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릭스 에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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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élix Éboué
1884년 1월 1일 ~ 1944년 3월 17일
프랑스령 기아나에서 태어난 프랑스식민지 행정관[1]이자 자유 프랑스의 일원이다. 할아버지가 노예였다. 기아나에서 태어난 뒤 보르도로 유학을 갔다. 축구선수로 활동했고 벨기에잉글랜드에 경기를 하러 가기도 했다. 파리에서 그랑제콜을 나온 뒤에 우방기샤리, 마르티니크 등에서 근무했다. 1936년 과들루프 행정관으로 임명되었고 1939년에는 차드 총독으로 임명되었다.[2]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항복하고 나치의 괴뢰국인 비시 프랑스 정부가 설립된 후 대부분 프랑스의 식민지가 비시 프랑스를 지지한 데 반해 그는 샤를 드 골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를 지지했다. 1940년 8월 자유 프랑스에 가담한 직후 그는 프랑스령 콩고, 카메룬, 우방기샤리를 설득하여 이들이 자유 프랑스에 가담하도록 하였다. 11월 자유 프랑스군이 아직까지 비시 프랑스에 충성하던 가봉을 점령하면서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 전체가 자유 프랑스의 통제 하에 들게 되었다.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는 이후 횃불 작전 전까지 자유 프랑스군의 아프리카 내 근거지로 사용되었다. 또한 본인은 아프리카 태생이 아닌 남아메리카 출신이었고 프랑스 식민정부에 협조하는 입장이긴 했지만 자신의 흑인성(négritude)을 자각하고 있는 편이어서 아프리카인들의 권익을 증진하려고 노력하였다. 1944년에 그는 세상을 떠났고 프랑스가 파리를 탈환한 후 그의 유해가 1949년 팡테옹에 묻혔다. 프랑스 흑인 명사로는 처음이었다.[3] 프랑스 입장에서 보면 자유 프랑스 운동에 참여하고 프랑스 관료로 일하는 등 애국자이자 식민지인 입장에선 같은 식민지 출신으로 식민지인들의 권리증진에 나서는 등 상당히 복합적인 인물이었다. 현재 그의 고향인 프랑스령 기아나의 관문 공항인 카옌 펠릭스 에부에 국제공항에 그의 이름이 붙어 있다.
그의 딸 중 하나는 세네갈의 초대 대통령이자 시인으로 흑인성을 강하게 얘기한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와 결혼하였다.
[1] 이름만 봐서는 낮은 직책 같지만 각 식민지 행정부를 이끄는 장관급의 직책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행정관은 정확히 말하면 governor로 식민지 주둔군 통수권이 없는것을 제외하고는 총독과 권한이 동일했다.[2] 프랑스 흑인으로서는 최초의 식민지 총독이었다.[3] 뒤에 1870년에 죽은 알렉상드르 뒤마가 2002년에 팡테옹으로 이장되는 일도 있긴 하지만 이장 시점은 그가 앞이다.