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이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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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호'''
미하이 1세 (Mihai I)
'''출생'''
1921년 10월 25일
루마니아 왕국 시나이아 펠레슈성
'''사망'''
2017년 12월 5일 (96세)
스위스 오본
'''장례식'''
2017년 12월 16일
쿠아르테아 데 아르제시
'''재위'''
루마니아 왕국의 왕
1차
1927년 7월 20일 ~ 1930년 6월 8일
2차
1940년 9월 6일 ~ 1947년 12월 30일
'''배우자'''
부르봉파르마의 공녀 안 (1948년 결혼 / 2016년 사망)
'''자녀'''
마르가레타, 엘레나, 이리나, 소피아, 마리아
'''아버지'''
카롤 2세
'''어머니'''
그리스덴마크의 엘레니 공주
'''신체'''
185cm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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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2.1. 즉위 이전
2.2. 1차 재위와 아버지 카롤 2세의 재위
2.3. 2차 재위와 쿠데타
2.4. 왕정폐지 이후
3. 가족
3.1. 조상
4. 기타
5. 매체에서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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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루마니아 왕국의 마지막 국왕이자 루마니아 역사의 마지막 군주. 2번이나 재위를 하였으며, 2차 재위 기간이 제2차 세계 대전 후반과 겹쳐서 루마니아의 굴곡진 20세기를 모두 경험한 인물이기도 하다.

2. 생애



2.1. 즉위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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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의 사진. 1차 재위 기간 중으로 추정된다.
1921년 루마니아 왕국왕세자 카롤 2세와 그리스 왕국공주인 엘레니(Regina Elena) 사이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좀 후덜덜한데 왕자라는 타이틀 이외에도 조상들의 핏줄을 따라 올라가 보면, 어머니 엘레나는 그리스와 덴마크 제국의 혈통을 물려받았고, 친할머니가 되는 루마니아의 마리 왕비는 무려 대영제국빅토리아 여왕손녀이며[1], 러시아 제국 알렉산드르 2세의 외손녀이기도 하다.[2] 따라서 미하이 1세는 영국 왕실과도 인연이 깊었고, 현 국왕인 엘리자베스 2세와는 8촌이 된다고 한다.[3]
그리고 미하이 1세는 엘리자베스 2세의 부군인 필립 공과는 동갑이나(생일은 필립 공이 4달 정도 빠름), 촌수로는 필립 공의 5촌 조카이다. 필립 공과 어머니 엘레니 공주가 사촌 관계이기 때문. 조금 풀어서 설명하자면, 엘레니의 아버지(즉, 미하이 1세의 외할아버지)인 그리스 콘스탄티노스 1세 국왕의 셋째 남동생이 필립 공의 아버지인 안드레아스 왕자이다. 빅토리아 여왕을 기준으로는 8촌이기도 하다.
본래 그는 왕세손이었기 때문에 당시 국왕이었던 할아버지 페르디난드 1세 다음으로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왕세자였던 아버지 카롤 2세는 자신의 부인 엘레니에 대한 애정이 별로 없었고 1925년 영국 알렉산드라 왕비의 장례식에 참석하던 중 내연 관계에 있던 유대인 여성인 마그다 루페스쿠(1895~1977)와 이탈리아로 도망을 가 버렸다. 아들의 망나니 같은 짓에 화가 난 페르디난드 1세는 카롤 2세의 왕위 계승권을 박탈하고 그 자리에 어린 손자 미하이를 올렸다.[4]

2.2. 1차 재위와 아버지 카롤 2세의 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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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8년 1월에 찍은 사진.
1927년 7월 20일, 루마니아의 국왕 페르디난드 1세가 사망하고 미하이가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당시 미하이 1세의 나이는 겨우 6세였고 당연히 정상적인 국정 운영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국왕이 비정상적으로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임시 방편이 고안되는데 3인 섭정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섭정을 담당할 3인으로는 니콜라에 왕자(페르디난드 1세의 차남, 미하이의 삼촌), 게오르게 부즈두간(대법원장), 미론 크리스테아(루마니아 정교회 주교)가 선정되었다. 미하이는 섭정에 동의하고 루마니아 헌법을 준수할 것을 서약한 후 정식으로 루마니아 국왕으로 등극하였다.
그런데 3년 후인 1930년에 아버지 카롤 2세가 루마니아로 돌아왔다. 이미 1928년 엘레니와 이혼한 상태였던 카롤 2세는 왕위를 욕심내고 당시 루마니아 총리와 비밀리에 모의하여[5] 왕위 계승을 약속받았다. 이 상황에서 아직 10살도 안 된 어린 왕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결국 졸지에 미하이는 왕위에서 쫓겨나고[6] 1930년 6월 8일부터 카롤 2세가 루마니아 국왕이 되었다. [7] 그러나 카롤 2세는 왕 자리를 차지하고도 약속했던 아내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다시 내연녀를 만나기 시작했다. 또한 실책도 상당해서 삼권분립 제도를 없애고 전제군주정으로 돌아가려는 경향을 보였으며 사형 제도를 부활시켜 민심을 잃어버렸다.

1939년, 아버지 카롤 2세와 함께 폴란드를 방문한 당시의 미하이 1세. 폴란드 전몰용사 무덤에 헌화를 하고 폴란드군의 사열을 받는 모습이 담겼다.
설상가상으로 1939년 나치 독일소련 간에 독소 불가침조약이 체결되었고 동년 9월부터 폴란드 침공에 의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말았다. 루마니아는 독소 불가침조약의 비밀 합의 조항에 의해 영토 일부[8]호구처럼 뜯기면서 카롤 2세는 전국적인 비난 여론과 퇴위 압력에 직면했고, 당시 총리였던 이온 안토네스쿠가 퇴위를 강권해 1940년에 결국 퇴위했다. 이후 왕세자인 미하이 1세가 다시 즉위해 2차 재위 기간을 열게 되었는데 당시 그는 18세였다. 안토네스쿠와 전위조국당은 그가 재위하자 국민군단국가를 선포한다.

2.3. 2차 재위와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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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온 안토네스쿠(망원경 바로 앞의 인물)와 미하이 1세(안토네스쿠 바로 왼쪽)
하지만 이미 국가의 실권은 안토네스쿠에게 넘어가 버린 상황이었고 미하이 1세는 2차 재위 때가 되어서도 아무런 힘을 지니지 못했다. 때문에 2차로 즉위한 이후 이온 안토네스쿠에게 순종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온 안토네스쿠는 이미 나치 독일의 충실한 종이 되어 있었고 루마니아를 추축국에 가입시켰으며 1941년 6월 22일 펼쳐진 바르바로사 작전루마니아군을 남부집단군(게르트 폰 룬트슈테트 원수) 휘하로 대거 파병했다.
그러나 1944년 추축국의 패전이 확실해지면서 미하이 1세는 쿠데타를 일으켜[9] 안토네스쿠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 후 연합국에 가담하고 추축국에 선전포고를 했지만 루마니아가 패전국으로 분류되는 것과 소련군이 루마니아를 점령하는 것은 막을 수 없었고, 결국 13만 명에 이르는 루마니아군이 굴라크에 끌려가는 굴욕을 맛보게 되었다. 미하이 1세의 정치 인생은 여기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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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의 모습
그는 공산 정권이 루마니아를 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해 법령의 최종 서명을 거부하는 등 노력했으나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1947년 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이 선포되면서 루마니아의 왕정은 폐지되었고, 소련공산주의자들의 압력으로 인해 동년 12월 30일 퇴위했다. 이때 그의 나이는 26세였다. 서른도 안 되어 두 번 왕위에 올랐지만 재위 기간 내내 자신의 의지대로 해 본 것이 별로 없었다.

2.4. 왕정폐지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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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식 당시의 모습.
미하이 1세는 퇴위 직전인 1947년 11월 엘리자베스 2세의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 안 드 부르봉-파르마(Anne de Bourbon-Parma)라는 여성을 만났고, 1948년 6월 결혼했다. 이후 이탈리아, 영국을 돌며 생활하다가 스위스에 정착했다.[10] 하지만 게오르게 게오르기우데지가 지배하던 루마니아 공산당 정부는 미하이 1세의 시민권박탈해 버렸고 마음대로 루마니아에 들어갈 수도 없는 신세가 되었다.
이후에도 미하이 1세는 자신이 루마니아의 정통성을 지닌 왕임을 계속 주장했으나 이 또한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뿐이었고 게오르게 게오르기우데지 이후에는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라는 정신 나간 악마가 등장하여 루마니아에 본격적으로 헬게이트가 열렸다. 차우셰스쿠의 폭정 때문에 루마니아 국민들은 왕가의 복귀를 원하게 되었고 미하이 1세의 국내 평가도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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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의 모습
차우셰스쿠가 사망한 1989년에야 미하이 1세 왕가는 다시 루마니아로 돌아갈 수 있었다. 부쿠레슈티에 도착하자 미하이 일가를 반기는 사람들의 수가 무려 10만 명이 넘었으며 당시 대통령 이온 일리에스쿠는 정권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고 느끼고 다시 입국을 금지했다(...). 이후 1997년 에밀 콘스탄티네스쿠가 대통령이 되면서 미하이 1세는 시민권을 회복하고 루마니아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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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미하이 부부의 모습.
귀국 후 부쿠레슈티에 위치한 엘리사베타 궁전에 기거하다가 2016년백혈병 진단을 받았으며, 2017년 12월 5일 스위스 오본의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
2017년 12월 16일, 부쿠레슈티에서 장례식이 거행되었는데, 영국의 찰스 왕세자, 룩셈부르크의 앙리 대공, 스웨덴의 칼 16세 구스타프 국왕과 실비아 왕비 부부, 스페인의 소피아 왕대비후안 카를로스 1세 전 국왕 부부, 옛 그리스 왕국의 앤-마리 전 왕비(마지막 국왕인 콘스탄티노스 2세의 부인으로 본가(?)인 덴마크 출신이다.) 등의 왕족들도 참석하였다. 그 외에는 소피아 왕대비와 콘스탄티노스 2세의 형제(자매)인 이리니 공주, 알바니아의 왕위 요구자 레카 2세,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왕위 요구자(논란 있음)인 마리아 여대공 등도 있었다.

3.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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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우자: 안 드 부르봉파르마(1923년 9월 18일 ~ 2016년 8월 1일) [11]
    • 정식 명칭: Anne Antoinette Françoise Charlotte Zita Marquerite
    • 약칭: Anne de Bourbon-Parme
    • 출생지: 프랑스 파리
  • 자녀(딸 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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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가레타 왕세녀와 조카 니콜라에 데 메드포드밀스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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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녀 '''마르가레타 왕세녀'''(1949~)[13]
현재 루마니아 왕위요구자. 루마니아 적십자사의 회장을 맡고 있다.
차녀 '''엘레나'''(1950~)
마르가레타 부부에 자녀가 없는 관계로
마르가레타 다음으로 왕위 계승권을 지녔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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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녀 '''이리나 (워커)'''(1953~)
2013년에 투계 도박 혐의로 구속되어
루마니아 왕가에서 제명됨.[15][16]
4녀 '''소피아'''(195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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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녀 '''마리아'''(1964~)[18]
  • 자녀들이 전부 딸이라, 2011년 미하이 1세는 왕가의 이름을 국호와 같은 "루마니아 왕조"로 개칭함과 동시에 루마니아 국회와 합의 하에 본래 살리카법으로 왕위 계승을 하던 계승 법칙을 변경했다.[19] 이에 마르가레타 이후로는 엘레나 공주, 엘리자베타 카리나 공주 순으로 넘어간다. 다만 정작 계승할 수 있는 손자(엘레나의 장남 니콜라에. 문제는 2015년에 제명당했다.), 손녀가 2명(엘레나의 장녀 엘리자베타, 소피아의 외동딸) 밖에 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
  • 이 때문에 만일 엘레나의 장녀 엘리자베타가 결혼을 못 하거나, 자녀를 낳지 못한다면, 소피아의 딸 쪽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 아니면 2013년 제명된 이리나와 그녀의 가족들이나 2015년 제명된 엘레나의 장남인 니콜라에를 복권한다든가...
  • 막장인 아버지 카롤 2세의 자손들 아니랄까봐, 집안 사람들 대부분이 크고 작은 사고들을 쳐서 왕위계승자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3.1. 조상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미하이 1세
(Mihai I)
카롤 2세
(Carol II)
페르디난드 1세
(Ferdinand I)
호엔촐레른 공작 레오폴트
(Leopold, Prince of Hohenzollern)
포르투갈의 안토니아 공주
(Infanta Antónia of Portugal)[20]
에든버러의 공녀 마리
(Princess Marie of Edinburgh)
에든버러 공작 앨프러드
(Alfred, Duke of Edinburgh)[21]
러시아 제국의 여대공 마리아 알렉산드로브나
(Grand Duchess Maria Alexandrovna of Russia)[22]
그리스덴마크의 엘레니 공주
(Princess Helen of Greece and Denmark)
콘스탄티노스 1세
(Constantine I)
요르요스 1세
(George I)
러시아 제국의 여대공 올가 콘스탄티노브나
(Grand Duchess Olga Constantinovna of Russia)[23]
프로이센의 조피 공주
(Princess Sophia of Prussia)
프리드리히 3세
(Frederick III)
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
(Victoria, Princess Royal)[24]

4. 기타


  • 비행기에 관심이 많아 망명 생활 중에 테스트 조종사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이로 인해 에이스 컴뱃 7에서 트리거의 라이벌 파일럿인 미하이 A. 실라지의 모티브가 되었다.
  • 왕세자 시절 교통사고로 자전거 선수를 사망하게 한 흑역사가 있다. 당시 총리의 회고록에 따르면 이는 당연히 언론에서 검열삭제되었다고 한다.
  • 평전으로 Michael of Romania: The King and the Country가 있다. 작가는 영국 출신 외교관이보르 포터.
  • 이웃 나라인 불가리아의 마지막 국왕인 시메온 2세도 어린 나이에 즉위했다가 어른의 사정에 휘말려 몇 년 안되어 왕위에서 물러나는 등, 그와 비슷한 경험을 겪었다. 다만 공산화 이후 정계와는 거리가 멀어진 미하이 1세와 달리 시메온 2세는 민주화 된 불가리아로 돌아와 불가리아의 총리를 역임한 바 있다. 사실 1990년 동유럽 민주화 당시 이미 70에 가까워진 나이였던 미하이 1세와 달리 아직 50대 중반의 나이로 한창 왕성하게 활동할 시기였던 시메온 2세의 입장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기는 하다.

5. 매체에서


Hearts of Iron IV에서 미하이 국왕의 쿠데타 국가집중 노선을 따라가면 카롤 2세를 몰아내고 집권시킬 수 있다. 끊임없이 사치를 부리고 애인과 놀아나느라 사고를 치는 카롤 2세가 워나 X맨이라서 카롤 2세는 빨리 제거해야 한다.

6. 둘러보기




[1] 여왕의 차남인 에든버러 공작 알프레드의 장녀[2] 에든버러 공작의 아내이자 마리 왕비의 어머니는 러시아 제국의 황제 알렉산드르 2세의 차녀인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이였다.[3] 참고로 미하이 1세를 영어로 부를 때는 Michael I of Romania(루마니아의 마이클 1세)라고 부른다.[4] 참고로 카롤 2세는 엘레나 왕비와 만나기 전에 지지 람브리노(1898~1953)라는 여성과 사귀면서 카롤 람브리노(1920~2006)이라는 아들을 낳았다. 카롤 람브리노의 장남인 파울필리페(1948년생)는 자신이 가문의 주인임을 주장하고 있으며, 2010년에 무려 62세(!!)라는 나이로 아들을 낳았다.(인공수정 혹은 대리모를 통한 출산이 정설이다. 참고로 파울필리페의 부인은 1949년생. 공식적인 입장은 현대 의학의 힘을 빌렸다는데...) 하지만 파울필리페는 사생아 혈통인 건 다 집어치우고 돈세탁, 직권남용 공모 등의 혐의로 2020년에 3년 4개월형을 선고받고 도피 중인 루마니아 공인 범죄자인지라 왕위계승권을 가지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때는 미하이 1세가 딸만 다섯을 둔지라 파울필리페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듯 하였으나, 호엔촐레른 가문살리카법귀천상혼이 둘 다 적용되기 때문에 그도 계승 자격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미하이 1세가 2011년에 아예 호엔촐레른 가문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살리카법을 폐지하며 왕실의 이름도 루마니아 왕가로 바꾸면서 말짱 꽝이 되어버렸다.[5] 당시 루마니아 정부에서는 왕위를 넘겨 받는 조건으로 내연녀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엘레니 공주와 재결합할 것을 요구했다.[6] 이때 왕세자로 격하되면서 왕위 확정상속인에게 주어지는 ‘알바 이율리아 대공(大公)’ 작위를 받았다.[7] 굳이 따지자면 고려 충숙왕충혜왕에 가깝다. 아버지와 아들이 하는 짓이 반대지만.[8] 소련에게는 바사라비아(베사라비아) 지방과 부코비나 북부 지방, 그리고 헤르차 지방을 빼앗겼고, 나치 독일은 루마니아를 압박해 트란실바니아 북동부 지역과 다뉴브 강 이남의 카드릴라테르 지역을 각각 헝가리(당시 헝가리 왕국)와 불가리아(당시 불가리아 왕국)에 양도하게 강요했다.[9] 이 쿠데타는 2차 대전의 종전을 약 6개월 정도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로 인해 해리 S. 트루먼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최고공로훈장을, 그리고 이오시프 스탈린으로부터 소비에트 전승훈장(Орден "Победа")을 수여받았다.[10] 벨기에레오폴드 3세가 임시 망명을 떠난 장소이기도 하다.[11] 부르봉 왕조의 방계인 부르봉-파르마 가문 출신이다. 손윗고모(아버지의 누나)가 합스부르크 가문의 마지막 황후인 지타(카를 1세의 부인, 1892~1989)이고, 룩셈부르크장(룩셈부르크) 전 대공(1921~2019)과는 사촌 관계이다.[12] 어머니는 차녀인 엘레나[13] 배우자는 라두 두다. 라두 두다는 헬스 트레이너로, 권력을 탐해 1996년 11살 연상의 마르가레타와 결혼했다. 적지 않은 추문을 일으켰다.[14] 장남 니콜라에(1985년생), 장녀 엘라자베타 카리나(1989년생)를 두고 있는데, 이 중 차기 계승권자였던 아들이 2015년에 사생아를 낳아버리면서 왕가에서 제명되어, 계승자가 딸로 바뀌었다.[15] 사진 왼쪽의 사람이 배우자이자 같이 구속된 웨슬리 워커.[16] 슬하 1남 1녀와 손자 1명, 손녀 2명이 있다.[17] 1998년에 알라닌 비아닉스(Alain Biarneix, 1957년생)와 결혼하여 2002년 이혼. 1999년생 딸이 하나 있다.[18] 1995년에 폴란드의 소설가 카지메아시 미스코브스키와 결혼했으나, 2003년에 이혼했다. 큰언니와 마찬가지로 자녀는 없다.[19] 특이하게도 공화국임에도 루마니아 국회와 합의를 했는데, 이는 루마니아에서 장기적으로 왕정 복고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루마니아의 경제가 그닥 좋지 못해 경제가 좋아지기 전까지는 명목상의 왕가 겸 국가 원로로 대우해주는 상황이다.[20] 페르난두 2세마리아 2세의 차녀이다.[21] 빅토리아 여왕의 차남이다.[22] 알렉산드르 2세의 차녀이다.[23] 니콜라이 1세의 손녀이다.[24] 빅토리아 여왕의 장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