되고, 데이터상의 실제 20개의 표기를 넘어가 잘못된 메모리를 참조한 표기가 스테이지까지 침범하는 것이다. 자세한 설명(영어).[7] 19레벨부터는 파워 펠렛을 먹어도 적을 먹을 수 없다.[8] 이때 리뷰한 게 그 지킬 박사와 하이드 게임이다. 후에 95화에서 더 자세히 이 게임을 다시 리뷰했다. [9] 여기서 리뷰한 건 당시 1980~1990년대에 좀 잘 나갔던 타이거 게임기.[10] Taxman은 세무서 직원을 뜻하는 단어니까 돈과 관련된 직업이라는 점에선 비슷하긴 하다.[11]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영어를 못해서 본인 역을 맡은 사람은 본인이 아닌 다른 일본계 미국인 배우가 맡았다. 정작 본인은 오락실 기계를 수리하러 온 기계수리공으로 출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